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37. 037화
“피해!!”
형택은 바스락 소리를 낸 이유리 헌터에게 외쳤다.
멧돼지는 이미 바스락 소리를 낸 이유리 헌터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유리 헌터는 바짝 얼어 버렸다.
무지막지하게 큰 멧돼지가 흥분하게 무섭게 달려오고 있으니 멧돼지의 기운에 눌려 몸이 얼어붙은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지금 상황상 자신이 나서는 게 유리할 거 같아 진성은 석궁으로 정확히 조준해서 달려오는 멧돼지 미간에 명중시켰다.
인벤에 있는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한 삽 대신에 그냥 박치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있는 힘껏 멧돼지의 머리에 박치기를 했다.
빠각!
소리가 크게 나며 멧돼지가 꾸르륵 소리를 내며 쓰러져 버렸다.
반대편에 있던 헌터들이 재빠르게 다가와 죽었는지 살펴보았는데 한 방에 간 것이다.
“아니……. 박치기 한 방에?”
“박치기로 멧돼지를 한 방 컷?!”
“그런데 굳이 박치기로?”
다른 헌터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유리 헌터와 강하늘, 그리고 이형택 헌터도 대체, 저 사람 정체가 뭐지? 라는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진성 씨……. 일반 농부 헌터 아니시죠?”
형택은 넋 놓다가 정신을 차리고 진성에게 다가와 물었다.
진성은 ‘그냥 제가 다른 농부 헌터들에 비해 조금 힘이 셉니다.’ 하며 얼버무렸다. 그러고는 몸이 풀린 이유리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말을 건넸다.
바스락 소리를 낸 건 이유리 헌터가 잘못한 거지만, 아무 일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물론 진성이 세 발의 석궁 볼트를 멧돼지의 미간에 명중시켰다지만 박치기 한 방으로 멧돼지를 죽인 건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사냥꾼 헌터들은 진성이 결코 평범한 헌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성이 워낙 ‘평범합니다.’라고 얘기하니 캐묻지는 않기로 하였다.
“형택아~ 이거 멧돼지 인벤에 넣을 수 있겠냐?”
“아니……. 인벤칸이 부족한데?”
헌터들이 죽은 멧돼지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옮기긴 해야 하는데 그냥 평소처럼 고기로 만들어서 나눠야 하나…….
아무래도 저 멧돼지에 현상금도 걸려있다 보니 여러 가지로 문제였다.
멧돼지를 한 방에 죽인 건 저 농부 헌터 강진성 씨고…….
“진성 씨……. 혹시 저 멧돼지 가져가실 겁니까? 저희야 한 일도 없고 일단 우선권은 진성 씨에게 있습니다.”
“아……. 저는 그다지 필요 없어요. 다른 헌터분들과 상의해서 나누세요.”
“저거 현상금도 있는데요? 진성 씨?”
“저는 괜찮아요.”
진성이 계속 거절하자 ‘그럼 저희끼리 나누겠습니다.’ 하고 죽은 멧돼지 사진을 찍고는 어디론가 전화하는 형택이었다.
“네네, 멧돼지 죽였습니다.”
라며 누군가와 통화를 10여 분간 했다.
그리고 통화를 마치자 ‘자자, 몇 명만 남고 철수!’라는 말을 외치자, 처리 조 인원들만 남고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진성 씨, 오늘 일 감사합니다. 잘못하면 제 동료가 죽을 뻔했습니다,”
형택은 진심으로 진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진성은 ‘뭐,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죠!’ 하면서 괜찮다고 하였다. 바스락 소리를 낸 당사자인 이유리 헌터도 ‘죄송합니다.’라고 했고 진성은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아까 받은 석궁을 형택에게 돌려주면서 ‘저는 이만 갑니다.’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 * *
“오늘은 멧돼지 사냥 현장도 체험해 보고 그 세 명의 헌터들한테 좋은 이미지도 남겼으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다만 멧돼지를 한방 컷 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게 설마 문제가 될까? 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진성이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이 알게 모르게 소문을 내기 시작하였다. 굉장한 농부 헌터가 있다고 말이다. 다만 진성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이름은 얘기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진성은 그저 빨리 판매나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집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오후 3시밖에 안 됐네……. 아, 뭐하지?”
장터는 내일 오전 9시에 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할 게 없었다.
“헌터 커뮤나 보면서 시간이나 때워야겠다.”
방 안에서 노트북으로 헌터 커뮤 글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커뮤 자유 글에도 누가 랭크를 올렸다든가 아니면 농작물은 이렇게 기르는 거다. 등등 많은 글이 올라왔다.
“아……. 그냥 밭에 가서 비어 있는 1,000평 채울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벤을 뒤져보니 아직 심어보지 못한 많은 씨앗과 모종들이 남아 있었다.
“이걸 심어야 하나?”
강한 고민이 들었다. 뭐를 심어야 1,000평을 알차게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진성이었기에…….
“아니지……. 일단 중급 농부가 되고 보자. 어차피 밭도 늘려야 하는데.”
일단 전직부터가 시급했다.
중급 농부가 되면 시스템이 새로운 퀘스트도 줄 거 같고 신기한 작물들도 더 도전해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착실하게 전직 퀘스트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대강 일찍 자자. 오늘은 그다지 할 것도 없네.”
요즘 이것저것 한다고 밭에 오랫동안 못 있거나 아예 안 가는 날이 있기도 했고, 일찍 집에 오기도 하다 보니 세린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 상태였다.
이놈의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빨리 중급 농부로 전직한 다음에 세린이랑 있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어.”
속으로는 너무도 미안했던 것이다. 거기에 중급이 되면 현재 금이 가고 부서지기 직전인 장비들이 새로 지급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서두르려는 것이다.
“아직 저녁도 안 된 시간이지만 빨리 자자.”
저녁밥도 일찍 먹은 진성은 침대에 누워 오전 7시로 알람을 맞춘 후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일찍 잠드는 건 진짜 오랜만이라 뒤척거렸지만 내일을 생각하고 ‘빨리 자야지.’ 하면서 자기 세뇌를 걸어 피곤하게 만들었더니 결국 잠이 들었다.
* * *
일요일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진성이 기다리던 장터 판매 날이다. 햇살이 진성의 집과 정원을 비추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신나게 알람이 울렸다.
“끄응……. 일어나자.”
눈을 비비며 일어난 진성은 알람을 끄고는 화장실로 직행해서 볼일을 보고 씻고 아침을 먹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장터에서 팔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에 자리 잡고 한 번 팔아봐야지.”
장터 판매에서 최소 절반은 팔아보겠다는 각오를 한 진성이었다.
각 500평에서 수확한 터라 상추와 루콜라의 양이 엄청났다.
“어제 헌터 커뮤 보니까 시세가…….”
B등급 상추가 kg에 2.5만 원가량이었으니까 A등급 상추는 kg에 3만 원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A등급 루콜라는 kg에 평소 시세가 1.5만 원이니 2만 원에 팔면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현재 인벤에 있는 상추는 총 37,000kg, 루콜라는 약 35,000kg이었다.
“어오. 이거 다 팔아도 돈 엄청 벌겠다.”
가격을 최대한 싸게 해도 수익이 엄청날 듯했다.
“이건 최소 시세로 맞췄으니까……. 많이 팔리겠지?”
과연 절반이나 팔 수 있을까? 너무 많은데? 일단 가 보면 알겠지…….
“슬슬 가 볼까?”
현재 시각은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다. 가서 준비도 해야 되고 장터 직원에게 확인증도 보여줘야 하니 지금 출발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진성은 차를 타고 헌터 장터에 내비를 찍었는데 도착해 보니 진성도 잘 아는 곳이었다.
“아니, 여기가 직거래 장터였어?”
어쩐지 내비를 찍으면서도 ‘익숙한 길인데?’ 하고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 장소는 바로 임진리 마을 근처 문산체육공원이었다. 이곳이 바로 주민센터에서 지정해 준 일요일의 직거래 장터였다.
“여기가 이렇게 활용되고 있었구나…….”
임진리에서 살 때 운동하러 자주 오곤 했던 공원이다. 일요일마다 이렇게 활용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아무튼 차는 여기에 대면 되겠네.”
문산체육공원 옆에는 비포장 공터가 있었는데, 주차관리인이 있는 거 보니 여기가 임시 주차장인듯싶었다.
차를 대고 주차관리인한테 길을 물어봐서 체육공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일부 헌터들이 보였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두 명 있었다.
“저……. 여기가 헌터 장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장터 판매자이십니까? 확인증 부탁합니다.”
“아! 네네.”
진성이 확인증을 보여 주었고 직원이 지정된 구석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그리고 테이블과 돗자리를 꺼내 진성에게 주며 말했다.
“이건 끝나고 반납하시면 됩니다. 궁금한 점 있으시면 이따가 쉬실 때 저희한테 오시면 친절히 답변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다른 헌터들에게도 자리를 배정해 주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역시 구석이 좋지…….”
주변을 둘러보니 판매자로 나온 헌터들이 빈자리를 채우며 자신들의 물건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아…….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다.”
다른 헌터들이 물건들 진열하는 걸 멍하니 보다가 자신도 빨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인벤에서 루콜라 100kg 상추 100kg씩 먼저 꺼내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게 누가 봐도 품질이 좋아 보이는 루콜라와 상추였다.
현재 시각은 오전 8시 30분. 다들 웅성거리며 준비 중이었는데 진성의 판매장에 친형제 같진 않고 지인인 것 같은 두 명의 헌터가 다가왔다.
“형님~ 처음 보는 헌터 같습니다?”
“그러게……. 여기서 장사한 지 2년째인데 저 젊은 청년이 뭘 파는 거지? 흐음……. 루콜라와 상추군. 품질이 엄청 좋은데?”
“그러게 말이오. 형님……. 이 정도 품질은 처음 봤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헌터 두 명은 진성의 루콜라와 상추를 한동안 살펴봤다.
진성은 마침 다시 한번 시세를 검색해 보느라 등을 돌리고 있어서 그 둘을 못 보고 있었다.
“저 청년 대단하군……. 이런 작물들을 키워 내다니.”
굉장히 듬직한 체격에 상남자다운 얼굴을 한 떡대가 얘기하자 옆에 있던 작은 체구의 안경쟁이가 ‘맞습니다!’ 거리며 한동안 진성의 물건들을 살펴보다 돌아갔다.
그 둘은 헌터계에서도 유명한, 여러 가지 물품을 판매하는 만물상 같은 존재였는데……. 농사 쪽에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진성은 폰에 정신 팔려있다가 오전 9시쯤이 돼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어라? 누군가 왔다 갔나?”
라고 말하며 누군가 왔다 간 흔적이 있는 걸 이제야 발견하였다.
“뭐 직원이라도 왔다 갔나 보네……. 이제 9시니까 슬슬 구경하러 온 문산 주민 오겠네.”
이곳에 장터가 열린 지는 2~3년이 되었다. 그러니 장터가 열리는 시간이 9시인 것을 다들 알 것이다.
“와! 아빠 이거 사고 싶어요~”
아빠와 같이 온 꼬맹이가 장터 초입에 진열된 장인 헌터가 만든 인형을 보며 사고 싶다고 조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진열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경하며 구매했다. 진성이 자리 잡은 장터 구석까지 손님들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제 막 열린 터라 조금 더 기다리면 안쪽까지 들어올 것이기에 진성은 여유롭게 기다리기로 했다.
“내 A등급 상추와 루콜라를 맛보면 엄청 몰려들겠지?”
진성은 꽤 기대하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