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165. 165화
세린이와 간단한 대화를 끝낸 진성은 수인족들이 작물을 수확하는 걸 멍하니 지켜보았다. 저들이 빠르게 수확하는 걸 보자 가끔은 혼자 하기보단 저들에게 시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빠, 조금만 기다리세요. 거의 끝나가니까요.”
“천천히 해도 돼. 세린아. 어차피 급할 건 없으니까.”
“아니에요. 아빠! 빨리 능력치를 키워서 군주와의 싸움에서 이겨야죠!”
“하하하, 알았어. 세린아.”
세린이가 수인족들에게 날아가 지시를 하자 그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수확해 나갔다.
약 30분이 지났을까? 작물별로 분류해 돗자리에 나란히 펼쳐 놓았다.
진성은 그 자리로 가 수확한 작물 모두를 인벤에 넣기 시작하였다.
“많기도 하네. 한동안 수확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매달 했었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가끔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조금 벅찬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매달 수확하는 일을 직접 해 봐야 할 듯싶었다. 원래 수인족들이 수확하는 일이 아니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세린아, 수고했어. 그리고 안드레도.”
“네, 감사합니다. 진성 님. 도움이 돼서 기쁘네요.”
수인족 전직 용사 안드레는 진성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했다.
“이제 판매하러 나가시는 겁니까?”
“뭐, 그렇지. 일단 퀘스트니까.”
“판매 수고하세요. 진성 님.”
“그래. 안드레.”
안드레는 동료를 데리고 주변을 청소한 후에 자신들의 거주지로 돌아갔다.
자리에 남은 건 진성과 세린뿐이었다.
“세린아. 판매하러 나가는 거, 너도 나가지 않을래?”
“저요? 아빠.”
“그래. 바깥 구경이라도 해 보지 않을래? 세린이 정도면 마을 사람들도 별말 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가도 될지 모르겠어요. 아빠.”
“그러면……. 시스템에 물어보면 되지. 시스템! 세린이가 가야리 마을까지 나가는 건 상관없지?”
진성은 혹시나 시스템이 반대할까 봐 물어봤다.
-네, 상관없습니다.
“봐봐, 세린아. 시스템도 괜찮다고 하네.”
“그러면 나갈게요.”
진성은 시스템의 허가도 받았겠다 세린이와 함께 밭으로 나왔다.
저번 학장과의 싸움에서 잠깐 소환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땐 싸움만 했기 떄문에 세린이가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나와서 같이 퀘스트도 해 보고 하는 게 세린이한테도 좋을 것 같아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진성은 세린이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까지 걸어왔다.
“바깥 좀 춥지? 세린아.”
“아뇨, 괜찮아요. 아빠. 저는 세계수의 가호가 있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세계수의 가호를 받는 세린이는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세계수의 가호는 엄청 편리했다.
“자! 여기가 내 집이란다. 세린아!”
“와! 여기가 아빠 집이에요?”
“그래.”
세린이는 집 바깥과 정원 그리고 안쪽을 날아다니면서 구경했다.
“혼자 사는 터라 별거 없을 거야.”
“제가 가끔 놀러 올게요. 아빠!”
“그래? 그러면 나야 좋고.”
세린이와 함께 자신의 집 구경을 마치고 가야리 마을까지 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세린이와 이렇게 천천히 걸어 다니며 사방을 구경한 적이 있던가? 아니,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린이가 바깥세상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는 게 딱 봐도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세린아, 즐겁니?”
“네! 아빠랑 같이 천천히 산책하면서 구경하는 게 즐거워요.”
“그러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같이 산책하자.”
“네, 아빠!”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어느새 가야리 마을 입구에 도착하였다. 평일임에도 마을 안에 사람들이 꽤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야리에서 농사를 짓거나 문산 쪽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많아서 그런지 이른 시간임에도 가야리 주민들이 꽤 많은 것이다. 마을에 정착한 유명한 셰프가 연 음식점에 방문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이 정도로 바글거리진 않았는데, 여기도 날이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네.”
진성은 마을 입구로 진입하였고 진성을 알아보는 마을 주민 몇 분이 손을 흔들면서 인사하자 진성 또한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세린아, 오늘 해야 할 퀘스트가 이거거든?”
-일일 반복 퀘스트
등급:E
내용:가야리 마을 주민과 교류
보상:명성도 일부 증가
-퀘스트
등급:D
내용:가야리 마을에서 농작물 팔기(자신의 밭에서 자란 작물을 팔아보세요.)
보상:명성도 및 레벨업
-일일 반복 퀘스트
등급:E
내용가야리 마을 주민 일 도와주기
보상:랜덤 능력치 일부 상승.
세린이 앞에 퀘스트 창을 공유하였는데 퀘스트가 세 개인 것을 본 세린이는 미소를 지으며 “충분히 오늘 안에 다 할 수 있어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대답을 한 것이다.
세린이가 이렇게 말했으니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진성이었다.
“아빠, 일단 농작물 팔기부터 해요! 그리고 교류하고 일 도와주기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알았어. 그럼 일단 자리 잡으려면 여기 청년회장님께 얘기해야 하거든.”
진성은 세린이와 함께 마을 회관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보는 청년회장님이었다.
회장님은 마치 회관에 있었는데, 진성을 보자마자 환하게 인사하며 반겼다.
“진성 군, 오랜만이구먼. 잘 지냈는가?”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회장님.”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건가?”
“다름이 아니라 저번처럼 요번에도 농작물을 판매해 보려고 하거든요.”
“그렇구먼. 저번 작물 품질 보니까 꽤 좋던데, 이번에도 그 품질인가?”
“네! 이번에는 여러 종류로 판매하려고 합니다.”
“그렇군. 일단 허가해 주겠네. 편의점 쪽에 자리 하나 있으니까 누가 와서 뭐라고 하면 내가 허가해 줬다고 하게나.”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마을 회관에서 나왔다.
“아빠, 이제 그 자리로 가서 판매하면 되는 거예요?”
“응.”
“그럼 빨리 가요~”
“그래, 알았어. 세린아.”
마을 회관에서 마을 입구로 다시 돌아왔고 편의점과 어떤 건물 사이의 공터로 향했다. 주로 마을 바자같은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는 곳이었다.
이곳을 다시 빌려주신 회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든 진성은 나중에 필요한 작물을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 공터에는 마침 다른 주민도 뭔가를 판매하려는지 물건들을 꺼내고 있었는데 진성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구먼. 청년.”
가야리 마을 주민 대다수는 진성을 알고 있었다. 멧돼지 사건도 있었고 저번 판매할 때도 안면을 익힌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요번에도 그때처럼 농작물 팔려고?”
“네. 그렇죠! 이번에는 여러 가지로 팔아보려고요.”
“그래? 그것참 기대가 되는구먼. 그나저나 자네 뒤에 날아다니는 저 아이는 뭔가?”
그 주민은 그제야 세린이를 발견했는지 물었다.
진성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였다.
“제 정령입니다.”
일단 소환수로 얘기해 놓는 게 제일 좋을 듯싶었다. 괜히 세계수의 정령왕이라는 걸 말했다간 조금 이상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 그런가? 내가 헌터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저런 형태의 정령도 있었구만.”
“네, 뭐……. 그렇죠.”
“아무튼 오늘도 열심히 잘 팔게나. 청년.”
“네, 아저씨도 많이 판매하세요.”
진성은 덕담을 주고받고는 자리를 잡아 인벤에 있던 돗자리 두 개를 바닥에 깔고 자신의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차례대로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과일들도 가득했다.
비닐하우스에서 기른 딸기, 수박, 토마토 등도 꺼내어 차례로 깔아 두었다.
옆자리에 있던 그 주민은 진성이 꺼내는 것들을 보고 예사롭지 않은 품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렇게 때깔 좋은 작물들이라니. 확실히 이 청년은 농사를 장난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열심히 키우는 보기 드문 청년 같았다.
그 주민이 이렇게 생각하는 줄 모르고 진성은 오늘도 다 못 팔더라도 조금이라도 팔아보자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성처럼 작물 또는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주민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채웠고, 동네 산책 나온 일부 주민이 관심을 보이며 공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도 저 공터에서 뭔가를 판매하나 본데? 가 볼까?”
“오늘은 뭐가 나와 있을까?”
그 공터는 오직 마을 청년 회장님에게 허가받은 자만 쓸 수 있었는데, 매일매일 판매하려고 나오는 주민도 있어서 마을 주민도 모두 다 아는 상황이었다.
공터는 금세 북적거리기 시작하였다.
진성의 자리에도 몇몇 주민 또는 놀러 온 사람들 등 다양했다.
거기에 세린이가 날아다니면서 진성의 작물을 홍보 설명까지 겸하니 세린이가 귀엽다면서 오는 주민들도 꽤 많았다.
진성은 정신없이 판매하고 계산하고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청년, 이거 시금치 얼마예요?”
“아, 네. 그건…….”
시금치와 약간의 허브 그리고 과일들 등을 정신없이 판매하는 진성과 진성의 작물을 다 팔겠다는 각오를 다진 세린이가 홍보하는 콜라보였다.
정신없었지만, 세린이 덕분에 다 판매할 듯싶었다.
“어머, 이것 봐. 품질이 너무 좋은데?”
“그러게, 미숙이 엄마! 이것도 좋아.”
아줌마들이 몰려와 진성의 농작물을 몽땅 구매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이 공터를 들락날락했고 진성의 작물들은 3시간 만에 모두 판매가 되었다.
옆자리에 있던 다른 상인들도 진성 덕분에 꽤 많이 팔았다.
“고마워, 청년 덕분에 우리도 많이 팔렸어.”
“제 덕분은 아니고 제 정령 덕분에 그런 거니까요.”
“아무튼 고맙네그래.”
공터에서 판매하는 상인들도 진성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일찍 자리를 털고 가는 상인이 있는가 하면 나머지도 다 팔겠다는 심정으로 남아 있는 상인도 있었다.
진성은 모두 판매가 끝난 터라 주변 정리를 말끔하게 하고 돗자리를 접어 인벤에 넣은 다음 세린이와 공터에서 나왔다.
“세린아, 오늘 고마워.”
“헤헤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진성에 세린이는 즐거웠다. 오늘 아빠와 함께 작물 판매도 해 보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제 퀘스트 한 개 완료되었으니까 마을 주민들 일 좀 도와줘 볼까?”
“네 아빠!”
진성은 먼저 마을 회관에 다시 들렀다. 회장님에게도 도와 드려야 할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라? 무슨 일 있는 건가. 진성 군.”
“아뇨, 덕분에 오늘도 다 판매했습니다.”
“아아, 그렇구만.”
“그리고 다시 찾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나 해서요.”
“흐음. 도와줄 일이라……. 혹시 마을 주민들하고 교류하고 싶은 건가? 진성 군.”
“네, 가야리 마을 들어온 지 좀 되었는데 너무 교류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흐음.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청년회장은 마을 관리일지 꺼내 읽어보고 있었다.
“어디 보자, 우선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오늘 박 씨네 비닐하우스 정리가 있구만.”
일지에서 몇 개를 찾아 진성이 할 수 있는 것들로 보여 주었다.
“일단 박 씨네 비닐하우스 정리하고 김 씨네 소 여물 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야리 편의점 점장한테 가서 물건 정리 도와주게나.”
“편의점은 알바생이 해도 되는 일 아닌가요?”
“아아, 그게 알바생이 오늘 처음인 것도 있고 점장이 워낙 바쁘고 해서 못 도와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자네가 조금만 도와주게나.”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일 다 하고 찾아오게나.”
“네, 감사합니다. 일단 박 씨 아저씨한테 가면 되는 거죠?”
“박 씨네 사는 위치를 알려주겠네.”
회장은 박 씨와 김 씨 아저씨네 집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진성은 회관에서 나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린에게 다가갔다.
“아빠! 어디부터 가야 해요?”
“일단 박 씨 아저씨를 찾아가야 된대. 가서 비닐하우스 정리하라고 하거든.”
“네, 알았어요. 아빠!”
마을 회관이 있는 위치에서부터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빨간색 지붕의 집이 나왔고 그 집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는 걸 확인하였다.
진성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주민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