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91. 091화
인우는 몬스터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끌고 있었다. 몬스터 절반 이상이 인우의 도발에 이끌려 그에게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씨익.
“그래, 나한테 다 오면 돼!”
인우는 무자비하게 무기를 휘둘러 적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인우 주변에 쓰러진 몬스터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고 몬스터들은 인우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겨우 이 정도냐? 하하하.”
인우가 닥치는 대로 쓰러뜨려도 아직도 몬스터는 한참 많이 남아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밭의 경계선에서는 진성의 작물들이 쉴 틈 없이 몬스터들이 밭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저지하고 있었다.
진성도 삽으로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몬스터 수십 마리가 쓰러졌는데 그럼에도 바글바글했다.
“하아……. 진짜 많기도 하네.”
아무래도 삽으로 적들을 쓰러뜨리기엔 너무 많았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쓰려고 했던 화염방사기를 꺼내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이걸 쓸 수밖에.”
성현에게 특별히 대여한, 검증도 안 된 화염방사기였지만 빠르게 수천 마리를 쓰러뜨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한 번의 마력 충전으로 3분간 쓸 수 있었으니 그 3분간 최대 2천 마리는 통구이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진성은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화염방사기의 위력을 제대로 모르고 한 말이었다.
“성현아! 이거 쓴다?”
성현은 못 들었는지 정령들과 함께 최전방에서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진성이 주변을 둘러보니 성현뿐만 아니라 한나, 시우, 소율 또한 정신없이 싸우는 게 보였다. 초반의 깔끔했던 모습은 거의 안 남아 있고 상처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빨리 써야겠어…….”
진성이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진성의 앞에서 진성의 작물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성은 인벤에서 화염방사기를 꺼내 마력을 500 이상 충전하고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르릉!!!
화염방사기 전원이 켜지더니 몸체가 흔들리며 덜덜덜 떨렸다.
“박성현! 비켜!!”
“어? 뭐라고?”
“비키라고!”
성현이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진성이 자신이 빌려 준 화염방사기를 들고 쏠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성아! 그거 조심해라! 엄청난 물건이라고!!”
“알았어!”
성현이 호들갑 떨면서 조심하라고 했지만, 진성은 이 화염방사기가 저렇게 호들갑 떨 정도인가 싶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현은 이 물건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걸 알기에 진성에게 조심해서 쓰라고 계속해서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성은 화염방사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왜 이리 호들갑이지? 화염방사기가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이해가 안 가네.”
진성은 성현의 외침을 무시하고는 자세를 잡고 쏠 준비를 하였다.
이 화염방사기에는 두 가지 스위치가 있었는데 길게 3분간 쏘는 것과 짧게 한 번에 쏘는 게 있었다.
진성은 한 번에 쏘는 걸 실험해 보고 싶었다. 성현은 이 스위치는 절대 누르지 말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급해지고 있었기에 한 번에 적들을 무력화시키고 상황을 바꿔야 했다.
성현은 진성이 길게 3분간 쏘는 스위치를 누르는 줄 알고 살짝 떨어졌는데 진성이 그 스위치가 아니고 다른 스위치를 누르려고 하자 외쳤다.
“안 돼!! 그거 쓰면 안 된다고!”
하지만 성현의 외침은 몬스터들의 비명과 함성에 묻혀 버렸다. 전혀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다.
진성은 성현이 절대로 쓰지 말라던 스위치를 누르고 방아쇠를 당겼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엄청난 화염이 일직선으로 몬스터들에게 날아왔다. 마치 레이저를 발사한다는 느낌이랄까?
일직선으로 몬스터 군단에게 날아가면서 주변이 불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전부 통구이가 되었다.
최소 수천 마리가 이 한 방으로 죽었다.
“세, 상에.”
“저, 저게 뭐지?”
한나와 인우는 방금 그 화염들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둘러보는데 화염방사기를 들고 넋 놓은 진성을 발견하였다.
진성 또한 이 정도의 위력일 줄은 전혀 몰랐다. 왜 성현이 쓰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런 엄청난 물건이었다니??
이 한 방으로 몬스터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
“진성아? 내가 쓰지 말라고 했는데.”
“성현아! 이거 엄청나잖아? 이거 한 번만 더 쓰면 안 되겠냐? 그리고 이 정도라면 더 써도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진성은 성현에게 한 번만 더 쓰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지만, 성현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였다.
“왜??”
“그 화염방사기 한 번만 더 쓰면 부서진다고! 그리고 나도 한 번밖에 안 써봤어……. 그거 폭주하면 나도 모른다?”
테스트가 덜 끝난 물건이라 그런 위험이 있다는 성현의 설명이었다.
쩝 어쩔 수 없지……. 그러면 3분간 길게 쏠 수밖에.
“몬스터가 얼마나 죽은 거지?”
-화염방사기의 위력으로 인해 몬스터 약 4만 마리 이상이 사망하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몬스터의 수:55,893)
“헐…….”
그거 한 방으로 4만 마리가 소멸?? 엄청난 물건이잖아?
진성이 4만 마리를 화염방사기로 죽인 덕에 인우는 싸우기 한결 편해졌다. 몬스터들이 화염방사기 위력에 놀라서 주춤거리고 있던 것이다.
군단장들이 아무리 싸우라고 외쳐도 몬스터 병사들은 인간들에게 공포심이 가득해 주춤거릴 뿐이었다. 이미 두려움이 가득한 몬스터들이었다.
“다시 마력 충전해야지.”
진성은 화염방사기에 다시 마력을 500 이상 넣었고 이번엔 길게 쓰려고 밭의 전방으로 나와 화염방사기를 분사하고 다녔다.
아군 헌터들은 알아서 피했고, 피하지 못한 몬스터들은 화염방사기에 의해 통구이 신세로 전락하였다.
몬스터 병사들이 죽어 나가자 몬스터 군단장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고작 인간들 몇에 10만의 군단이 당하고 있다니!!
비둘기와 참새 군단은 아무래도 정면을 선택해서 싸우는 두더지와 메뚜기 진딧물 군단에게 실망하였고, 정면이 아닌 사방에서 공격하는 게 좋을 듯하여 비둘기는 진성의 밭 동쪽, 참새는 북쪽을 공격하였다.
밭이 공격당하자 진성에게 알림이 계속 떴다.
“하필 두 군데서? 이 녀석들 머리 쓰네…….”
“진성 씨! 제가 북쪽하고 동쪽을 상대할게요.”
한나는 어느새 주변의 적들을 전멸시키고 진성이 밭으로 가려는 걸 막았다. 자신이 다 상대하겠다는 말이었다.
AAA랭크 정령사 헌터인 그녀는 자신의 정령들이면 충분하다고 말이다.
“아! 그럼 부탁해요.”
“네!”
한나는 여기서 보여 줄 것이다. 그에게 자신의 힘을 각인시키고 인정을 받아 진성의 라인에 서고 싶었다.
“여기서 보여 줘야 해…….”
한나는 진성의 밭 안쪽으로 빠르게 향했고 4대 속성의 정령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 동쪽과 북쪽에 배치하였다.
비둘기와 참새들이 날아와서 진성의 밭 안쪽을 노리려고 했지만, 세계수의 장벽으로 1차로 저지당했다. 그리고 한나의 정령들로 인해 전멸할 것이다.
한나가 정령들을 데리고 북쪽과 동쪽을 상대할 때쯤…….
진성은 화염방사기를 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몬스터 병사들을 소멸시키고 있었다. 한 수천 마리는 죽인 거 같았는데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진짜 힘드네.”
몬스터들과 싸운 지 5시간은 넘어가는 듯하였다. 진짜 물량전의 끝판왕이랄까?
몬스터들이 연합해서 싸우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진성의 체력이 아무리 많아도 점점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방에서 싸우는 인우 또한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시우와 한소율 또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수의 장벽도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을 많이 받아 왔기 때문에 이제 슬슬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대략 3만 마리 정도 남았나?”
진성의 주변과 아군 헌터들의 주변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쓰러져 있었지만 몬스터들은 아직도 그 자리를 금세 메웠다.
이 디펜스 퀘스트가 끝나면 몬스터는 한동안 상대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질려 버렸다.
밭 안쪽에서는 한나가 정령들을 통솔해서 비둘기와 참새 군단 대부분을 쓰러뜨렸다. 1시간이 걸렸던 전투였다. 비둘기와 참새 군단은 겨우 수백 마리도 남지 않았다.
“질려 버리겠네, 진짜.”
인우는 최전방에서 싸우는데 자신의 몸에도 어느새 작은 상처들이 생겼고, 다가오지 못하고 주변을 포위하고 노려보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들어 오라니까? 내가 갈까?”
인우는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딛자 몬스터들이 부르르 떨며 뒤로 물러섰다. 벌써 이렇게 한 것만 10분째였다.
“아! 빨리 끝내고 자러 가고 싶은데.”
인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두려움에 떠는 몬스터들을 쳐다보았다.
인우와 거리상으로 가까운 시우와 한소율 또한 몸에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한소율은 빠른 검격으로 시우 주변에 다가오거나 기습하려는 몬스터들을 죄다 쓰러뜨렸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한소율 부팀장.”
“네. 다행이네요.”
한소율은 시우를 과보호했다. 아무리 시우와 소꿉친구였다지만, 지금은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범한 집안이었고, 부모님이 시우를 모시는 입장이었기에. 과거에 친구로 지냈다지만, 크면서 느꼈다. 결코 그와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주종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좋았다. 언제나 도련님의 뒤를 지킬 수 있어서.
그래서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자신은 시우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은 시우가 절대 눈치채게 하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인우는 한소율이 시우 도련님에게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눈치를 챘다고 해야 할까?
인우는 모르는 척했다. 소율은 그런 인우의 배려에 안심하고 계속해서 도련님의 뒤를 지키며, 감정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조금 남은 거 같네요.”
시우도 지쳐갔다. 연금술사로서 실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긴 했는데 몬스터들에게 자신의 공격이 거의 안 통할 줄은 몰랐다. ‘C랭크의 힘은 고작 이 정도구나…….’라는 생각이 아주 뼈저리게 느껴진 것이다.
성현은 벌써 B랭크였고 진성은 C랭크였지만 시스템에게 선택을 받은 몸이라 같은 C랭크의 실력이 아니었다.
즉 이곳에서 자신만이 약한 것이다. 자신이 약해서 한소율 부팀장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안 좋은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자 시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약해서 모두에게 방해되고 있다는 게 분했다.
그런 시우의 모습을 본 것일까? 소율은 ‘괜찮아요. 도련님. 언젠간 강해질 거예요.’라고 작게 말했던 것이다.
“아…….”
“저도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도련님도 힘내세요.”
한소율은 시우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시우는 그 미소를 보고 과거 일이 생각났다. 한소율은 과거에도 자신이 힘들어할 때마다 웃어주었다는 것을.
한편, 성현은 주변 적들을 대부분 해치우고 옆에 화염방사기를 쥐고 있던 진성에게 외쳤다.
“어이~ 진성아! 슬슬 마무리하자.”
“그래. 이제 3만 마리 정도 남은 거 같아.”
“그래? 그럼 7만 마리는 해치운 거네. 그래, 2만 마리쯤이야!”
성현과 진성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힘을 짜내 3만 마리 이하로 남은 몬스터들에게 돌진하였다.
진성은 화염방사기를 인벤에 넣고 삽을 들었고 성현은 샐러맨더의 불을 자신의 몸에 씌워 단검을 들고 진성과 함께 달려 나갔다.
둘의 마지막 활약으로 적들은 남김없이 전멸하였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싸움은 오후 6시가 돼서야 종료되었다. 남은 3만 마리는 성현과 진성이 해치웠던 것이다.
“후우……. 겁나 힘드네.”
“허억허억.”
진성의 일행은 세계수의 그늘에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