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독점 콘텐츠
『방수정 PD 귀국, <미션 트립> 본격 제작 시작인가?』
『[포토타임] “다시 열심히 해 보겠다.” 방수정 PD 입국 사진』
“스타 PD는 스타 PD시군요……. 무슨 PD가 입국하는데 공항 사진이 뜬답니까?”
박주영이 폰을 보면서 한마디 하자, 듣고 있던 권민헌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 PD님 정도 되니까 그런 거지 뭐. 갑자기 NBS 그만뒀을 때는 주가가 흔들렸잖아.”
“아, 그때. 좀 날려 먹었죠…….”
“너 주식도 했어?”
박주영은 대답하지 않고 히죽 웃기만 하고는 다시 폰을 살폈다.
몇 개의 기사가 더 뜨고, 말만 ‘특집’이 붙은 기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아이돌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기에 그 열기는 금방 잦아들었다.
폰을 집어넣고 박주영은 오랜만에 마주 앉은 권민헌을 보았다.
“선배는 좀 어떠십니까. <당잠사> 곧 촬영이죠?”
작년 연말부터 준비하고 있던 <당잠사> 마지막 시즌 준비로 권민헌은 매우 바빴다.
마지막 시즌이니만큼 그동안의 최초의 출연진을 모으려고 애쓰기도 했고, 신선한 여행지를 찾느라 해외 답사도 몇 번씩 다녀왔다.
“답사 다녀오신 곳들 저도 기획할 때 몇 번 다녀봤는데, 어떻게 고르셨습니까. 다들 괜찮던데요.”
“여행사랑 몇 번이나 미팅하고 정했지 뭐. 요는 예산이야, 예산.”
“전략기획실에서 그래도 허락은 해 줬나 보군요.”
“기획서는 잘 빼서 올렸으니까. 지환이가 요새 곧잘 해.”
“PPT도 잘 만드나요, 그 녀석. 많이 컸네.”
팀이 잘 돌아가니, 바쁜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에 걸려 있는 문제점들이 있었다.
“민희가 조금 더 있어 주면 좋겠지만 말이야.”
첫 번째는 메인 작가 이민희의 퇴사.
그동안 메인 작가로서 잘 움직여 줬는데, 이제 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촬영은 그녀를 빼고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할 일은 다 하고 가는 것이라 남은 작가진이 처리하기에 무리는 없으나, 그래도 믿을 만한 인력이 사라지는 것이 권민헌으로서는 불안하기는 했다.
“뭐, 자기 남친 회사로 가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전 이야기 듣고 반대도 못 했습니다.”
“그건 나도 그래. 남친 회사가 이렇게 잘 되고 있으니…… 가고 싶은 마음도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권민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실 이민희의 퇴사보다 더 곤란한 일이 있음을, 박주영도 모르진 않았다.
“마지막 시즌을 여전히 막고 있습니까? 다음 시즌 하라고?”
“응. 안 맡겠다면 후임을 찾겠다면서 말이야.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마지막 시즌이란 것을 노출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기획 오케이 받은 거야.”
권민헌은 이번 시즌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길 원했다.
시청자들이 박수를 칠 때 떠나고 싶었는데, 전략기획실 측에서는 그것을 막고 있었다.
확실한 수입원인 프로그램이 끝나는 것을 누군들 좋아하겠냐마는, 권민헌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왕 이사님이 커버 좀 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성과를 우선으로 생각하셔야 하니 그것도 안 되려나요.”
“거기에 대해선…… 좀 이상한 소문이 돌더라.”
권민헌이 잠깐 말을 골랐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팀장 회의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곽 본이 신 이사 라인으로 갈아탔다는 이야기가 있어.”
“예? 데려온 건 왕 이사님 아닙니까?”
“그렇다고 나도 아는데, 최근에 둘 사이가 그다지 안 좋나 보더라고. 요즘 전략기획실 예능 오퍼들이 왕 이사님하고 상의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 같고.”
“왕 이사님 컨펌 없이 진행한다는 건 알아도…… 상의조차 없었다고요? 허어. 데려온 사람을 내쳤다 이겁니까? 신 이사 라인을 타겠다고요?”
“이건 또 루먼데…….”
권민헌이 한층 더 목소리를 낮췄다.
“애초에 신호현 이사랑 연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곽 본이.”
“그건 또 무슨…….”
“OTT 플랫폼 했었잖아? 그때 투자자 중 한 사람이 신호현 이사라는 거야.”
신호현도 엄밀히 따지면 외부 인사다.
처음에는 사외이사였지만, 지분 확장과 함께 내부 이사진으로 들어온 케이스.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구도가 애초에 왕 이사님이 아니라 신 이사님이 그리는 흐름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어디까지나 소문이야, 소문. 진실은 본인들만 알겠지.”
현재 전략기획실이 이사진을 등에 업고 얼마나 권력을 휘두르는지, 박주영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로서는 그 소문이 그냥 소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갑자기 대한이 녀석이 부러워지네요. 이런 타이밍을 어떻게 알아채고 독립을 한 건지.”
“뭐, 알고서 했겠어. 우연의 무서움이겠지.”
강대한은 AGD 앱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마음에 따라 움직인 것이지만, 두 사람은 바깥세상으로 떠난 후배가 그리울 뿐이었다.
“저희도…….”
문득 떨어지는 입술에, 스스로 놀라 박주영이 입을 다물었다.
권민헌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뒷말은 꺼내지 말자. 알지?”
* * *
같은 시각.
곽성찬은 신호현 이사실에서 신호현과 대면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기사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원래는 다른 보고를 위해 온 자리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이야기가 아이윌로 옮겨간 것이다.
“이봐, 곽 본부장.”
“예. 말씀하시죠.”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렇게 화제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멀 텐데.”
신호현 이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안에 가시가 숨어 있음을 곽성찬은 모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신호현과 손을 잡은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뭐, 어차피 지금 잠깐이고, 방송만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딱히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만들어진다면? 가정형인가?”
“제작을 담당하는 건 어디까지나 바람처럼이니까요.”
곽성찬이 슬쩍 신호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 이사님 조카분 말입니다.”
바람처럼의 신동욱 실장이 신호현의 조카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호현은 이런 쪽의 공작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는 타입이니 당연한 일.
곽성찬이 아는 것도, 과거부터 신호현에게 투자를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OTT 사업체가 신호현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문은 진실이었다.
애초에 왕이범 이사의 제안을 받기 전부터 신호현과 아는 사이였고, 오히려 일하는 스타일상 신호현이 더 잘 맞았다.
“걱정하는 바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차례 신호현을 도발했기에, 그는 슬그머니 한발 물러섰다.
이런 타입은 너무 들이대면 안 된다. 윗사람일 때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기획들도 착착 잘 움직이고 있고, 신동욱 실장도 잘 따라 주고 있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저희의 플랜에 어긋나진 않을 겁니다.”
현재 곽성찬과 신호현은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에 나아가기 위해서 현재의 전략기획실은 하나의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계산으로 신호현은 곽성찬을 끌어들였고, 곽성찬은 신호현 쪽으로 섰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왕이범 이사.
“왕 이사가 오늘 아침 이사회에서 항의를 하더군.”
“들었습니다. 전략기획실 오더로만 진행되는 일이 너무 많다고요.”
“맞아. 예능국 오리지널 기획보단 전략기획실 주도로만 일이 처리되는 것도 불만인가 보던데.”
“그런 게 싫었다면 전략기획실 제안부터 거절하셨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비웃는 건 아니지만, 왕이범은 이사 자리에 있는 것치고는 아직도 풋풋한 느낌이 있었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곽성찬은 사업 수완은 본인이 더 있다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다.
“뭐, 조심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관계를 되돌리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섭섭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야 뭐, 다 이해하지. 잘할 거라고 믿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곽성찬은 이사실을 나갔다.
곧장 왕이범 이사실에 들르겠다고 하니, 아마 한동안 왕이범의 불평은 줄어들 것이다.
“PD 출신 주제에 대단한 척하기는.”
혼자 남은 신호현은, 곽성찬과는 다른 명백한 비웃음을 떠올렸다.
왕이범은 예능 PD 출신으로 이사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신호현이 보기엔 텅 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사업가 출신에, 지금도 사업가인 신호현은,
“사업은 사업하던 사람들이 해야지. 그 친구는 멀리 볼 줄을 몰라.”
그렇게 싸늘하게 비평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동욱아. 나다. 그래, 좀 전에 곽 본에게 이야기 들었다. 저번처럼 실수하지 말고, 이번에는 제대로 좀 만들어 봐. 곽 본 그 친구, 이용할 가치는 충분히 있으니. 지켜보고 있겠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은 그가, 벽 너머의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자네도 잘해야 할 거야.”
신호현이 굳이 왕이범을 통하는 형태로 곽성찬을 데리고 온 이유를, 곽성찬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 *
『<금주의이슈> ‘V.I.P’ 채널T의 VIP가 되다! 시청률 5% 돌파!』
『강대한 PD, 연타석 홈런 ‘V.I.P’ 3화 통합 시청률 5% 돌파!』
3화가 방영된 다음 날.
채널T에서 허소윤 CP가 아주 흥분한 얼굴로 폰을 들이밀어 왔다.
“예. 저도 봤습니다.”
“뭐야, 봤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없어요? 우리 수요일 저녁에 5% 나오는 게 쉬운 줄 알아요?”
수요일 저녁 시간대는 나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기본을 지킨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시청률도 좋지만…… 전 사실 이 기사가 더 맘에 듭니다.”
나는 아침부터 개인 계정에 스크랩해 둔 기사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특집] ‘V.I.P’가 보여준 무대 뒤의 생생함
―……결국 전면에 서는 감독이나 배우, 가수들 또한, 이렇게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이들이 있기에 성립되는 것이다.
강대한 PD의 착안은 그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본인도 유명세를 얻은 PD임에도, 어디까지나 제작진이라는 시선을 버리지 않고 연출에 임한다. 오늘 하루, 혹은 며칠 체험하고 가는 이들이 아닌, 항상 그 일을 해 오던 우리가 모르는 스태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순 시청률 분석 기사가 아닌, 칼럼 형식의 제대로 된 분석 기사.
아침부터 확인하고, 우리의 방송 제작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해 준 기사라서 참으로 반가웠다.
“본인 칭찬도 있고요?”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나는 씨익 웃고서 폰을 도로 내려놓았다.
방송이 물 흐르듯 잘 진행되고 있으니 이렇게 농담 따먹기도 하는 것이다.
시작은 다소 삐걱되었지만, 이대로라면 10화까지 큰 무리 없이 시청률도 계속 갱신해 갈 것이다.
내 판단만이 아닌, AGD 앱의 판단도 그러했다.
“무난하게 7%만 찍죠, 우리. 그럼 곧장 시즌2도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혹해, 또 머릿속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는데, 닫혔던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이곳은 채널T의 회의실.
오늘은 허소윤 CP만이 아니라 또 만날 사람이 있었다.
“두 번째 뵙네요. 라이언 킴입니다.”
한국 서비스를 준비 중인 OTT 플랫폼, 엘도라도의 치프 매니저인 라이언 킴이었다.
처음 봤을 때와 같은 캐주얼한 수트 차림으로, 그가 맞은편에 앉았다.
“지난번에 뵌 이후로 강 PD님 방송 다 찾아 봤습니다. 몰랐는데 <언더커버 싱어> 만드신 분이시더라고요.”
“아, 예. 제 입봉작입니다.”
“전 대만판으로 먼저 봤었는데, 새삼 감회가 새롭네요. 이렇게 뵙게 되니.”
<언더커버 싱어>는 10개국에 수출되었는데, 그중 가장 빨리 제작에 들어간 곳이 바로 대만이었다.
현지 시청률도 좋고, 케이팝도 적극 선정하여 인터넷 화제성도 괜찮았다.
그 대만판을 언급하며 빙긋이 웃는 라이언 킴의 표정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굳이 AGD 앱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의 호의는 잘 전달되어 왔다.
살짝 교포 느낌이 나는 한국어지만 소통에 무리는 없었고, 덕분에 미팅은 아주 매끄럽게 진행됐다.
“알겠습니다. 그럼 엘도라도 오픈 때 동시 론칭 작품으로 올리는 걸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미팅은 <V.I.P>를 엘도라도에도 제공하기 위한 미팅인데, 어차피 제공 계약은 되어 있는 거라 시기 조율에 가까운 것이었다.
“론칭 일정이 나왔습니까?”
“올해 가을로 보고 있습니다. 론칭작들 최종 컨펌이랑, 아직 위쪽이랑 협의가 안 끝나서요.”
가벼운 어투로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는 것을 보니, 부정적인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냥 잘 부탁한다고만 인사를 해 보였다.
“그럼 이야기도 끝났겠다, 식사나 하러 갈까요? 국장님 모시고 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허소윤 CP가 짐을 챙겨 들고 회의실을 나가자 라이언 킴과 둘만 회의실에 남았다.
할 이야기도 끝나서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살짝 어색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때마침 둘이 되었으니,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라이언 킴이 오히려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예, 얼마든지요.”
“아이윌에서 지금 몇 개의 콘텐츠를 만들고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드라마랑…… KSB에서 예능도 하시던가요?”
“맞습니다. 그쪽도 아마 다음 달부터는 방영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콘텐츠들도 저희한테 제공해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예?”
짐을 다 챙겨 넣었는데, 노트북을 다시 꺼내야 할 것 같은 제안이었다.
“채널T…… 없이 말입니까?”
“이 제안은 아이윌, 강 PD님 회사에게 드리는 제안입니다. 아이윌에서 만드는 콘텐츠를 저희 쪽에도 제공하시는 건 어떨까요?”
“어…… 저희야 좋은 일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나쁠 리가 없다. 엘도라도 같은 큰 플랫폼에 우리 콘텐츠를 제공하면, 동시에 전 세계로 방영되는 효과를 누리게 되리라.
그것만으로도 좋은 제안인데, 끝이 아니었다.
라이언 킴이 여전히 가벼운 어조로 덧붙였다.
“그럼, 저희 쪽 독점 콘텐츠를 제작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