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48. 048화
그런 시스템의 배려 따위 싫었다. 그저 편안하게 쉬운 퀘스트 하면서 즐기면서 보내고 싶었기에……. 굳이 강하게 안 만들어 줘도 좋은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퀘스트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내 팔자야.”
어쩌다가 이런 악마 같은 시스템에게 선택돼서 이런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물론 보상을 많이 주고 자신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해 준 거는 고맙지만 이런 식으로 굴려지는 건 좀 거부감이 드는 진성이었다.
디펜스 퀘스트 내용을 듣자마자 진성은 기분이 급 다운되었다.
“오늘 기분도 안 좋으니 집에 일찍 갈란다…….”
세린이 다가와 기분이 좋지 않은 진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 일찍 들어가 볼게, 세린아. 오늘도 밭 맡기고 가서 항상 미안해.”
“괜찮아요, 아빠!”
언제나 세린이는 활발하였다. 그런 세린이를 보며 조금 안 좋았던 기분이 살짝 좋아진 진성은 세린이와 정령들에게 내일 보자고 말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어서 저녁밥을 얼른 챙겨 먹고 집에서 잠깐 쉬는데 6시 30분이 넘었을까? 갑자기 집 앞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초인종이 울렸다.
“어라? 이 시간에 누가 온 거지?”
친구인가? 아니면 가야리 마을 주민분인가? 아니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을 텐데.
인터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였다. 진성은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어? 엄마!”
“그래. 아들 잘 지내고 있어? 궁금해서 한번 들러 봤어.”
“아버지는요? 엄마 혼자 오신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같이 오지 않으신 듯 보였다.
“아버지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왔어.”
“아, 그렇구나……. 저야 뭐, 잘 지내고 있죠.”
엄마는 진성의 집에 들어와 진성에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아들 또 시켜 먹거나 그러지는 않지? 걱정돼서 반찬 좀 가져왔어.”
“반찬이요?!”
엄마에게 건네받은 물건을 확인해 보니 각종 반찬이었다. 그중 진성이 좋아하는 파김치도 보였다.
“엄마……. 이거 또 새벽에 고생해서 만드신 거죠? 몸 상해요 진짜…….”
“괜찮아, 아들 맨날 시켜 먹는 거 아닌가 해서 걱정돼서 오랜만에 힘 좀 써봤는데…….”
“잘 먹을게요. 엄마!”
“그래, 아들~”
역시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반찬들은 최고지! 그동안은 그냥저냥 살려고 먹는 느낌이 강했는데…….
진성은 엄마가 만들어 주신 반찬이 생겨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 아침밥은 정말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일을 하러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수확하고 나서 밭은 다 정리됐어요?”
“수확하고 나서 일부 썩은 것들은 조금 남았는데 며칠만 치우면 되니 걱정 안 해도 돼.”
“혹시나 일손 부족하거나 힘드시면 부르세요! 바로 달려가서 도와 드릴게요.”
“그래.”
진성은 한동안 엄마와 이것저것 얘기를 나눈 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2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아들.”
“네, 엄마. 조심히 가세요.”
현관문 앞까지 배웅해 드렸는데, 입구 오른쪽에 아버지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걸 보아하니 엄마는 아버지 차를 몰고 오신 듯했다.
아버지도 슬슬 차 좀 바꾸시지……. 대체 몇 년을 타고 다니시는 것인지……. 아무래도 내가 한 대 뽑아드려야겠어!
“추우니까 들어가, 아들~”
“아뇨, 엄마 가시는 거까지만 보려고요.”
진성은 마지막까지 엄마가 차를 타고 돌아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안심하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래도 아까보단 기분이 낫네…….”
엄마가 혼자서 오실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보통 아버지랑 같이 오는데…….
아버지는 진짜 바빠서 같이 안 온 걸까? 뭐, 아버지도 여러 가지 일을 하시니까 바쁠 수도 있지…….
“벌써 8시 넘었네……. 오늘도 헌터 커뮤나 둘러보다가 자야겠다.”
엄마가 돌아간 후 진성은 간단하게 씻고 집안을 가볍게 청소한 후에 방으로 들어왔다.
요즘 패턴이 일하고 집으로 와서 놀고 하다 보니 게을러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거실 및 화장실, 자기 방에만 들락거리고 다른 두 개의 방은 전혀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다른 방 두 개는 전혀 안 쓰고 있었네. 방 한 개는 손님방으로 내버려 두고. 다른 한 개는 LED 식물재배기들로 채워 버릴까?”
식물재배기가 생각난 진성은 노트북을 켜고 몇몇 사이트에 들어가 식물재배기 가격을 보았다.
“사이트별로 보니까 같은 이름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네.”
아무래도 헌터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식물재배기를 파는 업체들을 봐야겠다.
헌터 커뮤의 판매 게시판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식물재배기 파는 업체들이 몇 개 나왔다.
“현성기업이 식물재배기도 파네……. 시우네 회사 매출 올려주는 겸으로 현성 거로 사야겠다.”
현성기업은 잘 고장 나지 않게 세세하게 잘 만들다 보니 여러모로 믿음이 가는 곳이다. 거기에 AS도 엄청 잘해 주는 곳이라 현성기업의 물건을 주로 봤다.
“적당히 크지도 않고 취미용으로 기르는 크기로 구매하자.”
현성기업이 파는 식물재배기 중에서 가정용이 몇 개 눈에 보여 딱 세 대를 골라 주문했다. 배송은 총알 택배로 시켰는데 내일 저녁에 도착하려나 보다.
보통 같으면 2시간 만에 텔포 배달이 되는데 재고가 바닥이 났는지 구매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문자 내용은 ‘죄송합니다, 고객님. 재고가 없어 내일 저녁 안으로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정중한 문자가 왔던 것.
“뭐, 하루쯤이야…….”
게다가 현성은 늦게 도착한 만큼 서비스 같은 것도 팍팍 넣어주기 때문에 내일 디펜스 퀘스트가 저녁 이전에는 끝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오면 택배가 놓여 있을 것이다.
“일단 구매는 했으니, 잠깐 뉴스나 볼까?”
헌터 커뮤니티에는 많은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중 뉴스 채널에 들어가 실시간 뉴스를 둘러보았다.
그저 일산 어디에 불이 나고 또는 강원도 어디에서 몬스터 일부가 민가에 내려와 행패를 부리다가 헌터들에게 죽었다는 뉴스들이 즐비했다.
“오늘도 딱히 볼 만한 뉴스가 없잖아!”
괜히 봤네……. 그냥 잠이나 잘걸!
진성은 노트북을 끄고는 잠자리에 누워 폰으로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게임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일의 디펜스 퀘스트가 너무 걱정이 됐다.
“진짜 4차 디펜스……. 끔찍하다.”
하고 싶지 않은데……. 강제로 해야 한다는 운명이 참으로 야속하다. 어쩌랴……. 시스템에게 선택받은 운명인데.
“잠이나 자자.”
폰 게임을 끄고는 오전 6시 30분으로 알람을 맞춰 놓은 후에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디펜스 퀘스트가 계속 걸리고 있었다. 잠을 자야 하는데 너무 걱정이 많은 걸까?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진성은 ‘아, 모르겠다.’고 말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주말의 아침 즉 일요일이었다.
“하암……. 아, 너무 늦게 자서 그런지 몸이 그럭저럭이네.”
너무 많은 걱정이 되어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든 것 같았다.
오늘은 밭에 나가고 싶지 않는 날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중요한 강제 퀘스트가 있는 날이라 나가야만 한다.
“하아……. 씻고 가자.”
6시 30분이 넘어가자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였고 5분만 더 자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숨을 푹푹 내쉬며 화장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30분간 씻은 뒤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반찬과 함께 식사를 했다.
“반찬이 진짜 꿀맛이네. 역시 엄마의 손맛!!”
약간 기분이 좋아진 진성은 밭으로 가기 전에 단단히 마음을 잡았다. 어차피 거쳐 가야 할 퀘스트 더는 미룰 수 없다.
진성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으로 출발하였다.
밭으로 점점 가까워질수록 점점 기분이 좋지 않아졌지만……. 집과 밭이 워낙 가까워서 금방 도착해 버렸다. 밭에 도착해 보니 오전 7시 10분이 되어 있었다.
“이제 50분 후면 지옥 같은 전쟁이구나.”
진성이 밭에 도착하자 진성을 맞이한 건 자신의 넓은 2만 평의 밭과 세린이와 정령들 그리고 세계수 등 수많은 작물이었다.
세린이가 다가오자 진성이 물었다.
“세린아, 마음의 준비는 다 했니?”
“네! 아빠……. 아빠는 괜찮아요?”
“그냥 그럭저럭한 마음이야, 세린아.”
“이번 퀘스트도 열심히 잘 막아봐요. 아빠! 힘내세요.”
세린이는 환하게 웃으며 진성에게 같이 힘내자면서 진성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 밝은 세린이의 모습에 진성도 ‘나도 힘내자!’라면서 디펜스가 시작되기 전 밭을 꼼꼼히 점검했다.
“인벤에 있던 마력 총이랑 연발 새총 꺼내야겠다”
덤으로 화염방사기까지 꺼내서 장착까지 완료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심었던 함정 버섯과 정체불명의 씨앗은 어떻게 됐을까? 한번 확인해 볼까?
진성은 강화 유리 하우스 경계선까지 접근하였다. 가서 확인해 보니…….
“세린이가 준 씨앗의 정체가 이거였어?!”
겉보기에는 엄청나게 큰 대형 해바라기였다. 무려 성인의 키를 훌쩍 넘은 5m 높이의. 그런 대형 해바라기 옆에는 2m 높이의 대형 버섯이 자라나 있었다.
“정보창 열어 봐야지. 대체 이건??”
[이름:대형 해바라기
등급:레어
생각:내가 이곳의 수문장이다!
특징:각종 몬스터를 쫓아내는 밭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해바라기이다. 이 해바라기의 공격은 장관이다.]
[이름:함정 버섯
등급:레어
생각:몬스터들? 얼마든지 쳐들어와라! 이 위대한 버섯 님이 마비 가루를 듬뿍 뿌려 주마!
특징:포자 폭발 스킬로 자신의 내장된 마비 가루들을 공중으로 뿌려 적들을 마비시킨다. 최대 몬스터 1만 마리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
“이게 뭔……?”
함정 버섯은 공격을 어떻게 하는지 나와 있는데 해바라기는 안 나와 있네? 뭐, 디펜스 시작 때 뭔가를 보여 주겠지…….
“이제 시작하기까지 20분!!”
진성은 강화 유리 하우스 문들을 다 닫아 버렸고, 그 앞에 서서 자신의 무기들을 점검했다.
진성의 좌우에는 세린과 정령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세계수 주변의 황금 사과나무나 각종 작물도 공격에 대비하는 것처럼 가지들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저번처럼 몬스터들이 접근하면 진성의 각종 작물이 가지를 뻗어서 접근을 차단하거나 잡아서 던져 버릴 것이다.
“이제 10분! 얘들아, 다들 준비하렴.”
진성은 화염방사기 가스통을 한 번 더 점검하고 마력 총에 마력을 최대로 채워 넣고 연발 새총에 또한 마력을 채워 넣었다.
파리지옥들도 디펜스 퀘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더지 5만 마리……. 어떻게든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게 다 막아보자!!”
“아빠! 저희도 각오는 다 됐어요!”
“그래그래……. 최대한 막아보자, 세린아.”
“네, 아빠!”
시간이 흐를수록 진성은 긴장되기 시작해 손에 땀이 났다.
저번 디펜스는 그렇게 크게 긴장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물량전이라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5만 마리는 너무도 많았기에……. 아마 실제로 맞닥뜨리면 더 많지 않겠는가??
“이제 1분!”
마지막 1분이 남았다. 점차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1분이 지나고 진성의 눈앞에는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이 뜨떴다. 진정한 지옥 같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두더지 군단……. 와라!!”
감히 내가 간신히 일군 내 밭에 쳐들어온다고? 내 작물들을 모조리 먹으려고 오다니! 다 막아주마!
인간의 무서움을 뼛속까지 각인시켜 줘야겠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