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144. 144화
고문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남궁현은 지독하게도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자백제를 평균보다 더 많이 넣었음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경위님. 입을 열기 힘들 것 같습니다.”
“후……. 자네들도 안된다는 말인가?”
“네, 죄송합니다. 경위님.”
고문을 잘하기로 소문난 부하들도 저자의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이러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그 방법을 쓰면 남궁현은 죽을지도 모른다.
“이거…… 고민이 되는데.”
이연우 경위는 상부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 이 경위.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네……. 그게.”
이연우는 현재 상황을 잘 풀어서 상부에 알렸다.
-그래. 그 둘도 그자의 입을 열지 못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럼 어쩔 수 없지, 그 방법을 쓰게.
“네, 알겠습니다.”
-일이 해결되고 정보를 알아내면 곧장 전화하게.
“네, 알겠습니다.”
이연우 경위는 상부와의 전화가 끝난 후 망설이던 생각을 접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
신호음이 몇 차례 가더니 뚝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받았다.
“예, 이연우 경위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시나요?”
-네, 오랜만이시네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네. 그게, 다름이 아니라…….”
이연우 경위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였다.
잠시의 침묵 후, 상대가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 아카데미로 찾아가면 될까요?
“네, 오시면 감사하죠.”
-그럼 20분 뒤에 뵐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정체 모를 상대방과 전화를 끝낸 이연우는 씩 웃음을 지었다.
“저분이 오시면 끝나겠군. 남궁현의 입을 열 수가 있어!”
대체 그가 누구길래 이연우 경위는 다 끝났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그가 오면 정말 해결이 되는가? 알 수 없는 대화였다.
남궁현은 고문 기술자 두 부하에게 잠시 휴식을 명령한 뒤 그들에게 말했다.
“곧 그분이 오실 테니 이제 자네들이 하지 않아도 된다.”
“아! 그분이요?! 그러면 저희가 편하죠. 다만 아쉽네요. 저희가 입을 열게 해야 했는데.”
“수고했다. 가서 쉬고, 그분이 오시면 이 장소로 안내해 주게.”
“네, 알겠습니다. 경위님, 그럼 저희는 이만…….”
두 경찰은 그 장소를 떠났고 그 텐트에는 이 경위 혼자만 남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취조실 구석에 다시 기절해 버린 남궁현과 같이 남은 것이다.
약 20분이 지나자 누군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아, 오셨군요! AAA랭크 이유림 헌터!”
그녀는 바로 국내 AAA랭크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성녀 이유림이었다. 진성과의 인연으로 훈련용 던전 사건 때 학생들을 소생시킨 그녀였다.
“무리한 부탁이지만, 저자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부탁합니다.”
“네. 어쩔 수 없네요. 저도 무의미한 살생은 하고 싶지 않으나, 저희한테는 어찌 보면 적이니까요.”
“네, 부탁합니다. 이유림 헌터.”
“그럼 시작할게요.”
이유림 헌터는 인벤에서 뭔가를 꺼내 취조실에 들어가 아이템을 제조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을 남궁현에게 뿌린 뒤 작업을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해 버린 남궁현은 엄청난 고통 속에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성녀 이유림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가, 가로쉬 님!”
남궁현은 환각 상태였다. 이유림을 지배의 군주 가로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성녀의 스킬인 것인가? 주문을 외우면서 아이템을 뿌린 것뿐인데 이유림 헌터가 가로쉬로 보인다니…….
심지어 말투도 똑같아 남궁현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임무에 실패해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대신 다른 임무를 주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군주님!”
성녀 이유림은 그의 과거 기억을 살펴보면서 그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말했다.
남궁현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협력자……. 그 녀석도 찾아내서 데려와라. 첫 번째 임무다.”
“조은성 헌터 말입니까? 군주님이 계신 데로 가면 됩니까?”
“아니, 접선지는 그곳이다.”
“그곳이라면……. 일산 호수 공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꼭 조은성 헌터와 함께 그 장소로 가겠습니다.”
남궁현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걸 모르고 많은 정보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 경위는 꽤 놀랐다. 이 스킬은 쓰면 쓸수록 생명력이 약해지는데 남궁현은 아직까진 목숨이 잘 붙어 있었다.
“이만 풀어주겠다.”
“네, 감사합니다. 군주님.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겠습니다.”
“그래.”
이유림은 남궁현에게 채워진 수갑을 간단히 부숴 버렸다.
이 경위는 조금 흠칫했지만 일단 성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녀와 이 경찰 부서는 일을 같이해 온 경험이 있는 터라 그 뒤의 일을 아는 것이다.
남궁현은 벌떡 일어나 군주 가로쉬에게 인사를 드리고 스윽 사라졌다.
아직도 환각 상태에 걸려 있는 남궁현은 텐트를 나설 때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아까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 두 명이 처참하게 시신이 되어 쓰러져 있는 걸 확인하고 자신을 구해 준 군주 가로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성공한다. 강진성, 너는 내가 죽인다.”
남궁현은 그 말을 남기고 텐트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성녀 이유림 헌터는 이 경위에게 다가와 말했다.
“추적 스킬까지 걸어놨으니까 언제든지 쉽게 파악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유림 헌터.”
“추적 신호기는…… 자! 여기요.”
이유림 헌터는 인벤에서 수제로 만든 추적기를 꺼내 이 경위에게 건네주었고 이 경위는 추적기를 받고 텐트 바깥에서 쉬고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자를 추적해서 모두 잡아들이라고…….
이 경위는 상부에 급히 보고 한 후 남궁현이 사라진 위치로 서둘러 떠났다. 혹시 몰라 상부에 지원 요청까지 했는데 상부에서는 근처 경찰을 동원할 수 있게 조치까지 미리 다 취해 놨다.
이유림 헌터는 일단 이곳에 대기하기로 했다. 이 경위가 지원 요청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얼핏 들은 경찰 간부는 진성에게 약속한 대로 문자를 통해 바로 정보를 보냈다.
진성은 아카데미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경찰 간부가 준 정보를 이한나 팀장과 공유하였다.
“그럼 도련님. 저희도 이 경위와, 이자를 쫓아갈까요?”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일단 성현이만 집으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련님.”
하지만 박성현은 이미 깨어나 이야기를 다 들은 후였다.
“아니, 진성아. 그럴 필요 없어. 나도 같이 갈 거야.”
“괜찮아? 무리할 필요는 없다 보는데.”
“괜찮아. 학장님도 이미 돌아가셨고……. 복수는 네가 해 줬지만 그래도 이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진성이 성현의 눈빛을 보니 절대로 집에 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한숨을 내쉬고 같이 가자고 말했다.
경찰 간부에게서 최종 목적지가 일산 호수 공원이라는 것을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6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하루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네…….”
전투를 이렇게 오래 해 본 건 오랜만이었다.
-진성 님, 남궁현을 계속 쫓을 생각이신 건가요?
“어……. 일단.”
-남궁현의 최종 목적지인 일산 호수 공원이라면 그쪽에서 지배의 군주 가로쉬를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가려고 하는 거야. 시스템.”
-굳이 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 방법을 드리겠습니다. 남궁현을 정화 스킬로 꼭 쓰러뜨리십시오. 그러면 진성 님의 정화 스킬은 레벨 10이 되며, 지배의 군주 가로쉬를 상대할 힘이 어느 정도 생길 겁니다.
“즉, 정화 스킬 10을 찍으라는 얘기지?”
-네. 그렇습니다. 정화 스킬 레벨이 10 정도 되면 가로쉬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겁니다.
“알았어. 시스템…….”
진성은 시스템과 대화를 끝낸 후 자신을 기다리는 이한나 팀장과 성현. 그리고 호위하는 한울기업 소속 헌터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출발하죠.”
“네, 도련님.”
“알았어. 진성아!”
진성 일행은 일산 호수 공원으로 먼저 가서 남궁현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 남궁현은 열심히 달려 조은성 헌터가 갇힌 구치소에 도착했다.
“여기인 건가? 경계가 삼엄하군.”
역시 온갖 헌터 범죄자들만 잡아 놓은 곳이어서 그런지 전체 경계가 삼엄하였다. 꽤 능력이 높은 헌터들이 지키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남궁현에게는 애송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빠르게 그를 구출하고 일산 호수 공원에 도착해서 군주님의 다음 명령을 받으면 된다.”
남궁현의 현재 몸 상태는 엉망이었으나 이 구치소를 습격하고 조은성 헌터를 구할 만한 체력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수도에서 침투를 해야 하는가…….”
남궁현은 구치소 전체를 탐색해 봤지만, 들어갈 만한 곳은 하수도뿐이었다. 그리고 하수도를 들어간다고 해도 꽤 걸릴 듯싶었다.
“일단 들어가야겠군.”
남궁현은 벽을 기어 올라가 인식 저하 스킬을 썼다. 그들이 자신이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해 대놓고 지나갔다.
“인식 저하 스킬의 문제점은 오래 못쓴다는 것인데……. 빨리 지나가야겠군.”
지속 시간이 겨우 30초밖에 안 되는 것이다. 발동하면 쿨타임 만 최소 30분이었으니 마음껏 쓸 수 없다.
어떻게든 구치소를 들어와 도면을 입수해 살펴보니 조은성 헌터가 갇힌 곳은 구치소 중에서도 꽤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위험한 헌터들만 가두는 곳이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꽤 힘들 것 같았다.
남궁현이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교도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필 지금 시간대에 왜 소집이래?”
“그러게 말이야. 소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참…….”
교도관들은 줄을 지어 어디론가 향했고 위험구역인 그곳도 경계가 약해졌다.
남궁현도 조금은 이상했으나 기회가 왔으니 교대 근무하러 온 교도관으로 변장해 빠르게 위험구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을 지키던 교도관들은 변장한 남궁현을 수상하게 보지 않고 문을 열어 주었고 남궁현은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교도관들이 나간 이유는 이 경위의 계략이었다. 조은성 헌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구치소에 미리 전화해서 계략을 짠 것이다.
남궁현은 아무것도 모르고 구치소에 들어온 것이다.
“조은성 헌터는 어디에 있는 거지?”
아까 입수한 도면도를 보니 조금 더 안쪽인 게 분명하였다.
혹시 몰라 그곳을 지키던 교도관 한 명한테 자신이 배치된 지 얼마 안 된 신참인데, 요번에 잡힌 헌터들이 있는 곳이 어디냐고 하니까 그 교도관은 ‘아, 신참인가요?’ 하면서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순순히 위치를 부는 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네, 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든 저희를 꾀어서 탈출하려는 놈들이니까요.”
“네, 충고 감사합니다.”
완벽히 신참 교도관 연기를 마친 남궁현은 씩 웃은 뒤 그가 알려준 곳으로 떠났다. 남궁현이 다른 통로로 사라지자 그 교도관은 무전기를 꺼내 어디론가 알렸다.
“선배님, 방금 남궁현이 들어왔습니다…….”
-그래, 알았다. 좀 더 주시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는 이 경위의 후배였는데 남궁현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은 터라 남궁현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이 경위에게 무전을 보낸 것이다.
저벅저벅.
남궁현이 주변을 둘러보니 위험한 수감자들이 가득하였다. 그중 조은성 헌터는 끝 쪽에 갇혀 있었다.
“여기로군…….”
그 방에는 대머리가 된 조은성 헌터가 이를 갈면서 강진성에게 복수하려고 뭔가를 계획 중인 것 같았다.
똑똑똑.
“음? 벌써 밥 시간대인가?”
남궁현이 조은성 헌터의 말에 대답했다.
“나다. 조은성…….”
“설마 이 목소리는, 남궁현…….?!”
“그래, 너를 구하러 왔다.”
“오, 드디어 나갈 수 있는 건가?”
남궁현은 그가 갇힌 곳 문짝을 힘으로 뜯어내 버렸다. 그러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봐, 무식하게 힘으로 뜯어내면 어쩌라는 거야?”
“잔말 말고 이대로 튄다.”
“탈출 방법은?”
“텔포 아이템을 가져왔다.”
“오! 그럼 달라고.”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조은성 헌터에게 텔포 아이템 일회용을 넘겼다.
“이거 도착지가 어딘데?”
“일산 호수 공원이다.”
“일산?”
“일단 탈출하고 얘기해 주지. 조은성.”
“알았다!”
둘은 텔포 아이템을 썼고 그 자리에서 없어져 버렸다. 일산 호수 공원 근처로 이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