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이스케이프>
『“잠깐, 잠깐만 멈춰 봐.”
“왜요, 뭐 있어요?”
“이거 뭐야, 사람 손인데……?”
“젠장, 가까운 데 좀비 있다는 거 아냐?”』
모니터 안에서 네 명의 사람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흙 속에 묻혀 있는 앙상한 사람의 손.
조금 흙을 걷어내자 곧 팔과 어깨까지 드러났다.
『“진짜네. 좀비가 주변에 있다는 소리 아냐?”
“여기 미로 안에 있다는 거예요? 이것도 살아 움직이는 거 아냐?”
“우리 지금 뭐 있지? 지도 두 조각 더 있어야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 텐데.”
“그 안에 좀비랑 마주치지 않길 바라야…….”』
모형이지만 미술팀의 역작인 시체를 보고 그들이 분위기를 살린다.
베테랑 배우인 준혁이 형님과 연기력 좋은 백종현이 끼어 있으니, 역시 금방 분위기가 잡혔다.
“좀 전까진 소풍 분위기였는데 말이야.”
“덕분에 웃긴 장면 몇 개 찍혔고 좋네요.”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상황실에서, 나를 비롯한 제작진은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체크를 하고 있었다.
좀비가 나오지만 어쨌든 예능은 예능이라 웃긴 장면은 필요한데, 거기에 대한 합이 참 좋은 4명이었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잘도 저 네 명으로 조가 짜였단 말이야.”
준혁이 형님이 이끌고 있는 이 조가 나뉜 것은 제작진의 의도가 아니다.
애초에 촬영이 시작되면 제작진의 관여가 거의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 미로에 들어올 때 문이 닫히면서 자연스레 나뉜 조합이다.
“다른 조는 어때요.”
그쪽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던 우철민 PD가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보였다.
“지금까진 별다른 문제 없어. 히든피스도 제대로 찾아냈고…….”
“어, 또 찾았다.”
뒤쪽에서 스크립트를 비교하고 있던 민희가 손을 들어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번 방송에서 ‘히든피스’라고 이름 붙인 힌트들이 있는데, 이는 방탈출 요소를 위한 단서들이다.
그 히든피스를 또 하나 찾아낸 아온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방방 뛰고, 그 옆에서 박지운이 좀비들 나타난다고 말리고 다른 사람들이 웃고, 그런 모습들이 거치 카메라에 기록됐다.
『“찾았다! 찾았다고!”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봐.”
“좀비 나타난다고요!”』
다행히 다른 모니터에 비추어지는 좀비들, 엑스트라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방향을 감지하지 못해서 배회만 하고 있었다.
『“아, 오늘 밥값 다 했다. 그쵸?”
“밥값이라기엔 너무 싸지 않나…….”
“헐, 너무하시네. 아직 힌트 하나 못 찾은 정훈 씨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거든요?”
“팩트로도 때리지 말란 말, 못 들었어요?”』
아온이 속한 조는 또 그녀다운 발랄함에 이끌려 모두가 화기애애했다. 이쪽도 이쪽대로 매우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이다.
“아온이가 진짜 생각보다 잘하네. 방탈출 카페도 한 번도 간 적 없다던데.”
민희가 감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미로를 헤매기 시작한 3시간 동안, 아온이 절반에 가까운 힌트를 찾아냈으니까.
큐브 형식이 미로에 접목되어 있어서 매번 다음 칸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데, 아온은 직감적으로 그 히든피스들을 찾아냈다.
“그래도 결국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건 지운이나 다른 사람들이지만.”
박주영 선배의 말대로, 아온이 찾아낸 히든피스를 토대로 수수께끼를 풀어 일행을 이끄는 건 박지운의 확률이 높았다.
역할 분담이 확실한 조였다.
그렇게 다시 세 시간 정도 미로를 헤매는 시간이 지나갔다.
놀랍게도, 2개 조로 나뉘어서 미로를 나아가는 속도가 양쪽이 비슷했다.
“대본으로 짜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정말.”
거의 동시에 마지막 통로로 향하는 두 개의 문을 여는 사람들.
『“악! 오빠들!”
“선배님!”
“아니 이게 몇 시간 만입니까!”』
다들 낡은 목조 미로에서 방방 뛰면서 즐거워하는 장면을 한동안 담고서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문 여세요.”
신호를 들은 스태프가 조작을 하자, 그들이 만남을 가지고 있는 복도에서 멀지 않은 방들의 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좀비들이 소리를 들었다.
『“크에에에에!”
“카으흐으윽!”』
실감 나는 연기를 하면서 좀비들이 우르르 소리가 나는 마지막 복도로 달려 나간다.
수십 명의 좀비가 이뤄내는 장관에 내가 미소를 짓고 있자,
“우와, 잔인한 녀석.”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이 전부 저렇게 웃던데.”
“이게 우리 메인 PD라니…….”
박주영 선배와 우철민 PD, 민희까지 각자 말을 거들었다.
『“꺄악! 온다! 좀비가 와요!”
“빨리 문! 문!”
“이것도 잠겼어!”
“히든피스! 가져온 거 다 꺼내 봐요! 마지막 비밀번호가 있다고 했어!”』
좀비들의 소리를 듣고 마지막 문 앞에서 분투를 하는 출연진들.
그것을 보고 사악하게 웃는 나.
그 모습이 메이킹용 카메라에 다 담기고 있었기에, 나는 내 스스로도 역할에 심취해서 더욱 진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야, 그만해…….”
“너무 카메라 의식하는 거 아니야?”
선배와 민희의 한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는 사이, 출연진이 드디어 마지막 문을 여는 비밀번호를 찾아냈다.
『“열렸다!”
“나가, 빨리! 빨리!”
“다 나왔지?! 문 닫아, 문!”
“으악! 온다! 와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후,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면서 닫히고.
좀비들이 철문에 우르르 붙어 크아아악, 크에에엑 소리를 지르는 장면까지 이어진 뒤, 출연진이 철문 밖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직 안 끝났어. 이 방에 연구소로 가는 힌트가 있을 거야.”
“맞아요. 빨리 찾아보죠, 우리.”』
준혁이 형님에게 미리 맡겨 둔 대사가 이루어진 뒤, 철문 밖에 마련된 방에서 마지막 수색이 이어졌다.
그들은 곧 몇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 연구소 건설을 담당했던 캐릭터의 창고 위치를 찾아냈다.
이다음으로, 한강변에 빌려둔 창고로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거기서 연구소로 이어져 최종 에피소드가 촬영될 예정이다.
『“가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밖에 또 뭐가 있을지 무섭네요.”
“그래도, 가야지.”』
정해진 대사를 처리하고,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가는 출연진.
그것으로 오늘의 촬영이 끝났다.
“컷! 고생하셨습니다.”
무전기로 내가 촬영 끝을 알리는 순간, 모니터 너머의 출연진들이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상황실에서 나가서 그들에게 가자 아온이 벌떡 일어나 내가 손가락질해 왔다.
“왔다! 좀비 보스가 나타났어요!”
“……저는 좀비 아닙니다.”
“좀비를 만든 장본인이잖아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요!”
준혁이 형님과 박지운, 백종현 등. 나를 아는 사람들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물며 민희나 다른 PD들마저.
“아, 예. 죄송합니다. 내가 다 악당이지!”
“그걸 이제 알았어요?!”
아온이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대는 통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다들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다면야 차라리 다행이지.
나는 최대한 흉악하게 웃어 주었다. 메이킹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내일도 고생이실 텐데, 얼른 다들 들어가셔서 쉬십시오.”
“아이고…… 이걸 정말 5일을 더 해야 하다니…….”
아온이 허리를 두드리면서 현장을 떠나가는 것을, 다른 나이 있는 중견 배우가 웃으면서 따라갔다.
“아온 양, 얼른 가서 쉬어요. 오늘 고생했어요.”
“아니에요, 선배님이 고생하셨죠. 아까 넘어진 데는 괜찮으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다들 고생하는 출연진이었지만, 덕분에 다들 끈끈한 정이 생긴 것 같았다.
본래라면 공식 촬영일을 정해 놓고 매주, 혹은 격주로 촬영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것은 TV 방송일 경우고, <이스케이프>는 OTT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굳이 그런 촬영 스케줄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애초에 출연진의 스케줄을 조정하여, 열흘간 모든 분량을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반 예능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는 내용이다 보니 그편이 훨씬 더 출연진의 몰입도 쉬울 거라는 계산이었다.
“숙소는 매니저분들께 공유해 뒀습니다! 가시면 식사도 마련되어 있을 테니 도착하는 대로 알려주세요!”
떠나가는 출연진들에게 소리치는 이는, 얼마 전 인턴으로 출근을 시작한 신입 PD 전유리.
<이스케이프> 촬영부터 합류했는데, 처음 판단대로 곧잘 일을 해 주고 있었다.
“유리 씨, 유리 씨도 정리하고 들어가세요.”
내가 다가가서 말하자 그녀는 움찔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정리 돕겠습니다!”
“유리 씨는 인턴입니다. 인턴에게는 정해진 시간만 일 시키는 게 우리 룰이에요. 곧 끝나니까 빨리 들어가세요.”
나는 냉정해 보일 정도로 짧게 끊었다. 전유리는 눈에 띄게 기가 죽더니 알겠습니다, 하고 힘없이 터벅터벅 떠났다.
“의욕 있어서 좋아 뵈네.”
“아, 선배 보기도 그렇죠? 잘 뽑은 거 같습니다.”
“가르칠 맛도 나고 말야. 쟤 <이스케이프> 끝나면 내가 데리고 가도 되지?”
박주영 선배가 <V.I.P> 팀에 욕심을 냈다.
데려가서 제대로 일을 가르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지환이를 떠올리면서 전유리에게 행운을 빌어 주었다.
출연진들이 호텔로 떠나고, 인턴과 엑스트라들도 돌려보내고, 남은 제작진이 촬영지를 정리하는 동안 민희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왔다.
“기사 떴어.”
어떤 기사인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민준기 기자에게 오늘 올려달라고 부탁했던 기사.
PD들이 모여서 각자 폰으로 기사를 확인했다.
“음, 역시 출연진 발표가 나니까 효과가 좋네.”
“원하던 바죠. 후속 기사도 준비되어 있으니까, 아마 촬영 끝날 때까지 계속 화제성을 가져갈 겁니다.”
내 말에 다들 고개만 끄덕였다. 내 방식에 이제 다들 신뢰를 보내주는 것이다.
“그래도 뭐랄까, 안 좋은 이야기도 있어.”
민희가 폰을 조작해 덧글 하나를 확대했다.
『―출연진에 최효명 없는 거 보니 강대한도 약발 다 된 거 아님?ㅋㅋㅋ 제일 친할 텐데 싸웠나?ㅋㅋㅋ』
평범한 안티 코멘트였지만, 나름 핵심을 건드리기도 하는 덧글이었다.
실제로 발표된 출연진에 효명이의 이름은 오르지 않았으니까.
조금 강도 있는 덧글에 다들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아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 주었다.
“어차피 방영되면 다 사라질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방송 잘 만드는 것만 신경 씁시다.”
“그래.”
“예.”
아직 촬영은 5일 정도 남았다.
조금 예정이 어긋나더라도 그사이 별일 없이 촬영을 마치는 게 우리의 1차 목표.
다행히 지금껏 이상 징후는 없으니, 촬영 진행 자체는 절호조였다.
[79%]
촬영 스크립트로 확인한 ‘<이스케이프> 시즌2 제작 계약 체결’에 관한 확률도 거의 80%에 달했다.
나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촬영이 마무리될 시점까지 무난히 90% 근처까지 달성할 수 있을 듯했다.
사건은 촬영 막바지, 연구소 에피소드로 돌입했을 때 일어났다.
9일째 아침.
연구소 세트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내 전화로 박주영 선배의 전화가 걸려왔다.
“예, 선배. 접니다.”
“야, 기사 봤어?”
“기사요? 무슨…….”
이라고 대답하는 사이,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작진, 민준기 기자, 그리고…….
“……경기도청에서 메시지가 왔네요?”
빨리 인터넷 확인하라는 선배의 말에 우선 경기도청 담당자의 메시지를 확인했다가 나는 눈을 부릅떴다.
서둘러 포털로 들어가자, 아침 출근 준비로 확인하지 못한 동안 뜻밖의 기사들이 떠 있었다.
『[공식] 경기도청, 성남 외곽 지역 봉쇄 예정……』
『성남 일대, 방역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