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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작물로 레벨업-153화 (153/209)

제153화

153. 153화

“이곳에 들어가면 밭이 나올 텐데, 거기서 승부를 보자고!”

“거기는 정확히 어떤 곳인가요?”

“아마 네 밭이랑 똑같은 이미지일걸? 정확히 말하면 평행세계 같은 공간이라고 해야 하나?”

“……?”

“일단 들어가 보면 알아.”

이든은 꽤 익숙해 보였다. 아공간에 자주 왔다 갔다 해 봤던 건가?

시스템은 계속해서 이든을 조심하고 믿지 말라고 했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우리 둘만의 대결이지만 시스템이 지켜보니까 공정함은 기대할 수는 있겠네. 아무리 시스템이 악독해도 심판은 제대로 보니까.”

그는 시스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꾸물거리지 말고 들어가자고! 강진성!”

이든이 시스템이 만들어 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고, 진성은 이든의 말에 멈칫했다가 뒤따라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완전 자신의 땅과 똑같이 생긴 공간이 나왔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이든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진성에게 말했다.

“진짜로…… 제 밭과 같은 이미지네요.”

“같은 곳이지만 세계수의 버프도 없는, 그냥 일반 땅일 뿐이지.”

이든은 그 넓은 밭을 돌아다니면서 탐색하고 있었다. 자신이 시작할 공간을 찾는 것이다.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너도 네가 시작할 땅을 골라보라고. 뭐,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이든은 열심히 좋은 터를 찾아다녔다.

진성도 이든의 말을 듣고는 ‘어디로 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둘러보는데 자신의 밭과 완전히 판박이인 터라 아무래도 호수와 가까이 있는 땅이 유리할 듯했다.

“저는 여기로 하겠습니다.”

“오? 호수 있는 곳으로? 현명한 선택이지.”

이든은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을 선택했다.

“자, 이곳의 공간에서는 시간이 빨리 흘러가. 내가 30일 시간제한을 걸어도 빠른 속도로 같이 성장한다는 얘기다.”

“시간제한은 얼마나 걸 겁니까?”

“무난하게 15일 어떠냐? 강진성. 네가 만약 수박 또는 고추를 기른다고 해도 15일 안에는 자라지.”

“15일? 좋습니다.”

“그럼 정정당당한 승부를 바란다. 강진성.”

말이 15일이지, 시간은 엄청 빠르게 지나갈 거라고 한다.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까?

진성은 초심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인벤에 있는 모종과 씨앗 중에서 무얼 고를지 고민했다.

가장 자신이 있는 것은 루콜라였다. 루콜라는 과거에 아버지와 주변 분들에게 도움받아서 길러본 적이 있는데 제일 자신에게 잘 맞았던 것이다.

“그래, 무난하게 루콜라로 가자. 루콜라 모종으로 해 볼까?”

진성은 루콜라를 선택하고 인벤에서 모종과 씨앗을 꺼내 고민하다가 저 멀리 이든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는 벌써부터 밭을 갈고 돌을 골라내고 있었다.

“역시 작물의 신이네……. 빠르게 작업하는구나.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나도 빨리해야겠다.”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헌터가 되기 전에 아버지에게 배웠던 농사 지식과 헌터가 된 후에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말이다.

“시스템, 혹시 관리기 있어? 그거 써도 상관없지?”

-네, 있습니다. 관리기 소환해 드릴까요? 진성 님?

“그래…….”

시스템은 진성의 바로 앞에 관리기를 소환해 주었고 진성은 관리기의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시동을 걸었다.

엔진음이 들리면서 관리기가 켜지자 저 멀리 작업하고 있던 이든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오? 밭을 잘 갈아주는 기계를 쓰다니, 머리 좋은데? 나야 손수 작업이지만.”

이든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서 그런지 손수 작업한다고 한다. 즉, 이런 기계를 못 써 본 것이다.

아무래도 관리기를 쓰는 진성이 초반에는 유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든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진성이 빠르게 초반을 치고 나가도 걱정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관리기라는 기계를 유심히 보다가 자신의 터로 돌아갔다.

-역시 이든은 여유가 넘쳐 보입니다. 경험으로는 이든이 앞서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진성 님. 저는 진성 님이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진성 님이 그동안 해 왔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경험이라면 진성 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 고마워. 시스템. 정신 차리고 한 번 해 보자!”

진성은 관리기로 밭을 갈기 전에 무성한 잡초들을 마구잡이로 뽑아 나갔다. 뿌리가 단단히 땅에 박혀 있는 터라 손에 힘을 주고 뽑았다.

“잡초가 질기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잡초를 제거한 지 1시간이 흘렀을까?

진성이 시작하려는 곳이 엄청 깨끗해졌다. 이제 남은 건 관리기로 두어 번 갈아주는 것뿐이었다.

“자, 슬슬 해 볼까?”

시동이 걸린 관리기로 균형을 잘 직선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반복 작업을 하였다. 몇백 평이나 되는 곳을 작업하는 게 아니었기에 아주 빠르게 땅을 갈았다.

그러면서도 진성은 힐끔힐끔 이든이 작업하는 걸 쳐다보았다. 이든은 아직까지도 손수 밭을 갈고 있었다. 여유로움이 가득해 보였다.

“관리기는 끝났고……. 시스템, 고마워. 이제 관리기 치워도 돼!”

-네, 알겠습니다. 진성 님.

시스템은 진성의 말에 관리기를 소환 해체하였다.

진성은 그다음 작업으로 주변 돌들을 골라내고 인벤에 손을 넣었다.

“마침 인벤에 상토 몇 포대가 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인벤에서 상토 두 포대 정도를 꺼낸 진성은 갈아 높은 밭에다가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삽으로 갈아 놓은 땅과 상토를 섞어고 호수로 가서 상급 농부용 물뿌리개에 깨끗한 물을 담아 자신의 밭에 뿌렸다.

-잘하고 있습니다. 진성 님. 이든은 아직도 밭을 갈고 있는 터라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격차를 빨리 벌려놔야겠네.”

이제 심고 돌봐주기만 하면 된다.

빠르게 모종으로 가느냐 아니면 씨앗을 심느냐가 고민이었던 진성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진성 님, 모종을 써도 퀘스트 위반이 아닙니다. 모종을 쓰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그래? 그럼 모종으로 가야지. 아니, 둘 다 해 보자.”

진성은 작업한 30평 중 15평에는 모종, 남은 15평에는 씨앗을 심었다. 꼼꼼하게 심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그럼에도 이든보다 빨리 끝냈다.

이든은 이제야 심기 시작한 모양이다. 아직도 여유로움이 많아 보였다.

“일단 내가 이든보다 조금 빠른 시점이네?”

-네, 그렇습니다. 진성 님. 이든은 진성 님에게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뭔데, 시스템?”

-이든의 아까 말을 생각해 보시면 같은 성장 속도라고 말했습니다. 즉, 먼저 심는 사람이 조금 더 유리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일부러 얘기하지 않은 걸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든은 경험이 많은 것 같던데…….”

진성이 시스템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든은 씨앗을 모두 심고 기지개를 켰다.

“후우, 끝났구만……. 그나저나 강진성 녀석, 빨리 했네. 내가 일부로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알고 있으려나? 흐흐흐.”

이든은 상토 없이 밭을 갈고 씨앗을 줄줄이 심었다. 그리고 호수에서 물을 퍼와서 뿌리고 모든 작업을 끝냈다.

“강진성은 벌써 끝났나 보네.”

이든은 진성이 시스템과 대화하는 줄 모르고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이봐, 후배 강진성. 벌써 끝났나?”

“저는 아까 끝냈습니다.”

“거 빠르네……. 역시 시스템이 선택한 자 답네.”

“뭐를 심은 겁니까? 이든.”

“알려 줄까? 알려 줘도 상관없지만…….”

진성은 이든이 뭘 심었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지구의 작물을 심었는지 아니면 다른 세계의 작물을 심었는지 말이다.

“신경 쓰이냐? 그렇다면 말해 주지.”

꿀꺽.

진성은 긴장이 되었다.

“난 무난하게 지구의 작물인 수박에 도전했지. 수박은 처음 해 보는 거라 잘 될지 모르지만.”

수박이라는 말에 진성은 지구의 작물로 대결한다고 생각했는데 수박이 처음이라는 말에 자신이 더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뭘 심었는데? 강진성?”

“저는 허브 루콜라를 심었습니다. 아는 작물인가요?”

“아니? 나는 처음 들어보는 거라……. 보니까 루콜라는 너도 처음인 거 같은데, 재밌는 승부가 되겠어.”

이든은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진성이 루콜라 농사를 처음 짓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종과 씨앗을 둘 다 심어 둔 것을 보고 판단한 듯했다.

진성은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이든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는 모르는 것이다. 자신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러면 자신이 꽤 유리하게 되었다.

그만큼 루콜라에는 자신이 있는 진성이었다.

“자, 15일인데……. 결과물이 궁금하네……. 강진성. 결과 때 두고 보자고.”

이든은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터로 돌아갔다.

진성은 한숨을 후우 내쉬며 루콜라를 지켜보았다.

땅의 정보창을 한 번 열어 보았다.

[이름:루콜라 모종

등급:일반

특징:일반 등급의 모종이다.

남은 시간:불명]

[이름:루콜라 씨앗

등급:일반

특징:일반 등급의 씨앗이다.

남은 시간:불명]

“정보창이 나오긴 하네……. 불명이라. 얼마나 걸릴까? 일반적으로는 모종에서부터 기른다고 쳐도 완성까지 최소 2주에서 4주 사이일 텐데.”

-진성 님, 이 공간은 특별한 공간입니다. 보통 지구에서는 2주 걸린다고 해도 이곳에서는 2배 빠른 속도로 느껴지실 겁니다. 빠르면 9일이며, 늦어도 10일입니다.

“그렇게나 빨리 자란다고?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특별한 공간이라서 전혀 문제없습니다. 정상적으로 자라납니다. 다만…….

“다만?”

진성은 시스템의 이어질 말에 긴장하였다.

-수박은 최소 45일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아는데 이든이 실수했군요. 그걸 15일에 단축해서 기른다면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진성 님이 굉장히 유리합니다.

“즉, 루콜라는 문제없다는 얘기지?”

-네, 그렇습니다. 진성 님. 수박을 선택한 이든은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만약에 말이야…… 이든이 이건 인정 못 한다면서 우기는 경우는 없는 거야?”

진성은 이든이 승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공격할 가능성이 있을까 봐 걱정되어 물어봤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든은 자신이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제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계약 위반이니까요.

“알았어. 그러면 시스템 너를 믿고 열심히 루콜라 기르는 것에만 집중할게.”

-네, 진성 님. 힘내시길 바랍니다.

시스템과 대화를 끝내고 이든이 있는 쪽을 쳐다보니 수박의 기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정정당당한 승부를 말해 놓고 사실은 인정 못 한다면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정말 모르겠다.

“그런데 시간은 얼마나 빠르게 지난다는 거지?”

체감상 겨우 5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루콜라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 있었다. 모종은 한층 더 커진 느낌이었다.

“시스템, 2배 빠른 거 맞아? 더 빠른 거 같은데?”

-진성 님, 2배가 맞습니다. 진성 님이 씨앗과 모종을 심은 지 벌써 하루가 지났습니다.

“벌써 하루가 지났다고? 5시간 지난 거 아니었어?!”

벌써 24시간이 지났다고? 대체 이 무지막지한 공간은 뭐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나겠네? 그럼?”

-제한 시간이 15일이라고 했으니 체감상 3~4일 정도면 끝날 듯합니다.

“3~4일이라니……. 터무니없네.”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다니……. 3~4일이면 초고속이잖아? 이거 제대로 된 대결이 맞는 걸까? 이미 공간부터가 사기인데…….

물론 각자 버프와 능력은 봉인한 채 대결하는 거였지만 뭐랄까, 그래도 자신이 유리한 위치인 것 같았다. 뭔가 찜찜하다고 해야 할까?

루콜라 모종과 씨앗을 한동안 지켜보던 진성은 이든 쪽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이든은 태평하게 잠이나 쿨쿨 자고 있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저 정도면 내가 걱정할 수준은 아닌 거지? 시스템.”

-이든이 진성 님을 꽤 얕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루콜라도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거 보면 여전합니다.

“그래? 이번 대결은 내가 이겼으면 좋겠네……. 저렇게 했는데도 지면 할 말이 없을 것 같거든.”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공정하게 심판을 보겠습니다. 진성 님.

“그렇겠지? 그래도 뭔가 불안하단 말이야…….”

-진성 님. 불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든은 완전히 방심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작물, 수박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도전한 거 같습니다. 같은 지구의 작물로 해서 진성 님을 이기려는 속셈입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자라고 하지만, 진성 님을 얕보는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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