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76화 (176/200)

176화 입국

엄밀히 따져서, <미션 트립>과 <V.I.P>는 딱히 관계가 없다.

방송 포맷도 다를뿐더러 방송사도 다르다.

한쪽은 케이블, 한쪽은 지상파.

PD도 강대한, 방수정으로, 무엇을 따지든 판이하게 다른 두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 제작사가 아이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한, 두 프로그램을 완전히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V.I.P>의 티저가 공개된 직후, 그 반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채널T, <V.I.P>의 티저 첫 공개!』

『강대한 PD의 <V.I.P>, 방수정 PD의 <미션 트립>…… 아이윌의 승부수가 무섭다!』

연속된 기사들에서는 두 프로그램이 아이윌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노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타이밍을 봐서 민준기 기자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민준기 기자는 이미 준비하고 있던 2차 기사를 뿌렸다.

『방수정 PD, 차주 중 귀국, 방송계 복귀! <미션 트립> 본격 제작에 나선다』

방수정 PD와 미리 상의해 둔 기사들까지 주르륵 인터넷을 수놓자, 화제성은 완전히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우와 아이윌 미쳤다 강대한 방수정 전부 데려간 거임?

―아이윌 애초에 강대한 피디가 세운 데 아니었음? 그럼 강대한 피디가 방수정 데려간 거 아닐까?

―누군지 몰라도 사장이 존나 능력 있는가 봄..... 어떻게 둘 다 데려갔지....?

―브이아이피 티저도 존나 기대되긴 하는데 방수정 여행예능 ㅈㄴ 오랜만에 본다니까 기대된다!

―그래서 류준혁은 또 나오나요?

―브이아이피에 최효명 미션트립에 류준혁 나올 때까지 숨 참는다!』

두 프로그램을 아이윌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순간, 두 개의 프로그램의 기대치가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시청자들은 우리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V.I.P>와 <미션 트립>을 동일선상에 놓고 담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SNS, 웹 기사, 커뮤니티 등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그런 이야기가 돌자, 단숨에 ‘NBS―바람처럼 협업’에 관한 화제성은 밀물에 쓸리듯 사라졌다.

[100%]

난 눈앞에 오랜만에 떠오른 ‘100%’ 확률 달성의 메시지를 보고 씨익 웃었다.

지금은 우철민 PD와 함께 1화를 편집 중이었다.

그중에 민준기 기자가 연속으로 등록한 기사를 확인했고, 우리의 예상대로 여론이 흘러감을 보았다.

그러는 중에, 1화 완성본도 나오지 않았는데 편집본에 대해 100% 확률이 뜬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하는데,

지잉―

폰이 울려서 보니, 허소윤 CP였다.

“예, 강대한입니다.”

“허소윤이에요. 1화 예정, 좀 당길 수 있을까요?”

이건 의외인데.

“편성부에서 2주 뒤 첫 방을 당기재요. 원래 파일럿 하나 나갈 게 있었는데 그걸 다른 날로 바꾸고, 바로 시작하자고요.”

“맘이 급하시군요.”

“급하게 만든 장본인이 그런 말 하면 섭하죠? 1화는 어때요, 완성됐어요?”

나는 쿡쿡 웃은 뒤, 이제는 사라진 확률이 있던 자리를 힐끔 하고서 대답했다.

“저희 조건 중에, 시청률이 몇 퍼센트였죠?”

“1화 목표치는 4%였죠.”

“충분히 달성될 겁니다.”

내가 장담하자, 허소윤 CP가 전파 너머에서 말이 턱 막히는 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시청률이 눈으로 보여요? 막 몇 퍼센트 나올지 예지몽이라도 꿔요?”

“예? 그럴 리가요. 지금 분위기 좋으니까, 한 주 당겨서 방송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 같아서입니다.”

편집본이 완성되기도 전에 100% 확률을 달성해 버린 것은 그래서였다.

이 화제성에 이 타이밍이면, 덜 완성된 편집만으로도 4%는 충분히 나온다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방영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AGD 앱 이전에 PD로서의 자존심 문제였다.

“남은 티저들이랑 1화 완성본, 오늘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내에 2화까지도요.”

“부탁할게요. 우리 회사 내부에서도 기대가 커요.”

“기대가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 차례 더 장담해 주고, 나는 우철민 PD를 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예측한 건지 그는 푹 한숨을 내쉬더니 먼저 말했다.

“야식 미리 시켜 둘까?”

“야근 야식은 역시 치킨이죠.”

“콜.”

편집실의 불은 아침까지 켜져 있었다.

* * *

바람처럼 관련 기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독> NBS 새 예능 <골목대장>, 출연진 협의 중』

『NBS―바람처럼 첫 예능 <골목대장> MC는 의외의 인물?』

그런 후속 기사는 계속해서 포털에 띄워졌다.

다만.

『―누가 하든 수요일 밤에는 오지 마라 어차피 깨진다

―그렇다고 미션트립이랑 또 겹치면ㅋㅋㅋㅋㅋ

―NBS는 진짜 어쩌다가 저런 피디 둘을 다 잃었냐ㅎㅎㅎㅎ

―요새 새로 나온 방송들 다 재미없던데_- NBS도 한물간 듯』

기사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뜨거워지지 않았다.

씁쓸하다면 씁쓸한 현실이었다.

그래도 옛 회사인데, 저렇게 힘 못 쓰는 것을 보니 아주 즐겁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거나 할 필요도, 생각도 없었다.

『<V.I.P> 마지막 티저, 50만 조회수 돌파!』

『연예인 관찰 예능의 새 장을 열 수 있을 것인가―<V.I.P> 3가지 시청 포인트!』

민준기 기자에게 굳이 부탁하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기사 요청은 쏟아지고, 어느 정도 소스만 던져 주면 화제성을 이어 나가긴 충분했다.

티저를 만들고, 방송을 편집하고, 현장 로케이션을 가고.

그런 식으로 금방 첫 방송일이 되었다.

수요일.

촉박한 시간으로 제작발표회는 생략했지만, 나는 아침부터 옷을 차려입고 회사로 나왔다.

“이렇게 차려입은 거 본 게 얼마 만이야. 지난번 <더 라이벌> 제작발표회 이후 처음 아닌가……?”

우철민 PD가 뜨끔한 소리를 해서 다른 직원들까지 푸훕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직업이, 굳이 정장 차려입고 다니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오늘같이 캐주얼한 정장을 차려입는 것도 잘 없는 경험이긴 했다.

“잘 어울리네.”

그나마 서인하 선배만이 나의 기둥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같이 갔어야 하는데 못 가서 미안하다고 꼭 전해 줘.”

“미리 말씀드려 놨으니 괜찮을 겁니다. 사장님은 KSB 미팅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철민 PD에게 채널T와의 소통까지 부탁한 다음, 나는 차를 가지고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날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최근 차를 구입했다.

서인하 선배가 일을 하려면 필요하다고, 본인이 도와주겠다고 하도 성화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어차피 필요했으니 딱 좋은 타이밍이었지.

자차를 몰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약 한 시간 넘는 시간 만에 인천공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국장으로 향했는데,

“……뭐야, 이 사람들은.”

기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입국장 벤치에 모여 있었다.

오늘 아이돌이라도 입국하나? 아이돌치고는 기자 수가 적은 것 같기도 하고…….

끼어들고 싶진 않아서,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만 확인하고서 슬쩍 기둥 뒤로 몸을 숨기려는데,

“어! 강대한 PD다!”

“강 PD님!”

갑작스레 카메라가 우르르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도망갈 타이밍도 잡지 못하고, 나는 얼어붙은 얼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강대한 PD님 맞으시죠?!”

“어어, 예. 그렇습니다만…….”

“방수정 PD님을 마중하러 오신 겁니까?!”

“아이윌에 합류한다고 들었는데, 그에 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카메라에 이어 마이크가 우르르 내 앞에 몰려들었다.

잠깐. 이 사람들이 그럼…… 방수정 PD 입국 소식을 듣고 모인 기자들이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모인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아니, 그렇게 할 일들이 없으신가?

그들의 말대로, 나는 방수정 PD를 마중하러 나온 것이다.

아이윌에 합류하기 위해 미국에서 귀국하는 분이시니, 이 정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거지? 나는 민준기 기자한테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그…… 예, 맞습니다. 방수정 PD님을 모시러 온 거긴 한데…….”

“역시! 오늘부터 그럼 바로 일을 시작하시는 겁니까?”

“아뇨, 일단 쉬시고 거처를 정하신 다음에 본격적인…….”

“방수정 PD님의 합류는 이미 아이윌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몰아치는 질문 중에, 도저히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그 기자를 쳐다보았다. 안면은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싫어하는 계열의 기자 같은 냄새가 풍겼다.

[100%]

아, 진짜네.

100% <주간 연예> 소속 기자다.

이런 쓸데없는 것에 AGD 앱을 사용한 원한까지 담아, 나는 냉정하게 끊어 말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방수정 PD님과 아이윌은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이번 기획을 맘에 들어해 주셔서 합류하기로 결정하신 거고, 저희 아이윌도 그 결정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정보는 다신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다행히, 기자는 짬밥이 얼마 되지 않았는지 대번에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이 되었다.

추경락 기자를 떠올리면서, 나는 눈을 떼 다른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관심 가져주신 건 감사하지만, 방수정 PD님께서는 이런 관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부디 조용히 입국해서 일을 시작하실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짓는 내 얼굴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어느새 나도 기자들 다루는 데에 꽤 익숙해졌구나.

기자들도 머쓱했는지 열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도 몇 가지 질문만 좀 하겠습니다.”

“사진 좀 찍어 갈게요.”

인사치레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였다.

잠시 후.

방수정 PD가 타고 있을 비행기가 착륙했다는 표시가 전광판에 떴다.

입국 수속이 진행될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게이트가 열렸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챙겨보다가,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게 다가갔다.

“방 PD님.”

캐리어가 쌓인 카트를 밀고 나오던 방수정 PD가 나를 발견하고선 선글라스를 벗었다.

“정말 나왔네?”

“그럼요. 나온다고 약속드렸잖습니까. 그런데…….”

나는 내가 한 짓도 아닌데 머쓱한 얼굴로 뒤를 가리켰다.

“기자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서 저렇게 모였는지…….”

“뭐, 소문이 빠른 곳이니까. 한 명도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내가 아직 죽진 않았나 보네.”

지난번 귀국 때는 누구도 모르게 들어왔던 방수정 PD다.

기자들이 모인 것에 당황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방 PD님! 오랜만에 귀국이신데, 아예 들어오신 건가요? 아이윌에 합류해서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건가요?”

“아이윌에 합류한 경위를 좀 말씀해 주세요!”

“미국 생활은 어떠셨나요!”

온갖 질문이 날아들었다. 역시나 나와의 약속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카트 손잡이를 놓고 기자들 앞을 막아서려는데, 방수정 PD가 나를 막았다.

“됐어. 내가 이야기할게.”

그녀가 기자들 앞에 서니, 들떴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 저게 연륜 있는 PD의 포스인가?

“기자님들. 한낱 놀고먹던 PD의 귀국에 모여 주셔서 감사들 합니다. 말씀하셨듯, 이제 귀국해서 다시 PD 일을 해 보려고 해요. 아이윌에서, 여기 강 PD랑 서인하 대표께서 좋은 제안을 해 주셔서, 예전처럼 한번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방수정 PD는 밑에서 일하던 제작진한테는 참 보여주지 않던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첫 시작을, 기자님들께서 잘 꾸며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죠?”

그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도로 카트를 끌면서 허겁지겁 따라갔다.

“방 PD님! 방 PD님! 한마디만 더……!”

“앞으로 방송 계획을 좀 더……!”

그런 기자들의 질문은, 우리가 차에 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차에 올라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나와, 기자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 방수정 PD가 입을 뗐다.

“저런 기자들 다루는 건 간단해. 내 할 말만 한다. 저쪽이 원하는 대답은 해 주지 않는다. 앞으로 기자들 상대할 일 많을 테니, 너도 알아 둬.”

“……옙.”

역시나. 나 같은 햇병아리가 당해낼 사람이 아니라니까.

이렇게 오늘도 하나 배우며, 나는 곧장 회사로 차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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