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54. 154화
“알았어. 시스템. 최선을 다해 볼게.”
-네, 진성 님.
진성은 루콜라를 심은 곳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도 폰으로 게임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루콜라 모종과 씨앗은 엄청난 속도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든 쪽은 이제야 싹이 나왔다.
“진짜 체감상 별로 안 지났는데……. 빠르긴 빠르네.”
진성의 혼잣말에 시스템이 말을 건넸다.
-진성 님, 벌써 이틀째입니다.
“벌써? 체감상 10시간째인데?”
이 공간에 오래 있을수록 시간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작물들 성장 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싹을 틔우고 쑥쑥 크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에 이든 쪽 수박은 아직 크기가 작은 열매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이든은 전혀 걱정되지 않는 듯 빈둥빈둥 놀고만 있었다.
진성은 그의 꿍꿍이가 뭔지 파악하려고 하였지만, 도저히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스템 또한 모른다고 하자 진성은 이든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닌가?”
-이든의 나쁜 버릇입니다. 자신이 경험이 많다고 해서 남을 깔보고 얕보는 것은 매우 안 좋은 버릇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진성 님이 꽤 유리해졌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작물에 집중 바랍니다.
“알았어. 하지만 너무 신경 쓰인단 말이야.”
시스템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말하고 있지만, 진성은 너무도 신경이 쓰였다.
자신은 루콜라를 지켜보면서 노력하고 있는데 이든은 수박을 내버려 두고 놀고먹고, 잠을 자기를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그가 이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진성은 불안한 것이다.
“조금만 더 지켜볼게. 시스템.”
-하지만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진성 님이 유리한 상황입니다.
시스템의 말에 진성은 알겠다고 말하고는 루콜라에 정성을 다해 관심을 주고 키워나갔다. 그러면서도 이든을 계속해서 신경 썼다.
진성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시스템의 말대로 신경 쓰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저 여유로움에 이유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 흘러갔다.
“시스템, 이제 며칠째지?”
진성은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루콜라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많은 애정을 주어서 그런지 루콜라는 정말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9일째입니다. 진성 님. 조금만 더 버티시길 바라며, 조금 잠을 자 두세요.
“알았어. 그럼 조금만 자야겠다. 알람 맞춰 놓고 자야지.”
진성은 정확히 6시간만 자기 위해 알람을 맞춰 두었다.
6시간이면 이 공간에서는 하루가 더 지나 깨어난 후엔 바로 10일째가 된다.
진성은 많이 피곤했던지 땅바닥에 눕자마자 바로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진성이 자는 것을 본 이든은 저 녀석도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가 결국에 자는구나, 하면서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시스템은 진성을 대신해 이든을 감시했다.
이든은 움직이지 않고 자는 진성을 잠시나마 쳐다보았다.
“괜히 정정당당하게 한다고 했나?”
이든은 처음 도전한 지구의 작물, 수박을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그런 이든을 뒤로 한 채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이 특별한 공간은 계속해서 낮이었다. 밤이 아예 없는 듯하다.
정확히 6시간 뒤에 알람이 울렸지만, 진성은 피로 누적이 심한 터라 깨어나질 못했다. 시스템은 진성이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흐른 후, 진성이 일어났다.
“어라? 알람이 안 울렸나?”
진성이 폰을 확인해 보니 확실히 울린 듯했다. 일부러 알람을 6개나 걸었는데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시스템! 나 왜 안 깨워줬어?”
-진성 님이 좀 더 편하게 잘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아니다. 내가 못 깼으니 할 말이 없네. 작물 진척 상황이…….”
루콜라는 어느새 다 자라있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며칠째지?
“시스템……. 설마 지금 시각으로 12일 넘었어?”
-정확히 14일째입니다.
“그럼 내가 잠을 15시간 이상 잤단 말이야?”
-그 정도로 진성 님은 피로 누적 상태였습니다. 이제 괜찮으신 것 같네요.
“뭐 푹 자긴 했지……. 그럼 앞으로 몇 시간 후면 결과가 나온다는 거네?”
진성은 혹시 몰라 루콜라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밭이 호수 근처라서 그런지 말라 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물의 생기가 넘친다고 해야 할까? 이건 다행이었다.
이든은 여전히 띵까띵까 놀고 있을 뿐이었다. 시스템의 말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됐나 보다.
진성은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끝까지 루콜라에 관심을 주며 온 힘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진성과 이든의 앞에 제한 시간이 다 됐다는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알림이 뜨자 진성과 이든은 각각 자신의 작물 일부를 가져왔다. 시식은 서로가 평가하기로 하고 품질 검사는 시스템이 하기로 했다.
-품질과 상태 검사를 먼저 하겠습니다.
이든은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진성은 꽤 긴장된 표정이었다.
시스템은 진성의 루콜라 일부와 이든의 수박 한 개를 가져가 검사를 했고, 결과는 몇 초도 안 돼서 나왔다.
-먼저 진성 님의 루콜라는 굉장히 싱싱하고 생기가 흘러넘칩니다. 많은 노력이 보입니다. 상태와 품질 상태가 꽤 좋습니다. 10점 만점에 10점 드리겠습니다. 반면에 죽음의 지배자 이든의 수박은 품질과 상태가 엉망입니다. 10점 만점에 2점 드리겠습니다.
“이봐, 시스템……. 너무 짠 거 아니야?”
이든은 불평을 쏟아냈지만 웃는 낯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반면에 진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력으로 다해서 키운 루콜라는 상태와 품질 모두 양호했던 것이다.
-이제 두 분 다 서로의 작물을 시식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든과 진성은 서로의 작물을 교환해서 먹어보았다.
진성은 이든의 수박을 먹어보았는데 진짜 시스템의 평가대로 최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당도가 약한 수박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처음이라곤 했지만 정성이 들어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수박이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진성의 루콜라의 맛은 좀 특이했지만, 꽤 싱싱했고 상태가 좋았다. 처음 키운 것 같지 않았다. 너무도 괜찮았기에 이든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패배다. 자신이 키운 수박은 엉망이라는 것을 먹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진성은 이걸로 이겼다는 표정이었다.
-결과는 압도적으로 진성 님의 승리입니다. 인정하십니까? 이든.
“그래. 인정해! 역시 시스템이 선택한 강진성다워. 내가 패배하다니. 물론 나에게 나쁜 버릇이 있어서 그렇지만…….”
아주 순순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이든의 모습에 진성은 시스템이 말한 대로 조용하게 넘어갈 듯싶었다.
“특별히 나를 이겼으니 퀘스트는 종료하지 뭐.”
이든의 말에 퀘스트가 종료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죽음의 군주가 제안한 퀘스트(최종완료)
등급:불명
장소:시스템의 아공간
내용:작물 키우기(작물의 종류는 상관 無) 시스템의 개입은 불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순수하게 키우기.
제한 시간:없음.
보상:시스템에 대한 정보 및 특별한 보상
“보상은 시스템에 대한 정보와 특별한 보상인데……. 일단 특별한 보상부터 주마, 강진성.”
이든은 자신의 인벤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진성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처음 보는 아이템이었다.
“한번 받아보라고, 강진성. 나쁜 아이템은 아니니까.”
진성은 의심스러웠지만 그가 내민 아이템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알림이 떴다.
-세계수의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성장 퀘스트 2(완료)
등급:S+이상
세계수의 3번째 성장을 위한 재료 모으기입니다.
재료:세계수의 파편 100개(100% 완료)
어둠의 씨앗 3개(완료)
특징:죽음의 지배자 이든이 세계수의 파편을 건네주었습니다.
나머지 부족한 22개의 파편을 진성에게 준 것이다.
“자, 그것으로 세계수는 더 성장할 것이다. 내 호의로 주는 선물이다. 강진성.”
“특별한 선물 고맙습니다. 이든.”
“뭐, 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이제 남은 건 시스템에 대한 정보인가……. 뭐를 원하냐? 시스템의 정체? 아니면 시스템의 의도? 한 가지만 대답해 줄 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
이든의 말에 진성은 고민했다.
짧은 고민 끝에 가장 궁금했던, 군주들이 타락한 이유를 물었다.
“당신들은 왜 군주가 된 겁니까? 어떻게 타락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시스템의 의도나 정체를 물어봤어야지……. 어리석구나, 강진성.”
“저는 그것보다도 당신들이 왜 타락을 해야만 했는지 그게 궁금해서요.”
“후우……. 약속은 약속이니 말해 주겠다.”
그 와중에 시스템은 진성에게 듣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성은 시스템의 말을 무시한 채 이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수호자였을 시절……. 다 죽어가던 세계수를 살리려고 방방곡곡 뛰어다니며 모든 걸 해결했다. 처음에는 시스템의 선택을 받고 세계수의 수호자를 받았을 때는 드디어 나에게 큰 사명이 오는구나 싶었어. 하지만 그게 독이 될 줄 몰랐지…….”
“어떤 독 말입니까?”
“끝까지 들어보고 말하라고, 강진성. 난 시스템과 세계수를 위해 뛰어다녔어.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혜택을 거의 주지 않았지.나는 세계수와 시스템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스템이 갑자기 힘을 주겠다고 해서 드디어 보상을 받는가 보다 생각하고 덥석 힘을 받았지. 내가 원한 힘은 농업 쪽이었고, 그 힘을 받은 나는 황폐해져 버린 내 고향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사람들은 나를 칭송하고 거의 신으로 모시다시피 했지. 그런데 시스템이 그걸 보고는 타락했다고 하면서 나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스템은 그게 아니꼬웠는지 방해하려고 했고 나는 그 힘으로 시스템을 거부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강진성.”
“그래서 타락이라는 길로 간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시스템이 날 배척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
“거기서 타락을 하고 어떻게 군주가 된 거죠?”
“시스템과 세계수에게 버려지고 그 행성에서 추방당한 뒤,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더군. 힘을 줄 테니 군주가 되라고. 그래서 나는 복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그 목소리는 누군가요?”
“글세, 그건 몰라……. 그에게 어둠의 씨앗을 받았고 나는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군주들과의 모임에서 만났지. 가로쉬와 다른 동료들 말이다. 원래는 더 많았지만, 시스템이 선택한 자들에 의해 하나둘 제거되었고 우리만 남게 되었다.”
진성은 이든의 말에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끝까지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은 풀렸나? 강진성.”
“이든의 말을 듣고 제 판단으로는 그 행성 사람들이 당신을 칭송할 때 이든 당신은 그 영광을 세계수와 시스템에게 돌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세계수와 시스템이라…….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말이야 나는 정당하게 일해서 받은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힘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그건 간섭하면 안 되지. 아무리 시스템이라고 해도 말이야.”
아무래도 이든 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진성은 이쯤에서 대화를 그만두기로 하였다.
이든은 진성과 대화하면서도 과거 일이 생각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목소리에도 분노가 담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결로 제가 이기게 되었는데 당신은 소멸인 건가요? 이든.”
“흐흐흐, 소멸이라……. 그래, 소멸이지…….”
이든은 뭐가 우스운지 계속 웃고 있었다. 이든의 말이 끝나자마자 몸이 소멸해 가고 있었는데도 그저 웃고만 있었다.
이든의 몸이 점점 가루가 되어 흩날릴 지경이 되자,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나? 강진성.”
“뭐가 말입니까? 이든.”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왜 죽음의 지배자일까? 내 죽음도 지배할 수 있거든, 흐흐흐.”
“……!!”
이든의 마지막 말에 진성은 혹시 몰라 상급 농부 삽을 꺼내 들었다.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야 할 이든은 되살아났다.
“역시 죽다 살아나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네.”
“일부로 이런 대결을 고른 겁니까? 저를 시험하기 위해?”
“뭐, 겸사겸사 너의 능력을 보려고 한 거지. 그런데 순수하게 농사 쪽으로는 훌륭하던데? 이제 힘의 대결을 해야지? 안 그래, 강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