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16. 016화
“웩, 더러워.”
고라니의 침이 진성의 뺨에 흘러내렸다. 다행히 잠에서 깬 세린이가 활성화 버프를 걸어줘서 원 상태로 복구되었지만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씩씩거리는 아빠를 본 세린이 한마디 하였다.
“아빠! 힘내세요.”
세린은 진성의 등을 토닥거렸다.
“오오, 역시 세린이 밖에 없다. 흑흑.”
시스템이 날 거들떠보지 않으니 역시 사랑스러운 세린이가 이 아빠를 위로해 주는구나! 나쁜 시스템!
한참 그렇게 속으로 시스템을 욕하던 진성은 대략적인 수확 시기를 가늠해 보았다.
지금 이 상태에서 성장 속도 조절해서 파팟 하면 내일 수확도 가능할듯싶었다.
“어떻게 할까? 바로 조절해 버려? 아니면 정상적으로 키워 봐?”
정상적으로 키우면 아마 한두 달은 더 걸릴 터. 내심 고민이 되는 진성이었다.
확실히 성장 속도 조절이 있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가능하기는 한데 이게 욕심이 생겨 버리네.
“아니지……. 정상적으로 키우자 이건.”
계속된 고민 끝에 진성은 힘들게 한두 달 길러보자, 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이다음에 심을 작물들이나 10배 빠르게 적용시켜야겠다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경매장 가기 귀찮은데.”
품질 좋은 수박 씨앗이나 모종을 사려면 경매장에 가는 게 좋지만,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진성에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어차피 실험이니, 가야리 마을 내에 수박 파는 농부 헌터도 있을 것이고 없으면 뭐, 총알 택배로 주문하면 될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맞아! 굳이 경매장에 있는 최상급 품질 말고도 일반으로도 키워서 연구해 보는 게 진정한 농부지.”
진성은 당분간 경매장에 가지 않기로 하였다.
오늘은 마을에 가서 수박 말고도 각종 씨앗을 구해 올 작정으로 가야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야리 마을 인구는 약 300~500명 사이. 전체 인구는 그렇지만 아마 실질적 거주자는 200명 미만일 것이다.
가야리 마을이 워낙 작아서 그런지 자신 같은 농부 헌터도 몇 없었다.
다행히 진성이 원하던 수박이나, 허브, 고추를 기르는 헌터가 몇 있어서 진성은 일부 모종과 씨앗을 시셋값으로 구매하였다.
그렇게 구한 여러 가지 씨앗 종류만 20여 가지였다.
“다행이네. 수박이나 포도 기르는 분이 있어서.”
적당히 구매하고 다시 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닐하우스 A동에 들어가서 수박을 심으려고 폰에서 초보자의 수박 심기라는 정보를 검색해서 그대로 따라서 심기 시작했다.
그렇게 A동은 수박, B동은 고추, C동은 허브 여러 가지, D동과 E동은 일단 놔 두었다.
“진짜 작물 한 가지씩 다 길러보려면 15,000평으로는 부족하겠지.”
돈을 왕창 벌어서 이 주변 부지도 자신이 다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진성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아버지가 그런 말 한 적이 있지?”
아주 예전에 체험농장도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비닐하우스 D하고 E동은 체험농장 식으로 해서 딸기나 이런 걸 키워볼까?”
작물 심는 것과 수확하는 것도 영상을 만들어서 너튜브에 올릴까 하는 진성이었다.
“그래. 어차피 독립은 이미 했고,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 봐야지.”
체험농장 운영법 같은 것들을 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을 해 보니까 엄청 쉬운 게 아니었다. 신청해야 할 것도 많고 시간과 돈이 꽤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C랭크 농부 헌터부터 가능하였다.
“아……. 나중에 해야겠는데? 혼자서 뭔가를 해 보려고 하니까 도저히 모르겠네.”
잠깐 체험농장에 대해서 생각하던 진성은 해야 할 것이 많다는 글들이 꽤 보이자 바로 기운이 쏙 빠져버렸다. 아무래도 이건 아버지나 시우에게 상담해야 될 듯싶었다.
“그냥 수확만 하고 납품만 해야 되나? 어휴.”
풀이 죽은 진성에게 시스템은 퀘스트를 내려 주었다.
-D급 퀘스트:산에서 내려오는 몬스터 멧돼지를 퇴치하세요!
(보상:랜덤 씨앗×1 3종류 지급)
“세 종류씩이나?! 내가 기분이 별로니까 이런 거 주는 거지?”
아니, 이 시스템은 내 기분을 생각해서 이렇게 주는 건가? 역시 츤츤 시스템이었어!!
저 세 종류가 궁금하다.
“이번엔 군단급은 아니지? 보니까 한 마리 같은데.”
-가야리 야산 근처에 사는 흉포한 멧돼지입니다. 개체 수는 한 마리입니다.
“오! 이번엔 개체 수까지 알려주는 거야? 역시 너, 친절하구나.”
-농부 헌터 강진성의 말을 차단하였습니다.
“역시 츤츤이었구나.”
멧돼지는 언제 오려나? 지금 퀘스트 준 거로 봐선 지금 내려온다는 얘기인가?
진성은 삽을 들고 주변을 경계하였다.
경계한 지 약 10분도 되었나? 진성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산 쪽에서 멧돼지의 비명이 들렸다. 아니, 마치 사람이 정상에 올라가서 ‘야호~’ 하는 것 같은 포효의 소리였다.
“드디어 나타났나 보네.”
진성은 삽을 꽉 쥔 채 그 녀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포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진성은 긴장하였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멧돼지는 어마 무시하게 컸다.
“야……. 시스템……. 저거 멧돼지 맞아?”
진성은 당황했다.
일반 멧돼지의 크기보다 엄청 크잖아? 아니, 저 정도 크기면 하마 급인데? 저기요……? 시스템! 이건 아니잖아!
붉은색 눈동자를 하고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 집채만 한 멧돼지가 진성과 대치 중이었다.
진성은 조금 오금이 저렸으나 저놈만 퇴치하면 새로운 랜덤 씨앗을 받을 수 있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일, 일단 정보창을 열어 보자.”
진성은 바로 앞에 보이는 흉포한 멧돼지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몬스터 강화 멧돼지 Lv.15
생각:…….
특징:가야리에서 오래 살던 멧돼지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몬스터가 되었다.]
“저기요? 시스템님……. 저 녀석 렙 15라고요.”
진성은 당황해서 시스템을 불러 보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퀘스트 실패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지?”
어떻게 하지, 난 렙 13인데. 나랑 2렙이나 차이가 나네. 거기에 엄청 강할 것 같이 생겼는데? 싸워야 하나?
진성과 멧돼지는 벌써 대치한 지 15분이 넘어갔다. 그런 진성이 답답했는지 시스템이 한 번 더 퀘스트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을 걸어 버린 것.
-D급 퀘스트:산에서 내려오는 몬스터 멧돼지를 퇴치하세요!
(보상:랜덤 씨앗×1 3종류 지급)
남은 시간:30분
퀘스트 실패 시 페널티 레벨 3 하락.
“아. 너무하네! 진짜! 저걸 어떻게 이겨? 딱 봐도 강해 보이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28분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싸워보고 안 되면 포기를 하든가 해야지!
진성은 바로 달려들어서 멧돼지가 반응 못 하게 삽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그런데 웬걸. 멧돼지가 한 방 맞고 쓰러졌다?
“응? 멧돼지가 이렇게 약했었나?”
멧돼지는 한 방에 뻗어버렸다.
진성은 삽에 온 힘을 다해서 있는 힘껏 후려친 거밖에 없는데 제대로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진성이 얼떨결에 멧돼지 급소를 맞춘 것인지. 참 이상했다.
진성은 너무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힘이 100을 넘어가는데 그걸 난 ‘일반인보다 조금 강할 거야.’라는 식으로 움츠리고 다닌 것이다.
진성이 자신의 힘에 놀라고 멧돼지가 한 방에 쓰러진 걸 놀라고 있을 때 시스템은 퀘스트를 완료하였다는 알림을 보냈다.
-D급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을 수령하세요.)
진성은 보상을 받긴 받았지만 아직도 얼떨떨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이 멧돼지에게 현상금도 걸려있다는 걸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이 멧돼지의 나이는 무려 열 살이 넘었고 가야리 또는 문산 근처 농가들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현상금은 3천만 원이었다.
일부 헌터들도 이 멧돼지를 잡으려다 다친 터라 이미 현상수배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놈을 내가 한 방에 잡았다고?”
말도 안 돼. 이거 꿈인가?
진성은 자신의 볼을 한 대 쳤지만 볼만 아플 뿐 현실이었다.
“이, 일단 해결됐으니……. 인벤에 넣자.”
10년간 문산과 파주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그 멧돼지는 진성이 휘두른 삽 한 방에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멧돼지 사냥꾼들은 열심히 이 녀석을 추적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진실을 알게 되면 그들도 허탈하지 않을까?
“일단 랜덤 씨앗 세 종류도 심자.”
진성은 보상받은 씨앗 세 개를 꺼내서 파워 주렁주렁 열매 나무 근처에 나란히 심었다.
“이거 정체가 뭘까? 이번엔 당뇨 치료제나 불면증 치료제 나오는 거 아닌가?”
내심 그런 종류가 나오길 바라는 진성이었다.
안 되겠다.
궁금증이 가득한 진성에게는 인내심이 그다지 없어서 바로 성장 속도를 조절해서 또 10분 만에 키워 버렸다. 그러곤 원래대로 속도를 돌렸다.
모양이 다른 세 개 나무의 정보창들을 열어 보는 진성이었다.
“자, 개봉박두.”
[이름:수면 열매 나무 Lv.1
등급:하급
생각:불면증으로 고생하고 계신다고요? 이 열매 한 개를 먹으면 매일매일 잠이 잘 옵니다.
특징:효과 30일 지속(잠이 잘 옵니다.)]
[이름:당뇨 열매 나무 Lv.1
등급:하급
생각:이 열매 한 개면 1~2기 당뇨는 제압됩니다!
특징:당뇨 말기가 아닌 이상 웬만한 초기, 중기 당뇨를 치료해 줍니다.]
[이름:포션 생산 나무 Lv.1
등급:하급
생각:…….
특징:1초당 체력 20 상승.]
“허……. 헐……. 이제는 포션 생산 나무까지?”
아니, 불면증 치료 열매에 당뇨 치료 열매. 거기에 체력 회복하는 포션 생산 나무까지? 나 복이 넘치네……. 그리고 랜덤 씨앗인데 다 좋은 것만 나온다고? 나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이러다가 온갖 종류 치료하는 열매 나무는 다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 나야 좋지! 저 나무들도 한그루 당 열매가 100개씩이네? 떼돈 벌겠구나, 나……. 대신 그만큼 엄청 나가겠지.
밭을 확장하려고 주변 땅까지 다 사 버리고 관리기라든지 이것저것 다 사버리면 엄청 빨리 돈을 쓸지도 모른다.
날 완전한 농부로 만들 셈이구나? 이렇게 농사만 시키게 하고 던전이나 몬스터 사냥은 못 가게 하려고? 진짜 너무하네……. 평생 농부 체질이라니!! 이렇게 좋은 것들만 주면 벗어날 수가 없잖아, 젠장!
행복한 고민에 빠진 진성이었다.
“이것들도 열매를 수확해야지.”
진성은 혼자서 묵묵히 열매를 수확하고는 인벤에 죄다 넣어 버렸다.
이거 또 경매장 가야 되나?
이제는 경매장 가는 것조차 슬슬 귀찮아졌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고 하지만 너무 들락거리는 거 같은데…….
아! 차라리 시우에게 이걸 계약하자고 해 보자!
진성은 바로 시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신이 몇 개 수확한 열매들을 가지고 있는데 납품이 어떻게 안 되겠느냐는 식으로 보내보았다.
아직 답장이 안 오는 걸로 봐선 바쁜가 보네.
“일단 오늘은 이것까지만 하자.”
‘세린이는 오늘도 일찍 잠들었네. 뭐지, 성장하기 전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아이가 잠이 많나?’라는 생각하면서 세린이가 자는 걸 흐뭇하게 잠깐 보고는 집으로 향했다.
진성은 집에 도착해서 씻고 잠시 뉴스나 검색이나 해 볼까 해서 노트북을 켜고 기사들을 검색하는데 실검 1위부터 8위까지 웬 탈모 치료제가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