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78화 (178/200)

178화 오리지널리티

OTT 플랫폼 업계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 1위 플랫폼인 듀플릭스는 세계적으로 가입 인구가 2억에 달하고, 동영상 플랫폼의 절대 강자라 할 수 있는 미튜브에 이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약 30%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미튜브가 주로 무료인 반면 듀플릭스는 유료 시장임에도 이 정도 점유율인 것은, 그동안 동영상 플랫폼을 대해 온 업계의 시각을 변혁시키기에 충분했다.

엘도라도는 그러한 시장의 확장에 발맞춰 미국에서 시작된 후발 주자다.

북미에서부터 서비스를 시작하여, 지금은 유럽, 아시아 쪽으로 세를 뻗치고 있다.

그런 업체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에 가까웠고, 실제로 진출 발표를 했을 때 국내 관련 주식 시장이 들썩이기도 했다.

“뭐, 아시겠지만 이쪽 업계도 결국 중요한 건 독점 콘텐츠라서요. 콘텐츠를 얼마나 쥐고 있냐가 관건인데, 제가 조금 더 공을 들이는 건 예능, 버라이어티입니다.”

“버라이어티요.”

“드라마나 영화 쪽 투자 물론 적극적으로 검토 중입니다만,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버라이어티 콘텐츠는 듀플릭스 쪽에도 잘 없으니까요.”

라이언 킴이 말하는 바는 어떤 것인지 이해는 되었다.

나야 지금껏 한국 시장, 한국 시청자들만 고려하면서 만들었는데, 그것이 우연히 해외 수출되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맷 수출이고, 그 나라에 맞게 현지화가 되어 제작, 방영된다.

명확하게는 원작 수출일 뿐, 콘텐츠가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라이언 킴이 말하는 바는 달랐다.

독점 콘텐츠를 그대로, 가공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배급하여 히트작을 만들어 내겠다는 말이었다.

세계 1위 기업인 듀플릭스도 하지 못한 위업을 엘도라도가 이루겠다, 그런 야심.

솔직히.

“혹하네요.”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 반응에 라이언 킴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강 PD님의 콘텐츠에서는…… 뭐랄까, 어떠한 ‘오리지널리티’가 느껴집니다.”

“오리지널리티요?”

“한국에도 관찰이다, 오디션이다 하는 유행 포맷이야 있다고 합니다만, 강 PD님은 그중에서도 자신만의 개성과 특성에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하고, 그것을 작품에 살리는…… 그런 오리지널리티를 느꼈습니다.”

듣다 보니 난생처음 듣는 부류의 칭찬이라서 머쓱해졌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요, 이미 충분히 증명 중이시니까 과찬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강 PD님에게 제안을 드리는 이유도 그래서니까요.”

그가 다시 빙긋이 웃었다.

“대중적이면서 개성을 잊지 않은 작품, 그건 드라마나 영화나 상관없이, 어느 분야에서나 가장 어려운 일일 겁니다. 저희는 그런 작품을 현재 찾고 있고, 버라이어티 콘텐츠라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빙긋 웃는 얼굴, 태연한 어조는 분명 가벼웠다.

하지만 난 이제야 눈앞의 라이언 킴의 캐릭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웃는 얼굴과 가벼운 언행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머릿속과 마음속에서는 숱하게 계산이 오가고 있는 남자.

어쩌면 전형적인 미국 교포 같은 저 외양도 다 꾸민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이들처럼 결코 불쾌하게 와 닿지 않는 것은, 그의 시선에 진정성이 충분히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머리 위를 힐끔 보고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당장은 <V.I.P>가 더 급해서요.”

“이해합니다. 저희도 정식 오퍼 전에 말씀드린 거니까, 궁금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명함 있으시죠? 하고 눈을 찡긋거리는 그에게 어색하게 웃어 주는 사이, 허소윤 CP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안해요. 생각보다 좀 늦었네요. 나갈까요?”

황영준 국장은 일 마무리하고 합류하기로 했다 하여 우리는 짐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회의실을 나서면서 라이언 킴과 나 사이에 눈길이 오간 것을 허소윤 CP는 알지 못했다.

식사 자리가 길진 않았다.

다들 바쁘고, 내일 일정도 있고.

그래서 우리는 간단히 술 한 잔씩만 나누고 헤어졌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요, 강 PD. 레귤러화까지 가 보자고.”

시즌2 이야기는 나왔었는데,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레귤러로까지 이야기가 확장되었다.

술기운 때문도 아니고, 레귤러로 가더라도 괜찮은 구성이라는 판단하에 황영준 국장이 꺼낸 이야기지만, 괜히 가슴 한쪽이 뜨끔했다.

“열심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을 해 준 뒤, 대리를 불러 회사로 향했다.

“선배님, 이제 출발했습니다. 아직 회사에 계시죠?”

“그래. 기다리고 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미리 서인하 선배의 위치를 확인했다.

퇴근하려고 했던 그를 붙잡아 두고, 나는 대리 기사를 재촉해 회사에 도착했다.

우철민 PD는 촬영을 나갔고, 다른 직원들도 야근 인원만 남은 상황.

회의실에 앉은 나는 라이언 킴에게 받은 제안을 설명했다.

“엘도라도에서 독점작 제안을 했단 말이지…….”

“정식 오퍼는 차후에 준다고 했습니다. 아마 채널T에서 만난 것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남의 회사니까 그래선 안 됐겠지. 그렇지만 구두로라도 제안을 했다는 건…….”

“예, 진지한 제안 같습니다.”

라이언 킴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확률을 보았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언정 그냥 내 감만 믿기에는 나도 너무 때가 묻었다.

그래서, 라이언 킴의 말을 신뢰해도 될지 확률을 확인했다.

[89%]

놀랍게도 90%에 가까운 확률이 나왔다.

그가 꺼낸 칭찬, 제안이 모두 신뢰성이 높다는 AGD 앱의 판단이었다.

라이언 킴은 엘도라도 한국 기사의 치프 매니저로서, 그의 위로는 지사장과 제너럴 매니저 정도라고 했다.

한국 사업에 관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을 이만큼 신뢰할 수 있다면, 제안 자체가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였다.

서인하 선배와 나는 이 제안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도라도에 관한 정보는 나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상 방송사들이나 다른 회사들을 자주 다니는 서인하 선배의 정보가 더 많았다.

“엘도라도는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쪽에 진출하려고 하는 거야. 그 교두보로 한국을 정한 거고. 그래서 투자액도 네 자릿수에 달한다고 해.”

“천억대란 말이죠.”

“그 이상이라는 말이지.”

이미 방송사들에 접촉 중이기도 하고, 우리 같은 콘텐츠 회사들에도 오퍼를 넣는 중이라 한다.

개중에는 드라마 제작사, 영화 제작사 종류도 다양하다.

내가 <V.I.P>를 만드는 중에도 업계는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서인하 선배가 습관적으로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고민했다.

아이윌의 대표는 어디까지나 서인하 선배.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선배님이 정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네가 언제 그렇게 충직했다고 그래. 그리고,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나에게만 넘기겠다고?”

그가 으르렁거려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엘도라도 같은 세계적 기업에 독점작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만큼의 투자가 들어올 거고, 그것을 우리 회사에서 굴릴 수 있냐 하는 것이 고민의 핵심이다.

“답은 간단하죠.”

하지만 나는 이미 대답을 결정해 두었다.

“잡아야 할 기회입니다.”

AGD 앱으로 확률을 보지 않더라도, 이 기회는 놓쳐선 안 되는 기회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우리 회사가 한 단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데, 잡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민도 되고, 분명 쉬운 길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했다가는 분명 크게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서인하 선배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잠깐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야밤이라 하늘은 어두웠고, 애꿎은 우리 둘의 모습만 반사되어 보였다.

창문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서인하 선배가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가, 눈을 돌려 나를 보았다.

“NBS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제안도 받지 못했겠지?”

“가정하는 게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렇지 않을까요. 방송국 예능팀에 이런 제안을 하진 않을 테니까요.”

엘도라도와 채널T도 콘텐츠 제공 계약을 하는 거지, 독점작 제작 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NBS도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그것을 생각하면, NBS라는 틀에서 나와 대해로 뛰어들었기에 생긴 기회라 할 수 있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아직 준비된 것도 없고 정식 오퍼도 아니니 미리 김칫국 먹을 필요는 없겠지. 조금씩 준비만 해 보자.”

“옙. 알겠습니다.”

나도 단단하게 대답했다.

* * *

『<V.I.P> 5화 모델 유아 편, 시청률 6% 갱신!』

『화려하기만 한 무대 뒤, 런웨이가 아닌 모델의 세상!―<V.I.P> 6화 분석』

<V.I.P>의 촬영이 순조로운 만큼, 시청률 상승도 순조로웠다.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허소윤 CP가 희망했던 7% 선은 충분히 달성 가능해 보였다.

시청률만이 아니라 방송 직후에는 해당 출연자가 새로이 조명되고, 우리가 평소 알지 못한 무대 뒤편 스태프의 생활도 기사로 꾸며지는 등 좋은 효과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이 정도면 시즌2는 정말 무난히 오케이 받겠어요.”

“황 국장님은 레귤러 이야기하시던데, 거기까지는 무리인가요.”

“그건 국장님이 본부장님을 어떻게 설득하기 나름이겠죠?”

별로 어렵진 않겠지만, 이라고 뒷말이 숨어 있는 듯한 어조에 나는 피식 웃었다.

거의 매일같이 통화를 하고 있으니 이제 이런 감정선은 손에 잡힐 듯 읽혔다.

그녀는 몇 가지 더 업무 확인을 한 다음에, 전화를 끊기 전 인사치레와 함께 물었다.

“다른 방송들 진행은 어때요. 잘되고 있어요?”

“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려 회의실 쪽을 보았다.

방수정 PD는 입국 후 신변이 정리되는 대로 바로 출근을 했다.

예전 <당잠사> 때가 떠오르는 매서운 기세로 일을 시작하더니, 이제 첫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회의실 안에서 방수정 PD과 서인하 선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벌써 1시간째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나중에 둘 중 한 명이 나오면 물어볼 생각이지만, 사실 짐작되는 바는 있었다.

“방수정 PD님이 아무래도 기획을 이전 걸로 돌리실 건가 봅니다.”

“아. 두 번째 콘셉트로 싸우고 있다고 했나요?”

“예. 한번 고쳤는데, 그 전 것이 더 맘에 든다고 하셔서요. 첫 촬영은 잘 넘어갔는데 두 번째는 힘드네요.”

방수정 PD와 서인하 선배가 그 건으로 몇 번 미팅하는 것을 봐서, 지난번에 허소윤 CP의 조언을 한번 받았다. 그래서 그녀도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뭐…… 어느 쪽 손을 들자면, 난 방 PD님 손을 들겠어요. 현역에서 떨어져 있던 기간이 있긴 해도, 그 짬이 어디 갔을까요.”

“저도 그렇게는 생각합니다만…….”

자세한 촬영 콘셉트를 잡은 것은 어디까지나 메인인 방수정 PD.

그러니 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되지만, 아마 촬영 일정과 진행비 등의 복잡한 문제로 서인하 선배가 반대하고 있을 것이리라.

이전 NBS에서도 자주 보던 풍경에 여기 아이윌에서도 벌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보기 좋다는 건 아니었다.

그때,

“강 PD, 전화 끊으면 좀 들어와 봐.”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서인하 선배가 나를 불렀다.

“부르셔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 파이팅하세요.”

허소윤 CP의 메마른 응원에 힘없이 웃어 주고서 나는 회의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긴 했는데,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싸늘했다. 오늘은 정말 대판 싸우셨나 보네.

“크흠. 제가 필요하신 일인가요.”

“아니면 부르지 않았겠지?”

방수정 PD가 쏘아붙이듯 말했지만 그다지 예전만큼 무섭지 않은 건 친해졌기 때문일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아직 콘셉트 때문에 다투고 계신 건가요.”

“맞아. 대한이 네가 보기엔 어때. 원래 안으로 가는 것, 수정안으로 가는 것. 편의상 1번, 2번이라고 하자. 어때?”

1번은 금액별 코스를 겨루는 콘셉트다. 럭셔리한 코스와, 상대적으로 빈곤한 코스를 비교하여 어느 쪽이 가성비가 좋은지 따지는 콘셉트.

2번은 자동차 여행과 기차 여행의 차이를 겨루는 콘셉트인데, 이쪽이 제작비는 훨씬 덜 든다.

KSB 측에서도 그래서 2번을 선호해서 바꿨는데, 방수정 PD는 1번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이 <미션 트립> 기획에 시작은 어차피 나였고, 나도 의견 정도는 개진할 위치에 있다.

그리고 내 의견은 이전부터 명확했다.

“저라면 2번으로 가겠습니다.”

방수정 PD가 무심하게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1번도 분명 좋은 그림이 나오겠습니다만…… 요즘 시국도 그렇고, 빈부격차에 관한 화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라고 말하며 나는 방수정 PD를 보았다.

“물론 방 PD님이 잘 조절하시겠지만, 요즘 시청자들을 마냥 믿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방송 초기인데 조금 안전하게 시청자를 잡고 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야, 수정아. 내가 꼭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냐. 1번 콘셉트도 나중에 안정되었을 때 써먹어도 되지 않겠냐.”

서인하 선배가 이때다 하고 내 말을 보충하고, 둘이서 방수정 PD를 쳐다보았다.

나야 AGD 앱을 통해서 확률을 보고, 2번이 좀 더 안정적인 시청률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한 이야기지만, 서인하 선배는 다른 의미로 간절해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방수정 PD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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