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96화 (196/200)

196화 1화 시사

“뭐라고 하십니까?”

전화 통화를 마치고 회의실로 돌아온 서인하 선배에게 묻자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계약서에 잘 나와 있다면 비용이 발생해도 자금 자체에는 큰 문제 없을 거라고 하시네.”

서인하 선배도 대표는 처음이라 왕이범 이사에게 여러 가지로 조언을 구할 때가 있었다.

이번, 전 제작진 철야 사태 같은 일에도 마찬가지.

“투자금 계약은 문제없고 엘도라도에서도 이미 확인한 거니까 괜찮을 거야.”

“다행이네요. 저질러 놓고도 사실 좀 걱정했습니다.”

“야, 걱정할 거면 상의라도 하고 해.”

투덜거리면서도 선배가 웃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될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린 속 편하게 확인 작업도 거쳤겠다, 간단히 회의를 마치고 짐을 챙겨 일어났다.

“잘하고 와.”

“옙.”

밖으로 나가자 민희가 이미 준비를 끝마쳐 있었다.

내가 노트북을 챙겨 들자, 편집실에서 우철민 PD가 달려와서 USB를 하나 넘겼다.

“여기, 아까 말한 수정 추가했어.”

“고마워요.”

나는 USB를 살짝 흔들어 보이고, 민희와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파이팅!”

“잘하고 오세요!”

오늘이 어떤 날인지 모든 직원이 알고 있다.

아침에는 준혁이 형님이나 금완승 감독도 메시지를 보내올 정도로 중요한 날.

바로 1화 편집본 시사 날이다.

엘도라도 회의실에서, 엘도라도라는 투자자를 모셔 놓고 1화 편집본에 대한 시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 자리를 위해 오늘 옷도 좀 차려입고, 메인 작가인 민희도 동행했다.

“좀 떨리네.”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민희의 목소리에 살짝 떨림이 있었다.

“NBS에서도 늘 하던 건데, 뭐.”

“그래서 넌 안 떨린다고?”

“엄청 떨린다는 말이죠.”

언젠 안 떨었다고.

정식 방영 전에 내부 시사회를 가지는 것은 NBS 때부터 주욱 있던 일.

그렇지만 이번에는 엘도라도라는 글로벌 기업이고, 그들의 돈을 받아 만들어낸 투자작품이라 더욱 긴장됐다.

자고로 월급 주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던데,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투자자라는 것을 나는 요 몇 달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아까 고친 건 뭐야?”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민희가 물었다.

“자막 몇 개 추가하고, 필터 좀 바꿨어. 확인 좀 해 줄래?”

내가 뒷좌석의 가방을 가리키자, 민희가 익숙하게 노트북을 꺼내 USB도 연결했다.

“5분 48초부터랑, 48분 17초.”

내 지시에 동영상 플레이어를 조작한 민희가, 차가 신호로 멈춘 틈을 타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음…… 자막이 좀 더 깔끔해졌네. 여기 필터는 근데 좀 더 밝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가. 스크린에서 나중에 보고 판단하자. 스크립트에 일단 기록해 줘.”

민희가 노트북에서 스크립트를 찾아 기록하는 동안, 나는 화면을 보며 집중했다.

[90%]

아침에 확인했을 때보다 1% 상승했다.

시사 단계에서 시즌2 계약 체결을 최대한 올리고 가자는 마음에 수정을 했는데, 그것으로도 꽤 괜찮은 효과를 보았다.

“잘됐으면 좋겠다.”

“잘될 거야. 다들 열심히 했는데.”

그동안 방송을 만들면서 겪은 모든 경험을 통틀어, 이번만큼 예감이 좋은 적이 별로 없다.

분명 스케일이 큰 건이라 처음에는 부담도 가졌는데, 제작과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몇 번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또 그들의 마음도 알았다.

NBS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된 것도 같고, 그만큼 더 큰 경험도 쌓인 것 같았다.

앞으로 10%.

<이스케이프>의 성공 목표를 위해서 가장 힘든 10%가 남아 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차를 달려 엘도라도 사무실로 향했다.

엘도라도 사무실에 처음 와 보는 민희는 긴장을 했다.

“어서 오세요, 강 PD. 이 작가님도 안녕하셨습니까.”

라이언 킴이 여전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반겼다.

“이 작가님은 저희 사무실 처음이시죠. 뭐, 별거 없습니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좀 많다는 정도?”

“하하. 그, 그렇네요.”

고층 상업 빌딩에 들어서 있는 엘도라도 사무실이라서, 그의 농담대로 엘리베이터 숫자가 참으로 많았다.

그중 하나를 잡아 타고 위로 올라가자, 입구에 매튜 본드가 이미 나와 있었다.

“강 PD, 오랜만입니다!”

전보다 더 유창해진 한국말이었다. 내 손을 잡고 붕붕 휘두르는 그가 내 옆의 민희를 보았다.

“이분이 스크립터님?”

“아, 네. 이민희라고…… 합니다.”

민희가 한국말로 해도 되는지 머뭇거리자, 매튜 본드는 민희의 손도 잡고 붕붕 휘둘렀다.

“처음 봅니다! 오늘 기대합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GP라고 이야기를 해 주자 한층 더 당황스러워했다. 먼저 이야기 안 해 준 게 뿌듯해지는 반응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 큰 회의실로 들어섰다.

거기에는 이미 시사를 위한 준비가 끝마쳐져 있었다.

라이언 킴에게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 중동 계열로 보이는 직원이 들어와 내 노트북을 받아 갔다.

그녀가 스크린에 노트북을 연결하는 동안 다시 문이 열리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와 빈자리에 앉았다.

“오늘 같이 볼 저희 직원들입니다. 이쪽부터 운영팀 매니저 앨리스…….”

눈 돌아갈 만큼 바쁜 인사를 사람들과 나누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데,

“오랜만이에요.”

다시 한번 문이 열리며 맥스웰 지사장이 나타났다.

엉덩이를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서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시사,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담 주셔서 위장이 다 아픈데요.”

“하하하. 그런 부담은 몸에 좋답니다.”

그럴 리가.

속으로만 그렇게 태클을 걸고 미소를 지었다.

곧 불이 꺼지고 회의실의 커튼이 내려갔다.

나는 라이언 킴의 눈짓을 신호 삼아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 앞에 섰다.

“오늘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배려 덕에 <이스케이프>의 모든 촬영을 문제없이 끝마치고 1화 편집본을 시사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아직 최종 방영본은 아니기에 보시고 어떤 말씀이시라도 기탄없이 부탁드립니다.”

내 말을 몇몇 사람이 동료에게 통역을 해 주고, 그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노트북으로 1화 편집본을 틀었다.

* * *

[91%]

1화 편집본을 시사 시작한 지 10분여.

확률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스크린을 함께 쳐다보고 있는 내 눈에만 보이는 그 확률이 1%지만 상승했다.

솔직히 시사를 통해서 몇 퍼센트는 올릴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10분 만에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곤 여기지 않았다.

『“……여기를 열어야 저쪽 방으로 갈 수 있단 말이지…….”』

내용은, 엉망이 된 사무실에서 눈을 뜬 ‘류준혁’이 기억을 잃었음을 눈치채고 일단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는 부분.

사무실 문은 열고 나왔지만 복도를 막은 차폐문을 열기 위해서 버튼을 찾는 내용이었다.

“분위기가 좋네요. 진짜 아포칼립스 같습니다.”

옆에서 라이언 킴이 다른 이들의 감상을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전해 주었다.

『“크윽!”

―또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누구 있습니까! 저기요!”

“……으윽! 네……!”

―사람이다!』

자막이 교차하면서, ‘류준혁’은 수색에 열을 올린다.

복도 한쪽에서 차폐문을 여는 비상 버튼을 찾았지만 전력이 들어오지 않는다.

전력 버튼을 찾기 위해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비밀번호를 찾아 관리실로 들어간 뒤 전력을 연결한다.

『쿠웅!

―차폐문 오픈 성공!

“조금만 버티세요! 지금 갑니다!”』

소리가 들린 사무실로 들어가자,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박지운’. 그는 캐비닛에 깔린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류 과장님……! 이, 이걸 좀……!”

“아, 그, 그래!”

끼익!

“조, 조심하세요! 소리를 들으면 그놈들이 올 겁니다!”

“그놈들?”

―그놈들이라니?』

그리고 다음 순간, 복도 저편에서 울리는 기괴한 소리.

한쪽 다리를 절면서, 온몸에 피를 흘리면서 나타난 좀비였다.

첫 등장이기에 연출에 힘을 준 장면이 나오는 순간,

[92%]

확률이 또 상승했다.

“오오…….”

“잘 만들었네…….”

한국말로, 영어로도 들려오는 감탄성.

나는 민희와 눈을 마주치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예감이 좋다. 어쩌면……!

『“아직 몇 명이 더 있습니다. 일단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해요.”

“그래, 설명은 그 후에 듣자.”』

그렇게 ‘류준혁’은 ‘박지운’과 함께, 좀비들을 피해 사무실을 내려가면서 생존자를 만난다.

모든 인원 8명.

그들이 전부 모였을 때, 좀비들이 그들이 모인 사무실 앞에 몰려든다.

이제 길은 하나.

어떤 충격으로 뚫려 버린, 고층 빌딩의 커다란 창.

『“여길…… 뛰어내려야 한다고?”

―‘이스케이프’ 2화에서 이어집니다…….』

시사가 끝났다. 회의실에 불이 들어왔다.

[94%]

시사 동안 무려 4%나 올랐다.

몇 퍼센트 오르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4%라는 상승은 심리적으로 매우 크게 다가왔다.

“……예, 이상입니다. 이후 2화부터 내용은 계속 편집 중에 있으며, 현재 예상으로는 다음 달 중순 정도에는 모든 편집 작업이 끝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내가 향후 일정에 대해 브리핑하는 동안, 자리에 모인 이들이 서로 수군거리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들의 시선은 가장 상석에 앉은 맥스웰 지부장에게 모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떠셨을까요. 콜 해 주시면 이대로 10화까지의 내용을…….”

“잠깐만요.”

94% 확률이기에 오케이 사인이 나올 거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맥스웰 지부장이 내 말을 막았다.

그는 굳은 얼굴이었고, 그것이 나를 다른 의미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시즌2 계약 체결이야 향후로도 더 올릴 수 있겠지만, 저 표정은 뭔가 이상한데……. 걸리는 점이 있나?

그러나 내가 묻기도 전에, 그가 라이언 킴, 매튜 본드를 비롯해 몇 명을 불러냈다.

그들이 회의실 밖으로 나가서, 나는 민희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이래?’

‘글쎄.’

그런 눈짓을 하고 다시 문 쪽을 쳐다보았다.

1초가 1시간 같았다.

밖으로 나간 이들은 주요 매니저들이었다.

그들을 맥스웰 지사장이 갑자기 불러모은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민희와 초조하게 기다렸다.

“투자금 회수하자는 거 아니겠지?”

“그럴 리 없어.”

어디 구멍가게도 아니고, AGD 앱 확률도 반증해 주는데.

하지만 나도 불안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아서, 그저 초조하게 문만 쳐다보았다.

그때.

벌컥.

문이 힘있게 열리고, 라이언 킴부터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는 그에게 눈짓으로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뒤따라 맥스웰 지사장이 들어와서, 나는 다시 일어서서 스크린 앞에 섰다.

필요하다면 추가 설명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는데,

[100%]

응?

마지막 장면에서 멈춰져 있는 스크린 앞에 당황스런 확률이 떠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강 PD님.”

“아, 예.”

맥스웰 지사장이 나를 불러서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그가, 지금껏 보지 못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시즌2, 바로 제작 가능합니까?”

“예?”

“시즌2 계획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사장 권리로 바로 제작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맥스웰 지사장이 말했다.

“강 PD님. <이스케이프> 시즌2,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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