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72. 072화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진성이 한참 동안 유리병 한 개를 들고 세계수 앞에서 서성이자 세린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빠! 그냥 세계수에게 부탁하면 돼요~”
“으응? 부탁하라고?”
“네, 아빠!”
일단 진성은 세린이가 알려준 대로 세계수 앞에서 ‘수액을 조금 나누어 주지 않을래?’라고 말해 봤는데 세계수가 반응을 하였다. 가지를 뻗어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 수액을 흘린 것이다.
“이걸 받아 가라고?”
세계수는 진성의 말에 반응하듯이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마치 ‘어서 내 수액을 가져가라고?’라고 대답하는 듯하여 진성은 수액이 흘러나오는 곳에 유리병을 대어서 일정량을 받았다.
그리고 상처가 난 곳은 세계수가 회복 스킬을 써서 자체 복구를 하고 있었다.
“거 신기한 녀석이네……. 내 말도 알아듣고.”
세계수가 점점 지능을 갖추기라도 한 걸까? 이전에는 전혀 별 반응이 없던 녀석인데…….
세계수도 레벨업을 하면서 지능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제 수액도 생겼으니 황금 사과 수확만 기다리면 되네?”
진성의 인벤에는 맨드레이크 플래티넘 등급 한 개와 소량의 수액이 있었다. 남은 건 3일 후에 있을 황금 사과 수확이었다.
그날 황금 사과 한 개만 수확하면 2번의 조건은 완성되는 셈이다.
3번 조건은 조만간 시우와 성현을 만나 얘기를 해 봐야겠다며, 3일 후 황금 사과 수확 때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부모님과의 점심 외식 때 모든 걸 밝히려고 하는 진성이었다.
“13시 되려면 아직 1시간 이상 남았으니까……. 작물들 물이나 주면서 잡초나 제거해야겠다.”
진성은 퀘스트의 조건 두 가지를 거의 완성한 다음 저번 퀘스트로 생긴 마르지 않은 호수에서 물뿌리개에 일정량의 물을 담은 후 전체 작물에게 물을 주는 작업을 하였다.
그 작업을 하면서도 잡초로 보이는 풀들을 마구 뽑아내었다. 물론 운디네가 물주는 작업을 미리 했겠지만, 마르지 않는 호수의 물은 축복이 깃든 물이라 자주 뿌려도 작물에게 피해는 가지 않았다.
“요즘 시스템이 조용하니까 괜스레 불안해지네……. 분명 대형 퀘스트 하나 준비하고 있을 거 같단 말이야.”
시스템이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보통이면 태클이나 말을 종종 거는데, 요 며칠간 전혀 반응하지 않자 조금 불안했다.
항상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긴급 퀘스트를 주다 보니 진성은 설마 5차 디펜스 퀘스트를 주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 제발 디펜스가 아니길 빌면서…….
물주기 작업이 끝나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13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슬슬 여기까지만 하고 가 볼까?”
진성은 물뿌리개에 있는 물을 끝까지 다 뿌리고 난 후 슬쩍 보았는데 이 물뿌리개도 슬슬 한계가 보였다. 부서지면 중급의 물뿌리개로 변화할 것이다.
초급 물뿌리개 때는 10t의 물을 저장 가능했는데 중급 때는 과연??
“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준비해야겠다.”
진성은 세린이와 정령들에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
“세린아……. 아빠가 부모님하고 점심 외식이 있거든……. 그래서 아마 오후 늦게 다시 올 거야.”
“네! 아빠 다녀오세요.”
“그래. 아! 그리고 세린아. 내 부모님에게 너와 정령들……. 그리고 세계수 등을 소개하고 싶은데 될까?”
진성은 세린이가 걱정할까 봐 내심 불안했다. 아무래도 세린이는 자신 말고는 낯을 가리는 아이였으니까…….
그런 진성의 표정과 생각을 읽었을까? 세린이는 환하게 웃으면서 ‘아빠,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진성의 걱정을 진정시켰다.
“진짜…… 괜찮은 거니?”
“네, 괜찮아요! 아빠.”
“그럼 허락한 걸로 알고 이따가 다시 올게~”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빠.”
진성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세린이가 허락을 해 줬구나. 안 될 거라고 예상하고 말해 본 건데 될 줄이야……. 세린이가 저렇게 말했다는 건 세계수에게도 물어봤다는 거겠지.
진성은 밭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은 뒤 일반복장으로 갈아입고 정원으로 나와 차에 시동을 걸고 집에서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부모님 댁인 임진리 마을이었는데 자주 안 와서 그런지 올 때마다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진성의 차가 임진리에 진입하는데 마을이 어수선해 보였다.
마을회관 쪽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는데 철물점 사장님이 진성을 보고 반겨주었다.
“어~ 그래, 진성아. 이번에도 부모님 뵈려고 왔냐?”
“아! 안녕하세요. 네 부모님하고 오늘 외식하려고요. 근데 마을에 누가 찾아왔나 봐요?”
“아아……. 그, 뭐냐. 저기 이 씨 아저씨는 기억하지?”
“네, 이 씨 아저씨는 왜요?”
철물점 사장님이 갑자기 이 씨 아저씨 이야기를 꺼내서 진성은 조금 의아했다.
철물점 사장님의 뒷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이 씨 아저씨의 외동아들이 일찍부터 서울에 자리를 잡아 헌터 길드 사무소 직원으로 생활하다 이번에 B랭크 각성했다고 한다.
각성하기 힘든 성기사 헌터로 각성하여 소문이 나서 이 씨 아저씨를 취재하려고 기자들이 모여들어 마을 안이 혼란스러운 것이라 하였다.
“아아~ 그래도 잘됐네요? 이 씨 아저씨가 조금 이상한 구석은 있지만 그 아들분이 각성하였으니 다행이네요.”
“그래.너도 B랭크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에이, 전 헌터만 된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리고 저 이제 C랭크에요.”
“오? 그건 몰랐는데 축하한다, 진성아.”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 외동아들이라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뭐, 이 씨 아저씨, 한동안 마을 내에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겠네.’라고 생각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래도 가야리 마을 주민 한 분 한 분이 잘되는 얘기를 들으면 진성은 그저 기뻤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니까…….
“아무튼 나중에 또 봬요. 사장님~”
“그래, 진성아. 나중에 또 보자.”
진성은 철물점 사장님과의 이야기가 끝난 후, 부모님 집이 보이는 길목으로 쭉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목에 있는 이 씨 아저씨 집 앞을 지나쳐가는데 기자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그 기자 중 아주 익숙한 한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바로 자신이 처음에 각성한 후, 간단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던 현성 일보의 신참 기자 한수성이었다.
진성은 반가운 마음에 그를 불렀다.
“어? 한수성 기자님?”
선배 기자들 틈 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한수성 기자는 자신을 부르는 진성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 강진성 헌터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네. 여기 인터뷰하시려고 온 건가요?”
“네, 보시다시피……. 선배 기자들한테 밀려서 그냥 나왔어요.”
신참 기자 한수성은 강진성 인터뷰 이후에 파격적으로 보너스도 받고 수습 기간에서 바로 정식 기자가 되었다고 한다. 겨우 그 인터뷰 하나로 말이다.
보너스는 이해했지만 바로 승진까지? 그렇게 대단한 인터뷰는 아니었는데…….
“강진성 헌터님은 그대로 D랭크이신가요?”
“아뇨~ 저 지금 C랭크예요.”
“네? C랭크가 되셨다고요? 혹시 바로 인터뷰 가능합니까?”
기자답게 한수성은 바로 인터뷰를 할 기세였다. 하지만 진성은 거절하였다.
오늘은 그냥 임진리에 온 게 아니었고 부모님과 즐거운 외식을 위해 시간을 내었기 때문이다.
“아……. 그건 안 될 거 같네요. 제가 오늘 부모님과 외식이 있는 터라……. 다음에 가능할까요?”
“아쉽지만……. 네, 물론이죠!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그런데 이 씨네 아저씨한테 어떤 인터뷰 하시려고 온 거예요? 각성자 본인은 아니잖아요. 저분.”
“아아, 그냥 뭐, 아드님이 평소에 어떠셨는지 그냥 가족사 인터뷰죠, 뭐.”
진성의 질문에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말해 주는 수성이었다.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말해 주었던 것이다.
“저는 인터뷰는 못 하고 나왔지만……. 뭐, 딱히 아쉬운 건 아닌 터라.”
“아, 그렇군요.”
수성은 가족사 이야기보단 직접 각성한 헌터에게 물어보는 게 더 즐거웠다. 현성 일보에서 인터뷰 한 번 따보라고 해서 왔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이 씨 아저씨 집에는 기자들만 약 20명이 넘게 몰려 있었다.
진성은 ‘어휴, 저 아저씨도 고생이겠네…….’라며 동정심이 들었지만, 그냥 내 일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부모님 댁에 가려고 하였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고요……. 다음에 한 번 연락드릴게요.”
“네 다음에 뵙죠! 부모님과 즐거운 외식 보내시길 바랍니다. 강진성 헌터님.”
“네네, 감사합니다.”
진성은 한수성 기자와 이야기를 끝낸 뒤 나와 다시 가던 길을 갔다. 한참 올라가자 파란색 지붕의 부모님 댁이 보였다.
“후우……. 다 왔다.”
진성이 부모님 댁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과 마주쳤다.
“저 왔어요~ 엄마, 아버지!”
“그래, 왔니? 아들.”
“크흠…….”
“이제 슬슬 가요! 차는 제가 마을회관 앞에 주차해 놨어요.”
“그러니? 그럼 이제 가요. 여보.”
진성의 엄마는 남편에게 가자고 말했고 남편은 ‘큼.’거리면서 망설이다 결국 아내를 따라나섰다.
진성은 아버지가 가기 싫어하는 걸 봤지만 엄마를 따라 나오시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정말 솔직하지 못한 아버지라니까…….
집에서 나와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이 씨네 아저씨 집에 있던 기자 중 절반 이상이 돌아간 듯 보였고 한수성 기자도 보이지 않았다.
“진성아, 올라오면서 다른 마을 주민분에게 들었겠지만, 이 씨 아들이 성기사 B랭크 헌터가 됐다고 그러더구나.”
아버지가 큼 거리다가 이 씨 아저씨 집 앞을 지나갈 때쯤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이 이어졌다.
“저쪽 집은 B랭크 아들이 나왔지만 넌 신경 안 써도 된다.”
즉 기죽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진성이 D랭크로 시작했기에 이 씨 아저씨의 아들이 B랭크로 각성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말에 진성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전 괜찮아요! 랭크가 뭐가 중요해요?”
“큼……. 그렇긴 하지……. 아무튼,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요~ 어차피 같은 각성이고 랭크야 올리면 되니까요.”
진성과 아버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엄마는 그런 진성이와 남편의 모습이 보기 좋아 미소를 지었다.
“흥! 랭크가 올리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는가?”
어디서 바로 태클이 들어왔다. 바로 그건 이 씨 아저씨였다.
이 아저씨는 과거 진성의 부모님의 관리기를 고장 내고도 돈 없다고 수리비도 주지 않았고 진성은 모르지만, 진성의 밭에 침입해서 황금 사과를 훔쳐 가려던 그런 남자였다.
기자들이 대부분 돌아간 후 이 씨는 한숨을 돌리고자 잠시 집에서 나온 건데, 자신의 집 앞에서 이런저런 대화하는 진성과 그 부모님이 보여서 태클을 건 것이다.
“이 씨……! 너무 말이…….”
진성의 아버지는 뭐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저런 시비에 반응하면 안 된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씨는 말을 하다가 마는 강 씨를 보자 ‘아하, 내 아들이 B랭크가 됐고 진성보다 한 수 위니까 내 기세에 눌려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군?’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왜 말을 하다가 마는가? 강 씨! 이제 상황이 아주 바뀐 거 같은데? 흐흐.”
진성의 아버지는 이 씨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눈치챘다. 약간 화가 났으나 참기로 하였다. 외식하러 가는 길에 화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