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102. 102화
“어디 보자……. 위치가?”
백현동 판교 힐스 이쪽인가?
위치는 그렇게 나와 있던 것이다.
“차 끌고 가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그냥 텔포 타고 가는 게 더 낫겠다.”
판교역 텔포 지점이 찍혀 있는 터라 7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현재 시각을 보니 오전 6시가 조금 넘었다. 오전 7시까지 오라고 했으니 지금 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준비는 다 된 거 같고……. 가 볼까?”
진성은 정원에 있는 텔포 기계에 판교역을 누르자 편도 2만 원가량 나온다는 알림이 떴다.
“2만 원쯤이야…….”
진성은 망설임 없이 약 2만 원을 결제하고 텔포를 탔다.
텔포를 탈 때마다 몸이 적응되어 가는지 처음에 탔을 때보단 덜 어지러웠다.
판교역에 도착하였다. 이른 시각이라 판교역 주변은 조용하였다.
몇 명의 노숙자들이 무리 지어 오들오들 떨면서 건물들 주변 구석에서 잠을 청하거나 손에 따스한 바람을 불어넣으며 추위를 견디고 있는 모습만 보였다. 그 외는 일부 상인들이 길거리에 나와 장사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백현동이면, 여기서 걸어서 얼마나 걸리려나?”
폰으로 내비게이터를 켜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22분이 걸렸다. 자신의 경보속도로 간다면 10분쯤 걸리지 않을까?
“역이랑 엄청 가깝네.”
진성은 역에서 출발하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자 판교 힐스라는 곳이 나타났다.
이곳은 예전에 할아버지가 판교가 개발되기 직전에 구매하신 땅인데, 그 땅 전체에 대저택을 하나 만들어 버리고 별장으로 쓰셨다고 한다.
그 별장을 부모님에게 주었고 지금은 부모님과 일부 경호 인력이 사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실제로 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쪽으로 이사 온 부모님도 이 저택에서 산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엄청 크네.”
내비게이터대로 따라가자 엄청나게 큰 대저택이 나왔다.
대체 이거 몇 평일까?
대저택의 앞마당엔 큰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경비 초소 자체도 크고 CCTV와 경호 인력도 꽤 많이 보였다.
진성이 그 앞을 기웃거리자 경비 초소에 있던 경호 인력 중 한 명이 나와 ‘이곳은 개인 사유지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성은 부모님께서 이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해당 경호원에게 말했다.
“부모님께서 이곳으로 이사를 온 터라…….”
말을 흐리면서 이야기하자 경호원은 깜짝 놀라면서 ‘혹시 강진성 도련님이십니까? 신분증 확인 가능합니까?’라고 말했다.
진성이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자 경호원은 팍 군기가 든 채로 진성을 안내하였다.
경비 초소를 지나가자 모든 경호원이 강진성 도련님이 도착하였다는 말을 전달하였고 저택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곳에 상주하는 경호원만 30명이 넘었는데, 대부분 헌터들이었다.
진성이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6시 33분이었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도련님.”
진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한 경호원은 식당으로 안내하고 돌아갔고 진성은 조금 뻘쭘하게 그곳에서 있었다.
그러다가 진성의 뒤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부모님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아들~ 왔니?”
“네, 엄마,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그래, 잘 있었다. 무슨 일로 온 거냐?”
“이사한 지 좀 되었는데 간만에 얼굴 비출 겸 아침 식사 같이할 겸 왔죠. 사실 성 비서하고 할아버지가 꼭 오라고 해서요.”
진성의 말에 엄마는 아무렴 어떠냐는 말을 했고, 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버지가 뭔가를 말하려고 부르셨나 보군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대충 짐작이 가는 내용이지만.
“아들~ 조금만 기다려 음식은 거의 다 됐으니까.”
“네, 엄마.”
식당에서는 엄마가 요리하고 있었다. 도와주는 고용된 가정부들도 있었지만 직접 엄마가 요리하겠다고 해서 그저 보조하고 있었다.
1층 안쪽에 식당이 있었고 꽤 넓었다. 최소 40명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이었다.
이 저택은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잡혔다. 물론 자신의 땅보단 작은 크기였지만 꽤 큰 평수였다.
“아직 할아버지는 안 오셨나 봐요?”
진성이 아버지에게 묻자 진성의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이미 와 있었다. 진성아.”
할아버지의 말에 진성은 돌아보면서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라고 인사를 했고, 할아버지는 ‘그래, 허허허.’ 거리면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자, 자리에 앉자꾸나.”
할아버지의 말에 식사 준비에 정신없는 엄마를 빼고는 모두 자리에 착석하였다. 할아버지는 제일 상석에 앉았다. 부엌 쪽에서는 아주 맛있는 냄새가 식당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오늘은 미역국인가 보구나.”
할아버지의 말에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네, 아버지.”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며느리의 미역국이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짧은 대화가 오갔다. 진성은 조금 눈치를 보면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만 흘러가고 부엌에서 엄마와 가정부들이 나와 음식을 식사 테이블로 모두 옮겨왔다.
그 후, 가정부들은 조용히 어디론가 가고 부모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진성만 식당에 남았다.
조용한 시간이었다. 누군가 말을 꺼내야 하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숨이 막혔다.
진성은 무슨 말을 꺼내야 이 어색한 분위기를 없앨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먼저 말을 꺼낸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같이 식사하자고 권유하신 겁니까?”
“찬성아. 별 뜻은 없다. 그저 가족들끼리 오랜만에 식사하고 싶었다.”
“그것뿐입니까?”
“글쎄다…….”
“자, 아버님. 드세요.”
보다 못한 엄마가 이 딱딱한 분위기를 날리고자 할아버지에게 먼저 드시라고 권유를 하였고 할아버지는 ‘그래, 고맙구나.’ 하면서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진성도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숟가락, 젓가락이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하였다. 진성은 이렇게 답답한 식사는 처음 겪어 보았다.
“아버지. 무슨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하시죠.”
“고놈, 참! 그래, 알았다. 진성아.”
“네, 할아버지.”
대체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입에서 나온 얘기는 그렇게 심각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조만간 삼보, 현성, 한울 등 기업들의 모임이 있는데 진성이, 너도 와야 한다. 정장을 입고 꼭 참석하도록 하거라.”
“네……?”
기업들의 모임에 왜 자신이 참가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진성은 반문해 버린 것이다.
“아버지. 부연 설명은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찬성은 한숨을 내쉬며 자기 아들인 진성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기업들의 모임은 그저 얼굴 비치는 용으로 나가는 것도 있지만, 기업 회장들만 오는 게 아니고 정치계 인물들과 또는 진성의 또래 도련님들이나 아가씨들이 오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이번에 진성이 한울의 사람이기 때문에 얼굴 비추러 가야 하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설명을 끝낸 아버지는 진성도 이제 앞으로 여러 가지 일로 조금 괴로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진성아, 꼭 참가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강조하는 말에 그런 귀찮은 자리에 나가기 싫은 진성은 조금 안 좋은 표정이 되었으나 할아버지가 이번 한 번만 참여하고 더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덧붙이셨다.
“그리고 성 비서가 이미 얘기했지만, 앞으로 널 보호해 주는 겸 보좌할 헌터 팀을 하나 붙여두었다. 잘 쓰거라.”
할아버지는 진성에게 꽤 신경을 쓰는 듯하였다. 진성의 그 퀘스트 덕분에 한울기업 소속 헌터 한 명이 S랭크로 올라간 상태였기에 미래를 내다보고 진성에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 것이었다.
진성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부회장은 진성을 더욱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러면 그 모임은 언제 열리나요?”
“이른 시일 안에 열릴 거다. 날짜가 확정되면 성 비서가 너에게 전화를 해 줄 거다.”
“네…….”
그 모임에 가서 조용히 있다가 와야겠다. 성질 더러운 다른 기업의 도련님들도 많이 오겠지? 그나마 시우 녀석이 있으니까 같이 다니면 될 거 같았다.
“모임은 보통 6~8시간 하니까 그때만 견디면 된다.”
할아버지 대신 아버지가 진성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도 한 번만 가면 되는 거니까 꾹 참고 갔다 오면 되겠지…….
그들은 어느새 식사를 마쳤다.
엄마와 아버지는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갔고 할아버지는 진성에게 또 할 말이 있는지 말을 이어나갔다.
“진성아. 그 모임에 나가기 싫은 건 이해하지만,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가는 게 좋을 거다.”
“할아버지가 말씀하고자 하는 건 인맥을 쌓아두라고 하는 건가요? 미래를 위해서요.”
“그래. 얼굴을 자주 비치면 좋지.”
“하지만 농사만 즐겁게 하면서 편히 지내고 싶은데요?”
“지금이야 네가 젊어서 모르겠지만, 인맥은 꼭 필요하다. 이 사회는 간단한 게 아니란다.”
진성은 자신에게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강 알았으나, 그런 정치계 그리고 다른 기업 인맥들보단 현재의 친구들과 안 지 얼마 안 된 차현민 헌터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터라…….
“그런데 할아버지. 저를 보좌할 헌터 팀이라는 거, 저는 사실상 필요 없거든요.”
“그래. 네가 B랭크 헌터인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필요할 날이 올 거다. 헌터 팀은 큰 규모로 준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존재들로 꾸린 팀이니 안심하거라.”
진성은 할아버지의 말에 그저 규모가 다섯 명 정도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인 강재환은 진성이 앞으로 중요한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들어서 B랭크부터 AA랭크 인재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서 파견했다.
아니, 진성의 직속으로 줘 버린 것이다. 진성이 생각하는 인원보다 좀 더 많은 약 15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고, 진성을 뒤에서 조용하게 백업해 줄 인원들이었다. 그 팀을 이끄는 팀장은 S랭크 이한나 헌터였다.
그것을 모르는 진성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힘만으로도 충분한데 팀까지 붙여주시다니……. 물론 자신의 진정한 힘을 할아버지에게 보여 드리지 않았기에 저렇게까지 하신 거겠지, 하고는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더 이야기할 거는 없으신 거죠? 저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아무래도 제 밭이 걱정돼서요.”
“그래. 없다.”
“네, 할아버지.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
진성은 그 저택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아주 복잡한 이야기를 하자 너무 머리가 아파졌고 빨리 자신의 밭으로 돌아가 세린이를 보면서 힐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모님에게는 ‘아침 잘 먹고 가요~ 나중에 또 올게요’ 라고 문자를 보내고는 저택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던 것이다.
진성이 빠르게 나가자 강재환은 ‘허허. 저 녀석, 복잡하게 생각하는군.’이라고 생각하였고 조금 중얼거렸다.
“진성아. 이제 적응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일이니까.”
강재환은 혼자 쓸쓸히 식당에 앉아 있었다.
한울기업에서는 부회장인 큰아들 강찬호가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큰아들은 나쁜 욕망이 가득했기에 처음부터 한울기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왕 물려줄 거면 능력이 있고 착실한 차남 강찬성이 제격이었다. 찬성이 물려받는 게 확정이 되면 찬성의 아들인 진성 또한 이제 한울기업이라는 자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물론 취미로는 저렇게 농사를 할 수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태평하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기업모임도 진성을 여러 기업인에게 소개하는 겸 익숙해지게 만들기 위해서 앞당겼다.
진성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업인들의 모임에 한 번 참가하면 계속 참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굳이 거기까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