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162. 162화
거기에 아이까지 생겨서 더욱 안 좋아하고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 뵙는 외할머니의 눈빛이 굉장히 차가웠다.
“누나, 점심은 거의 다 됐어?”
아까 봤던 외삼촌이 다가와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거의 다 됐어! 걱정하지 마.”
“어머니가 또 뭐라 하시기 전에 빨리해야 해. 누나. 나도 도와줄게.”
“아냐, 괜찮으니까 넌 주변 정리 좀 해 줄래?”
“알았어. 누나.”
외삼촌은 몇몇 친척과 함께 주변 정리를 시작하였다. 약 30여 명이 모인 자리라 그런지 저택 1층이 매우 북적거렸다.
외할머니는 아직도 손자인 진성과 자신의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진성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외할머니의 시선 때문인지, 뭔가 주변의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듯했다.
외할아버지는 그저 허허허 웃으면서 다른 친척들의 방문을 반기고 있었지만, 외할머니는 아주 노골적으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을 감당하는 부모님은 정말 괜찮으신지 꽤 걱정이 되었다.
딱딱한 시선 속에서도 점심이 완성됐는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던 다른 친척과 엄마의 목소리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자자, 아이들도 배가 고픈데 먹어야지?”
외할아버지가 이때다 하고는 바로 외할머니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말을 꺼냈다. 눈치 빠른 다른 친척들도 외할아버지의 말에 동조하며 밥이나 먹자면서 넓은 자리로 이동하였다.
아무리 부엌이 넓다고 해도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인원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일부는 따로 앉아서 먹어야 할 듯하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부엌 쪽 식사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부모님과 진성 그리고 외삼촌은 조금 떨어진 TV가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친척들도 외할머니가 진성네 부모님을 그다지 안 좋게 보고 있는 걸 잘 알기에 외할머니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진성의 가족들과 외할머니가 가까이 앉지 않도록 중간에 앉아준 것이다.
친척들은 진성네 부모님과 친하므로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 주고 있었다.
“자자, 얼른 밥이나 들게나.”
외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운된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
외할머니는 그저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외할머니에게서 풍기던 낮은 기운이 조금 없어지자 다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식사를 시작했다.
“누나, 요즘은 어때?”
외삼촌인 이강우가 자신의 누나에게 근황을 물어 보았다. 너무 오래간만에 만난 터라 누나네 가족의 근황이 너무 궁금했던 터다.
“궁금하니? 강우야.”
동생이 매우 궁금해하자 웃으면서 최근의 근황을 짧게나마 알려주었다.
매형이 다시 기업 차기 후계자로 되었고 다 잘 풀렸다는 말에 강우는 누나네 가족이 돈 걱정 없이 살게 된 데에 안심을 했다.
“다행이네. 누나랑 매형.”
진성의 아버지는 묵묵히 아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외할머니가 아내의 대화 소리에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느낀 외삼촌은 다시 화제를 돌려 자신은 헌터 길드 매니저를 하고 있다는 둥 얘기를 하였다.
식사 전 갑갑했던 분위기가 식사 시간에는 조금이나마 풀려 다들 안심했다.
식사가 끝나자 서로 자신들의 일상 이야기나 직장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끌고 갔다.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딸과 손자인 진성, 사위를 보며 말을 하였다.
“그래서 이젠 잘 되어 가고 있는 거냐, 사위.”
“네, 장인어른. 이제 저도 다시 한울 기업 차기 후계자 후보에 올라가 있는 상태고 이제 돈 걱정 없이 잘 살아갈 듯합니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만. 안 그래도 내 딸이 자네 덕분에 엄청 고생하는 게 보여서 그동안 괘씸했다네.”
“이젠 고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장인어른.”
“그래, 그래. 행복하게 살아야지.”
두 번째 뵙는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굉장히 아끼는 듯했다. 외할머니와 다른 모습이라서 그런지 안심이 되었다.
과거 첫인상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호적인 느낌이랄까?
“난 아직 용서 안 했다.”
외할머니의 초치는 말에 외할아버지는 이 기분 좋은 날에 또 왜 그러냐면서 말리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직도 자신의 딸과 그리고 사위, 손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난 너 같은 딸을 둔 적 없으니 엄마라고 부르지 마라.”
아주 차갑게 얘기하는 외할머니 모습에 진성은 조금 적대심이 들었다.
그런 진성의 표정을 보았는지, 외할머니께서 이번엔 진성에게 말을 건넸다.
“그 표정 마음에 안 드는구나. 웃어른에게 그렇게 하라고 배웠느냐?”
“엄마, 좀 그만하세요.”
참다못한 강우가 자신의 엄마를 말렸다.
외할아버지조차 자신의 아내가 오늘따라 날이 서 있는 걸 모르지 않지만, 해도 너무 했다.
그걸 지켜보는 친척들도 어머니의 마음은 잘 알지만 이런 날에 저러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외할머니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은 녀석들 뿐이니…….”
누구한테 말을 하는 것일까?
외할머니는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사랑을 찾아 나간 자신의 딸과 딸을 꾄 저 못 돼먹은 사위가 정말 미웠다.
거기에 아이까지? 진성을 처음 보자마자 안 좋게 대한 것은 맞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온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시는 오지 마라.”
딸에게 모질게 말하는 그녀였다.
자신의 엄마가 그리 냉정하게 말하자 진성의 엄마는 조금 눈물이 났다. 차갑게 대해도 자신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하다니……. 대체 왜 그러는 거요!”
외할아버지는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올려놓은 분위기가 다시 이렇게 다운되어 버리자 다들 외할머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딸 아닙니까?”
진성의 아버지가 참다못해 외할머니에게 말을 하였다.
“그래서? 넌 내가 애지중지하는 딸을 꾀어서 나간 도둑아닌가? 그런 주제에 뭐가 그렇게 말이 많은 거냐!”
“저에 대해서 욕을 하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하나뿐인 딸 아닙니까? 그렇게 모질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장모님.”
“뭐라고?”
외할머니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로 사위를 바라보았다.
딸은 이제 그만 하라고 둘을 말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더 싸움이 날 판이었다.
“안 되겠어. 매형, 일단 이쯤하고 가는 게 어때요?”
“그래. 그쯤하고 일단 가게나, 사위.”
외할아버지가 주변 친척들에게 눈치를 주자 그들이 외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분노를 달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외할아버지는 사위와 딸을 따로 불러 말을 했다.
“일단 이쯤에서 돌아가야겠네, 사위. 미안하네.”
“아닙니다. 장인어른. 저는 괜찮지만…….”
강찬성은 자신의 말을 흐리며 힘들어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일단 돌아가게나. 나중에 잠잠해지면 알려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그래.”
외할아버지는 일단 돌아가라고 말했고 진성에게도 말을 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구나, 진성아.”
“괜찮아요, 할아버지.”
“이런 좋은 날에 싸움이라니……. 나도 가끔 아내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단다. 일단 부모님을 잘 모시고 돌아가거라.”
“네, 할아버지. 다음에 한 번 찾아뵐게요.”
“그래, 그래.”
외할머니는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시선이 차단된 상태였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진성네를 배웅하기 위해 1층 정원으로 나왔다.
부모님은 택시를 타고 온 상태였기에 진성의 차에 탑승하였다.
“진성아.”
“네, 삼촌.”
외삼촌 강우가 진성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내가 운영하는 헌터 길드인데. 뭐, 매니저 겸 헌터 부 길드장을 겸하고 있단다. 혹시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찾거라.”
“네, 감사합니다. 삼촌.”
“굳이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도 가끔 전화해도 되고.”
“네.”
강우는 그저 조카와 누나 그리고 매형이 잘되었으면 하는 걱정뿐이었다. 고생을 많이 한 흔적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빠. 저 돌아갈게요.”
“그래. 미안하구나.”
진성의 눈에는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저렇게 좋으신 분인데 할머니는 왜 그런 걸까?
“아빠.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그래. 잘 돌아가고. 사위.”
“네, 장인어른.”
“내 딸을 많이 챙겨주게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장인어른.”
짧은 대화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진성이네 가족은 그렇게 떠났다.
외할아버지는 옆에 있는 막내아들에게 말했다.
“혹시나, 그녀가 또 그런 일을 한다면 알려주거라.”
“네, 아버지.”
외할아버지가 지칭하는 그녀는 바로 아내였다.
나름 잘사는 집안이었기에 아내를 보조하는 헌터 집단이 있었는데 아내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헌터들을 불러 처리하곤 했다.
그때마다 왜 그랬냐고 항의했지만,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왠지 모르게 이번엔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를 해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나마 힘이 있고 믿을 만한 막내아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진성이도 강한 헌터 같더라고요. 아버지.”
“그래?”
“아까 슬쩍 보니 A랭크 헌터의 기운이 느껴지긴 했어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겠구나.”
“혹시 모르니까 저도 대비할게요.”
“그래, 언제나 수고가 많구나.”
막내아들의 어깨를 탁탁 치며 고맙다는 듯이 말했다.
강우는 아버지가 어머니 때문에 엄청 고생하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지었다.
정원에서 그들이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외할머니인 그녀는 바로 자기 방으로 올라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네, 사모님.
“일 하나 처리해 주어야겠어.”
-어떤 일이십니까?
“내 딸하고 사위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내 딸은 놔두고 사위를 처리해 주게. 그리고 손자까지.”
-흐음. 어려운 일이군요. 그 둘은 모두 한울 기업 강 회장이 아끼는 분들입니다. 정면으로 맞서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상관없다.”
-혹시 그분의 힘을 빌리실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너희는 내 말에 따라라.”
-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간은 상관없으니 저 가증스러운 사위와 손자를 처리해라.”
-네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누군가와 전화를 끝낸 그녀는 소름이 끼치는 얼굴로 웃었다.
“봐주려고 했지만. 이젠 안 되겠어.”
그녀는 미친 듯이 웃었다.
방음이 잘되어 있는 방이라서 웃음소리는 새어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버지, 왜 그러세요?”
강우는 아버지가 갑자기 흠칫거리자 물어본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네 누나하고 사위에게 비밀 호위를 붙이거라.”
“네, 아버지.”
* * *
한편, 진성의 차에서는.
“엄마, 괜찮으세요?”
진성은 운전하면서 뒷좌석에 앉은 엄마의 표정이 슬퍼 보여 물었다.
“으, 응. 괜찮아. 아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힘든 게 보이니까요.”
“고마워, 아들.”
진성은 외할머니가 더욱 안 좋게 보였다. 아무리 외할머니라도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은 싫었다.
앞으로는 외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곳에서 외할아버지나 외삼촌만 뵈어야겠다.
“일단 올라가는 길은 별로 안 막히니까 3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요.”
“천천히 가도 되니까 우리는 신경 쓰지 말아라.”
“네. 아버지.”
휴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도로가 한산해 내려올 때와 같은 속도로 달려도 빠르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없이 달렸고 1시간이 지났을까, 근처에 휴게소가 보여 휴게소에 들르자고 말을 꺼냈다.
“잠시 휴게소에 들를 건데. 괜찮죠?”
“그래, 상관없다.”
“응, 괜찮아. 아들.”
휴게소는 차량이 많이 주차되어 있지 않아서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금세 주차를 하고 자신은 차에 남아 부모님께 화장실에 다녀오시라고 말했다.
15분이 지났을까? 부모께서 차로 돌아오신 뒤, 진성도 빠르게 화장실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