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23. 023화
진성은 아침 또는 점심에 나타나는 그 몬스터 고라니가 안 나타나자 조금은 걱정이 들었다. ‘항상 나타나서 나한테 침 뱉고 가는 녀석인데, 오늘은 안 보이네.’라는 생각이었다.
“설마 다른 헌터한테 사냥당한 건가.”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올렸지만, 그 범상치 않은 고라니 떼의 우두머리인 그 녀석이 쉽게 당할 리가 없다며,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아니면 그냥 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
라는 말을 하며 진성은 세계수 나무의 그늘에서 쉬고 있었는데, 아주 멀리서 몬스터 고라니가 보였다.
“어째 내가 말이 끝나는 타이밍에 오네.”
그 몬스터 고라니는 진성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진성은 오늘 고라니를 혼을 내주려고 단단히 준비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블루베리 등을 챙겨서 가만히 있는 고라니 코앞에 두었다.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려고 말이다.
아주 똑같은 패턴으로 고라니는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썩은 표정을 짓다가 진성에게 침을 퉤엣 찰지게 뱉었다.
하지만 진성은 피했다.
“크크크. 내가 당할 줄 알고?”
고라니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더 퉤엣 뱉었다. 진성은 또 한 번 피했다.
“어디 뱉어 봐라! 다 피해 주마!”
진성은 자신만만하게 몬스터 고라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고라니가 갑자기 두 발로 서자 진성은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고라니가 두 발로 걸어와 진성의 얼굴에 퉤엣 뱉고는 도주하였다.
이번엔 당황해서 피하지 못했다. 얼굴이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
“야! 이 망할 고라니야! 그만 좀 해!”
진성은 화가 끝까지 나서 도망치고 있는 고라니를 조준해서 낫을 던졌다.
하지만 명중률이 극히 낮아서 맞지 않은 고라니는 멀리서 씩 웃으면서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었고, 진성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진성은 더욱 씩씩거렸지만 어쩌랴, 너무 빨리 도망치는 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대체 무슨 불만이 있어서 뱉고 가는 거냐!”
블루베리 정도면 저 녀석한테 귀한 식량일 텐데. 대체 뭐가 문제야!!
“내가 다시는 주나 봐라!”
화가 난 진성에게 다가온 세린이 버프를 걸어 진성의 얼굴을 말끔하게 해 주었다.
“아빠! 괜찮아요?”
“그래, 괜찮단다…….”
아직도 고라니에 분이 안 풀린 진성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세린이 앞이라 성질을 죽이는 것이다.
두고 보자! 고라니 녀석!!
고라니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진성은 정령 나무에서 어떤 정령이 나올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잠시 쉬던 진성은 오늘은 일찍 가야겠다며, 세린이와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물어볼 것도 있는 터라 집에 일찍 온 것이다.
“일단 시우에게 연락해 보자! 납품한 물건들이 얼마나 팔렸는지도 궁금하니까.”
진성이 내가 납품한 것들은 어떻게 됐냐? 라는 내용으로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어……. 여보세요.”
-그래, 진성아~ 진척 상황이 궁금하다고?
“뭐……. 그렇지.”
-그거 3일 만에 다 팔렸다.
“진짜?”
-어, 아주 대성공이야! 물건이 없어, 이제.
“오! 그런데 내가 미리 얘기했지만, 그 물건들이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터라…….”
-알고 있어~ 다음 달에 나오는 거로 생각하면 되지?
“어.”
아니, 3일 만에 매진이라니 엄청난 거였네.
“얼마나 나온 거냐?”
-놀라지 마라, 진성아! 네가 가격 높게 측정하지 말래서 너무 비싸게 팔진 않았는데…….
시우가 말을 꺼냈다.
진성이는 당뇨 열매와 수면 열매를 싸게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비싸게 팔리면 자신도 이익을 보겠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하는 사람도 있기에 그렇게 요청한 것이다. 시우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었다.
대신에 포션은 헌터들에게나 재벌들에게 비싸게 팔았고 말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뇨 열매는 개당 100만 원으로 책정하고 시우네 회사 경매장에 내놨다는데, 최종적으로 개당 500만 원에 팔린 것이다. 수면 열매도 100만 원으로 부탁했지만 500만 원으로 팔려 나갔다.
그럼 둘이 합쳐도 10억이고, 포션은 하급이었기에 한 개에 3천만 원에 팔렸다고 했다.
그럼 최종적인 가격은 10억+30억인 40억이었다. 시우네가 거기서 4억을 가져가고 진성이 받게 되는 돈은 36억이었다.
“그래서 내가 받게 될 돈이 36억이라고?”
-뭐 그렇지……. 경매장보다는 좀 더 높은 가격에 팔리긴 했어.
“오호~ 아무튼 다음 달에 연락할게. 그때 또 납품하려고.”
-일단 시작은 그렇긴 한데~ 지금 다 팔린 터라 사방에서 문의가 들어 온다. 더 없냐고 말이다.
“그, 그래.”
-엄청 화제가 되고 있어서, 진성아……. 너의 소재지는 되도록 내가 막아 볼게.
“그래.”
아무래도 진성은 이 일로 엄청 골치 아파질 거 같았다. 자꾸 자신이 내놓은 물건마다 화제가 돼서 뉴스 나올 정도이니, 분명 자신의 뒤를 캐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진짜 조심해야겠네.”
-아무튼, 진성아. 다음 달에 연락 줘라.
“그래, 수고해.”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오우야……. 진짜 이래서 익명이 중요하구나.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관리해야겠다.
“이제 성현이한테 전화해 볼까.”
저 36억은 내일 입금될 거라고 하니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계좌에 돈이 많아 걱정이 덜 되기는 한데 그래도 악착같이 모아야겠다.
진성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성현이에게 문자를 보냈고, 역시나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어~ 성현아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그, 내가 키우는 작물 중에 이번에 성장 나무 열매가 생겼는데.”
진성이 대충 설명을 하자 성현이는 ‘그거 대박인데?’라며 ‘만나서 사업 얘기 좀 하자, 친구.’ 거렸다.
“그럼 지금 올래? 아직 시간도 오후 3신데.”
-그러지, 뭐. 야, 10분 안에 간다.
저 녀석, 텔포 이용해서 오려나 보군. 저거 이용가격도 비쌀 텐데.
보통 텔포 이용가격이 편도가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못해도 20만 원은 줘야 됐다.
뭐, 서울에서 부산 거리면 아마 30만 원 이상이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이제 10분 후에 온단 말이지? 상현이가 어떤 사업 얘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꽤 돈벌이가 되겠네.
조금은 기대하는 진성이었다.
아홉 그루에서 나온 450개를 아이템화 시키면 아마 275개쯤 나오지 않을까?
진성이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정원에 설치한 텔포에서 성현이가 성큼성큼 나왔다.
“여어~ 나왔다.”
성현이 목소리가 들리자 진성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성현이가 들어와서 다짜고짜,
“야! 그 물건 보여줘 봐.”
라며 진성을 압박하였다. 진성은 ‘아, 알았어.’ 하면서 조금 움찔하였다.
인벤에서 성장 열매 한 개를 꺼내 성현에게 보여주자 친구의 눈빛이 싹 바뀌더니 뭔가 연구에 빛을 내는 학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성현은 성장 열매를 손에 쥐고 만져보기도 하고, 정보창을 열어 보기도 했다.
[이름:성장 열매 Lv.1
등급:유니크
특징:먹을 수 없지만 아이템화하여 인간과 동물 외 생명체에게 쓴다면 성장 시간을 빠르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라는 정보창을 보고 있었다.
이거 대단한데? 이런 물건이 친구 진성에게 있다니 혁명이다! 이런 물건은 경매장에도 없다.
이건 진짜 많은 사람이 살 것이다. 성현은 진성에게 바로 말했다.
“이거 아이템화하면 아마 한 개 만드는데, 성장 열매 두 개 정도 들어갈 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냐?”
“뭐,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만들 수 있냐?”
“당연하지! 이 친구를 뭐로 보는 거냐! 비록 내가 정령사지만 친한 연금술사 헌터들 많이 알고 있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럼 어떤 식으로 사업하자는 건데?”
“네가 재료를 나한테 계속 납품하면 내가 이걸 상품화시켜서 재벌들이나 돈 많은 헌터들한테 소개해가면서 팔 거야! 물론 입소문도 낼 거고, 그리고…….”
“그리고?”
“너의 개인 정보는 꼭 지켜주마! 거기에 대충 275개쯤 만들 수 있을 텐데, 너도 필요할지 모르니까 25개는 가지고 있어. 그건 서비스야.”
“뭐 아이템화해서 쓴다면야 나도 편하니까.”
“너 8, 나 2로 하는 게 어떠냐?”
“괜찮네……. 가격은.”
“아마 이런 건 최초라서 최소 개당 4~5억쯤 아닐까?”
“그렇게나 많이 준다고?”
“어……. 그 정도가 최소야! 진성아, 니가 잘 모르나 본데……. 이건 혁명이라고!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지는 몰라도 작물의 성장이 보통 예를 들어 7일 걸린다고 쳐! 근데 이 아이템을 써서 하루라도 단축할 수가 있다면 그건 엄청나거든.”
“뭐, 그건 잘 알겠어.”
“그러니까 최소가 4~5억이라는 얘기야! 아이템화하면 아마 자세한 정보가 나올 거거든? 내가 아는 연금술사 헌터분이 A급 랭크라서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을 거다.”
성현이가 침을 튀겨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진성은 ‘아, 그렇구나.’ 하고 있었다.
개당 최소 4~5억이라니……. 일단 아이템화해 봐야 안다고 하니까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래서 성현아, 얼마나 걸릴까? 만드는데?”
“일단 나도 그분한테 물어봐야겠지만, 그분 속도라면 아마 전부 아이템화 시키면 약 7일이면 될 것 같은데?”
“7일? 엄청 빠르시네.”
“그래, 보통 한 달 걸리니까…….”
“아무튼 알겠어! 아, 그리고 이거 열매가 한 달에 한 번 나오거든? 그건 알고 있어라.”
“오키! 알겠다. 진성아.”
그렇게 성현이는 450개의 열매를 건네받고 바로 텔포를 이용해 돌아갔다.
뭔가 요즘 엄청 잘 풀리는 느낌이 들어 진성은 마음이 편했다.
시스템이 그놈의 디펜스 퀘스트만 안 주고 편한 퀘스트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진성이었다.
“진짜 편히 살고 싶다……. 디펜스는 에바야 진짜.”
진성은 속으로 시스템을 욕하면서도 시스템이 주는 달콤한 보상을 얻기 위해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디펜스가 제일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내일은 아직 안 쓰는 부지들에 있는 잡초들이나 제거해야겠다.”
그동안 진성이 작물들에 신경을 쓰느라 아직 비어 있는 땅 쪽에 있는 잡초들을 신경 못 썼더니, 또 잡초가 자라나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잡초군단의 뿌리를 뽑을 때가 또 왔네.”
‘스트레스 푸는 건 역시 뽑기 놀이지.’라고 말하며 진성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집에 일찍 들어와서 친구 두 녀석과 대화 후에도 아직 시간이 남았던 터라 오랜만에 부모님께 안부 인사나 드릴 겸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준비를 했다.
“아직 4시도 조금 넘었으니까……. 가야지.”
혹시 모르니까 부모님께 문자로 ‘한 번 들릅니다~’라고 보내니까 아버지한테 바로 문자로 ‘오지 마라. 징그러운 것아!’라며 답장이 왔다.
진성은 신경 쓰지 않고 부모님 댁으로 출발하였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차에 시동을 걸고 탑승하여 집까지 달렸다.
대략 17~20분 거리라 금방 도착했다.
임진리 마을로 진성의 차가 들어섰고 마을 주민은 새로 보는 차량에 대해 ‘외부인인가?’라며 잠시 쳐다보았는데 내리는 사람이 진성이자 다들 경계를 풀고 할 일이나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