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긍정적, 부정적
[41%]
몇 번을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 확률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하다못해 AGD 앱 확률 보기를 종료하고, 재차 모니터를 노려보면서 다시 확인했다.
[41%]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했다.
41%라니.
이게 말이 되나?
GP 매튜 본드의 반응도 괜찮고, 계약 세부 조항만 확정하면 되는 이 시기에, 계약 틀어질 확률이 59%나 된다고?
눈앞이 아찔해져서 몇 번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민희가 쳐다봤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노려보고 있는 모니터를 한번 보고, 나를 다시 보는 그녀의 시선에 정신을 차렸다.
“뭐야, 정말 불안한 거야? 사실 계약이 잘 안 되는 중이라거나? 방 PD님도, 대표님도 별말 없으시던데.”
“그……런 건 아닌데.”
“그런데 불안하게 왜 그래. 프러포즈 물리려는 건 아니지?”
그녀가 짓궂게 핀잔을 줘서, 아하하하 하고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민희야, 네가 한 말처럼, 어쩌면 계약이 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차마 헛소리를 할 순 없었다.
이 확률은 나만 보이는 것이다.
나만 보이는 이 확률의 불안함을 설명할 방도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열심히 표정근을 움직여서 활짝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럴 리가. 걱정 마. 성공시킬 거니까.”
“그래, 그래야지.”
그녀가 맘에 든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고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TV를 켜는 그녀의 손길을 힐끔 보고서, 나는 노트북을 내 무릎 위로 끌어왔다.
그래, AGD 앱이 그렇다고 한들, 아직 시간이 있다.
뭐가 문제인지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알아봐야겠어.
민희를 보내고, 주말 동안 기획안을 다시 점검했다.
기획안에는 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컨펌 받을 확률도 90%를 넘었고, 이대로 제작에 들어갈 확률 자체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계약이 성사되어야 가능한 수치.
컨펌을 받아 봤자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 의미 없다.
고민을 하다가, 주말임에도 서인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데이트하고 있는 거 아냐? 웬일이야, 이 시간에.”
“민희는 좀 전에 집에 돌아갔습니다. 통화 가능하십니까.”
“괜찮아. 말해.”
나도 그렇지만 서인하 선배도 회사를 만든 후 집에 제 시간에 들어간 적이 잘 없다.
그런 사람에게 주말에 이런 질문 하는 게 참 못된 일이긴 하지만,
“엘도라도와 계약……이 혹시 틀어질 일이 있을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어조가 돌아왔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헛소리이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서인하 선배가 거실에서 방으로 이동하는 듯한 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일 있냐? 나 혼자 있으니까 이야기해 봐.”
“아뇨, 무슨 일 있는 건 아닌데…….”
강촉새라는 별명에 힘입어, 촉입니다, 하기에는 건이 너무 크다.
이번 엘도라도와의 계약은, 제작 투자비가 못해도 몇십 억이 훨씬 넘어가는 일이다.
내 기획안을 매튜 본드가 진행해 보자고 해서, 최선의 투자비를 상정해 준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계약을 진행해 본 적은, 나도 그렇고 서인하 선배도 없다.
“좀 전에 민희와 이야기를 하다가, 기획안은 잘 나왔는데 계약서 쓰기 전까지는 정말 이루어질지 아닐지 모르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괜히 불안해져서요.”
“웬일로 약한 모습이야, 네가.”
그의 받아침에 나는 쓰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지. 없는데…….”
그도 전파 너머에서 말을 고르는 듯한 낌새를 보였다.
조금 뒤, 서인하 선배가 다시 이야기했다.
“대한아. 지금부터는 대표가 아니라 선배로서 이야기하마.”
“예.”
“넌 잘해 주고 있어.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서인하 선배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이 정도 규모의 일을 다뤄 본 적 없어서 불안할 수도 있지. 그건 얼마든지 이해해. 원래 그런 거야. 불안해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밀고 나가고. 그러다 실패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PD 일이 뭐가 있겠냐, 다 그런 거지.”
“그럴까요…….”
“그런 건데, 너는 지금까지 너무 성공만 해 왔어. 이 건도 네가 밀어붙여서 여기까지 온 건데, 아마도 지금은 그 반동 때문에 네가 오히려 불안해하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이라고 덧붙인 서인하 선배가 진득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숨이 아니라, 앞으로 꺼낼 말을 위한 준비였다.
“불안해하지 마라, 대한아. 네가 우리 회사 기둥이고 중심이라서가 아니라, 넌 잘하고 있으니까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말이야. 알았어?”
“……네, 선배님. 감사합니다.”
말을 듣고 있자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들썩였던 가슴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41%의 확률이 뭐라고.
낮기야 하지. 절반도 안 되는 확률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0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언더커버 싱어> 시절, 현준영 사건이 일어나기 전, 시청률 유지 확률이 10%일 때도 나는 그것을 뒤집었다.
90% 확률을 채워서 100%를 만들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그때에 비해서, 이 상황은 결코 나쁘지 않은 거니까.
“그리고 뭐, 대한아. 엘도라도랑 계약 안 한다고 해서 우리 회사가 망할 것도 아니잖아? 그 방송 못 만든다고 아무도 안 다쳐.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오케이?”
“옙. 알겠습니다.”
나는 한 번 더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메시지로 주말에 괜한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다음에야 소파에 늘어졌다.
“……그래, 59%의 정체를 알아보자고.”
부족 확률 59%.
GP의 긍정적 콜 사인에도 그 정도로 확률이 부족하다면…… 이건 그 윗선의 문제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는 AGD 앱을 열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15,615P/919P]
그동안 방송 만들고 편집하고 기획안을 쓰면서 아이템을 사용했더니, 다시 1,000P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LV1의 아이템을 뭐든 사용하려면 1,000P가 있어야 한다.
아직도 81P가 모자라는 상황.
나는 빨리 주말이 지나가기를 빌었다.
* * *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우철민 PD를 붙잡았다.
“편집합시다.”
“어? 어어어?”
그를 끌고 편집실로 들어가서, 오전 내내 들들 볶아서 9화 편집본의 완성도를 100%까지 끌어 올렸다.
[‘<나인틴스 미스터리> 9화 편집본 완성도’의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현재 적립 포인트/사용 가능 포인트]
[15,637P/941P]
“쳇, 22P밖에 안 주냐.”
“응, 뭐라고……?”
아침부터 오후 시간까지 나한테 들들 볶인 우철민 PD가 뻑뻑한 눈을 비비면서 물어봤지만, 나는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고하셨어요. 10화 편집 들어가면 말해 주세요.”
내 사정 때문에 아침부터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커피 쿠폰을 사서 그에게 보냈다.
“……이런 것보다, 좀 눈 좀 붙였다 나올게.”
그가 수면실로 들어가는 것을 뜨뜻미지근하게 쳐다봐 준 다음, 이번에는 방수정 PD의 작업에 붙었다.
[85%]
[92%]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손쉽게 100%를 달성해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든 포인트를 채우기 위해서 확률 보기를 남발해도 100%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새삼 ‘100%’ 확률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 수 있었다.
세상 일 어떤 것이든 100% 확실한 것은 찾기 힘든 법인데, 그걸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하니 더 힘든 것이다.
“괜찮아?”
내가 지쳐서 의자에 늘어져 있자, 촬영을 위해 나가려던 방수정 PD가 말을 걸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면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나가십니까.”
“아까 회의 때 이야기했잖아.”
“아, 그러셨죠.”
“오늘 내내 딴 생각하는 것 같더니. 정말 괜찮아? 계약 틀어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며.”
난 외부 미팅을 하러 나간 서인하 선배 자리를 흘끗 흘겼다. 하루를 못 참고 그걸 또 방수정 PD에게 이야기한 건가.
“선배는 너 믿고 있는데, 네가 그렇게 헷갈리니까 불안해하시잖아. 그럼 나한테 연락이 오게 돼 있어.”
“그런 시스템인가요.”
“그 시스템을 만든 건 너고.”
방수정 PD가 씨익 웃어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는 뒷머리를 간지럽지도 않은데 긁고서 말했다.
“어제 좀 불안했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의욕에 차 있어서 그런 거라, 좀 죽일게요.”
“그래. 좀 죽여. 그렇게 날 서 있으면 다들 무서워해.”
나는 움찔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대단히 미안해져서 고개를 조아렸다. 여기에 민희가 있었다면 더 미안했을 텐데, 다행히도 그녀는 사전 미팅 때문에 외근 중이었다.
“다녀올게.”
“예. 다녀오세요.”
나와 직원들의 배웅을 받고 촬영하러 나간 방수정 PD의 뒤를 쫓다가, 나는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미안한 건 미안하다 치더라도, 초조함은 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건, 전 세계에서 나밖에 없을 테니까.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기획안을 만지고, 들어온 이력서를 검토하면서 100%를 목표로 했다.
AGD 앱의 설계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영역에 있지만, 그래도 몇 년간의 경험 동안 쌓인 내 안의 데이터가 있다.
최소 20% 이상의 확률 상승을 기록하지 못하면 세 자릿수의 포인트를 얻는 것도 힘들고, 주로 두 자릿수, 여차하면 한 자릿수의 포인트밖에 얻지 못한다.
큰 폭의 확률 상승을, 내가 고생을 해 가면서 얻어내야 최대한의 보상을 해 주는 시스템.
누가 만들어 냈는지 참 대단한 앱이다.
이 답답함을 토로할 사람도 없고.
나는 탕비실로 가서 커피를 한 잔 타 건물 휴게실로 갔다.
“후우…… 진짜 누구랑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네.”
현준영 사건 때만 해도, 10%의 암울한 확률이었지만 아이템 사용으로 상황을 타도할 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느끼는 이 답답함을 토로할 사람도 없다.
폰을 꺼내서 AGD 앱을 열어 보았다.
전 세계에, 이 앱을 나 말고 또 누군가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느 날 나타난 이 앱이 성공의 길을 열어 주긴 했지만, 이런 날은 그래서 도리어 답답하기도 했다.
차라리 확률을 모른다면 애초부터 이런 고민을 느끼지도 않을 텐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골치 아파하고 있는데, 손안에서 폰이 울렸다.
『라이언 킴』
호랑이신가.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예, 강대한입니다.”
“접니다, 라이언 킴. 통화 가능하신가요?”
“괜찮습니다. 일하다 잠깐 쉬던 중이라. 어쩐 일이실까요.”
타이밍 좋게 걸려온 전화라 움찔했는데, 용건 자체는 별게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요구한 조항을 정리하여 위로 올렸고, 지사장과 재무팀의 결재가 떨어지면 곧바로 계약 체결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말만 들어서는 도저히 틀어질 일이 없어 보였다.
“매니저님,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계약이 거의 막바지이긴 한데…… 설마 이 타이밍에 계약이 어긋나기도 할까요.”
전파 저쪽에서 잠깐 침묵이 있었다.
“음…… 어려운 질문이군요.”
라이언 킴은 조금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이야기했다.
“그럴 수는 있습니다. 이런 일이 다 그렇듯, 사인하기 전까진 알 수 없는 법이죠. 하지만…… 매튜뿐만이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아이윌의 기획안이 평이 좋습니다. 해볼 만한 시도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고요. 그러니, 아마 계약이 틀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그가 덧붙였다.
“저를 믿으세요, 강 PD.”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맘이 놓이네요.”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가 긍정적인 말을 남겨 두었지만, 나는 안심하기가 힘들었다.
폰으로 계약서 파일을 찾아 열었다. PDF 파일이 화면을 뜨고, 그 위로 성사 확률이 떠올랐다.
[41%]
변동이 없는 확률.
지사장 선까지 올라갔음에도 그대로라는 건 과연 긍정적인 일일까, 부정적인 일일까?
B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