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112. 112화
시우는 가평의 저택에서 돌아온 후 1층 입구 안쪽을 서성거리면서 생각 중이었는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익숙해 황급히 구석에 숨었다.
시우가 숨은 지 10초도 안 돼서 1층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강찬호 부회장과 이진호였다.
“아무튼 오늘 그분과 연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자네. 이제 까불지 말고 제대로 좀 하게나.”
“이제 헌터로 각성했으니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나한테 보고하게나.”
“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강찬호 부회장은 2층으로 올라가고 이진호는 웃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다 들었던 시우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이 안 잡혔다.
“진성이한테 얘기는 해 놔야겠다.”
시우는 구석 자리에서 잠시 나와 2층 강진성이 머무는 방으로 갔다.
방 앞에는 헌터 두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강진성의 친구인데 잠시 대화가 가능한지 물어보자 문 앞을 지키던 헌터 두 명 중 한 명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진성의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네, 잠깐 된다고 합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시우는 진성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 시우야. 무슨 일 있어?”
“아무래도 이건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일인데??”
진성은 시우가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뒤의 내용이 매우 궁금해졌다.
그러자 시우의 입에서는 진호 형이 강찬호 부회장과 어딘가 다녀온 지 얼마 안 돼서 헌터로 각성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각성했다고?”
“그래…….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거든……. 그 진호 형과 강찬호 부회장님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랄까?”
“나도 한번 알아볼게. 시우야.”
“어……. 혹시나 알아내면 꼭 나한테도 연락을 줘.”
“그래…….”
시우가 진성의 방에서 나가려는 순간 전화가 왔고, 진성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우 도련님! 저 박 과장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죠……. 박 과장?”
-그……. 이진호 도련님이 이번에 헌터로 각성했다고 하면서 헌터 라이센스를 받아왔는데 B랭크 라이센스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외에 또 큰일이 있나요?”
-네. 진호 도련님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지 회장님께 대전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안 좋은 예감이 듭니다…….
“일단 계속해서 감시해 주세요. 박 과장.”
-네, 도련님.
시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고 진성이 물었다.
“또 무슨 일 있어?”
“진호 형 이야기인데……. 일단 B랭크 헌터로 각성한 게 확인됐고, 좌천당한 대전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대.”
“B랭크 헌터라……. 뒤에 이야기는 정신을 차린 거 아닐까?”
“정신 차린 거면 다행이지만.”
“일단 좀 더 지켜봐 봐……. 진짜 네가 오해한 거일 수도 있어.”
“그래……. 일단 당분간만 지켜볼게. 아무튼, 쉬는 것 방해해서 미안하다.”
“뭐 이렇게라도 알려줘서 나야 고맙지……. 나도 진호 형이 조금 신경이 쓰였거든…….”
“그럼 나는 본가로 가야 해서 잘 쉬고, 다음에 또 보자. 진성아.”
“어~ 조심히 가라.”
시우는 진성이 쉬고 있는 방에서 나와 텔포 기계로 향했고 진성은 진호 형 사건보다는 아까 정원에서 봤던 그 섬뜩한 미소를 짓던 박주원이라는 사람이 더 신경 쓰였다.
“진짜 어떻게 되려는 건지…….”
빨리 자신이 힘을 길러서 어둠의 씨앗을 뿌린 저 박주원이라는 사람의 계획을 막아야 할 듯싶었다.
아직까지는 저 사람이 자신을 건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힘을 더욱 키워야 했다.
“문제는 요즘 시스템이 너무 조용한데……. 성장할 만한 퀘스트를 줘야 내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할 텐데.”
조금 조급해져 가는 진성이었다.
“시스템!”
진성은 혹시나 하고 시스템을 불러 보았으나 전혀 응답이 없었다. 대체 뭐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몇 번이나 계속 불러 본 진성은 시스템에게서 대답이 없자 한숨만 내쉬었다.
“여기서 쉬는 것보다 집에 가서 쉬는 게 더 편한데.”
가평의 저택에서 잠을 자기엔 조금 불편했다. 역시 편한 건 자신의 밭과 집이었다. 아무리 할아버지의 부탁이었지만, 못 참을 것 같았다.
“그냥 할아버지께 말하고 집에 가 버릴까?”
진성이 고민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진성의 방을 똑똑 노크를 하면서 문 바깥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누구세요?”
“도련님……. 저 이한나 팀장인데요.”
“아, 네네. 무슨 일이시죠? 이한나 팀장님.”
“다름이 아니라 곧 저녁 시간이 돼서 그런데 회장님께서 같이 식사나 하자고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 그래요……. 벌써 저녁 시간이…….”
진성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진짜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벌써 이 시간이 되었다고? 참 빠르게도 지나가네.
“저녁 준비가 다 끝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도련님.”
“네…….”
이한나 헌터는 진성에게 저녁 식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물러갔고 진성은 혼자 방 안에 남아 저녁 식사만 하고 집에 가도 되는지 할아버지께 물어볼 생각을 했다.
저녁 식사는 하고 가는 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세린이는 뭐 하고 있을까?”
비록 자신은 가평의 저택에 와서 이러고 있지만, 자신의 밭에 남아 있는 엘프들과 세린이 그리고 정령들을 생각하면서 저녁 식사 시간이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밭에 이상한 일은 없는지, 세린이와 정령들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지, 등등. 생각은 자신의 밭과 집 그리고 세린이 뿐이었다.
몸은 여기 있어도 영혼은 그곳에 가 있는 진성이었다.
똑똑똑.
그런 생각을 한 지 오래되었는지 누군가가 또 자신의 방문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도련님.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내려오라고 합니다.”
“네, 금방 나갈게요.”
식사 시간을 알리는 말에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5시 5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50분이나 지났단 말이야?”
진성은 이한나 헌터가 먼저 내려간 뒤 조금 구겨진 옷을 한번 다듬고 크게 숨을 들이 내쉬고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 두 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이제 내려가시면 됩니다.”
“네.”
그 두 명의 헌터의 호위를 받으면서 진성은 1층에 있는 엄청 넓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1층 입구에서 꽤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었는데 식당을 처음 본 진성은 입을 벌리고 조금 놀랐다. 물론 크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건 너무도 크고 넓었다.
300명 이상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그 넓은 공간에 오직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일부 중요한 인물만 몇 명이 있던 것이다.
“그만 입 닫고 앉아라!”
큰아버지인 강찬호 부회장이 진성을 못마땅하게 보면서 품위를 지키라고 말했다.
진성은 ‘아……. 네. 죄송합니다.’하고는 입을 닫고 바로 조심스럽게 이한나 헌터가 지정한 자리에 앉았다.
그 위치는 바로 할아버지 바로 옆인 좌측 자리였다. 할아버지의 우측 자리는 강찬호 부회장의 자리였다.
진성이 자리에 앉자 한울기업 강 회장은 입을 열었다.
“자……. 내 손자도 왔으니 식사를 시작하지.”
강재환 회장의 말에 식당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저택의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여서 부엌에서 준비된 식사들을 차례로 내왔다.
넓은 식사 테이블에 요리들이 가득 차고 있던 것이다. 식사 인원은 겨우 강재환 회장을 포함해 10명도 안 되었는데 요리는 적어도 30명 이상이 먹을 만한 양이었다.
진성은 할아버지랑 단둘이 식사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거기에 큰아버지와 다른 인원들까지 함께하니 너무 긴장되었다. 아무래도 꽤 어려운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듯싶었다.
강재환 회장이 먼저 식사를 시작하자 다들 조용히 식사하기 시작했다. 진성도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요리 중 랍스타가 눈에 띄어서 슬쩍 담으면서 큰아버지 눈치를 봤다.
강찬호 부회장은 식사할 때만큼은 진성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묵묵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거, 다들 너무 분위기가 그러네. 허허허.”
강재환 회장의 한마디에 갑자기 다른 인원들이 각자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었다.
“진성아.”
“네, 할아버지.”
“오늘 가평의 저택에서 있던 모임은 어떻게 느꼈느냐?”
“저는 솔직히 말하면 불편했어요.”
진성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큰아버지 강찬호 부회장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긴, 저 녀석. 평민에서 재벌이 됐는데 그럴 만도 하지.”
그 말에 다른 인원 중 두어 명이 쿡쿡거리자 강재환 회장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회장님의 눈빛에 소름이 돋는지 그들은 웃음을 멈췄다.
“그래? 그렇구나. 불편할 만도 하지.”
진성은 자신이 너무 솔직하게 얘기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꽤 무안해질 거 같은데…….
“불편한 건 사실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구나……. 그리고 저와 같은 또래들도 노력해서 저 자리에 있구나, 하고 느꼈다랄까요?”
진성의 뒤를 이은 말에 강재환 회장은 흡족한 눈치였다. 강찬호 부회장은 구시렁거리면서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진성은 말이 끝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 분위기가 엉망이 될 것 같아 식사를 다 끝낸 후에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 그저 묵묵히 식사만 했다.
진성의 말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졌고 무난한 식사가 되었다.
6시쯤에 시작된 저녁 식사는 8시가 다 되어서 끝다.
진성은 배를 살짝 두드리며, ‘아, 잘 먹었다.’라고 했는데, 강찬호 부회장이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진성에게 또 시비를 건 것이다.
“쯧쯧쯧……. 네가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신분이 바뀌었으면 몸가짐도 바꿔야 하는데…….”
“저는 딱히 무시당해도 상관없는데요?”
진성은 큰아버지의 말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강찬호 부회장은 ‘저런 괘씸한 놈!’이라면서 자신이 알려줘도 저런다면서 투덜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그걸 지켜보던 강재환 회장이 말했다.
“네 큰아버지 말은 신경 쓰지 마라. 원래 저런 녀석은 아니었지만…….”
“네, 저는 괜찮아요. 할아버지.”
“그래. 혹시 더할 말이 있느냐?”
“그……. 사실은 저녁 식사 이후에 말하고 싶었던 게……. 이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요.”
“역시 자리가 불편했구나.”
“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건 너한테는 처음이니.”
“죄송해요. 할아버지.”
“괜찮다. 돌아가도 좋다. 진성아.”
“네? 괜찮은 것 맞으시죠?”
“어차피 모임은 거의 끝났으니 상관없다.”
“그럼 이만 집으로 가 볼게요. 할아버지……. 제 밭도 걱정돼서요.”
“그래. 여긴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도 좋다.”
진성은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뒤 바로 방으로 돌아가 인벤에서 간편한 복장을 꺼내 갈아입고는 이한나 헌터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이한나 헌터는 ‘혹시 회장님께 말하고 가시는 건가요?’라고 물었고, 맞다고 하였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도련님.”
“네…….”
이한나 헌터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팀원들을 호출해서 돌아갈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20분도 안 돼서 주차장에 전 인원이 집결하였다.
그리고 진성을 태운 차량은 가평의 저택에서 유유히 빠져나갔고 가야리 마을로 돌아갔다.
가야리에 흡혈의 군주가 있는 줄 모르고 진성은 아주 편안하고 차 안에서 몸을 누이고 빨리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뒤 편안하게 쉬려는 생각뿐이었다.
설마 가야리에서 흡혈의 군주와 마주칠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뭔가 가야리로 돌아오니까 두근거리네. 역시 내 집이 좋아.”
진성은 이 두근거림이 그저 집에 다 와간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