제166화
166. 166화
“혹시 박 씨 아저씨세요?”
“으음? 내가 박 씨인데, 자네는 누군가?”
“아! 저는 저번에 가야리에 이사 온 강진성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 청년이구먼. 그래서 나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아, 그게…… 회장님이 박 씨 아저씨 비닐하우스 정리 도와줘야 한다고 해서 제가 가겠다고 했습니다. 마을 주민분들과 교류하고 싶기도 해서요.”
진성의 설명에 박 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럼 잠깐만 나를 도와주게나.’라고 말하며, 비닐하우스 입구를 열어 주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딸기가 가득했다.
“딸기 수확 좀 도와주게. 물론 다 안 따도 되고 여기 상자만 채우면 된다네.”
“네, 알겠습니다.”
진성은 손목 스냅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딸기를 따기 시작했다. 이전에 딸기를 수확할 때 아버지한테 물어본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진성의 수확을 지켜보던 박 씨가 진성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딸기 수확 누구한테 배운 건가?”
“아버지한테 배웠습니다.”
“그런가? 잘 배웠네! 수확인 처음인 사람은 아무렇게나 수확하거나 딸기를 망가뜨리지.”
“아! 그렇군요.”
“수확도 빨리하는 거 보니 확실히 능숙한 농부 헌터군.”
박 씨 아저씨의 칭찬에 진성은 조금 머쓱해졌지만, 다시 수확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진성의 빠른 작업 속도 때문에 박 씨는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끝낼 수 있었다.
“역시 헌터라서 그런가 빠르구먼. 덕분에 잘 끝났네. 혹시 딸기 좀 필요하면 말하게. 언제든지 줄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진성은 박 씨 아저씨네에서 1시간 만에 수확을 끝내고 비닐하우스 바깥으로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세린이에게 다가갔다.
“세린아, 이제 끝났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니지?”
“아니에요. 아빠. 이제 다음 퀘스트 하러 가요.”
“그래그래. 알았어.”
진성은 세린이와 다음 목표인 김 씨 아저씨가 거주하고 있는 파란색 지붕 집을 찾아야 했다.
아까 회장이 설명한 대로 폰으로 지도를 살펴보니 여기서 반대편으로 가면 나올 것 같았다.
“일단 가 보고 못 찾으면 주변 주민분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걸음을 재촉해서 파란색 지붕이 보이는 집을 찾으러 다녔다.
반대편으로 다시 쭉 걸어가니 파란색 지붕의 집이 몇 채 나왔으나 김 씨네 주민이 거주하는 집은 아니었다.
“대체 어딜까?”
진성이 폰을 들고 지도를 살펴보는데 그 길을 지나가던 한 주민이 진성에게 말을 건넸다.
“청년~ 혹시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네……. 혹시 여기 김 씨 아저씨라는 분이 어느 집에 사시는 건가요?”
“응? 그거 난데?”
“네??”
우연히도 집으로 돌아가던 김 씨 아저씨와 마주쳤다.
김 씨는 청년이 길을 잘 모르는 거 같아 다가가서 말을 건네본 것인데, 자신을 찾아왔다니,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다.
“아, 그게…… 회장님이 도울 일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아, 그렇구먼. 그럼 따라오게나.”
“네.”
아까 박 씨 아저씨도 그렇고, 김 씨 아저씨도 세린이가 안 보이는 것인지 그저 스쳐갈 뿐이었다.
진성은 ‘아까 공터에서는 다른 주민도 세린이를 잘 봤던 거 같은데 왜 그러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진성의 표정을 본 세린이가 진성에게 속삭였다.
“아빠, 저 잠시 인식 저하 스킬을 걸었어요.”
“아? 그래?”
세린이는 처음은 아니지만,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고 아직 인간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인식 저하를 건 것이다. 공터에서는 인간들이 바글거렸지만, 진성의 퀘스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혹시 불편하면 말해. 세린아.”
“괜찮아요. 아빠.”
진성과 세린이의 대화를 못 듣는 것인지 김 씨는 앞장서서 쭉쭉 걸어 나갔다.
그렇게 20분을 걸었을까? 김 씨 아저씨네 농장에 도착했다.
“자, 여기가 내 농장이라네! 청년은 저기, 건초 더미 보이지?”
“네, 보입니다.”
“저걸 소 여물통에다가 옮겨주기만 하면 된다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시작할까요?”
“시간이 얼마 안 걸리지만 그래도 청년도 하는 일이 있을 게 아닌가? 빨리하면 나야 좋지.”
김 씨 아저씨의 말에 진성은 팔을 걷어붙이고 인벤에서 목장갑을 꺼내 낀 다음 건초 더미와 소 사료로 보이는 것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물통에 하나하나 채워주자 소들이 음식에 신이 났는지 하나둘, 여물통에 고개를 들이댔다.
30분 만에 작업을 끝낸 진성은 땀을 식히고 있었다. 김 씨는 그에게 시원한 생수를 건넸다.
“수고했다네, 청년.”
“네, 감사합니다.”
시원한 생수를 받아 뚜껑을 열어 물을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비록 겨울 날씨라지만 더운 건 더운 것이다. 오늘따라 몸을 많이 움직인 결과였다.
“다음에 농사에 대해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러 오게나.”
“네, 감사합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려~ 잘 가게, 청년.”
김 씨 아저씨네 집에서 나온 진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헌터의 몸으로 일하는 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일반인이었으면 오늘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아빠, 수고하셨어요!”
“고마워, 세린아. 휴우, 이제 한 개 남은 거 같구나.”
“빨리빨리 하고 집으로 가요~”
“그래.”
진성은 세린이와 마지막 일을 하러 가기 위해 가야리 마을 입구 편의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서 걸어가면 약 2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어느덧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고 딱히 배고프지는 않아서 이 일을 끝내고 집에 가서 식사할 생각을 했다.
“세린아, 너는 배 안 고프니?”
“네, 저는 괜찮아요. 딱히 먹지 않아도 유지할 수 있거든요. 물 정도는 마셔야 해요.”
“그러면 편의점 일 도와주기 전에 가서 물 좀 사 올 테니까 잠시 편의점 앞에서 기다릴 수 있니?”
“네! 아빠.”
가야리 마을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려는데, 안쪽에서 쿠당탕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알바생이 물건을 옮기다가 떨어트렸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진성은 도와주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물건이 바닥에 다 흐트러져 있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 두 명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알바생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저기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두 명이 여자분한테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앙? 뭐라는 거야? 까불지 말라고 다치기 싫으면 나가!”
그 남자 중 한 명이 진성에게 시비를 걸며 위협했다.
진성은 그들을 자세히 보다 그들이 헌터인 것을 알아차렸다.
헌터가 일반인으로 보이는 알바생을 위협하다니, 글러 먹은 녀석들인가?
“어이! 멀뚱멀뚱 쳐다볼 생각하지 말고 나가지? 남의 일 아닌가?”
“경찰에 신고합니다?”
“뭐라고? 이게!”
아까 시비 걸었던 남자가 진성에게 주먹을 날렸다.
진성은 상대방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간단하게 피했다. 워낙 느려 날아오는 게 보였던 것이다.
진성은 이제 A랭크 헌터다. 낮은 랭크 헌터의 공격쯤이야 간단하게 피할 수 있었다.
“이, 이 녀석!”
그 남자는 다시 주먹을 날렸지만, 진성은 그의 주먹을 다시 피하고 다리를 휙 걸어 그를 쓰러뜨렸다.
쿠당탕!
“으악!”
“겨우 애송이한테 당하기나 하고, 퉷.”
지켜보던 다른 남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냈다. 그리고 진성에게 겨누었다.
“이봐, 애송이.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나가면 목숨은 살려주지!”
“헌터가 시내에서 무기를 꺼내는 거,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요?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요.”
“나한테는 위급한 상황인데?”
“말이 안 통하네요.”
“죽으라고! 애송이!”
그 남자가 검을 휘둘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알바생이 진성에게 피하라 외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진성은 이것마저도 간단하게 피하고 그를 단숨에 제압하였다.
“크으윽.”
“미안하지만, 저도 헌터라서요.”
쓰러진 두 명의 헌터는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진성의 외할머니의 사주로 진성의 뒤를 조사해 오던 용병 헌터들이었기에 진성이 헌터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성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진상 헌터로 보이는 그들을 간단하게 제압하였다.
“크읍.”
“자,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제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대신 여기 주변 정리 도와주고 알바생분에게 사과하실래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고 넘길까요?”
“후자로 하지.”
진성은 제압하던 그를 풀어 주었다.
그들은 다시 진성을 공격하지 않고 진성의 감시 아래 주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대부분 원래대로 정리했다. 그리고 알바생에게 사과를 하고 편의점에서 순순히 나갔다.
“에휴, 이상한 진상들이네요.”
진성은 주저앉아 있던 알바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진성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별거 아닌걸요. 제가 사는 마을이기도 하고요. 혹시나 저들이 또 와서 행패를 부린다면 여기 마을 회관 회장님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해요.”
진성이 그 알바생의 얼굴을 보았는데 누군가와 꽤 닮아 보였다.
갑자기 말을 하다가 마는 진성의 모습에 알바생은 자신의 얼굴에 뭐가 묻은 건가 생각하여 얼굴을 급히 닦았다. 그럼에도 진성은 계속해서 자신을 쳐다보았다.
“혹시 무슨 할 말이라도?”
“아, 죄송해요. 제가 아는 사람하고 닮아서요.”
“그런가요?”
“네, 제 친구 회사에 S랭크 한소율 헌터라고 있거든요. 매우 닮은 거 같아서 잠깐 넋 놓고 쳐다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제 언니예요.”
“네?”
진성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는 다시 한번 한소율이 자신의 친언니라고 대답했다.
“아, 자매이신가요?”
“네, 자매예요. 제 이름은 한예린이에요.”
“한예린 씨군요. 전 강진성이라고 합니다.”
“아, 진성 씨인가요? 언니한테 몇 번 들어본 거 같아요.”
덜커덩-
둘의 대화는 누군가의 인기척 때문에 잠깐 끊겼다. 뒷문으로 들어온 편의점의 점장 때문이었다.
“응? 예린아, 무슨 일 있었던 거냐?”
점장의 말에 예린은 ‘아, 아뇨.’라고 말했지만, 점장은 이 마을에서 편의점을 한 지 오래되었고 나름의 눈썰미가 있었기에 주변을 슬쩍 둘러보는 것만으로 진상이 왔다 간 걸 알 수 있었다.
“보니까 진상이 왔다 갔구나. 에휴, 나를 부르지 그랬냐? 예린아.”
“다음에는 점장님 부를게요.”
“그나저나, 옆에 있는 분은 누구시냐? 손님이냐? 아니면 친구?”
“아! 손님이신데 아까 진상이 왔을 때 이분이 도와주셨어요.”
“아! 그렇구나. 으음? 자네, 예린이를 도와줘서 고맙네.”
“아, 네.”
“그러고 보니 자네 저번에 이사 온 강진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지?”
“네.”
“저번에 회장님께 들었지. 보기 드문 성실한 청년 하나가 이사 왔다고…….”
“네, 맞습니다.”
“손님으로 온 거면 이제 물건 골라도 되네.”
“손님으로 오기보다는 회장님께 부탁을 받아서 왔습니다. 교류 겸 도와 드리려고요.”
“그렇구먼. 그러면 자네, 잠시만 뒤로 따라오게.”
점장은 진성에게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였고 진성은 그대로 그를 따라갔다.
세린이에게 생수를 줘야 하는 것은 깜빡 잊어버렸다.
점장을 따라 도착한 뒷문에는 꽤 많은 물건이 쌓여 있었다.
“이걸 다 옮겨주게나, 안쪽으로.”
“알겠습니다.”
진성은 마지막 퀘스트를 위해 힘을 써서 많은 물건은 편의점 안쪽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점장도 열심히 옮겼다.
점장도 헌터이긴 했지만, 진성처럼 빠르진 않았다. 둘이서 하니 1시간도 안 돼서 모든 물건을 안쪽으로 옮기고 정리까지 끝낸 것이다.
“도와줘서 고맙다네. 혼자서 했으면 4시간도 넘게 걸렸을 텐데 자네 덕분에 1시간도 안 돼서 끝냈으니.”
“제가 도움 돼서 다행이네요.”
점장과 진성의 앞에 한예린은 수고했다고 하며 물을 건네주었다. 진성은 오늘따라 뭔가 물을 자주 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 한예린의 언니를 아는 거 같던데 사실인가?”
“네, 어찌하다 보니 그런 인연이 있죠.”
“흐음……. 그렇구먼.”
점장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였다.
“오늘 더 이상 도울 일은 없는 거죠?”
“그래, 없다네. 이만 돌아가도 되네! 도와줘서 고맙네.”
“네.”
“안녕히 가세요, 진성 씨.”
“네, 수고하세요. 예린 씨.”
진성은 편의점을 나가려다가 생수를 사려고 했던 게 생각나 한 병을 구매하고 편의점에서 나왔다.
“아빠! 늦게 나오셨네요?”
“미안, 세린아. 들어가자마자 일했거든. 자, 여기. 물.”
진성은 생수병 뚜껑을 열어 준 다음 세린에게 건네주었다.
세린은 시원한 물을 마시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아빠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헌터로 보이는 두 명이 나와서 이상한 말을 하고 갔어요.”
“무슨 말이니?”
“아빠가 헌터인 거를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어디론가 전화하면서 사라지던걸요?”
“그래?”
진성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두 명의 헌터와 다시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