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마지막 발악
『……그래서 스트리밍 사이트 ‘엘도라도’의 오픈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미 경쟁이 심화된 OTT 플랫폼 업계이지만, 그만큼 시청자들이 즐길 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
엘도라도에서는 그동안 해외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모은 각 나라의 작품들이 함께 오픈되었고, 대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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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라도의 한국적 콘텐츠 개발도 공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강대한 PD의 아이윌과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이스케이프’가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드라마 전문 제작사 ‘와이번스튜디오’와도 현재 작품 투자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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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라도라는 거대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한국 관련 업계는 벌써부터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이 효과가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엘도라도의 오픈은 시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금요일 오픈, 그리고 한 달 동안 이어지는 프로모션.
사전 결제 프로모션과 합쳐서 가입자수는 한 달 사이 놀라울 정도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그래프가 크게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OTT 플랫폼 ‘엘도라도’ 프로모션 확대』
『듀플릭스의 아성을 위협하다?! 엘도라도, 업계 2위로 올라서다』
『세계 2위 엘도라도, 한국에서도 통했다!』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엘도라도는 완전히 한국 OTT 업계의 2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동안 굳어 있던 업계에, 시청자들이 얼마나 새로운 물결을 바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엘도라도 내에서는 축제가 벌어졌고, 본사 쪽에서도 한국지사 쪽으로 축하와 보너스를 내렸다.
엘도라도 관련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동안, 흙빛인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NBS.
특히 전략기획실이었다.
곽성찬 본부장은 추경락 기자 등 연이 닿은 기자들을 움직여 엘도라도를 견제하는 기사를 꾸준히 뿌렸다.
『국산 스트리밍 사이트 ‘캐스트플러스’ 오픈!』
『캐스트플러스만이 가진 장점! 전격 분석!』
『여기서만 볼 수 있다! 캐스트플러스 콘텐츠 10선 소개!』
캐스트플러스는 엘도라도에 비해 10일 정도 늦게 오픈했다.
엘도라도보다 빨리 오픈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엘도라도가 1년 넘게 준비한 것과 달리 캐스트플러스는 약 반년 만에 사이트 개발과 콘텐츠 공급을 이루어내려 했기에, 되레 내부 문제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이고, 외부로는 탄탄한 오픈을 위해서 연기했다는 것이 공식 이유였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분명 존재했다.
“……이상입니다.”
표인배 실장의 보고를 들으며, 곽성찬은 어두운 얼굴빛을 제대로 되돌리지 못했다.
“3위도 못 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오픈하고 약 2주.
엘도라도와 비슷하게 사전 결제 기간도 가지고, 프로모션도 비슷한 수준으로 파격적인 조건을 걸었지만, 지난 2주 동안 가입자수는 엘도라도의 절반 수준이었다.
아니, 그것도 못 미쳤다.
“돌겠군.”
곽성찬이 NBS에 온 이후 처음으로 언급하는 단어였다.
곽성찬을 오래 모셔온 표인배는 그가 그런 말을 입에 잘 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부정적인 태도를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다.
신임하는 표인배 앞이라고 해도.
“그리고…….”
“그리고?”
“신 이사님께서 바로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하셨다고, 비서실에서…….”
“젠장. 망할 늙은이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뒤 스스로도 놀랐는지 잠시 한숨을 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인배가 올린 보고서를 그대로 들고, 그가 방을 나갔다.
신호현 이사실로 가자 비서가 알아서 문을 열어주었다.
신호현은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고,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왔나. 가지.”
“예?”
“내가 부른 게 아냐. 사장실 호출이야.”
고덕재 사장이었다.
곽성찬도 물론 고덕재와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신호현과 불려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NBS에서 고덕재 사장의 권한은 꽤 막강하다.
이사진과, 각 분야 이사의 운영으로 방송국이 움직이긴 하지만, 방심위 등의 라인을 타고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닌 고덕재는 그 발언력만으로도 이사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지금까지는 신호현이 워낙 두텁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서 곽성찬도 그 수혜를 입을 수 있었지만, 이번만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굳은 얼굴의 두 사람이 고덕재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게.”
몇 번 들러보지 않은 고덕재 사장실.
방송사 사장실답지 않은, 원목 탁자와 고급 소파 이외에는 이렇다 할 장식품조차 없는 이곳을 대신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NBS의 주요 프로그램들 포스터였다.
곽성찬은 이전에도 그것들을 보고, 방송사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일이었는데, 오늘은 어쩐지 그 광경에 압도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앉지.”
짧게 말한 고덕재가 상석 소파에 앉았다.
신호현과 곽성찬은 양쪽 자리에 앉았다.
“어제 늦게 들어가셨습니까. 피곤해 보이시는데.”
“그래? 딱히 늦게 들어가진 않았는데.”
“제가 저번에 보내 드린 한약, 그거 잘 챙겨 드시면 보양이 잘 되실 겁니다.”
“안 그래도 잘 먹고 있네. 덕분에 혈압도 좀 떨어졌고 효과가 좋더군.”
“효과가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신호현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익숙한 듯 웃으며 고덕재와 대화를 나누었다.
곽성찬은 그것을 살피다가 살짝 대화가 잦아들 때 끼어들었다.
“이전 신 이사님께서 보내주셔서 저도 먹고 있습니다. 정말 효과가 좋더라고요.”
“그렇지. 신 이사가 그런 걸 잘 알아.”
“허허, 과찬이십니다. 저도 뭐 좀 연이 있는 한의사 덕을 보는 거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곽성찬은 긴장했던 것이 오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하지만, 돌연 고덕재의 말투가 바뀌었다.
“그런 약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텐데.”
곽성찬의 여유로워 보이던 얼굴도 살짝 금이 갔다.
신호현이 곽성찬을 슬쩍 살폈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캐스트플러스 말이십니까? 아니 뭐, 이사진 보고 드렸다시피 나쁜 상황은 결코 아닙니다. 가입자수도 충분히 잘 올라가고 있고, 사이트 내부 결제도 물을 타기 시작했고요.”
“맞습니다. 현재 가입자수는 계속 증가 추세에 있고, 콘텐츠 투입이 계획대로 속도를 올리면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정액 결제 방식의 OTT 플랫폼은 결국 가입자수 싸움.
처음부터 그에 대한 대비는 많이 세워둔 곽성찬이었다.
이미 OTT 플랫폼을 운영해 본 경험도 있어서, 당장의 성과가 낮다고 한들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 상황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고덕재의 물음에 곽성찬은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시는 바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엘도라도가 분명 더욱 치고 나가고 있으니까요. 저희도 그래서 매일 상황을 체크하면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보고는 들었네.”
고덕재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곽성찬이 들고 들어온 서류였다.
곽성찬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이미 들었다는 이야기인데, 어디서 어떻게 들었단 말인가?
그렇지만 그에 대한 물음을 하기도 전에 신호현이 말을 잘랐다.
“곽 본이 많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어차피 캐스트플러스 건은 일임하신 건데, 좀 더 지켜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 말에 곽성찬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캐스트플러스 건을 일임했다, 신호현의 그 단어 선택에서 묘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인간이, 지금 이 일을 내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는 건가?’
이끄는 것은 분명 곽성찬이 맞다.
그러나 상당 부분 신호현의 결재 하에 이루어진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고덕재 사장 앞에서 백지로 만들고, 자신의 책임으로 하려는 것이다.
따져 물을 수도 없어서 곽성찬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신호현을 쳐다보는데, 그는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고덕재만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타트가 늦었다고 한들 결승선을 끊은 것도 아니고요. 풀 코스 마라톤 같은 일입니다. 꾸준히 지켜보시죠. 곽 본이 꼭 성과를 올릴 겁니다. 안 그런가, 곽 본부장?”
신호현이 곽성찬을 쳐다보았다.
곽성찬은 잘 안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신 이사님의 조카이시기도 한, 바람처럼의 신동욱 실장이 현재 <당잠사> 오픈을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일단 그것만 오픈하면 제대로 결판이 날 겁니다.”
<당잠사:the tripmaker>는 제작이 예정보다 지체되긴 했지만, 이미 2화 분량의 촬영은 끝마쳤다.
시사도 했고, 곽성찬은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방송 자체는 잘 빠졌으니까 효과는 있으리라 확신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신호현과 신동욱의 관계를 일부러 언급한 것은, 좀 전 신호현의 단어 선택에 대한 경계였다.
역시나. 신호현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렇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다시 고덕재를 보았다.
“얼마나 자신 넘칩니까. 지금껏 성과가 없는 친구도 아니고, 한 달만 더 지켜보시죠.”
고덕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깊게 소파에 등을 묻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지. 하지만 방심하지 말고, 좋은 결과가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 주시게. 두 분 다.”
“알겠습니다.”
“그럼요.”
신호현은 그 후 주말 골프다 뭐다 하면서 좀 더 사담을 나누었고, 곽성찬도 분위기에 맞춰 맞장구를 치다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서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하더니,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사장실을 나섰다.
“……뻔히 보이는 수작은.”
그리고 고덕재는 그러한 두 사람의 견제를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다.
실력으로 사장 자리까지 올라온 고덕재가 그런 눈치를 못 알아챌 리는 없었다.
신호현과 곽성찬이 서로 손을 잡고 캐스트플러스를 진행해 준 것은 회사로선 고마운 일이나, 슬슬 그 약발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처럼 조그만 악재로도 관계에 금이 가는데, 사장인 입장으로서 어떻게 안심을 하겠는가.
기회는 던져 두었지만 고덕재로서는 다음을 생각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벽을 보았다.
각 면에 그동안 NBS를 이끌었던 작품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럴싸한 그림보다, 비싼 장식품보다 고덕재에게는 더욱 의미가 깊은 것들이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방수정 PD의 대표 여행 예능을 잠깐 바라본 고덕재가 자리로 돌아가 내선 전화를 들었다.
“왕 이사, 나일세. 오늘 저녁 시간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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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플러스의 한 방! ‘당잠사:the tripmaker’ 티저!』
『전설의 레전드 여행 예능이 매주 찾아온다! ‘당잠사’ 캐스트플러스판 오픈 초읽기!』
<당잠사:the tripmaker>에 대한 기대감은 분명 있었다.
워낙 유명한 예능이고, 그 예능이 포맷과 플랫폼을 바꿔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분명 화제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캐스트플러스의 스타트가 다소 늦었고, 거기에 제작 자체가 난항이라는 기사도 있어서 점점 그 화제성이 떨어져 갔다.
그 와중에 발표된 티저는 그래도 식어가던 화제에 불을 붙여주었다.
『―방피디도 없지만 어쨌든 보긴 본다
―이거 보려면 캐스트플러스 가입해야 함?
―여행예능인데 어째 티저는 게임 같냐 일단은 봐봄ㅇㅇ』
그 효과를 입고 캐스트플러스 가입자수는 살짝 반등했다. NBS는 그것을 노리고 연속해서 티저를 추가해 화제성을 이어가길 노렸다.
그러나, 주말에 올라온 기사들에 한 번 더 긴장을 해야 했다.
『엘도라도 ‘이스케이프’ 티저 오픈!』
『좀비 예능의 가능성 ‘이스케이프’ 오픈일 확정!』
우리의, 엘도라도와 우리 아이윌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이스케이프>의 티저가 드디어 오픈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