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106. 106화
“어둠의 씨앗이라…….”
자꾸 그 단어가 생각나서 진성은 바로 잠이 들지 않았다. 조금 걱정이 된 것이다.
이전에는 그저 시스템이 내주던 퀘스트를 잘해나가며, 큰 걱정은 없었는데 디펜스 퀘스트를 제외하고 아주 큰 퀘스트 하나가 온 것이다.
어둠의 씨앗을 가진 자들이 자신을 적대하고 공격할 거라고 하니……. 편안한 농사 생활은 못 할 것이 분명하였다.
“잠을 자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가?”
그렇게 말하며 몸 전체를 피곤하게 한 다음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며 누웠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노트북 잠깐 하고 자야지…….”
진성은 잠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던 찰나 진성의 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무음으로 바꾸려다 전화가 울리자 조금 놀랐다.
“어?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보통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건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성 비서에게서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성 비서 전화를 받 진성이 ‘여보세요.’라고 했고, 성 비서 또한 ‘네, 도련님.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아, 아뇨. 자기 전이었으니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내일 시간 되십니까?
진성은 ‘잠시만요!’라고 대답을 한 뒤 내일 일정을 확인해 보았다.
“……내일 딱히 중요한 약속은 없어요. 그런데 그건 왜요?”
-도련님. 내일 기업인들의 모임이 있는 날인데……. 사실 회장님께서 빠르게 잡으라고 하셔서 이제야 알려 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
진성은 자신이 귀찮아하는 것 같아 할아버지께서 빨리 잡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몇 시부터 시작하나요?”
-내일 오전 10시까지 오시면 되고 한나 헌터팀이 도련님 집 앞으로 모시러 가니 그들과 함께 오시면 됩니다.
“장소는 어디인가요?”
-장소는 가평 쪽이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단 팀과 함께 한울기업 본사로 오셔야 합니다. 일정은 1박 2일입니다.
“1박 2일이요? 하루면 될 줄 알았는데……. 아무튼, 알았어요.”
-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늦은 시각에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진성의 대답이 좀 늦자 성 비서는 진성이 불편해하는 듯하여 다음엔 더 일찍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진성은 늦게 전화한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1박 2일 열리는 기업인들의 모임에 나가기 귀찮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도 부탁했고 하니……. 일단 나갈 수밖에 없었던 진성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렇게 성 비서와의 통화가 끝났다.
“내일이라니 빠듯하네.”
기업인들의 모임이 바로 내일이라니……. 정장 입고 가야 하나? 아니지, 간편한 복장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지.
진성은 캐주얼한 복장으로 가기로 하였다. 집에 잘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이거……. 밭에 있는 세린이하고 정령들이 이틀이나 오지 않으면 매우 심심해할 텐데.”
세린이와 정령들이 매우 걱정되는 진성이었으나 막상 세린이하고 정령들은 엘프들과 친하게 지내며 심심치 않은 밤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내일 나가기 전에 세린이한테 얘기하고 가야겠다.”
현재 시간은 밤 8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진짜 이른 시각이긴 하네…….”
진성은 알람을 오전 6시로 맞춰 놓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밭에 들러서 점검한 후에 세린이에게 얘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요즘 따라 너무 밭을 자주 비우는데 진성은 세린이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같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을 부르는 이들이 많아지자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세린이가 이해를 해 준다고 해도 진성은 양심에 찔렸던 것이다.
“이한나 헌터팀은 7시나 8시에 오려나?”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한 진성은 다시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진성은 오전 6시가 되어 울리는 요란한 알람을 들으며 잠에서 깼다.
“으, 음.”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습관적으로 폰 알람을 끄고는 ‘조금만 더 잘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어나기로 하였다.
“하아……. 기업인들의 모임인가 거기 안 가면 안 되나?”
잠자기 전날에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그 당일이 되자 귀찮음이 가득하였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진성은 바로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고, 빠르게 씻고 나왔다. 그리고 아침을 대강 챙겨 먹고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집에서 나와 자신의 밭으로 향한 것이다.
밭으로 빠르게 도착한 진성은 바로 밭으로 들어가자마자 세린이가 자신을 반겨주었는데 세린의 미소는 진성의 복잡한 마음을 없애줬다.
“세린아. 안녕~”
“아빠, 안녕하세요!”
“그래. 세린아. 뭐 하고 있었니?”
“엘프들에게 작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조금 배우고 있었어요.”
“오? 그렇구나.”
하긴, 엘프들의 농사 방식도 인간들과 전혀 달라서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참고할 만한 것을 참고하는 세린이가 기특해 보였다.
요즘 자신이 밭을 비울 때가 많은데 세린은 꾸준하게 자신의 밭을 지키면서 연구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자 진성은 진짜 빨리 기업인들의 모임을 끝내고 당분간 밭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린이와 같이 있을 시간을 좀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며 다짐하였다.
“세린아. 아빠가 오늘하고 내일 밭에서 자리를 비우는데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아빠~ 다녀오세요.”
세린은 진성이 앞으로 엄청 바빠질 것을 알고 있었다. 어둠의 씨앗을 가진 자가 나타나기도 했고, 진성이 성장할수록 그들을 상대하느라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세린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진성과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쉽지만, 앞으로 계속 같이 있으려면 시스템의 퀘스트를 진행해서 진성이 더욱 성장하고 강해져야 했다.
어둠의 씨앗을 가진 자와 씨앗을 뿌린 자는 굉장히 위험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세계수와 엘프들 등이 큰 피해를 볼 것이다.
세린이가 과거에 당했던 것처럼 어둠의 씨앗에 잠식당한 자들이 서로 미워하고 전쟁을 벌일 것이다. 그런 일을 피하려면 시스템에게 선택받은 진성이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진짜로 괜찮겠니? 세린아.”
“괜찮아요. 아빠! 그리고 힘내세요.”
세린의 힘내라는 말이 자신의 힘듦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힘이 났다.
역시 세린이밖에 없구나……. 자신을 잘 이해하는 부모님도 계시지만 세린이가 제일 잘 안다고 해야 하나?
“일단 아이린에게도 이야기를 남겨야겠네.”
진성은 세린이와 함께 엘프들의 거주지로 갔고 아이린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이틀간 자리를 비우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세린이에게 이야기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린은 밭에서 떠나려는 진성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진성 님. 그 모임에 가시면 어둠의 씨앗을 가진 자들도 보일 테니, 확인해 주세요.”
“어……? 설마 그거 예지력으로 본 거야?”
“네. 진성 님이 가시려는 모임에 아주 불길한 기운이 있어요.”
“그래? 알았어. 아이린. 한번 조사해 볼게.”
“네, 진성 님. 조심하세요.”
엘프들의 성녀 아이린의 스킬은 예지력이었는데 아무래도 특정한 날에만 보이는 것 같았다.
하필 자신이 가는 기업인들의 모임에 어둠의 씨앗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하니……. 가서 알아보면 되는 건가?
앞으로 내 활동을 방해하려는 자들 같은데……. 오늘 안가면 큰일 날 뻔했구나……. 미래의 적을 특정할 수 없을 테니까……. 모임에 가서 어둠의 씨앗을 뿌린 자까지 나타나면 더욱 좋을 텐데……. 나타나지 않겠지?
일단 어둠의 씨앗에 잠식된 자는 현재로선 대한민국 대통령 이하늘 한 명만 알고 있었다.
“일단 내 밭을 잘 부탁할게. 아이린.”
“네, 걱정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진성 님.”
진성은 아이린의 배웅을 받으며 자신의 밭에서 나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7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슬슬 가서 준비해야겠다. 금방 올 거 같은 느낌이 드네.”
그 말을 하고 진성은 빠르고 집으로 돌아왔고, 깨끗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준비한 뒤 잠시 집 밖 정원으로 나왔다.
정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원 밖 비포장도로에서 차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진성의 폰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어……. 왔구나.”
진성은 문자를 확인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SUV 차량 네 대가 왔는데 저번에 왔던 인원보다 조금 많아졌다.
“아, 안녕하세요. 이한나 헌터.”
“네, 도련님. 좋은 아침이에요.”
진성은 이한나 헌터에게 인사했는데 이한나 헌터 옆에 새로운 인물이 보였다.
“아, 제 옆에 있는 사람은 AAA랭크 마녀 김혜영 헌터예요.”
“아……. 그 유명한?”
“네, 맞아요.”
김혜영 헌터는 헌터 사회에서도 꽤 유명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잔혹함으로 유명했다고 할까?
3년 전, 김혜영 헌터의 첫 출전 때 서울에 몬스터 웨이브가 왔고 김혜영 헌터는 그 몬스터 집단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고작 한 번의 기술로 몬스터 1만 마리 이상을 전멸시켰다.
그래서 불린 별명이 화염의 마녀였는데 마법사가 아닌 마녀로 불린 이유는 직업이 마녀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겠어요. AAA랭크 김혜영 헌터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도련님.”
“아……. 네.”
진성은 도련님이라는 칭호가 익숙하지 않은 터라 많이 어색했다.
“자, 이제 출발해야 해요. 도련님! 2호 차에 탑승해 주세요.”
이한나 헌터 말에 조금 머쓱해져 있던 진성은 바로 2호 차에 탑승하였고 이한나 헌터와 김혜영 헌터는 1호 차에 탑승하였다.
“이제 출발합니다.”
모두 탑승한 게 보이자 이한나 헌터는 무전기로 출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SUV 차 네 대는 한울기업 본사가 있는 판교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차가 안 막히는 구간이라서 본사에는 9시쯤 도착할 듯싶었다. 그들이 출발한 시각은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진성은 부족한 잠을 채우려고 눈을 감고는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2호 차 운전사인 박재민 헌터는 한울기업 도련님이 잠을 자자 힐끔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였다.
한편, 1호 차에서는…….
“그 도련님이라는 분, 꽤 귀엽던데?”
김혜영 헌터는 강진성에 대한 첫인상을 이한나 헌터에게 말했다.
“언니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네. 겉모습은 그래도 강해.”
“그래? 겉으로는 뭐 나름 잘생긴 거 같기도 한데……. B랭크 헌터라면서? 그럼 나름 강하겠지.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AA랭크 급은 된다는 얘기인데?”
“AA랭크는 더 넘어. 언니…….”
“그래? 흥미롭네.”
이한나 헌터가 그렇게 얘기하자 더욱 흥미가 가는 김혜영 헌터였다.
이한나 헌터와 호위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땐 그저 작은 호기심과 흥미뿐이었는데 남의 칭찬을 잘 하지 않는 이한나 헌터가 칭찬하자 더욱 흥미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 진짜 실력을 보여 주겠지, 그러면.”
“강진성 도련님은 나보다 강할 거야. 언니.”
“에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 S랭크 이한나인데 너를 넘어선다고? 네가 잘못 본 거 아닐까?”
“아냐! 언니. 그분은 강하다고.”
“그래그래……. 알았어.”
김혜영은 그저 이한나의 말을 들으면서 그저 과장된 거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이한나 헌터가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만 가볍게 ‘나름 강한가 보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SUV 차량은 서서히 판교로 들어섰다.
이번 기업인들의 모임은 꽤 큰 규모였다. 가평에 한울기업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5천 평에 달하는 별장에서 열리는 정도였으니 참가자도 엄청 많았던 것이다.
한울기업 회장과 인연을 만들어 보려고 참가하는 기업인들과 정치인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