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94. 094화
진성은 한 번 더 기지개를 켜고 나갈 준비를 다 했음에도 더 늦게 나가 보려고 뭉그적거릴 뿐이었다.
“오늘따라 늦게 나가고 싶다…….”
대형 퀘스트가 끝난 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되었다. 그러니 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한 것이다.
“그래도 가야지. 별수 있나? 안 가기에는 세린이가 밭에 남아 일하는데…….”
물론 정령들과 같이 일하지만 정작 자신이 안가면 슬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마구 나자 진성은 ‘그냥 잔말 말고 가자.’라고 말하며 빠르게 밭을 점검하고 집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밭에 도착한 진성은 오늘 밭의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아니, 뭔가 변화했다고 해야 하나?
“어? 뭐지……. 뭔가 내 밭이 아닌 거 같은데?”
밭 안쪽으로 들어오자 밭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심은 작물들이 이제 막 싹 틔우는 단계였는데 오늘 도착해서 보니 작물들이 거의 다 자라있었고 마르지 않는 호수 근처도, 세계수 근처도 평소보다 모두 분위기가 다 달라져 있었다.
“어라?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뭐지…….”
진성은 우선 세계수와 정령 나무가 있는 곳부터 가 보았다. 세계수가 더 웅장하게 더 커진 느낌이랄까? 정령 나무 또한 평소에 신비스러운 분위기였는데 더 신비로워진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어제 분명 퀘스트가 끝나고 마지막에 나가기 전까지는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밤사이에 크게 변화한 걸까?
“정보창을 다 열어 보면 알겠지. 뭐!”
진성은 세계수와 정령 나무 정보창을 둘 다 열어 보았다. 겉으로는 많이 바뀐 느낌이 들어서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름:세계수 Lv.60
등급:플래티넘
특징:지구 최초의 세계수
생각:성장 3단계 완료!
효과:세계수의 효과로 농부 헌터 강진성의
토지 30,000평은 성장 속도 100배 증가 및 모든 작물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 보호받는다.(재해, 병해충 등 보호)
패시브:세계수의 장벽(세계수는 현재 위치의 즉 30,000평의 땅을 장벽으로 보호합니다.) 퀘스트로 인한 피해는 보호 불가능하나 빠른 회복 가능. 레벨 50이 되었으므로 이제 세계수의 주민이 성장합니다. 레벨 60이 되었으므로 세계수의 과거 주민이었던 자들이 세계수를 보려고 찾아옵니다.]
[이름:정령 나무 Lv.60
등급:플래티넘
생각:더욱 성장하고 싶어!
특징:지구에서 단 두 그루밖에 없는 정령 나무입니다.
첫 번째 정령 나무는 서울에 있으며 엄중히 보호받고 있습니다.(4대 속성의 정령들 외에 다른 속성의 정령들도 태어납니다.) 6대 속성의 태어난 정령들은 모두 상급 정령으로 변화합니다.]
“아?”
진짜 이렇게 변했단 말이야? 아니, 이게 뭐야! 헌터 랭크 올려주는 퀘스트가 나만 성장하는 게 아니고 내 작물들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얘기인 걸까?
진성은 세계수와 정령 나무 정보창을 보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이 녀석들도 이런 식으로 성장할 줄 몰랐다.
그동안 시스템이 줬던 성장 퀘스트 외에는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성은 세계수와 정령 나무는 성장 퀘스트 또는 촉진제를 줘야 성장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잠시만……. 저 둘이 성장했다는 건, 다른 녀석들도?”
진성은 세린이와 정령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강세린 Lv.60
등급:세계수의 정령왕
생각:피곤해!
특징:세계수의 정령왕이다. 모든 속성의 정령왕들보다 더 상위 개체다.]
세린이도 성장하였다. 진성의 눈에는 ‘상위 개체다.’까지만 보이고 그 뒤까지는 내용이 안 보였다. 오직 세린이만 그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세린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아빠!”
세린이는 진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를 채고 진성이 돌아간 그 날 밤에 벌어진 일들을 모두 말했다. 밭 전체가 성장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진성은 매우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날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면 아마 밭이 성장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지 않았을까? 너무도 아쉬웠다.
“아빠! 그리고 세계수가 성장해서 새로운 인물들이 찾아올 거라고 되어 있어요.”
“으응?”
진성은 세린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몰라 다시 세계수 정보창을 열어서 보니 마지막 줄에 ‘세계수의 과거 주민이었던 자들이 세계수를 보려고 찾아옵니다.’라고 적힌 것을 발견했다.
“세계수의 과거 주민?”
진성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뭔지 알 수 없었다. ‘주민이라면 이미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하며 세계수 근처를 지키는 세계수의 경비병들을 봤다.
“아빠, 그들은 아니에요! 다른 주민이 찾아올 거예요.”
세린이 그렇게 말하자 진성은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분명 세린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얘기를 도통 안 해 주니……. 누굴까? 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빠, 그리고 정령 나무 정보창도 봤어요?”
“그래! 봤긴……. 어라?”
진성은 다시 정령 나무 정보창을 열어 보니 역시나 세계수처럼 마지막 줄에 뭔가가 6대 속성의 태어난 정령들은 모두 상급 정령으로 변화한다고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상급 정령?”
아니, 자신도 상급 농부가 되지 못했는데 정령들이 제일 먼저 상급이 되다니…….
물론 자신에게야 좋았지만, 주인보다 빨리 등급이 올라간다고?
“세린아? 그럼 쟤네 지금 다 상급이야?”
“네! 아빠.”
“헐…….”
진성은 세린이의 대답에 ‘설마 설마……. 아닐 거야.’ 하면서 6대 속성의 정령들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다들 상급 정령이 되었다.
“상, 상급 정령이 맞네.”
진성은 터덜터덜 걸어 다른 작물들의 정보도 열어 보았지만 뭔가 조금씩 내용이 바뀌어 있다.
물론 자신의 헌터 랭크도 상승했지만, 랭크보다 상급 농부로 전직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상급 농부로 전직하겠지…….”
진성은 모든 밭을 다 돌아보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밭 정보창도 열어 보았지만 변한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일부 작물들과 정령들 쪽만 변한 거였고 밭 전체가 바뀐 건 아니었다. 밭 안쪽에 있는 경매장도 그대로였기에.
“내 상태창도 안 바뀐 건가?”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상태창을 오래간만에 열어 보았다.
[이름:강진성
나이:25
레벨:70
랭크:B
명성도:2,991
직업:중급 농부
칭호:세계수의 가호를 받는 자+정령 나무의 주인
능력치:힘 65 민첩 85 마력 7,500 체력 7,500
고유스킬:황금손(작물의 성장을 50배 빠르게 적용합니다.)
(작물의 성장 속도 조절 때문에 1배로 적용되었습니다.)
세계수의 가호(+체력 500 마력 500)
정령 나무의 주인(정령 친화력 Up)
패시브:동식물 등의 정보를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뭐야! 랭크밖에 변한 게 없네…….”
진짜 랭크만 올려주는 퀘스트였나 보다. 일단 밭을 전체적으로 점검했고 문제는 없으니까……. 라이센스나 갱신하러 가야지.
“세린아. 아빠는 오늘 일찍 들어갈게……. 혹시 그, 세계수의 새로운 주민이라는 녀석들이 오면 알려 주고.”
“네, 아빠!”
“오늘은 일찍 가서 미안해, 세린아. 헌터 랭크 갱신하러 가야 하거든~”
“아빠, 다녀오세요~ 오늘도 제가 책임지고 밭 관리 열심히 할게요!”
의욕이 가득해 보이는 세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진성은 밭에 온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밭에는 세린이와 정령들이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작물들은 세심하게 돌봐주고 있었다.
진성은 밭의 주인이기만 하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주 편안하게 농사를 하는 진성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진성은 흙투성이의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청바지에 스웨터 그리고 패딩으로 갈아입고 다시 집에서 나왔다.
“걸어가기에는 춥고……. 차 타고 가자…….”
진성은 정원 안쪽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고 문산 주민센터로 달려 나갔다. 몇 주 만에 주민센터에 가는 것이었다.
“아직 오후 일찍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문산 시내는 바글거리네.”
과거의 문산은 그렇게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었으나 헌터 각성 시대가 되자 문산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문산은 파주 내에서 인구가 금촌보다 많아졌다.
아니, 신도시급 인구라고 해야 하나? 문산도 많이 발전하고 있었다. 문산에서 오래 살았던 진성에게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 동네가 발전해 가고 인구가 증가하는 게 그저 좋을 뿐이었다.
“후, 춥다.”
진성은 신호대기 구간에서 잠시 창문을 내렸고, 차 안으로 바깥바람이 들어오자 입김이 솔솔 났다.
밭은 세계수의 버프로 따스했고, 집과 밭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이동하는 데도 덜 추웠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문산 시내 쪽으로 오자 엄청나게 추웠다.
“춥긴 춥구나. 역시 문산……. 아니, 역시 파주랄까?”
오늘은 눈도 오지 않고 비도 오지 않는데 차가 좀 막히는 듯했다.
평소에는 이렇게 길지 않았는데?
“아, 신호 바뀌었네!”
초록 불로 바뀌자 진성은 다시 차를 몰아 문산 주민센터가 있는 골목으로 진입했다.
주민센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민센터 2층으로 향했다. 라이센스 갱신은 항상 2층에서 이루어졌다. 대기 줄은 길지 않았다.
“대기표가…….”
대기 순번 표를 보니 177번이었다. 지금이 오후 3시쯤이니 아침에 엄청나게 찾아온 듯하였다.
평소 불타는 금요일의 주민센터는 방문자가 많아서 정말 바글거리는데 이 정도면 많이 오지 않은 것이다.
진성은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일반인들이 꽤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금요일은 헌터들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오는 것 같았다.
“빨리 차례가 오기를…….”
대기실 근처에 놓인 TV에 눈이 간 진성은 조금 놀랐다. 자신이 자는 사이에 현성기업과 한울기업이 동시에 S랭크 헌터 발표를 해 버린 것이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저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네.”
폰도 거의 전화용으로 썼고 노트북이야 항상 집에서만 쓰다 보니까 전혀 모르고 있었다.
TV에서는 S랭크에 도달한 이인우, 한소율, 이한나에 대해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진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S랭크가 되면 저렇게 주목받으려나?’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177번 고객님!’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내 차례네.”
진성은 제 차례가 되자마자 TV에서 눈을 떼고 자신을 부른 6번 창구 앞으로 다가갔다.
“177번 고객님 맞으시죠?”
“네, 177번 맞습니다.”
진성은 그 직원에게 대기 순번표를 보여 주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제가 요번에 헌터 랭크가 올랐거든요. 그래서 갱신하러 왔습니다.”
“네, 그럼 라이센스 한번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진성은 인벤을 뒤적거려 C랭크 라이센스를 직원에게 건넸다.
“B랭크로 상승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잠시 상태창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네.”
진성은 나이와 헌터 랭크, 상태창 일부만 공유해서 보여 주었다. 직원은 꼼꼼히 확인한 뒤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시스템이 만들어 준 기계에 라이센스를 집어넣고 기다렸다.
5분 정도가 지나자 갱신된 라이센스를 진성에게 돌려주었다.
“고객님, 정상적으로 B랭크 라이센스로 갱신되었습니다. B랭크 상승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네, 고객님. 안녕히 가세요.”
6번 창구에서 일을 마치고 나온 진성은 TV를 잠시 응시하다가 집에 가서 자세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있던 차에 타 시동을 걸려고 했는데 자신의 뒤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어이, 강진성?”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진성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