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오프 더 레코드
나는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잠깐 헷갈렸다.
“시즌2요?”
방금 시즌1의 1화 시사를 했는데?
내 멍한 반응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라이언 킴이 부연 설명을 했다.
“방금 1화를 보고, 시즌2를 바로 진행해도 되겠다는 합의가 있었어요. 애초에 엔딩에서 시즌2를 암시해 두었으니 제작에는 무리가 없을 거고…… 아, 이건 작가님에게 확인하는 게 빠를까요?”
그가 민희를 쳐다보자, 나와 비슷한 표정이던 민희가 흠칫 놀라 등을 바로 세웠다.
“아, 그, 예. 스토리는 이미 어느 정도 틀은 잡아 놓긴 했는데…….”
민희가 도와달라는 듯 나를 눈짓했다. 난 그즈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했다.
“시즌2 제작을 위한 기초 기획은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작 자체는 출연진 스케줄 다시 확인해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 대답이면 됩니다. 어쨌든 우린 시즌2 제작을 희망하니, 결정만 내려서 알려주면 될 것 같네요.”
맥스웰 지사장이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 앞까지 걸어왔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1화는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내 불안함에 계약을 미뤘던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도 알았고. <이스케이프>는 분명히 잘될 겁니다. 그러니 시즌2도 잘 부탁드립니다.”
난 얼떨떨하게 그 손을 붙잡았다. 그가 힘 있게 손을 흔들면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드리워 있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이었다.
그 이후, 운영팀과 미팅을 하여 프로모션과 오픈 일정을 정하고, 모두의 배웅을 받으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조만간 사무실에 한번 갈게요. 맥스가 궁금하다고 해서 아마 같이 갈 거예요.”
“예. 언제든 연락 주세요.”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보이는 라이언 킴의 말을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주차장의 차에 민희와 함께 오를 때까지 나는 어쩐지 멍했다.
“실화인가, 이게.”
민희가 생전 입에 담지 않는 신조어를 담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1화가 이 정도면 잘 뽑혔다고 생각은 했지만, 시즌2 오퍼까지 받을 줄이야.
아, 맞아. 나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AGD 앱을 열었다.
100% 확률이 달성하는 순간, 메시지가 떴지만 제대로 확인도 하지 못했다.
[‘<이스케이프> 시즌2 제작 계약 체결’의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16,688P/992P]
그전 포인트가 몇이었더라? 대충 봐도 500P 가까이 단숨에 상승한 듯했다.
이런 급상승은 최근에는 없던 일.
그만큼 계약 체결 확률 100% 달성에 대해, AGD 앱이 높게 평가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AGD 앱의 정산까지 확인하자 드디어 뭔가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시동을 걸었다.
“회사에서 어떻게 됐는지 물어본 사람 없지?”
“응.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닐까?”
“빨리 가서 알려주자.”
우린 즐거운 대형 폭탄을 가슴에 품은 채 도로를 달려나갔다.
* * *
일부러 폰도 확인하지 않고, 민희와 수다를 떨면서 돌아온 회사 분위기는 뭔가 묘했다.
“다녀왔습……. 왜들 그래요?”
“무슨 일 있어?”
민희가 작가팀에게 묻자 고개를 저어 보인다.
서인하 선배도 자리에 없었다. 오늘 따로 미팅을 나간다는 말은 없었는데.
내가 자리로 돌아와 물으려는 찰나에, 회의실 문이 열리고 서인하 선배가 나왔다.
“강 PD, 들어와 봐.”
뭐지?
안으로 들어가자 박주영 선배와 우철민 PD도 있었다.
촬영으로 나간 방수정 PD를 제외하곤 우리 회사의 주축들이었다.
“미팅은 잘하고 왔어?”
내가 자리에 앉자 서인하 선배가 물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팅은 잘했습니다만, 분위기는 왜 이래요?”
“단톡방 안 봤어?”
“아, 운전하느라 확인을 못했죠.”
그 말을 듣고서 폰을 열자, 단톡방에 몇 개의 기사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이스케이프’ 제작진에 경비 지급 안 해……』
『엑스트라 출연진 경비 미지급 논란 ‘이스케이프’―아이윌 자금 유동성 논란?』
『엘도라도―아이윌 초반부터 삐걱이는가? 철야 촬영에 지급 문제까지…… 』
제목만 봐도 인상이 찌푸려졌다.
“좀 전에 올라온 기사들이네요. 이게 대체 뭡니까?”
“주간 연예야. 추경락 기자겠지.”
주간 연예에는 워낙 당한 게 많아서 민준기 기자가 체크를 해 주고 있었는데, 그조차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것은 소문나기 전에 일단 지르고 본 기사라는 것이다.
일부러 확인을 안 한 사이, 라이언 킴 쪽에서도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시즌2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좀 전에 올라온 기사 이야기가 이어졌다.
“경비 지급 현황이 어떻게 되지?”
“선수금은 전부 나갔고, 나머지 금액 처리할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엘도라도의 승인 이후에 나갈 것들이고, 최근 철야 촬영 건도 있어서 추가 경비도 산출 중입니다.”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네.”
박주영 선배가 툭 내뱉어서 나는 황망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장난스레 웃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인마.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트집을 잘 잡았다는 말이야.”
“그렇죠. 트집입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데…….”
억울해하는 것은 우철민 PD였다.
편집을 해 주면서 외주사에 나가는 금액들도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그가 아마 지금 가장 억울할 것이다.
나갈 시기에 맞춰서 계산하고 있는데 저런 근거 없는 기사가 나가고 있으니.
“여론이 좀 걱정이긴 합니다만, 곧 지급되었다는 기사가 나가면 어차피 잦아들 겁니다.”
하고 우철민 PD를 응원하듯 이야기했다가, 어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를 기사로 덮는 방법을 서인하 선배가 모를 리도 없고, 겨우 이 정도 일로 회의실에 모였다고?
“혹시 제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서인하 선배를 쳐다보자, 그가 박주영 선배와 슬쩍 눈을 맞췄다가 말했다.
“웃긴 연락이 왔어. 아니지, 웃긴 사람한테서 웃긴 연락이 왔어.”
“누구한테 무슨 연락인데요?”
“신호현 이사한테서 투자 건이래.”
박주영 선배가 슬쩍 대신 대답하는 말에, 나는 내가 생각해도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예?”
내가 지금 뭔 소리를 들은 거야.
오늘 괴상한 소리를 너무 많이 듣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겠다는 겁니까? NBS에서요?”
“그건 모르겠어. 공식적인 건지, 신 이사 개인인 건지. 한번 만나자고 한 건데, 타이밍이 영 요상하단 말이지.”
기사가 뜬 타이밍.
거기에 신호현 이사의 연락이라니.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수였다.
어디서 헛소리를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식으로 기사를 흘려 흔들고, 거기에 본인이 손을 뻗치겠다는 의미이리라.
문제는,
“근거부터 틀려먹은 일이라서, 웃기네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는 거야. 웃으려고 해도 같이 웃으려고.”
박주영 선배가 다시 장난스레 껄껄껄 웃어대고 서인하 선배도 맞장구치듯 웃었다.
우철민 PD만 어색하게 웃는데, 신호현 이사와 우리의 악연을 잘 모르니 그 반응은 당연했다.
나는 일부러 진지하게 물었다.
“저희 회사, 돈 없습니까?”
“아니? 너희들 연말 상여 줄 것까지 이미 계산 끝내 놓고, 그걸로 통장 털어도 3년은 거뜬히 할 수 있어.”
“엘도라도에서 들어오는 투자금은 빼고 하신 이야기일 거고…… 거기다.”
이 타이밍이라는 생각에, 나는 말했다.
“엘도라도에서 시즌2 당장 만들잡니다.”
“뭐?”
이 말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는지 모두 눈이 두 배는 커졌다.
그래, 내가 한 시간 전쯤에 저런 표정이었겠지.
“시즌1 오픈 일정 전부 나왔고요, 시즌2도 여건 되는 대로 당장 만들자고 합니다. 투자비도 늘릴 거니까,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라고요.”
“아니 그게 그렇게 쉽게 정해지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오늘 시사가 매우 맘에 들었나 봅니다.”
좀 전까지의 장난스런 분위기가 당장에 바뀌었다.
모두가 고무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받아들이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나는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그러니 헛소리하는 기사든, 어느 이사님이든 전부 무시하고 저희 갈 길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맞아.”
“옳소!”
회의 테이블을 두들기는 소리에 바깥에서도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서인하 선배가 분연히 일어났다.
“오늘 방 PD 언제 들어오지?”
“퇴근 시간 전에 들어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우 PD가 한번 시간 좀 체크해 주고, 방 PD 들어오면 오늘 회식하자!”
회식 문화가 거의 없는 우리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었다.
“저는 콜입니다!”
박주영 선배가 벌떡 일어나서는 회의실 문을 열었다.
“여러분! 오늘 회식합시다!”
“예……?”
“갑자기요……?”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에 서인하 선배가 추가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메뉴는 소고기! 그것도 한우니까 참가할 사람은 참가해!”
아무리 갑작스러운 회식이라 해도, 한우를 거부할 직장인은 우리 회사에 없었다.
* * *
『‘이스케이프’ 경비 미지급 논란에 대해서 입 열다! “이미 전부 지급했습니다”』
『‘이스케이프’ 경비 논란, 단순 일정 오해로……』
민준기 기자에게 부탁한 기사가 올라가면서 여론은 금방 조용해졌다.
사실 돈을 제대로 안 줬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철야 촬영을 했다는 이야기와 맞물려서 꽤 갑론을박이 벌어졌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띄운 기사로 금방 잠잠해질 만큼, 그다지 힘이 없는 여론이었다.
근거 없는 뜬소문의 여론이란 그런 법.
“시즌2에 대해서는 아직 오프 더 레코드인가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정식 계약서는 쓴 게 아니라서…….”
“에이, 부탁은요. 제가 할 일 하는 건데. 이번에 주간 연예 기사 놓친 것도 있으니까, 다음엔 꼭 보답하겠습니다.”
민준기 기자는 그렇게 든든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서인하 선배는 그사이 왕이범 이사에게 신호현 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듣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왕이범 이사가 폭소를 터뜨리는 소리가, 좀 떨어져 있는 나한테까지 들렸다.
한참 웃으며 통화를 한 다음 전화를 끊은 선배가 이야기해 주었다.
“요즘 신 이사 쪽 분위기가 안 좋은 모양이야. 캐스트플러스도 계속 엘도라도에 밀리고 하니까, 우리한테 손을 뻗으려 하는 것 같다네.”
“하긴, 비슷하게 오픈하는데 화제성에서는 완전히 지고 있더라고요. <당잠사> 캐스트플러스판도 반응이 별로인 것 같…… 아.”
거기까지 이야기하다가 옆자리를 슬쩍 보았다.
“왜 내 눈치를 봐?”
방수정 PD가 방긋이 웃고 있었다. 너무 방긋 미소라서 되레 무서웠다.
“내가 <당잠사>를 신경 쓸까 봐 그래?”
“아, 아뇨. 그럴 리가요. 그냥, 나가신다 하셔서 언제 나가시나 하고.”
“<당잠사>는 이미 놓아준 애야. 민헌이도 그만둔 마당에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알지?”
“예, 그럼요. 맞습니다.”
방수정 PD는 다시 방긋이 웃어 보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팅 다녀온다는 그녀가 사라진 다음에야 나는 삐걱대는 목을 되돌렸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당분간 <당잠사> 이야기는 사무실에서 금지야. 다들 알았지?”
박주영 선배가 으르렁거리듯 말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채널T 다녀오겠습니다. 유리 씨, 갔다 올 때까지 자료 만들어 두는 거 잊지 말고.”
“아, 예!”
얼마 전부터 박주영 선배는 전유리를 본격적으로 교육하고 있었다.
지금도 뭔가 잔뜩 자료를 맡겨 두고 간 것 같은데, 그래도 전유리는 꿋꿋하게 그 교육을 따라가고 있었다.
저 정도면 인턴 기간을 빨리 끝내 줘도 될 것 같은데.
나는 내가 뽑은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봐 줬다가, 눈이 마주쳐 급히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민희의 눈길이 있었다.
‘죽는다?’
그녀의 눈빛이 왜 해석이 되는 것 같지.
억울하지만, 나는 조용히 짐을 챙겨 들고 편집실로 향했다.
아직 시즌1의 편집이 전부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엘도라도’ 그랜드 오픈!』
엘도라도가 화려한 오픈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