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95화 (195/200)

195화 크랭크업

라이언 킴은 초조했다.

엘도라도 오픈이 코앞으로 다가와 할 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이스케이프>.

엘도라도가 심혈을 기울인 독점작.

아이윌의 강대한 PD가 NBS 시절에 아시아 전역과 각종 SNS 등에 끼친 영향을 높게 평가해 접촉, 제작까지 들어간 작품.

비록 계약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그 또한 강대한이 직접 나서 지사장 맥스웰과 담판을 벌여 해결했다.

그 이후로는 순풍에 돛 단 듯이 제작이 진행됐는데.

구제역으로 인한 촬영지 인근 지역 봉쇄는 정말 아무도 생각지 못한 사태였다.

라이언도, 매튜도 전부 소식을 듣고 골머리를 앓았다.

강대한에게서 마지막 촬영을 미루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혔다.

‘촬영을 미루면…… 그만큼 제작비가 더 들겠지…….’

약속된 제작비는 있다. 지금 그 제작비를 인력 포함 풀로 활용하고 있는 아이윌이었고.

그렇지만 그것은 기간 내 촬영이 완료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이고, 촬영이 밀리면 그만큼 여러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맥스웰을 설득하고, 본사를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에 라이언은 낯빛이 파래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지.’

매튜를 만나 이 건을 상의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강대한에게서 연락이 왔다.

“철야 촬영으로 내일 오전까지 끝내겠습니다.”

“예? 뭐라고요?”

미국 기업인 엘도라도는 그만큼 법정 근무 시간 등의 노무적 규칙을 빡빡하게 따른다.

이번 독점작 계약도 마찬가지.

출연진, 제작진 전부 철야를 한다면 그 기준에 저촉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래서 일단 라이언은 반대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건 제 뜻이라기보다…… 출연진의 의지가 강합니다. 모두 지난 8일간의 기간을 버릴 수 없다고, 그대로 촬영을 끝까지 마치고 싶어 합니다. 저는 그 뜻을 최대한 존중하고 싶습니다.”

라이언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나와 버리면 반대할 수 없지 않은가.

“매니저님. 제가 질 수 있는 책임은 최대한 지겠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반드시 무사히 촬영을 끝낼 테니, 억지인 것은 알지만 엘도라도에서도 방안을 생각해 주십시오.”

“억지…… 억지라는 걸 아셔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라이언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대답했다.

“강 PD가 책임진다는데,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할게요. 촬영, 잘 부탁해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매튜와 맥스웰을 설득했다.

매튜는 비교적 어렵지 않았으나, 신중론자인 맥스웰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또한 강대한이라는 이름 석 자로 어느 정도 말발이 먹혔다.

“그래…… 그 친구의 결정이라면…….”

단독 대담을 했을 때 대체 어떻게 흔들어 둔 건지 대단하다 생각하면서, 라이언은 법무팀, 재무팀과 함께 밤늦게까지 법률적, 회계적 검토를 끝마쳤다.

그리고 아침.

『[공식] 경기도청, 성남 외곽 봉쇄 지역 확대』

기사가 뜬 것을 보고 곧장 연구소 촬영지로 향했다.

“……안 받는군.”

가는 길에 강대한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직 촬영 중인지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다지 좋은 신호로 보이진 않았다.

라이언은 굳은 얼굴로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도착한 촬영장에서,

“어라, 매니저님.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네요.”

라이언은 모든 출연진, 제작진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 * *

『“잠깐…… 그렇다면 이 약을 뿌린다고 해서 해결이 안 난다는 거야?”

“이 약만으로 부족해.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어.”』

일행이 도착한 연구소는 이미 숱한 좀비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암호를 찾아 격폐문을 열고, 이미 좀비가 되어 버린 박사의 옷을 뒤져서 열쇠를 찾고.

숱한 난관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 기어코 출구로 빠져나왔다.

『“아! 맞아!”

“왜? 뭔데?”

“어제, 3번 방에서 얻은 지도 같은 거 있지 않아요?”

“여기 있어요. 이게 왜?”

“마지막 방에서 얻은 카드랑 대조해 보면…… 봐! 여기요. 여기, 주소가 표시돼요!”』

마지막 수수께끼를 찾은 것은 아온.

역시나 촉 하나로 대활약을 해 주고 있었다.

지도 위에 카드를 올리자, 부정형으로 뚫려 있는 구멍마다 글자가 한 글자씩 보였다.

차후 인서트 장면을 추가할 항목에 체크를 하며 모니터를 다시 살폈다.

『“이 주소로 가져가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면…… 공장일까요?”

“거기도 좀비 있는 거 아냐?”

“윽, 좀비들이 안에서 발광하는데?”』

키에에엑, 하는 효과음을 튼 음향팀에게 손짓해서 서서히 줄인다.

불안한 눈으로 연구소 쪽을 살핀 일행이 다시 지도로 고개를 내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준혁이 형님.

『“가야지. 이 약을 전달해야 해.”

“아오…… 또 해야 한다는 거네요. 히이, 무서운데.”

“무섭다는 애가 아까 전에 의자 들고 던지지 않았나……?”

“내가 언제?”』

아온과 박지운의 티격태격에, 잠시 흘렀던 긴장의 분위기가 풀린다.

그것을 둘러본 준혁이 형님이 지도를 챙겨 들고 먼저 몸을 돌렸다.

『“가자. 아직 늦지 않았어.”

“네!”

“갑시다.”』

일행이 뛰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원거리에서 그것을 잡으며, 때마침 시간은 동이 터오른 뒤.

화창한 아침 하늘 아래에서 어쩐지 모를 희망이 느껴지는 엔딩이 저절로 만들어졌다.

입구를 모두 내려가 사라질 때까지 끈질기게 카메라가 일행의 모습을 뒤쫓았다.

그리고.

“……컷!”

나의 무전과 함께, 일제히 제작진이 컨테이너에서 달려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우철민 PD가 엑스트라팀에게 달려가고, 박주영 선배가 외주팀으로 달려가는 동안 출연진이 오르막을 다시 되돌아 뛰어왔다.

“시간은?!”

준혁이 형님이 가장 먼저 묻는 말에 나는 피식 웃고선 스마트폰을 들어 주었다.

“딱 22시간 12분 걸렸습니다.”

“오, 성공했네요, 저희.”

“아싸! 이겼다!”

“누구한테 이긴 거야.”

박지운과 아온이 다시 티격대기 시작하는 것을 흐뭇하게 봐주고서 나는 다시 모두를 둘러보았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모니터로 다 지켜보긴 했지만, 아니 정말…… 이게 가능할지는 몰랐어요.”

“그쵸, 저도 몰랐어요.”

“아온이가 많이 활약했지.”

“수수께끼 푼 건 없지만.”

“히든피스는 내가 제일 많이 발견했거든?!”

무슨 진지한 말을 못 하겠네.

아온과 박지운은 묘하게 죽이 맞아서 촬영 내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다.

점잖고 무뚝뚝한 이미지의 박지운인데, 아온에게는 계속 말려서 절로 웃음이 나게 만드는 합이 느껴졌다.

“자자, 다들 힘드실 텐데 오늘은 빨리 정리하도록 하지요.”

“우리도 좀 도울까?”

“괜찮습니다, 형님. 제일 고생하신 건 여러분인데 그럴 순 없죠. 조금 쉬고 계시면 정리되고 다시 호출할게요.”

그들을 대기실로 보내고 뒤돌아섰다가, 뒤늦게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라이언 킴이었다.

전화를 할까 하고 버튼을 터치하려는데,

“야! 강 PD! 잠깐만 여기 와 봐!”

상황실 컨테이너에서 금완승 감독이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이거 촬영본 좀 확인해 줘야겠어!”

“예! 갑니다!”

촬영팀장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그에게 빠르게 달려가 촬영본을 확인하고, 몇 부분은 앵글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체크를 해 두고.

그런 작업을 하는 사이 우철민 PD와 박주영 선배가 상황실 문을 다시 두드렸다.

“언뜻 정리됐어. 엑스트라들은 보내도 되지?”

“아, 예. 버스는 어디 있는지 알죠?”

상황실을 나가 엑스트라팀 팀장하고도 악수를 나누는데, 대기실에서 준혁이 형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같이 고생하신 분들인데, 마지막으로 사진이라도 찍는 건 어때.”

현장 기록용으로 포토그래퍼가 늘 촬영장에 있었다.

이번에도 마지막 스틸컷을 찍으려고 하긴 했지만, 나는 엑스트라들을 둘러보고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 다들 모입시다! 사진 한 장 찍고 가죠!”

기재를 옮기던 스태프들도, 아직 좀비 분장 그대로인 엑스트라들도, 허름한 차림인 출연진도.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아침 햇살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라이언 킴이 도착한 것은 그 타이밍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 온 것은 봤는데, 다시 드릴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건. 그런데 혹시…….”

“예. 촬영 끝났습니다.”

내 말에 그의 눈빛이 두 배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가 냉큼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수고했어요. 수고했어요, 강 PD.”

“어어, 아니 뭐, 제가 고생했나요. 이분들이 고생했죠.”

나는 출연진과 스태프, 외주팀까지.

그들을 둘러보고서 다시 라이언 킴을 돌아보았다.

“이제 뒷정리만 남았습니다. 보고 가실 겁니까?”

“예, 그럼요. 그래야죠.”

“후회하실 텐데.”

나는 히죽 웃고서, 의아해하는 라이언 킴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30분쯤 뒤.

도청에서 보낸 방역팀을 보고서야 그는 힘없이 어깨를 떨구었다.

* * *

『엘로라도 독점작 ‘이스케이프’ 촬영 크랭크업!』

『‘이스케이프’ 촬영 지원 금완승 감독 인터뷰!』

『대형 OTT 플랫폼 엘도라도 사전결제 프로모션 시작』

엘도라도와 아이윌의 협업 결과물인 <이스케이프>가 촬영 종료를 알렸다.

촬영 막바지에는 경기도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서 스케줄 지장을 받았다고도 했는데,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촬영을 마친 덕분에 강대한 PD의 리더십에 대한 평도 덩달아 입소문을 탔다.

“사전결제 프로모션으로 지금까지 10만 명이 구독 결제를 시작했다고 발표가 나왔습니다.”

“허수가 좀 있다 치더라도 최종 20만은 충분히 넘기겠군. 프로모션이 뭐였지?”

“사전결제 시 3개월 무료에, 첫 결제 50% 할인입니다.”

보고를 듣던 곽성찬 본부장이 인상을 썼다.

“3개월에다 50% 할인이면 남는 게 있나. 투자금 회수도 못 할 것 같은데.”

“초반 기세를 잡고 가겠다는 결정으로 보입니다.”

엘도라도 본사에서 한국지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다.

한국만 제대로 잡으면 동남아 전체에 한류를 따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캐스트플러스도 그것을 위해 기획 초반부터 동남아 여러 국가의 방송사, 제작사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왔다.

해외 콘텐츠, 국내 콘텐츠 가릴 것 없이 물량 공세를 때릴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캐스트플러스 독점작 ‘당잠사:the tripmaker’ 제작 난항?』

『통합 OTT 플랫폼 ‘캐스트플러스’에서 빠져 있는 것』

심심찮게 그러한 기사들이 올라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오늘도 보고로 올라온 기사를 힐끔 하고서, 곽성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저쪽에서 수를 쓰고 있나 보군.”

곽성찬이 보기엔 그랬다.

엘도라도나 아이윌이나, 혹은 양쪽에서 캐스트플러스의 긍정 여론을 지우려고 수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본인이 그러기에, 강대한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곽성찬이었다.

“우리도 그냥 있을 순 없지. 소스 좀 없어?”

“아직은 별다를 게 없지만……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그래, 좀 흔들어 보자고. 우리만 당할 순 없으니.”

그렇게 표인배를 돌려보내고, 곽성찬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신 이사 보고 올게.”

표인배에게 알려둔 뒤 문을 여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왕이범 이사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곽성찬을 보지는 못했는지 그의 목소리가 뒷모습에서 슬그머니 들려왔다.

“……그건 좀 문제가 되지 않겠냐, 인하야. 당장 그러면 비용부터 늘어날 텐데, 너희 자금이…….”

귀를 기울였으나 모퉁이를 돌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지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자금이라.”

곽성찬은 재빠르게 신호현 이사실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