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한마음
『……경기도 일대의 구제역 확대로 인한 방역이 실시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 사태에 비해 몇 주 앞선 대응으로서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정부와 도청의 의지로 해석된다.
.
.
경기도청은 방역과 봉쇄를 위한 관련 공문을 내려보내고, 각 처에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촬영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 그런 기사는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매년 겨울 초입이 되면 가축들을 대상으로 한 구제역, AI 등의 사태가 퍼지곤 하는데, 올해는 그것을 사전 차단하고자 꽤 일찍부터 대응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예능 촬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고, 우리가 촬영하는 곳은 주로 도심이었기 때문에 참고 정도로만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
“이전에 이야기하셨던 곳에서 10킬로미터도 안 떨어진 목장에서 구제역이 발견되어서 일대를 봉쇄할 예정이에요.”
그렇지만, 기사를 보고 연락한 도청의 담당관은 부정적인 신호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10킬로미터면…… 정말로 꽤 가깝군요.”
“촬영 허가된 위치가 아무래도 가까워서, 조만간 봉쇄 지시가 내려올 수도 있어요.”
기사에서는 성남 외곽 지역에 출입금지령을 내리고, 일대를 봉쇄하고 집중 방역을 할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구제역이 퍼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 봉쇄 구역이 확대될 수도 있는데,
“오늘 중에 봉쇄령이 떨어질 것 같습니까?”
문제는 그것이었다.
봉쇄령이 떨어지면 애초에 촬영장 진입을 못 한다.
세트를 지어 놓고 활용도 못 해 보고, 봉쇄가 풀릴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이 부분은 정말이지 확률을 보든 말든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건 아닐 것 같아요.”
다행히 담당관은 부정해 주었다.
“오늘은 일단 봉쇄 구역 내를 방역할 거고, 추가 확대는 오늘 중에 확정될 거예요. 다만.”
“예.”
“오늘 만약 구역 확대가 결정되면, 촬영지는 확실하게 내일 중 봉쇄될 가능성이 커요. 그러면 최소 일주일은 출입이 금지될 겁니다.”
담당관의 담담한 설명이 오히려 더 리얼하게 다가왔다.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서둘러 제작진 단톡방에 관련 사항을 알렸다.
이른 아침의 도로를 달려서 연구소 세트 앞에 도착하자, 호텔에서 온 출연진의 차들이 벌써 즐비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준혁이 형님의 밴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준혁이 형님, 박지운, 백종현이 주르륵 내렸다.
“대한아, 기사 봤다.”
“강 PD님, 우리 촬영은 괜찮아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한 그들.
출연진이지만 이 프로그램에 가진 애정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일단 상황 확인 중입니다. 제작진이랑 이야기한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양해를 구하고 나는 제작진과 합류했다.
제작팀에 외주팀까지 세트 앞에 모여 있었다.
날씨는 맑고 기온도 적당해서 촬영하기에는 딱 적당한 날씨였지만, 모두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강 PD, 왔어?”
우철민 PD의 말에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웬만한 스태프는 모두 호텔에서 묵고 왔기 때문에 나보다 현장 도착이 빨랐으리라.
그들에게 나는 빠르게 상황 설명을 했다.
“……그래서 일단은, 오늘까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늘이라…….”
박주영 선배가 세트 쪽을 바라보았다.
살짝 언덕진 곳에 위치해 있는 3층짜리 건물은, 분명 지어진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십 몇 년은 지난 듯이 낡아 있었다.
저게 다 미술팀의 업적인데, 지금 당장 그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게 생겼다.
“내일 봉쇄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야?”
“네. 그렇게 봉쇄되면 일주일 정도는 출입할 수 없을 거고요. 출연진들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내 말에 막내 작가가 뛰어가서 일정표를 가지고 왔다.
모두가 이틀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준혁이 형님이나 박지운 같은 경우엔 당장 모레 새벽부터 다른 영화 스케줄이 있다고 통보받은 상태였다.
“거기다가…….”
우철민 PD가 가리키는 스케줄을 보고 나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가장 문제는 그거지.”
제작진 모두가 어두운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설정해 둔 확률 보기는 시즌2 제작이 체결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률.
이대로 편집 마무리까지 몰아붙여서 100%를 만들 생각이었다.
상당한 포인트가 지급될 것이고, 그것으로 향후를 다시 대비할 수 있는 역대급 프로젝트라 생각했는데.
이전처럼 좀 더 자잘하게, 자주 확률 보기를 사용했어야 했다.
최소 이틀은 필요한 촬영 일정인데, 이제 이틀이 남은 그 촬영 일정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미리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강 PD. 일단 준비는 다 됐는데.”
촬영팀 쪽에서 다가왔다.
우이독경 소속의 감독으로, 이번 <이스케이프> 촬영팀의 부팀장이었다.
“금 감독님은 오시고 계십니까?”
“거의 다 왔다고 좀 전에 연락 왔어. 늦지는 않으실 거야.”
금완승 감독도 아마 이 소식은 들었으리라.
“일단 준비는 해 주세요. 언제든 스타트할 수 있게. 금 감독님과 이야기하고, 출연진과도 상의하겠습니다.”
팀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돌리는데 촬영장 앞에 금완승 감독의 차가 도착했다.
나는 다가가서 차에서 내리는 그를 맞이했다.
“강 PD. 어떻게 되는 거여?”
역시나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도청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고, 그 또한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차하면 일주일 이상 밀리는 거고…… 그럼 죄다 스케줄 꼬일 텐데?”
“맞습니다. 지금 그게 제일 문제죠.”
“류 배우랑 지운이는 우리 회사 영화고…… 다들 스케줄에 여유가 없는데 하필이면 마지막 촬영지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실 컨테이너로 돌아오는데, 출연진 대기실 컨테이너에서 문이 열렸다.
“감독님 오셨습니까.”
“그래, 류 배우. 우리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금완승 감독과 나는 서둘러 대기실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컨테이너인데 출연진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솔직한 상황 설명을 했다.
“오늘은 촬영이 되겠지만 내일은 봉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아예 못 들어오는 건가?”
“이쪽으로 올라오는 길 전체를 막을 겁니다. 출입 자체가 금지되겠죠.”
“그냥 몰래 찍으면 안 돼요?”
아온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했지만, 옆에서 박지운이 인상만 썼다.
“에이, 나도 알고서 한 이야기예요. 설마 진심으로 했을까.”
“안 하느니만 못한 이야기였어…….”
백종현이 한숨을 쉬자 아온이 우씨 하면서 그의 옆구리를 쳤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다들 힘이 빠진 중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어두워지려는 분위기를 아온 나름대로 풀어 보려고 벌이는 일이라고 이해했다.
“오늘 촬영을 시작한다고 해도 내일 완성이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거구나.”
준혁이 형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준비해 둔 것은 많은데, 내일 오전부터 완전히 봉쇄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는 거죠.”
사실 연구소 세트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껏 찍어온 네 곳의 에피소드도 전부 그렇지만, 이 연구소는 최종 에피소드답게 연결성이 중요하다.
최소 이틀 동안 출연진이 집중해서 스토리텔링과 감정선을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단절될 위기가 앞에 있기에, 나는 메인 PD로서 결단해야 했다.
“그래서, 오는 길에 엘도라도에 연락했습니다. 마지막 촬영은 이 사태가 지나고 나면 하겠다고요.”
“뭐라고?”
“강 PD, 진심이여?”
내 발언에 모두가 놀랐다.
촬영을 미루겠다는 건, 처음부터 모든 출연진, 제작진, 외주 팀의 일정을 다시 잡아서 새로 찍겠다는 의미였다.
말이 쉽지, 촬영을 다시 한번 세팅해서 시작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그만큼의 시간, 비용, 모든 것이 리셋되어 추가로 발생된다.
그래서 라이언 킴에게 전달했을 때, 그도 난색을 표했다.
“사실 거기서도 쉽게 결정은 못 지어서 다시 연락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겠지. 엘도라도가 투자를 하기로는 했어도, 이렇게 되면 그 금액이 불어날 수도 있는 거고.”
“예정했던 오픈일이 밀릴 가능성도 있고…….”
이 사태가 언제 지나갈지 알 수 없으니,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AGD 앱을 사용하면 나 혼자선 그 시기를 가늠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기에 출연진, 제작진의 시기도 모두 맞춰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촬영이 오늘로써 끊기는 것보단 차라리…….”
“아니, 아니야.”
그때 내 말을 끊은 것은 준혁이 형님이었다.
“최소 내일 오전까지는 시간이 있다는 거잖아.”
“지금 상황에서는요.”
“그럼 내일 오전까지 끝내자고. 촬영.”
“예?”
“지금부터 내일 오전까지 24시간 있잖아. 중간 휴식 시간 좀 없애고, 내일 오전까지 하면 어떻게든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
“어…… 아니, 저기, 선배님. 그건 철야를 하시겠다는…….”
“그래, 철야. <라이벌> 찍으면서도 몇 번 철야 촬영 했잖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준혁이 형님의 말에 박지운도 할 말을 잃고 백종현을 쳐다보았다.
백종현은 다른 선배를 쳐다보았고, 그는 변정훈을 보고, 변정훈은 아온을 보았다.
“아뇨, 형님. 그건 너무……. 철야라뇨, 너무 힘듭니다, 그건.”
차마 내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준혁이 형님이 꺼낸 것은 맞다.
다른 방법.
그건 철야로 촬영을 모두 끝내 버리는 것이다.
방탈출 구조를 만들어 준 설계 외주 회사와 미팅을 했을 때, 연구소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최소 20시간은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것을 이틀로 나누어서 10시간씩.
우리의 스케줄 조정은 그랬다.
출연진에게도 이 계획은 전달해 뒀는데, 준혁이 형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철야고 20시간이죠, 지난 8일간 체력 저하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여러분이 제대로 촬영에 임하실 수 있을지가…….”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 있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없다.
사실상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다. 더 나은 방법이 당장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하겠다는 거야. 얘들아. 선배님. 나중에 새로 스케줄을 잡아서 할 순 있겠죠. 그렇지만 그래서 하는 촬영이, 과연 오늘만큼 절박하고 제대로 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감정선이 끊길 거고, 우리 감각도 평소로 돌아갈 거예요. 조금 힘들더라도, 이 촬영을 저는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출연진에게 던지는 준혁이 형님의 말은, 절실하기까지 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가 나보다도 더 진지한 듯 보였다.
“음…… 그게…….”
그가 그렇게 진지하니 다른 출연진도 섣불리 거부하지 못했다.
길어지면 한없이 길어지는 <이스케이프>의 촬영인데, 그것을 24시간이라는 타임 리미트를 걸고 진행해야 한다.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난 찬성.”
그때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금완승 감독이었다.
“나야 뭐 촬영 지원인 몸이지만, 출연자가 이렇게까지 나와 주면 몸 바쳐 해야지. 안 그러우?”
나를 보며 눈짓한다. 결정하라는 말이었다.
젠장, 그래, 나도 모르겠다.
“만약 여러분이 그러시겠다면, 예, 제작진 설득은 제가 하겠습니다. 엘도라도 설득도요. 철야 작업에 대한 부담도 어떻게든 처리하겠습니다.”
준혁이 형님이 든든하게 쳐다봐 주어, 말에 더욱 힘이 들었다.
출연진을 둘러보며 나는 말했다.
“<이스케이프> 마지막 촬영입니다. 여러분, 내일 오전까지 한 번만 더 고생해 주시겠습니까.”
“…….”
“…….”
잠깐 대기실에 정적이 흘렀다.
심장 소리, 눈 마주치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정적이었다.
그러다,
“오케이, 콜! 한번 해 보죠 뭐!”
손을 번쩍 든 것은 아온이었다.
“곡 작업하면서도 맨날 밤새는데, 오늘이라고 못할 거 있나요 뭐. 안 그래요, 지운 씨?”
“어, 그, 어…… 예, 그렇죠.”
아무래도 박지운은 기세에 밀린 듯하고, 백종현도 처연한 눈웃음을 지었다.
“형님이 이렇게 나오시면……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격투기 하면서 만든 체력이 있습니다.”
변정훈도, 다른 출연진도 모두 흐름을 타고 오케이를 내려주었다.
준혁이 형님이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보았다.
“우리 뜻은 모였고, 이제 남은 건 대한이 네 몫이다.”
“후우. 알겠습니다. 우선 촬영 스탠바이해 주세요.”
나는 분연히 일어나, 대기실을 박차고 나갔다.
10분 뒤.
“마지막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이스케이프> 시즌1 최종 에피소드 ‘연구소’의 촬영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