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32. 032화
내일 아침 일찍 가려면 슬슬 자야겠다. 수확을 오전 내로 끝내고 오후에는 팔러 가는 건가?
솔직히 기대되는 진성이었다. 여태까지 경매장 또는 납품으로 판매해 버려서 직접 길거리에 나가거나 자리를 잡고 팔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진성에게 최초의 정령 나무가 전직 퀘스트로 준 것이다.
“내일 하루는 재밌게 보내자.”
진성은 내일 기대감이 가득 차 잠이 오지 않을 거 같았지만 의외로 빨리 잠에 빠졌다.
* * *
다음 날. 수요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오전 5시 30분경에 일어난 진성은 방에서 나와 깨끗하게 씻고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는 인벤에 있던 초급 농부 장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힘내자.”
장비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미 내구도가 간당거리는 터라 많이 금이 간 것이다.
“제발 조금만 버텨 줘.”
장비들을 너무 많이 혹사한 진성이었다.
진성은 모든 준비를 30분간 걸쳐서 마치고 차를 몰아 오래간만의 임진리 마을로 향했다.
뭐, 엄청 오랜만은 아니고. 몇 주 전에 한 번 방문했으니까…….
“여긴 언제와도 변함없네.”
임진리 마을 입구로 들어오면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여기 살면서 크게 변하지 않는 정겨운 동네였다.
외부인의 차량이 들어오자 마을을 돌아다니던 일부 주민들이 스윽 한 번 봤지만 이제 모두 진성의 차라는 것을 아는 터라 그냥 진성이가 오래간만에 또 왔구나~ 하고는 다들 신경을 안 썼다.
진성은 차를 몰아 집 근처 공터에 주차한 후 파란색 지붕이 있는, 이제는 부모님 댁이 되어버린 집 앞에 도착하였다.
“빨리 들어가야지. 기다리시겠다.”
집 안에서 나갈 준비를 마친 부모님과 마주쳤다.
“아들~ 왔니?”
“또 뭐하러 왔냐. 진성아.”
하여간 아버지는 또 저러신다니까. 정말 솔직하지 못하신 분이었다. 내심 좋으면서 저렇게 삐딱하게 말하시니까.
“뭐하러 왔긴요. 수확 도와 드리러 왔죠! 아, 온 김에 이것들도 드리려고요.”
진성은 주섬주섬 인벤에 잠들어 있던 성장 촉진제와 각종 신기한 열매들을 일부 꺼내 부모님께 건넸다.
“이게 뭐냐?”
“아, 제가 키워서 수확한 것들이에요.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일부 드리려고 빼 놨어요.”
“아들~ 딱히 안 줘도 되는데…….”
“괜찮아요! 엄마.”
엄마는 감동한 얼굴이셨다. 아버지는 무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단 네가 주는 선물이니 받아는 놓겠다.”
“네, 아버지.”
“여보, 슬슬 갑시다.”
“네~ 진성아, 따라오렴.”
“네, 엄마.”
진성은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향했다. 부모님 집에서 약 8분을 걸어 도달한 곳은 진짜 오랜만의 밭이었다.
과거 진성은 여기서 농사를 배우고 자신의 놀이터처럼 놀았던 곳인데. 여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땅을 가진 후에 오랜만에 오니까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도착해 보니 부모님의 밭 5,000평 중 약 2,000평에 심겨 있는 상추와 부추 등이 딱 수확 시기였다.
“아버지, 엄마. 얘네들만 수확하면 돼요?”
“그래.”
아버지의 무뚝뚝한 답변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리를 잡았고 진성도 또한 자리를 잡고 앉아 열심히 조심스럽게 수확을 시작하였다.
진성은 부모님께서 수확하는 걸 잘 보고 있다가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점 속도가 붙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작업하였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부모님은 놀라고 있었다. 점점 아들이 무서운 상위 농부 헌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부추하고 상추는 약하니까 이런 식으로 수확하는 거구나?”
진성은 자신의 밭에 있는 애들은 대부분 특별한 애들이라 그냥 대충 뽑아도 튼튼했는데 아무래도 부모님 밭에 있는 애들은 약한 애들이라 힘이 센 자신이 자기 밭에 있던 애들처럼 뽑아 버리면 조각조각 나서 상품의 가치가 떨어져 버릴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작업하고 있었다.
“여보~ 진성이가 이렇게 와도 도와주니 사실 좋죠?”
옆에 있던 남편에게 슬며시 말하자 남편은 크흠 거리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기 일이나 잘하지 왜……. 쓸데없이 와서 도와주는지. 에잉.”
“당신도 참.”
남편은 너무 솔직하지 못했다.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인데. 그런 아들이 기껏 도와주러 왔는데도 아직도 저러다니, 하여간…….
그런 남편이 귀여운 아내였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작업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작업하는 진성 덕분에 3시간 이상 걸릴 것을 40분도 안 돼서 끝나 버렸다.
“어라? 40분밖에 안 지났잖아?”
진성은 대략 1시간 이상 지난 줄 알았는데 40분 만에 끝내 버려서 ‘내가 너무 빨리 끝내 버렸나?’ 하고는 뻘쭘하게 서 있었다.
그런 진성에게 부모님이 다가와 말을 건네셨다.
“아들~ 고생했어! 덕분에 일찍 끝났구나.”
“아, 아뇨.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크흠.”
아버지는 헛기침만 해 대고 있었다.
“그럼 언제쯤 판매하러 나가요?”
“빨리 끝났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여보?”
엄마가 아빠에게 물어봤다. 남편인 찬성은 한 번 헛기침을 크게 하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뭐, 일찍 판매하러 가도 상관없을 듯한데…….”
“그럼 가시죠? 아버지.”
진성은 판매 현장을 빨리 경험해 보고 싶어서 아버지를 재촉했다.
“뭘 기대하는 건지 몰라도 판매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진성아.”
“네, 알고 있어요!”
‘이 녀석, 전혀 말귀를 안 들어먹고 있군.’이라는 눈빛으로 진성을 쳐다보는 아버지였다.
“여보? 그냥 일찍 가 봐요.”
“그래……. 그럽시다.”
수확한 부추들과 상추들을 인벤에 넣고 집으로 돌아와 상품의 가치가 있는 것들만 따로 분류하기 시작하였다.
분류 작업도 부모님께서 잘 알려 주신 덕분에 빨리 끝내 버렸다.
“이제 된 거죠?”
“그래…….”
최종적인 분류작업도 끝나고 진성의 차로 다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진성의 차를 처음 타 봤다.
“어때요? 승차감 좋죠?”
진성은 자신의 차를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 괜찮구나.”
“아들~ 좋은 차 샀구나?”
“네. 그럼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어디로 찍으면 돼요?”
진성은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불러 준 주소는 화정역 부근이었다.
“여기예요?”
“그래. 허가받고 자리를 잡은 곳이 여기다.”
“아하!”
화정역 부근에서 바로 판매할 수 있구나? 이런 정보는 처음 들어보네. 아무래도 판매도 허가를 받아야 하다 보니까 그런가 보다.
부모님 댁에서 출발한 진성의 차는 화정까지 안전하게 달렸다. 화정역까지는 30~50분 정도 걸렸다. 막힐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안 막힌 것이다.
“아버지, 여기예요?”
“그래, 여기서 저기 건물 보이지?”
“네.”
“역 뒤편에 광장이 있는데 거기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판매할 수 있다. 진성아.”
“아아, 그렇구나. 제가 이런 건 처음이라…….”
“이번 기회에 판매 경험도 쌓아 보는 것도 좋지.”
진성은 화정역 근처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부모님과 함께 역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상인들도 나와서 자리를 잡고 준비 중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픈이라서 그런지 준비가 아직 덜 끝난 상인들과 이제 우리처럼 막 와서 준비하는 상인들도 보였다.
“우리 자리는 어디예요?”
진성의 말에 아버지는 조용히 한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오이 파는 상인 옆이었다.
진성은 부모님과 함께 그 자리로 이동하였고, 오이 파는 상인과 부모님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강 씨~ 오랜만이구만.”
“오랜만입니다. 차 사장님.”
“그건 그렇고, 저 젊은 청년이 아들인가?”
“네네, 그렇습니다.”
오이 파는 나이가 지긋한 상인이 진성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던 것이다. 진성은 ‘아, 안녕하세요.’라고 꾸벅 인사를 하였다.
“그래그래! 강 씨~ 아들은 처음 보지만. 잘생겼네그래.”
“감사합니다.”
“강 씨~ 오늘도 같이 힘내자고?”
“차 사장님도 오늘 많이 파십시오.”
“고마우이.”
아버지는 오이 파는 상인분과 오래 알고 지냈는지 꽤 친해 보였다.
아버지와 엄마는 인벤에서 돗자리를 꺼내 자리에 깔으셨고 간이 의자도 꺼낸 상태였다. 그리고 돗자리 위에 수확하고 분류한 상추와 부추들을 잘 정리해서 놓고 있었다.
아직 오전 9시가 되기 20분 전이었다. 역 광장 쪽은 슬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그래도 아직은 사람들이 꽤 적었다.
아무래도 오늘 여기서 판매가 시작된 것을 들은 화정에 사는 일부 주민들이 나와 구경하거나 구매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 이건 이렇게 놔두면 돼요?”
진성은 직접 판매하는 것이 처음이니 궁금한 점을 물어 가면서 오전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판매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잠시 동안 기다렸는데, 정확히 9시가 되자 주변 상인들이 목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영업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모습 시장에서 많이 봤는데 실제로 해 보니까 이런 느낌이구나.”
진성은 큰 목소리로 ‘여기 싱싱한 상추하고 부추 팔아요~’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아직 오전 9시이고 역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적었지만, 웬 젊은 청년이 부모님과 같이 나와 판매하는 게 보이자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역 광장에서 오픈하기를 기다리면서 수다를 떨던 한 아줌마 무리가 다가와 ‘청년, 이거 얼마?’ 이러면서 진성에게 물어보았다. 진성은 아버지에게 슬쩍 가격을 물어보고는 그대로 대답하였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판매행위는 오후 6시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직접 판매행위를 하며 사람들을 상대하며 재미를 느낀 진성이었다.
약 3시간 동안 오전 판매를 한 후, 주변을 둘러보니 상추와 부추 등, 절반 이상이 나가 있었다. 뭐 부모님이 워낙 싸게 팔아서 몰려든 것도 있었다.
“휴우, 힘들다.”
직접 판매를 겪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런 직접 판매를 부모님이 몇 년을 하셨구나.’ 하면서도 ‘많이 힘드셨겠다.’ 하고 느끼는 진성이었다.
“아들~ 힘들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진성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것인지 시원한 탄산음료 한 캔을 진성에게 주었다.
“네……. 진짜 힘들긴 하네요.”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오후까지 힘내자. 아들~”
“네, 엄마.”
진성은 엄마와 얘기를 조금 나눈 뒤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아버지는 이 일이 워낙 익숙한지 땀도 전혀 안 흘리시고 오이 판매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 슬슬 점심 먹어야 하지 않아요?”
“배고프구나? 아들.”
“네……. 뭐.”
“그럴 줄 알고 아침 일찍 만들었어~”
엄마가 인벤에서 수제 샌드위치를 꺼냈다.
엄마의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지!
“샌드위치네요!”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베이컨 토마토 샌드위치로 만들어 봤단다.”
“오! 역시 엄마 최고!”
진성은 정말 오래간만에 먹는 엄마의 손수 샌드위치에 감동이 찾아왔다. 한 입을 베어 물었는데 꿀맛이었다.
“크으……. 역시 이 맛이야!”
“천천히 먹으렴~”
“네, 엄마.”
아까 엄마가 주신 탄산음료 한 캔으로 목을 축이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엄마는 샌드위치를 몇 개 가지고 오이 파는 사장님과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오이 파는 사장님은 고맙다며 엄마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드시고 있었다. 부모님과 그분도 대화를 나누며 쉬었다.
“은근히 재밌긴 하네. 직접 판매도…….”
나중에 자신의 밭에 있는 작물들도 직접 팔러 나가 봐야겠다며 미래의 그 날을 상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