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68화 (168/200)

168화 윈윈하는 관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내가 NBS를 그만두기 전.

한참 <더 라이벌> 방영 후의 뒤처리로 영화 촬영장을 오가던 시기.

금완승 감독은 내가 보여주고 본인이 연출을 한 단막극의 대본을 맘에 들어 하여, 그 작가를 만나고 싶어 했다.

나는 한번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작가는 다름 아닌 민희.

당시 민희는 <당잠사>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당장 빼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일정, 그리고 금완승 감독의 촬영 스케줄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약속을 잡았다.

그래서,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한 달 가까이 지난, 여의도에서였다.

“이거, 그 유명한 이민희 작가님을 이렇게 뵙게 되는군. 반가워.”

“유명하다뇨. 과찬이세요. 저야말로 천만 감독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잠사> 이번 시즌도 재밌게 보고 있다우.”

“저도…… 감독님 작품은 전부 다 재밌게 봤어요.”

<더 라이벌> 투자자 미팅을 했던 중식 레스토랑의 룸.

테이블 위로 악수가 이루어졌다.

각자에게 각자의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얼굴 보고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강 PD 이 친구가 속 많이 썩이지? 일은 잘해도 괜찮은 남자친구는 못 될 타입인데.”

“어머, 아시네요. 그러게요, 작업 한번 들어가면 연락도 뜸해지고. 요즘은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잘해 줘, 이 친구야. 요즘 남자들이 그래선 결혼도 못 해.”

“더 혼내 주세요, 감독님.”

뭐지. 만난 지 10분도 안 됐는데 벌써 부녀지간처럼 나를 욕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초면인 사이엔 공통 화제가 중요하다지만, 일방적인 이 대화가 과연 옳은 일인가?

나는 이 행태에 분노하여 분연히 일어났다.

“여기, 연태 한 병 주세요.”

술이라도 먹여야겠다.

나의 재빠른 대응에 금완승 감독이 껄껄 웃음을 터뜨리고서는, 다시 셋이서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금완승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도 쓰기에, 민희의 작가적인 질문이나 에피소드도 잘 받아 주었다.

아무리 같이 일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나는 PD고 민희는 작가라 시점이 안 맞는 경우가 있는데, 금완승 감독은 나나 민희 양쪽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것이었다.

“영화 시나리오는 확실히 스토리 전개가 중요하군요.”

“그렇지. 감정선 따지고 앞뒤 개연성도 중요하고. 방송 대본은 좀 다르지?”

“예능 쪽은 아무래도 감정선보단 포맷과 콘셉트를 전달하는 것에 주축을 두죠. 최근엔 아예 콘셉트만 전달하고 알아서 하라는 경우도 있고요.”

“영화도 애드리브는 통용되지만, 예능만큼은 아니야. 작품에 따라서 정도 조절도 중요하고.”

“<당잠사> 팀은 보통 출연자들이 알아서 놀 수 있을 만큼의 대본만 전달해요.”

나는 옆에서 이 티키타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어쨌든 이 자리는 두 사람의 만남이 우선이니까, 간간이 빈 잔을 따르고 비워진 접시를 치우는 정도였다.

“그래서 말인데, 이 작가.”

그러다, 가볍게 술이 오른 듯 얼굴이 붉은 금완승 감독이 운을 뗐다.

“이전 단막극, 한번 제대로 시나리오로 써 볼 생각 없수?”

“……예?”

불현듯 날아온 말이라 민희가 잠깐 굳었다.

“강 PD한테는 한번 말했는데…… 그냥 단막극으로만 두기에는 아까워. 조금 더 캐릭터 늘리고, 이야기 구조를 바꾸면 장편 영화로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래.”

그 옆에서 난 태연하게 젓가락을 들어 요리를 집어 먹었다. 난 이미 들은 이야기니까.

몇 가지 요리를 입에 넣고 씹는데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민희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난 별말 안 했어. 감독님께서 정말 맘에 드신다고 하신 거야.”

“그래, 맞아. 그렇다고 강 PD가 아예 한마디도 안 했을 줄은 몰랐지만. 쓸데없이 입이 무거워.”

“입이 무거워서 죄송합니다.”

가볍게 나랑 으르렁거린 금완승 감독이 재차 민희를 보았다.

“<더 라이벌>에서도 결국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우리 이 작가의 대본이었잖우. 한번 장편으로 고쳐서 영화화까지 밀어붙이고 싶은데, 어때?”

“어…… 그게…….”

민희가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로 다시 나를 보았다.

대본에 대한 이야기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리라고 예상은 했겠지만, 이런 본격적인 제안을 받을 줄은 생각지 못했으리라.

나도 여기까지 말이 나올 줄 몰랐던 건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난 이미 민희의 대본에 대한 확률을 보았으니까.

“난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영화 대본으로서의 가능성은, 물론 나보다 감독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내가 봐도 좋을 것 같아. 영화로 스크린에서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제대로 고쳐 보는 건 어떨까?”

AGD 앱의 확률이 아니라고 해도, 나로서도 민희가 이 기회를 잡았으면 했다.

그녀는 방송 작가만이 아닌, 영화도 드라마도, 글에 관련된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 그녀에게 금완승 감독과의 협업은 분명 좋은 기회가 되어줄 터였다.

“…….”

민희가 입을 다물고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 않고 금완승 감독과 잔을 마주쳤다.

그러나, 고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눈을 깔고 있던 민희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내가 항상 봐왔던 호방한 눈빛이 떠올라 있었다.

“해 볼게요.”

“그래야지! 강 PD, 여자친구 참 잘 뒀어!”

금완승 감독이 박수를 치듯 테이블을 두들기더니, 냉큼 점원을 불렀다.

“여기서 제일 비싼 술 하나 가지고 오슈!”

“감독님, 저희는…….”

“내가 마시려는 거야! 걱정 마!”

아뇨, 걱정은 되죠……. 취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뻔히 아는데. 비싼 고량주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아찔해졌다.

그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금완승 감독은 새로 온 비싼 명주를 따서 냄새를 맡더니, 민희의 빈 잔에 아주 조금 따랐다.

그리고 내 잔에는 가득 따랐다.

“……혼자 드신다면서요.”

“짠은 해야지, 짠은! 기분 좋은 날이잖어.”

그가 희희낙락 웃는 모습에 차마 태클도 걸 수 없었다.

그렇게 잔이 차고, 금완승 감독이 먼저 들었다.

“한번 잘해 보자구, 이 작가.”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묘한 감동을 느꼈다.

내 주변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윈윈하는 관계가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는 그런 감동.

나도 잔을 들고 마주쳤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님.”

그날의 만남도 결국 새벽까지 이어졌다.

* * *

민희는 그날 이후, 금완승 감독의 지시를 받으면서 대본을 고쳤다.

금완승 감독은, 이전 <더 라이벌>을 작업할 때도 작가주의적인 고집 때문에 내가 도왔던 적이 있었다.

한 씬, 한 씬. 워낙 정성을 다해 쓰고 작업하니, 솔직히 대본 완성이 쉽진 않은 타입이다.

민희와의 작업에도 그 자세는 똑같았다.

“……죽을 것 같아.”

가끔 만날 때마다 민희는 진저리를 쳤다.

“내가 유 작가님한테 배울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그 정도야? 분야가 달라서 그런가?”

“아냐! 이건 분야가 다르다 뭐다 하는 정도가 아니라고!”

소주를 들이부으면서 한탄을 할 때도 있었다.

“대체 이거랑 이거랑 뭐가 다른데? 너는 알겠어?”

“어…… 그건…….”

금완승 감독이 고쳐준 버전과 아닌 버전을 들이밀면서 나에게 물어봐서 몇 번이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쪽이 좀 더 씬 간의 흐름이 매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아악! 결국 금 감독님 말이 맞다는 거잖아! 그 꼰대 아저씨가!”

나 없이 연락하고 만나고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금완승 감독의 별명은 꼰대 아저씨가 되었다.

거기에는 동의하지만, 차마 똑같이 말해 줄 수는 없어서 나는 어색하게 웃어 주기만 했다.

그런 고난과 역경을 거친 완성 대본이 나왔을 때가, 내가 NBS를 그만두기 직전.

날짜도 받고, 인수인계 중에 금완승 감독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쓸 만한 게 나왔어, 강 PD. 기대해도 될 거야.”

“설마…… 제작 들어가는 건가요?”

“바로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 예정표에 올렸어. 강 PD 여친이 영화 입봉을 하게 될 거야.”

민희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오히려 금완승 감독이 먼저 나한테 연락했다는 사실에 분을 토하면서도, 그날은 둘이서 즐겁게 파티를 했다.

나중에 완성본을 직접 읽어 봤는데, 재밌었다.

이전 단막극 대본은 드라마로서 다소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건 아니었다.

대본 자체로도 읽혔고, 영화화되었을 때의 그림도 그려졌다.

마지막까지 한 번에 읽어내린 다음, 나는 대본이 영화화되었을 때의 성공 확률을 보았다.

[92%]

자세한 조건은 모름에도, 아주 만족스러운 확률이었다.

* * *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도 민희는 금완승 감독의 조언을 받으며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등을 쓰고 있었다.

최근에는 금완승 감독이 별로 지적할 데가 없다고 억울해하는 경우도 몇 번 있는데, 그만큼 실력이 늘었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민희를 우철민 PD에게 소개할 때도 나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아이윌의 회의실.

민희가 연차를 내고 사무실로 찾아와 우철민 PD와 만났다.

만나기 전에 이미 의사는 물었고, 오늘은 최종 결정을 내리자는 날이었다.

“……그, 이거 참.”

우철민 PD가 나와의 관계를 듣고 머쓱해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이야기했지만, 그 사람이 민희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안 것이다.

나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것 같아서, 나는 가능한 한 태연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우 PD님. 일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 눈치 보지 마시고.”

“어, 으, 응. 하하하.”

그가 너털웃음을 짓고서는 다시 어색해하자, 내가 한숨과 함께 다시 이야기하려 했다.

그런 내 말을 민희가 먼저 잘랐다.

“꼭 네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응? 어어…… 뭐, 그렇지? 결정된 거만 나한테 알려주면 되는데…….”

“그럼 나가.”

문을 가리키는 그 단호한 태도에 우철민 PD가 되레 화들짝 놀랐다.

“우리끼리 이야기할게.”

“옙…….”

너무 단호해서 이빨도 안 먹힐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가자 민희는 나를 흘기더니, 아예 회의실 안쪽의 커튼마저 내려 버렸다.

“쫓겨났냐?”

서인하 선배가 자기 자리에서 나를 보고 낄낄대고, 다른 직원들도 소리 낮춰 웃었다.

나는 괜한 헛기침을 터뜨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실무 할 사람끼리 이야기하라고 제가 나온 겁니다.”

“그래. 그러시겠지.”

물론 아무도 안 믿어 주었다.

한 시간 정도 회의실 안에서 미팅이 이어졌다.

안 이루어질 거였으면 미팅은 진즉에 끝났겠지. 그것 자체가 좋은 신호였다.

회의실에서 나온 민희는 서인하 선배 자리까지 와서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릴게요, 국…… 사장님.”

“내가 잘 부탁해야지, 이 작가님. 정리는 언제 끝날 것 같아?”

“이번 달 안에요. 그사이에 계속 진행은 할게요.”

“알았어. 그럼 다음 달을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중하고 오겠습니다.”

민희와 밖으로 같이 나가자 뒤에서 짓궂은 직원들의 휘파람 소리도 들려왔다.

깔끔히 무시해 주고, 민희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제안 받아 줘서 고마워.”

로비에서 인사를 했다. 여자친구라고 해도, 할 인사는 정확히 해야 할 테니까.

“나도 좋은 기회니까. 금 감독님도 한번 해 보라고 하셨고.”

“잘할 거야, 넌. 믿고 있어.”

“너무 부담 주지 마, 좀.”

민희가 짐짓 눈을 부라리면서 어깨를 퍽 쳤다. 과장되게 아픈 척 엄살을 부린 다음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만두면, 나도 허락받을 테니까 짧게 여행이라도 갔다 오자.”

그녀가 우리 아이윌의 첫 웹드라마 대본을 쓰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NBS 소속이라는 점이다.

NBS 소속인 이상 그녀는 다른 업체의 일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데, 그것이 가능해진 것은 민희가 NBS를 그만둘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금 감독님한테 배우면서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어. NBS 안에서는 못했겠지만, 이제 아이윌에서는 할 수 있겠지?”

“물론이지. 그런 회사로 만들 거니까.”

예능의 시작은 나의 <V.I.P>가 될 거고, 드라마의 시작은 우철민 PD와 민희의 작품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기획이 움직이고 있으니, 서인하 선배와 함께 만든 이 아이윌을 더욱 키울 일만 앞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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