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작물로 레벨업-95화 (95/209)

제95화

95. 095화

거기에는 아주 낯이 익은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너, 나 기억 안 나냐?”

“혹시…… 누구신지?”

진성은 낯설진 않았지만 누군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야……. 진성이……. 나를 기억 못 하냐? 너무하네.”

저 특유의 말투,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대체 누구지?

계속해서 진성이 기억을 못 하자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까먹은 거 같으니 얘기해 주지 뭐……. 이유찬이야. 이제 기억나냐?”

“아아!”

이유찬……. 드디어 기억났다. 군대 동기로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같은 중대였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각성하고 군 특별 헌터가 되어 활약하고 다녔다. 진성에게 엄청 자랑하고 다니면서 일반인이라고 놀렸던 기억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유찬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그 기억이 떠올랐다.

“잘 지냈냐?”

“어……. 뭐, 그렇지.”

“너 아직도 각성 못 했냐?”

진성은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잠시 들어서 말을 못 했는데 동기는 그걸 보고 ‘그래, 각성 못 할 수도 있지. 그나저나 넌 참 운도 없다.’고 자기 할 말만 하며 진성을 약간 무시했다.

진성은 그런 말을 하는 동기를 내버려 두고 집으로 가려고 하자 유찬이 진성의 어깨를 붙잡으며 어디를 가느냐고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집에 가야 하는데…….”

“집에 가는 것보다 나 따라오는 게 더 좋을걸? 어차피 집에 가 봤자 심심할 거 아니냐? 오늘 안 그래도 같은 중대원들 여기 앞에 있는 식당에서 보기로 했으니까 너도 따라와라.”

유찬은 집으로 가려고 하는 진성을 설득하며 ‘간만에 중대원들 안 볼 거냐?’ 하며 계속 꾀었다.

진성도 집에 가 봐야 일밖에 할 일 없으니 가 보기로 하였다.

같은 중대원이라고 해 봤자, 보나 마나 선임이었던 사람이나 후임 또는 동기겠지…….

유찬을 따라간 곳은 시내 외곽에 있는 치킨집이었는데, 안쪽에서 유찬을 환영하는 소리가 났다.

“어이~ 유찬! 왜 이리 늦게 왔냐?”

“그러게.”

“아, 미안. 그래! 너희도 잘 아는 누굴 데려왔는데?”

유찬의 말에 안쪽에서 치킨을 먹고 있던 약 10여 명의 사람이 유찬의 뒤를 보며 다들 ‘강진성이네~’ 또는 ‘진성이 형!’이라고 외치며 환영했다.

“진성아. 오랜만이네?”

“진성이 형!”

같은 소대 동기와 다른 소대 후임이었던 이들은 진성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어, 그래.”

“진성아. 여기 앉아라.”

그 10여 명 중에 유찬을 제외하면 진성이 제일 친한 동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친구도 각성하지 못하고 전역했던 동기였다.

그 동기까지 여기 있는 거 봐선 각성자들만 모인 모임은 아닌 거 같았다.

유찬을 포함해서 11명 중 헌터가 7명이었기에 나머지는 비각성자일 터다.

하여 진성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무래도 각성을 먼저 했던 이들만 있었다면 조금은 불편했을지 모른다.

“자자, 앉아. 진성아.”

“그래.”

진성은 다른 동기 준서가 권유한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유찬이보다 준서가 더 편했다. 준서와 같이 각성 못 하고 전역했기 때문일까?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그 때문에 더 친해졌다.

진성이 앉자 다들 치킨을 먹으면서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나 전역 후의 이야기를 꺼내며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야, 그나저나 유찬아…….”

“네, 형~”

“설마 그 사람도 모임에 오는 거 아니겠지?”

유찬이에게 말을 꺼낸 이는 진성의 다른 소대 선임이었던 이지훈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진성은 그가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났지만 다들 급격히 조용해졌다.

유찬은 ‘그 사람이요? 설마 제가 불렀겠어요?’라고 말하자 다들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그가 누구길래 저러는 거지?

군대에 있던 기억은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좋은 기억이 있지 않은 터라 모두 잊기로 한 것이다.

“대체 누구길래?”

진성이 옆에 있던 준서에게 물었더니 유찬이 매우 놀랐다.

“진성아. 너 까먹었냐?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그 악마 같은 사람 말이야!”

“미안, 내가 잘 기억이 안 나서.”

“그걸 어떻게 기억 못 하냐? 대단하다 너도.”

“…….”

“진짜 기억 안 나는 거 같으니 말해 줄게. 그 사람은…….”

유찬이 말을 시작하려는데 다들 표정이 굳었다. 치킨 가게 문이 열리며 들어온 손님이 유찬의 일행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만 빼고 이렇게 모임을 해?”

“헉…….”

“……!!”

다들 표정이 안 좋아졌다. 진성은 그 손님의 얼굴을 보자 모든 게 기억이 났다.

바로 진성을 포함해 중대원 절반을 괴롭히고 전역한 그…… 악마 같은 이우진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진성 또한 조금 긴장을 하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때의 강진성이 아니었고 지금은 B랭크 헌터였다.

잠시 그의 눈빛을 피하다가 다시 똑바로 바라보았다.

“호오? 강진성……. 너 많이 컸네…….”

“무, 무슨 일로 오신……? 그리고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유찬은 바들바들 떨며 우진에게 말했다.

“뭐긴? 너희가 모임 가진다고 해서 내가 친히 찾아왔지……. 감히 나를 안 부르고 너희끼리만 모여? 어떻게 알고 오긴…….너희들이 휴가 나올 때마다 여기 오는 거 이미 알고 있다.”

아주 무섭게 얘기하자 보다 못한 우진의 동기인 지훈은 말했다.

“야! 이우진……. 네가 애들 괴롭힌 거는 생각 안 하냐? 당연히 초대 안 하지.”

“뭐라고? 까불지 마라…….”

우진은 화가 난 표정으로 지훈을 노려봤다. 이러다가 싸움이 터질 것 같았다.

몇몇은 꽤 불쾌한 표정이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지훈을 제외하고 이우진에게 괴롭힘을 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진성 또한 우진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지자 진성은 괜히 온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였다.

“아무래도 집에 가야 할 일이 있다 보니…….”

“어딜 가냐! 진성아. 이젠 무시하고 가려고? 너 진짜 많이 컸구나?”

우진은 나가려는 진성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진성은 우진의 말을 무시하고 가게 문까지 걸음을 옮겼다.

우진은 군에 있을 때 자신의 말에 무서워서 떨던 진성이 전역하자마자 자신을 무시하고 저렇게 행동하자 더욱 화가 난 것이다.

감히 날 무시해? 각성 헌터도 아닌 일반인 따위가? 우진은 현재 D랭크 헌터였는데 기껏 일반인인 진성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문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우진은 나가려는 진성을 멈추게 하려고 협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성이 무시하고 문을 열자 우진은 헌터의 능력을 사용하여 어느새 진성의 뒤에 섰다. 진성이 나가면 바로 등 뒤에서 공격할 셈이었다.

그 광경에 모임에 있던 유찬을 비롯한 일부 동기들이 어떻게든 진성과 우진을 말리려고 하였다.

“지, 진성아! 나가면 죽는다잖아! 그냥 들어오는 게 어떨까?”

유찬은 진성을 부르며 말리고 있었다. 일반인으로 알고 있는 터라 위험했던 것이다.

헌터에게 가볍게 한 대 맞으면 멍이 드는데 강력한 펀치를 맞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골절에 가깝게 크게 다칠 것이다.

진성이 제발 우진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나가지 않길 속으로 빌고 있었다.

하지만 진성은 나가기 전에 등 뒤에 있던 우진에게 말했다.

“적당히 하시죠? 여긴 군대가 아닙니다.”

“뭐야?!! 이 자식이!”

우진은 화를 못 참고 힘을 주고 진성에게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진성은 가볍게 피하고 우진의 하체를 차서 넘어뜨렸다.

쿠당탕.

큰소리와 함께 우진은 기습 발차기에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크아악.”

그 모습에 치킨 가게에 있던 유찬 일행을 비롯해 다른 손님들도 놀랐다.

겉모습은 일반인처럼 생겼는데 헌터를 저렇게 쓰러뜨린다고? 그럼 일반인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우진은 쓰러지고 나서 정신을 못 차렸고, 진성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유찬의 일행도 우진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들 떠나자는 분위기여서 황급히 결제하고 다들 가게를 나섰다.

그들이 나간 뒤에도 우진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모두가 나간 지 한참이 돼서야 일어났는데 더욱 악귀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감히……. 일반인 따위가?! 죽여 버리겠어……. 강진성!!”

우진은 치킨 가게를 나갔고 씩씩거리면서 어디론가 향했다.

진성은 바로 집으로 떠난 뒤였고 유찬의 일행도 이미 다들 집으로 도망간 상태였다.

다들 떠나면서도 먼저 떠난 진성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우진이 분명 보복을 할 것이기에…….

그들의 걱정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다.

* * *

우진은 자신이 속한 헌터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모여 있는 곳에서 연기를 하며 하소연을 했다.

“제가 방금 군에 있었던 후임을 만나서 오래간만이라 치킨도 사주고 이야기를 잘 이어나갔는데…….”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였다. 강진성에 대해 나쁜 이야기만 하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하였다.

그것을 들은 길드장과 부길드장은 자신들이 아끼는 동생 하나가 다쳐서 돌아와 이렇게 얘기하니 화가 났다.

“그래. 우진아, 그 녀석 이름이 뭐냐?”

“강진성입니다. 길드장님. 아마 일반인은 아닌 거 같고 헌터 같습니다.”

우진은 일반인이라고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헌터가 일반인을 건드려서 다치게 하거나 죽이면 강력한 형벌을 받기 때문이다.

평생 정부에게 쫓겨 다닐 수도 있고 또는 무기징역을 살 수도 있다. 헌터라고 얘기해야 조작하기 쉽고 길드장이 움직일 것이기에 그런 거짓말을 하였다.

“저보다 강한 C랭크 같습니다. 길드장님.”

“그래? C랭크도 세긴 세지. 그럼 내가 몇 명 간추려서 보낼 테니까 우진이 너도 준비해라!”

“네, 길드장님.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그래, 가족 아니냐.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렇게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속인 이우진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 덕분에 이 길드가 망하는 지름길이 되었다는 건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우진과 그 길드가 중무장하고 있을 때쯤, 진성은 이미 집에 도착한 상태였다.

“진짜 오늘은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을 봤네…….”

그저 오늘 하루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진성이었다. 거기서 유찬과 다른 동기들 후임들을 본 건 그렇다 치는데 하필 이우진을 보게 되다니. 기분이 정말 안 좋았다.

“그래도 앞으로 볼일은 없을 테니까.”

문산 시내도 잘 안 나가는 편이었고, 설마 자신의 집까지 찾아올 생각은 하지 않겠지?

“오늘 헌터 라이센스도 갱신했으니까. 헌터 커뮤니티 챗방이나 보다가 잠이나 잘까?”

진성은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헌터 커뮤니티를 들어가 각종 이슈나 보다가 챗방에 입장했다.

챗방에서는 아직도 S랭크 얘기 또는 가끔 강원도 쪽이나 해안가에서 진행하는 던전 토벌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던전 토벌 안가도 이미…….”

디펜스 퀘스트를 한 적 있는 진성에게 던전 토벌이 끌리지 않았다. 몬스터야 시스템이 어떻게든 디펜스로 보내주다 보니 던전은 가고 싶지 않았다.

“내일도 밭에 가서 할 거 없으면 부모님 뵈러 갈까?”

요즘 진성은 할 게 별로 없었다. 작물들은 이미 알아서 자라나고 있었고 그저 잡초 뽑는 일 정도만 하고 있던 것이다.

시간이 남아도는 진성에게는 농사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았던 것이다.

“일단 내일 세계수의 과거 주민이 오지 않으면 그냥 부모님 뵈러 가야겠다.”

임진리 마을에 있는 집은 거의 별장이 된 상태였고 본집은 할아버지가 큰 곳으로 마련해 주었다.

아버지가 공식적으로 한울기업 후계자 후보로 등록된 상태라 큰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던 것이다.

대강 들어보니 위치는 판교 쪽 같았다. 큰 평수의 저택이라고는 하는데 진성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아서 잘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