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92화 (192/200)

192화 올스타

<이스케이프>는 엘도라도에서 독점으로 제공하는 콘텐츠다.

TV처럼 시청률을 점칠 수 없고, 전 화 동시 공개라는 특성상 지금까지처럼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기준으로 확률 보기를 사용할 순 없었다.

동시 시청자수라거나 검색 순위라거나, 아무튼 OTT 플랫폼다운 기준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명확하고 간단한 기준을 잡았다.

[‘<이스케이프> 시즌2 제작 계약 체결’의 확률 보기를 사용합니다.]

우리 투자자느님 엘로라도께서 친히 시즌2를 허락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스케이프>가 성공했다는 증명이 되지 않을까.

물론 시청자수나 화제성도 당연히 잡아야지.

하지만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확률 설정이 좀 더 명확한 수치를 보여준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하네요.”

촬영 스크립트를 태블릿으로 보던 중에,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세요. 너무 일찍 오셔서 조금 더 기다리셔야 촬영 시작할 겁니다.”

“괜찮아요. 정말 말 그대로 견학하러 온 거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세요.”

라이언 킴이었다.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가벼운 언행과 여유로운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였는데, 지금은 묘하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구경 좀 시켜 드릴까요.”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에서 내가 확인할 순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사이 시간을 내려 하자, 라이언 킴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아직 출연진도 준비 중이고, 스탠바이하려면 아직 시간 있어요.”

나는 그를 이끌고 촬영장 견학을 시작했다. 투자자를 위한 이런 시간쯤이야 얼마든지 내야 하는 게 예의 아닐까.

“이 빌딩 로비를 포함해서 4개 층을 빌렸습니다. 아직 분양 전 건물이라서 인테리어는 저희가 맘대로 할 수 있어서, 얼마 전 배치를 전부 끝냈습니다.”

미술팀과 외주 회사에서 아주 수고를 해 주었다.

덕분에,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를 아주 잘 살린 세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내부를 둘러보고 라이언 킴이 물어왔다.

“설정상으로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이던가요?”

“예. 만약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을 경우 문명이 멸망하는 시간대를 예측한 연구가 있는데, 그 자료를 참고해서 한국에 맞춰 바꿨습니다.”

나는 창문 없이 뚫려 있는 벽 쪽으로 그를 이끌었다.

안전을 위해서 망이 처져 있는데, 나중에는 CG 작업으로 지울 예정이다.

“아래쪽으로 보이는 배경은 전부 CG 작업으로 고칠 거고요, 아래층으로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을 겁니다.”

“엄청 위험해 보이는데요.”

“그래서 출연 계약할 때부터 협의를 해 놨죠.”

아무리 리얼함을 담을 예정이라지만, 예능 방송에서 사고가 나면 안 된다.

해당 장면은 수수께끼보다는 볼거리를 위한 장면이기에, 촬영 전에 확실한 리허설을 거칠 예정이다.

“스턴트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전달은 했는데, 그분이 직접 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출연진 중에, 애초에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 운동선수가 있다.

이종격투기 선수로서 명성도 높은데, 세계적으로 팬도 있어서 어느 정도 의도를 둔 캐스팅이었다.

그는 이번 <이스케이프>를 계기로 세계 팬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길 원했고, 우리가 설명한 장면을 스스로 찍겠다고 나섰다.

“할리우드 배우들은 50이 넘어서도 스스로 액션을 연기하잖습니까. 전 아직 30대인데,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캐스팅을 잘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제대로 살려야겠다는 부담도 들었다.

“안전장치는 충분히 준비해 뒀습니다. 뭐, 아마 내일은 되어야 그 장면을 찍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 빌딩 안에서의 에피소드가 2화 분량이었던가요?”

“예정은요. 하지만 찍어 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를 다시 이끌었다.

“그렇게 몇 단계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여기까지 도달하면, 이제 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정문은 폐쇄되어 있고, 나가려면 옆쪽의 비상구밖에 없는 상황.

그것을 자연스럽게 출연자들이 깨닫게 하기 위한 아이템 배치들이 로비에 이루어져 있었다.

스크립트 전달이야 기본으로 되어 있지만, 자세한 수수께끼는 출연진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 전제.

스턴트 같은 장면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리얼하게 기록하는 것이 이번 촬영의 목표다.

“이거 정말…… 예상은 했지만 꽤 어려운 촬영일 것 같은데요. 오늘분 촬영이 오늘 안에 끝나긴 할까요?”

“새벽까지도 가겠죠. 밤을 샐 수도 있고. 조절은 하겠지만, 최대한 관여 없이 갈 생각입니다.”

“새벽 촬영이라니. 미국이라면 쉽게 오케이되지 않을 계획이네요.”

그가 짐짓 굳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너무 무리한 촬영을 진행하시는 건 아닐까요. 저희 계약 조건에 법을 준수한다는 사항도 있을 텐데.”

“저도 무작정 괜찮다는 건 아닙니다만…… 문제 생길 일은 만들지 않을 겁니다. 좋은 방송으로도 보답할 거고요. 지켜봐 주십시오.”

지금은 단단하게 그렇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방수정 PD에게 들어서 미국과 한국의 방송 제작 환경이 다르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언젠간 우리도 그렇게 따라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가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둘 때다.

라이언 킴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좀 보다 갈게요.”

“그러세요.”

내 안내가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우철민 PD가 무전기로 연락을 해 왔다.

“스탠바이 완료했어.”

“알겠습니다. 올라갈게요.”

라이언 킴을 데리고 다시 올라갔다.

상황실 앞에는 제작진이 모여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배치와 동선을 확인한 다음에, 드디어 출연진을 불러냈다.

한 명씩 대기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피를 좀 더 묻혀야 할 것 같은데, 네가 보기엔 어때?”

늘씬한 체형에 찢어진 와이셔츠 차림의 준혁이 형님이, 볼을 흘러내리는 가짜 피를 가리키며 묻는다.

“저도 이게 잘 어울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좀 더 찢을까요.”

그 옆에서 박지운이 반쯤 찢어진 티셔츠를 들어 올려 보인다.

“어머, 지운 씨. 거기서 더 찢으면 시청 등급 올라가지 않을까요?”

이제는 빨간 머리가 된 아온이 어느새 박지운과 친해져 농담을 던진다.

“등급 올라간 만큼 사람들은 더 볼 테니까 괜찮지 않을까. 형, 한 번 더 찢어 봐.”

눈웃음을 치며 농담에 맞장구치는 백종현까지.

그 옆으로 스턴트를 담당해 줄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변동안과 중년 배우, 가수 등.

그동안 나와 방송을 찍어 온, 혹은 AGD 앱이 새로이 고른 이들이 모두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이구, 이게 예능이야, 영화야. 이 사람들이 다 어디서 이렇게 모였대, 그랴.”

금완승 감독이 웃음기 섞인 말투로 이야기해서, 모두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베스트 멤버네요.”

옆에서 라이언 킴이 그들을 보고는 감탄을 살짝 흘렸다.

출연진, 제작진을 꾸미면서 나는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역량, 모든 인맥, 모든 힘을 쏟고자 했다.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입봉한 우철민 PD, <V.I.P> 시즌2 기획 중간에 도와줄 박주영 선배, <미션 트립> 촬영이 없는 날 달려와 줄 방수정 PD. 거기에 드라마 대본까지 쓴 경험을 살리고 있는 민희도…….

이 방송에는, <이스케이프>에는 예능 PD 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몇 년간의 내 모든 인연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모여 있는 모습만 봐도 나는 든든했다.

“여기에 효명이도 있다면 딱 좋은데 말이야.”

준혁이 형님이 나와 비슷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게요.”

나도 물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박수를 한 번 쳐 그들의 시선을 모았다.

제작진, 출연진, 모든 스태프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였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저희에게도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 될 방송이지 않을까 합니다. 부디 아무 일 없이, 모두 몸 건강히, 즐겁게 촬영이 끝나면 좋겠습니다. 도와주실 거죠.”

“그럼요!”

“물론입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그들에게 웃어 주고, 나는 다시 말했다.

“자, 그럼…… 좀비 탈출 예능 <이스케이프> 첫 촬영을 시작해 볼까요?”

우철민 PD를 보았다. 그가 확성기를 들어 올렸다.

“<이스케이프> 첫째 날 촬영, 시작합니다!”

* * *

『<포토타임>좀비 탈출 예능 ‘이스케이프’ 촬영 시작!』

『‘이스케이프’ 촬영 시작…… 엄중 보안 속 열띤 촬영 현장』

『관계자 스포일러 경계령―엘도라도 독점작 ‘이스케이프’!』

<이스케이프>가 촬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따로 보도자료를 돌리지 않아도 포털을 수놓았다.

그렇지만 아이윌과 엘도라도가 협력하여 보안에 신경을 썼기에, 촬영 현장을 찍는 파파라치들이나 기자들이 건진 사진은 거의 없었다.

『―촬영현장 사진이라면서 입구만 보이는데욬ㅋㅋㅋ

―망원렌즈 자랑사진임? 지상에서 10층 높이를 찍어봤자 뭐가 보여 이게.....

―너무 정보 안 푸는 거 아닌가 출연진도 안 가르쳐주는 게 어딨어-_;』

앞서 나간 보도자료에도 자세한 출연진, 스토리 구조 등은 절대 밝히지 않았기에, 기다리는 네티즌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경 쓴다고 해도 모든 정보가 새지 않도록 막을 순 없었다.

한국 예능계에서는 찾기 힘들 정도의 스케일과 투자가 만들어 낸 방송이다 보니 그만큼 관여한 사람도 많았고, 엑스트라도 많고, 때문에 원치 않게 정보가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녔다.

『나님 어제 이스케이프 촬영현장 봄

―우리 집이 성남 쪽이거든

어제 학원 갔다가 늦게 집에 오는데

야밤에 뭔가 환하게 불 켜진 곳이 있는 거야

원래 거기 뭐 짓는다 해서 공터였는데 뭔가 촬영하나 했지

근데 지나가는 사람이 복장이 희한하네? 막 찢어지고 얼굴은 허옇고 피칠도 하고 막 그럼

그래서 그쪽으로 가보려 햇더니 스태프인 사람이 막아서 가진 못했는데

좀 보다 보니까 피칠한 사람이 십수 명이 막 지나가는 거야

아무리 봐도 좀비 분장이었는데 이스케이프밖에 없지 않아?

(사진1)

(사진2)

―캬아 성남에서 찍는다고 들었던 듯 물론 뇌피셜임

―촬영장 엄청 보호한다던데 촬영장은 못 봄?

└못 봄ㅇㅇ 연예인 밴 같은 거 엄청 많긴 하던데

―좀비물이면 지금 영화도 뭔가 있지 않나?

└마지막제국 그건 일제강점기 배경이라서 아닐 듯ㅇㅇ

―이정도면 킹리적갓심 ㅇㅈ』

촬영장이나 엑스트라들 사진이 찍혀서 커뮤니티와 SNS를 돌아다니고, 출연진과 내용에 대해 온갖 궁예 글이 돌아다녔다.

『아이윌 측 ‘이스케이프 현장 사진 촬영 자제해 달라’ 요청……』

『‘이스케이프’의 비밀 마케팅에 대해서……』

『‘촬영 순조롭다’ 아이윌 관계자 인터뷰』

촬영에 대해, 방송에 대해 많은 정보를 풀지 않은 효과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오 이스케이프 언제 시작하냐 그래서

―제발 좀 뭐라도 풀어주면 안 되나 이렇게 파파라치 샷도 안 나오는 드라마는 처음이다

└드라마 아니고 예능인데욬ㅋㅋㅋ

└아 그렇지(머쓱타드)

―좀비 방탈출이라더니 그 외에는 왜 아무것도 안 알려주냐 강대한 스탈 아니자나』

사실상 촬영이 끝나야 티저든 뭐든 떡밥이 던져질 텐데, <이스케이프>는 그 이례적인 시도로 인해 시청자들이 벌써부터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강대한을 아는 시청자들은 그가 방송 전까지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떡밥을 던지는지 익숙한데, 촬영 마무리도 안 된 지금부터 그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에 응하듯, 민준기 기자의 이름을 단 기사가 어느 날 홀연히 포털에 올라왔다.

『‘이스케이프’ 베일에 쌓였던 출연진 발표!―류준혁 박지운 백종현 아온 포함』

『‘강대한 사단’ 뭉치다! ‘이스케이프’ 제작진 명단 입수!』

그동안 단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던 출연진과 제작진의 이름이 기사 형태로 흘러나왔다.

민준기라면 그동안 강대한 라인이라고도 불렸던 기자.

그의 기사라면 신뢰도가 하늘로 솟구친다.

기사를 읽고 출연진을 확인한 네티즌들이 덧글에서 날뛰었다.

『―엌ㅋㅋㅋㅋㅋ강대한 그동안 방송 찍은 사람 다 끌고 왓닼ㅋㅋㅋㅋ

―류준혁에 박지운엨ㅋㅋㅋ 아온은 언커싱이던가? 또 엄청 시끄럽겠네 진짴ㅋㅋㅋ

―이야 이쯤 되면 강대한 사단 올스타인 듯ㅎㅎㅎ 새 멤버도 보이고』

그렇게 흥분하던 네티즌의 덧글이었지만, 모두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뭐야 왜 최효명 없어?

―명리더는 안 온 거임?』

출연진 리스트에는 강대한 사단이라면 결코 빠질 수 없을 이름, 최효명이 빠져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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