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의외의 해법
『‘당잠사’ 마지막 시즌이 될까?』
『방수정 PD의 후계자 권민헌 PD, ‘당잠사’ 향후 계획에 대해……』
‘당잠사’ 마지막 시즌이 방영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마지막 시즌인가 하는 건에 대해서는 설왕설래 이야기가 많았다.
마지막 시즌답게 최적의 출연진을 모두 모으자는 취지가 있었으나, 해외 투어를 성공적으로 돌고 있는 엑시트의 최효명은 결국 합류하지 못했다.
거기다 NBS 내부에서 제작 초반부터 삐걱댄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방영 시작부터 사실상 많은 논란이 오가기도 했다.
다행히, 시청률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당잠사’ 통합 시청률 6%대 유지』
이름값에, 권민헌의 노력도 있어서 <당잠사>는 기존 목표치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그래서 권민헌은 다시 한번 전략기획실과 미팅을 가졌다.
전략기획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조용한 복도를 기대했는데 그 앞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정 팀장님?”
“어, 권 팀장. 이사님 뵈러 가?”
정민우 팀장이었다.
서인하 예능국장의 퇴사 이후로, 예능국의 보고는 주로 그가 담당하고 있었다.
왕이범 이사를 보고 오는 듯한 그에게, 권민헌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표 실장 보러 갑니다.”
“아, 전략기획실? ……마지막 시즌 다시 설득하게?”
“예. 원하는 시청률을 이뤘으니까요. 한 번 더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통할까, 그게. 시청률 잘 나왔다고 무조건 다음 시즌 갈 것 같은데.”
정민우가 스윽 전략기획실 쪽을 쳐다보는 시늉을 하고는 어둡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돕지도 못하고.”
“괜찮습니다. 제 일인데요. 이사님 보고는 잘되셨습니까.”
“그렇지 뭐. 본인 뜻이 워낙 명확하니까. 이사님도 이해는 하시고.”
“후임을 찾아야겠네요.”
“권 팀장 쪽에서 괜찮은 PD 있으면 추천해 줘.”
“알겠습니다.”
두 사람 다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정민우보다 권민헌이 먼저 들었기에, 정민우의 일이 늘어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비켜섰다.
“권 팀장.”
문이 닫히기 전 정민우가 그를 쳐다보았다.
“권 팀장은 NBS에서 오래 일할 거지?”
“팀장님은요?”
“나야 뭐, 처자식이 있으니까. 안정적인 게 낫지. 머리는 아파도.”
그 말에 권민헌은 묘하게 쓸쓸한 웃음을 띠었다.
“걱정 마세요. 저도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갔다.
패널의 숫자를 쳐다보고서, 권민헌은 몸을 돌려 전략기획실 쪽을 보았다.
“……오래 일하고 싶긴 합니다만…… 어떨까요.”
그것 자체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오늘의 미팅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는 일.
곧 NBS를 나가게 될 후배 한 명을 떠올리며, 권민헌도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 * *
[엑시트최효명: 김치찌개가 그리워요]
오전부터 대뜸 날아온 메시지에, 나는 기획안을 들여다보던 눈을 돌렸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맞은편에서 여자 PD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서,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우와, 세계를 석권 중이신 엑시트 리더께서 이런 사소한 메시지를 보내시는 거예요?”
“엑시트? 명리더요?”
헉하는 얼굴로 다른 여직원이 눈을 찬란하게 빛냈다. 아, 엑시트 팬이라고 했던가.
나는 차마 효명이의 이미지를 깰 순 없어서, 향수병인가 봅니다 하고 둘러댄 다음 답신했다.
[들어오면 김치찌개 사줄게 통돼지로]
[엑시트최효명: 아자(만세)]
[엑시트최효명: 이 메시지 캡처해놨음ㅇㅇ 무르기 없기요ㅇㅇ]
낄낄 웃으면서 한동안 효명이와의 메시지를 이어나갔다.
현재 해외투어를 돌고 있는 엑시트는 날이 갈수록 그 위상이 올라가고 있었다.
일찍이 케이팝 보이그룹이 빌보드 시장을 석권하고 전 세계를 휩쓴 전적이 있는데, 그 후발 주자로서 그에 근접한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엑시트 독일 베를린 공연, 3만 명 운집!』
『중동 시장에서도 요청이 온다! 엑시트 해외투어 연장 가능성 有!』
『엑시트 디지털 싱글, 명리더 작곡―창보컬 작사 ‘어나더 스카이’ 음원 차트 싹쓸이!』
공연 한 번 할 때마다 세계 음악시장이 들썩이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그 몸값이 점점 올라가고, 그만큼 스케줄도 더 바빠졌다.
벌써 몇 개월째 해외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멤버 다섯 명 전원 군 미칠 상태라 법령상 해외 출국 횟수에 제한이 있는데, 그 기간을 풀로 활용하면서 벌써 반년 넘게 해외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진짜 다음에 들어오면 한번보자 너 우리회사도 한번도 안와봤잖아]
[엑시트최효명: 아마 조만간 한번 들어갈것같애요 일정 나오면 알려줄게요]
바쁜 것도 아주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게 참 씁쓸하다. 몸 건강은 챙기는지.
그래도,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방송 기획부터 떠오르는 것이 참, 나도 나다.
대화를 끝내고, 시즌2의 기획안을 열었다.
허소윤 CP와의 미팅을 통해서 일단 출연진 등의 교체도 논의 중이었다.
이중에 과연 엑시트가 들어간다면…….
[94%]
어이구. 확률 확 뛰는 거 봐라.
시즌1 시청률 달성 확률을 기획안 단계에서 94%까지 찍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엑시트의 힘이 역시 대단하긴 대단하다. AGD 앱도 그렇게 판단할 만큼.
일단 이름만 올려두고, 옆에는 괄호 쳐서 ‘미정’이라고 빨간 글씨로 적어 두었다.
엑시트는 빼고 생각해야겠지.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건이 있으니까.
“메인 PD라…….”
아직 메인 PD란이 비어 있다.
시즌2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확률이 크게 변동할 것이 분명한데, 무서워서 내 이름을 넣지는 못했다.
설사 100% 달성을 한다고 해도 쓴맛만 느낄 테니까.
“후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뭐해. 시간 됐어.”
서인하 선배였다. 수첩을 챙기고 일어나 있는 것을 보고 서둘러 시간을 확인했다.
“아, 죄송합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노트북을 챙겨 들고 그를 따라 일어났다.
오늘은, 일전에 서인하 선배가 언급했던 경력직 PD를 만나는 날이었다.
누구인지 오늘까지 안 알려줘서 궁금증만 안고 있었는데, 오늘 내 의견에 따라 채용을 결정한다고 해서 나는 그러자고 했다.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계속 숨기시니 의심스럽습니다.”
“만나 보면 안다니까. 너도 얼굴은 알 거야.”
NBS에서 일할 때 스쳐 지나간 사람인가.
그런 의문만 가지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대표님. 약속하신 분이라고 하는데요.”
여직원이 회의실 문을 열고 그렇게 말해서, 나는 옷매무새를 바로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오라고 해.”
여직원이 묵례와 함께 한 사람을 회의실로 들여보냈다.
고개를 돌렸다가,
“……선배?”
“여어, 강촉새 씨. 오랜만이야.”
느긋하게 손을 들어 보이는 박주영 선배를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박주영 선배.
내 맞선임으로 PD 일을 가르쳐 준 장본인.
경력직 PD를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그였다.
그런데, NBS에서 주말 레귤러 예능을 하고 있는 사람을 데려오자고 차마 이야기할 순 없어서 참았는데.
그런 그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이거, 얼굴 보니 숨긴 보람이 있네요. 안 그렇습니까, 대표님.”
“그러게 말이다. 대한이 이런 얼굴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작당한 두 사람은 내 얼굴을 보고 낄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좀 전과는 다른 두통이 느껴지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요? 아니 잠깐. NBS는 어떻게 하고요? <달리는 도시인>은?”
“야야, 한 가지만 묻자. 면접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질문에 답할 시간은 줘야지.”
“네. 그렇긴…… 그렇긴 한데…….”
내가 또 말을 못 하자, 박주영 선배는 한 번 더 낄낄대고는 말했다.
“국장님이…… 아니,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어. NBS에서 내가 힘들어한다는 걸 정 팀장님한테 들으셨다고. 합류할 생각 있냐고 하셔서, 아주 흔쾌히 오케이 했지.”
“정 팀장님도…… 아신다고요?”
“정 팀장님은 물론 이사님 결재까지 떨어졌으니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겠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차마 내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나는 두 선배를 번갈아 보다가, 또 다시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래, 당황스럽긴 해도 나쁜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가장 최선의 상황.
내가 원하던 것을, 서인하 선배가 대신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선배, 아이윌로 와 주시는 걸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네가 오케이하면, 이지.”
박주영 선배가 죽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아이윌 간판 PD고, 팀장 역할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방 PD님도 너한테 결재받는다며.”
“그건 그냥 형식적인 겁니다.”
“그래, 형식이라고 해도 형식이 중요한 거지. 요는, 어찌 됐든 네가 오케이를 해야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 않습니까, 대표님?”
서인하 선배가 긍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서 나를 보았다.
“어떠냐, 대한아. 내가 생각한 최선의 인선을 해 온 거야. 박주영, 능력 좋고 사람도 잘 가르치지. 난 좋은 것 같은데, 넌?”
아니,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고 나한테 의견을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환영이죠.”
그 말밖에 할 말이 더 있을까.
난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진심이 우러나온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
“어휴. 저놈 웃는 거 보니 죽어라 일 시킬 것 같은데. 그럴 때는 좀 말려 주십쇼, 대표님.”
“글쎄……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야.”
은근한 서인하 선배의 눈짓에, 나는 이 자리가 최종면접만을 위한 자리가 아님을 눈치챘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노트북을 두들겨 기획안을 찾아냈다.
노트북을 돌려 박주영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자, 오시면 하실 일입니다.”
『 시즌2 진행 기획안』
“어, 아니, 잠깐. 벌써 할 일 정해 두고 있었던 거야?”
“는 보셨죠? 시즌2를 채널T랑 진행하기로 했는데, 일단 지금까지 기획이…….”
“야, 잠깐! 스톱! 이건 이야기 못 들었다고!”
“그럼 지금 들으시면 되죠. 당장 내일부터 나와서 하셔도 될 만큼 진행해 놨습니다.”
박주영 선배가, 몇 분 전에 내가 지었던 당황해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나는 아주 통 크게 웃었다.
그 후, 두 손을 든 박주영 선배에게 기획안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고서, 나는 놓치지 않고 메인 PD란을 채워 넣었다.
『메인 PD: 박주영(확정)』
그 순간, 확률 상승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100%]
박주영 선배의 합류가 완전한 호재로, 확률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시즌2 기획안이, 기획안 단계에서 시즌1 시청률을 달성할 확률 100%에 달한 것이다.
됐다! 드디어!
두 사람 때문에 직접 티를 내진 못했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환희가 차올랐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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