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120. 120화
장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진성은 다시 원래대로 표정으로 돌아와 시스템에 대한 욕을 한참 했다가 한숨을 쉬곤 이 두 개의 퀘스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성이 원래대로 평상시 표정으로 돌아오자 옆에 계속 있었던 아이린이 말을 건넸다.
“진성 님. 조금 전에 고라니 고강한 씨가 찾아왔어요.”
“아? 그래? 아까 내가 멘붕 상태라서 몰랐거든.”
“힘내세요. 진성 님.”
“고마워. 아이린…….”
“아빠. 힘내세요!”
세린이도 진성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진성은 한숨만 푹푹 내쉬며, 세린이를 쓰다듬어주고 경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세계수 앞에서 계속 서 있기도 뻘쭘한 상태라 일단 고라니 고강한을 찾아갔다. 탈모화 약과 장발화 약 후기를 들려줄 차례였기 때문이다.
경매장으로 도착한 진성은 고라니 고강한을 찾아 헤맸는데 1층에 없어서 2층으로 올라가 봤지만 없던 것이다.
그래서 1층의 다른 고라니에게 물어보았다.
“강한 님이요? 아까 호수 쪽으로 가시던데요?”
진성은 강한의 위치를 듣고는 고맙다고 말하며 경매장을 떠났다.
그리고 마르지 않는 호수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고라니 고강한이 호수의 물을 채취하고 그 주변을 약초들을 채집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강한아.”
“엇……. 진성 님. 무슨 일로 절?”
“그게 아니고 아까 나한테 왔다 갔다며……. 내가 그때 멘붕 상태여서 아무것도 안 들렸거든.”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게……. 시스템이 특별한 보상이라고 말하곤 대형 퀘스트 두 개를 줬거든. 그래서 좀……. 기분이 안 좋다고 해야 하나.”
“시스템님이 주신 거는 감사하게 받으셔야죠. 진성 님, 그렇게 불만 품지 마세요. 시스템님은 진성 님이 잘되기를 바라서 그러는 거니까요.”
“아…….”
진성은 순간 생각했다.
맞아, 이 녀석 시스템의 신도였지? 맨날 시스템님 거리면서 축복이다 뭐다 시스템님의 말을 들어야 한다 뭐다 하던 녀석인데……. 괜히 이거 말했네, 휴우.
이 말을 하는 바람에 고라니 고강한은 한동안 진성 앞에서 시스템의 찬양을 듣게 되어 버렸다.
“아무튼, 그거 말고 네가 아까 줬던 약 써봤는데…….”
“네네, 진성 님.”
“일단 탈모화 약은 훌륭해. 그건 좋더라고 하지만, 장발화 약인가, 그거는 좀 조절해야겠어!”
진성은 고라니 고강한에게 장발화 부작용을 알려주었다.
끊임없이 장발화가 지속한다고 하자 강한이는 ‘흐음……. 후기 감사합니다. 다시 잘 조정해 볼게요.’ 한 뒤 진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 다시 연구하러 가는 것 같았다.
연금술사의 길을 걸어가는 고라니라……. 참 신기한 광경이네
“아……. 이제 뭐 하지?”
지금 집으로 돌아가도 할 일이 없기는 하였다.
그렇다고 여기에 있어도 당장 생각나는 게 없는데…….
“아! 그러고 보니까 새로운 종족 온다고 했으니까 토지 확장권을 미리 써야겠네.”
진성은 인벤을 뒤적거려서 토지 확장권 한 장을 꺼내고 그 자리에서 찢었다.
그러자 심시티 하는 것처럼 진성의 눈앞에 ‘토지 확장권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라는 것과 ‘설치할 공간을 선택해 주세요.’라는 알림이 나왔다.
“세계수의 북쪽은 엘프들의 거주지니까……. 그럼 동쪽을 사용해야지.”
세계수의 동쪽은 자신의 땅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사용할 수 있기에 그곳으로 지정했고, 쿠쿵이라는 소리와 함께 동쪽에 새로운 5,000평의 땅이 생겼다.
아직은 이름 없는 땅이었지만 새로운 종족이 와서 거주할 공간이었기에 진성은 그들이 빨리 방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오늘의 할 일은 끝났으니 집에 가서 자야겠다…….”
진성은 새로운 땅 설치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밭을 떠나기 전에 엘프들의 거주지를 살펴보고는 아이린과 세린이에게 내일 일찍 오겠다고 말하고는 밭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휴……. 오늘은 뭔가 일이 많았네…….”
오전 낮 시간대는 퀘스트를 진행하여 완료하였고, 시스템에게 낚여서 한동안 서 있었고. 뭔가 여러 가지 일이 있던 느낌이다.
“요즘 친구들에게 전화가 자주 오지 않긴 하네.”
전화 자주 하던 시우라든가, 성현이라든가…….
내가 전화를 걸어봐야 하나? 아니, 바빠서 전화를 안 주는 거겠지? 일단 문자는 보내봐야겠다.
진성은 늦은 시각이라 전화는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문자로 잘 지내고 있느냐고 보냈다.
그러자 성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진성아. 오랜만이네.
“그러게……. 잘 지내고 있냐? 성현아.”
-나야 그럭저럭이지. 요즘 공방에서 나와서 수련 중인데……. 어쩌다 보니까 아카데미 교관까지 되어 버렸어…….
“교관 자리를?”
-그래……. 그래도 내가 정령사 헌터 중에서는 B랭크잖아.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에 정령사 B랭크 이상 교관이 없대. 아카데미 교장님이 나보고 교관 자리 하나 맡아 보지 않겠느냐고 계속 꾀더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수락했어.
“교관이라……. 꿈의 직업 아니냐? 잘됐네.”
아카데미 교관은 헌터 사회에서는 꿈의 직업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공무원급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한 달에 500만 원씩 꾸준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은퇴해도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혜택이 존재하였다. 개인 수련의 방도 지급된다나?
아무튼, 그러한 혜택들이 많아 교관의 자리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다름이 아니라 진성아……. 너도 혹시 교관 자리 맡아 볼 생각 없냐?
“왜?”
-마침 아카데미에 농사 관련 부분으로 교관 자리 하나가 비거든 영구적인 거는 아니고 단기간 교관을 구하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필요는 없고 아카데미에 있는 정령 나무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성현아.”
-그게……. 아무래도 나도 혼자서 교관하고 있고 친한 사람이 없거든. 그래서 좀 외롭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친한 친구가 같이 교관으로 있으면 나도 적응하는 데에 빠르기도 할 거 같고……. 아무튼, 그래.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
“교관이라…….”
-뭐, 너한테는 명예직이니까 학생들 굳이 안 가르쳐도 돼. 내가 교장님께 물어본 거니까. 그 교관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올 때까지만 네가 있으면 되거든……. 부탁이다. 진성아, 좀 도와줘라.
성현이가 저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진성은 얼떨결에 ‘어……. 그래. 하지 뭐.’라고 대답해 버린 것이다.
진성은 ‘파멸의 군주 쪽도 신경 쓰고 퀘스트에 신경 써야 하는데 이런 걸 맡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어차피 명예직이고 딱히 교관에 대한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하니…….
물론 아카데미에 출퇴근은 해야 했지만 텔포로 출퇴근하면 되니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아 수락한 것이다.
예전에 아카데미에 가서 본 그 정령 나무를 연구할 수 있었기에 진성은 기대가 됐다.
중급 농부로 전직한 지도 좀 되었고 그 정령 나무와 또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교장님께 지금 얘기해 둘 테니까 출근은 내일모레부터 하면 된다.
“그래…….”
-모레 오전 8시까지 아카데미로 오면 돼. 위치는 알지?
“어, 알고 있어……. 그럼 그날 보자. 성현아.”
-그래, 그래.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그……. 뭐랄까.
“뭔데? 또 무슨 일이기에 뜸 들이는데?”
-그, 시우 말이야……. 아마 네 전화 안 받는 이유가 약혼식 때문에 그럴걸?
“뭐?! 약혼식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게.”
진성은 성현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보니 시우가 어느 가문의 여성분과 어렸을 적부터 약혼이 성립되어 있었는데 그 약혼녀가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
양측 부모님이 술김에 그런 소리를 한 것뿐이라 시우는 약혼식을 거절하려고 했으나 그 약혼녀가 절대로 불가하다고 하여 약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참……. 시우도 복잡하네.”
-그렇긴 하지……. 아무튼, 우리가 시우를 좀 도와줘야 할 상황인 것 같아. 진성아.
“시우는 도와줘야지……. 그럼 일단 그 약혼식이라는 게 언제인데?”
-아직 정해진 거는 아니긴 한데……. 약혼식 날짜 정해지면 알려줄게. 진성아.
“알았어.”
성현과 전화를 끊은 진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파멸의 군주와 어둠의 씨앗 그리고 시스템의 퀘스트 때문에 머리가 아파져 오는데 이번에는 아카데미 교관 일에 시우의 약혼식까지? 일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진짜 복잡하네…….”
진성은 ‘일단 잠이나 자고 일찍 일어나 볼까?’라며 자기 전에 깨끗하게 씻고 간단하게 먹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진성이 자는 이 시간에는 파멸의 군주 세력들이 점점 대한민국 전역으로 손길을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진성은 코 골며 잠을 잘 뿐이었다.
* * *
다음 날……. 평화로운 아침이 찾아왔다.
“하암……. 잘 잤다…….”
진성은 아침이 되자 기지개를 켜고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오늘은 바로 새로운 종족이 찾아왔으면 좋겠는데, 엘프들 때처럼 오래 걸리려나?”
진성은 일단 잠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밭에 갈 준비를 마쳤다.
“시스템! 그 내가 내일부터 아카데미 교관 생활을 시작하는데 상관없어?”
-네,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그곳 정령 나무와 대화하면 할수록 이익을 얻으실 겁니다. 정령 나무의 말벗이 되어 주십시오.
“말벗 퀘스트 같은 거냐?”
-딱히 퀘스트는 아니지만, 진성 님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를 알려줄지 모릅니다.
“아, 그건 그렇고. 새로운 종족 오늘 오냐? 안 오냐! 그것부터 말해 봐.”
-진성 님의 기대대로 오늘 옵니다. 아니, 지금쯤이면 진성 님의 밭에 도착했을 겁니다.
“어라? 빨리 왔네. 가 봐야겠다.”
진성은 후다닥 집에서 뛰쳐나와 밭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밭까지는 약 10분 거리인데 전속력으로 질주해 1분도 안 돼서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밭 입구에서 엘프들과 새로운 종족이 대치하는 게 보였다.
“진성 님!!”
아이린이 손을 흔들며 반기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세계수의 주인 강진성 님. 저는 바위 일족의 드워프 족장 하멜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드, 드워프?!”
새로운 종족이라는 게 드워프였어? 아이린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지? 시스템도 알고 있었겠고…….
그래서 나보고 도움이 될 존재라고 얘기한 거구나. 그래. 드워프라. 마침 필요하기는 했어. 내가 가진 이 삽 강화하고 싶기도 했고……. 마침 드워프라는 종족이 내 땅에 정착하니 좋네.
“진성 님. 여기에 서 있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는 게 어떨까요?”
진성은 드워프 족장 하멜과 그 일족에게 출입 허가를 주어 밭으로 함께 들어갔다. 출입 허가가 되지 않으면 세계수의 장막에 막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진성 님.”
드워프 족장 하멜은 진성에게 공손히 감사의 말을 건넸다. 진성은 소설 속에나 나오는 그 드워프를 보게 된 거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엘프나 드워프 등이 인간들을 깔보지 않고 이렇게 기본 예의와 태도를 갖추는 모습이 소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린. 네가 엘프들을 이끄는 족장이라니 망하겠군.”
“하멜. 여전히 고약한 소리를 하네?”
하멜과 아이린은 약간 앙숙 관계인 것 같았다.
“드워프 종족은 몇 명이나 되지?”
진성은 하멜에게 물어보자 하멜은 바로 대답하였다.
“선발대로 저를 포함해서 80명이 도착했고 뒤에 본대로 200명이 더 올 것입니다.”
그러면 총 280명의 드워프가 자신의 땅 근처에 거주하는 것이다
드워프는 숫자가 적은 걸까?
진성은 일단 이들에게 땅을 배정해 주기 위해서 드워프 족장 하멜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거주지로 땅을 배정해 줄 테니 따라와.”
“네, 진성 님.”
하멜과 선발대 드워프들은 진성을 따라 이동하였고 세계수의 동쪽 자리 공터에 도착하였다.
“이곳이 드워프 주거지가 될 곳이야.”
“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성 님. 앞으로 저희 바위 드워프 일족은 진성 님을 전력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무기 제작 농기구 제작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됩니다.”
“본대로 오는 드워프들은 언제쯤 도착이야?”
“아마 곧 올 겁니다. 진성 님.”
“그럼, 일단 이 거주지에 너희가 살 집은 알아서 만들면 돼. 물은 저기 마르지 않는 호수에서 얻으면 되고.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
“네, 알겠습니다. 진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