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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공할 확률 100%-167화 (167/200)

167화

주간 연예 구민호 기자가 멋대로 기사를 터뜨린 후, 허소윤 CP의 거래로 인해 좀 더 자세한 소스를 전달했다.

기사는 곧장 포탈에 등록되었는데, 이것을 가장 섭섭하게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민준기 기자였다.

“솔직히 좀 섭섭했습니다. 이런 소식을 강 PD님도 아닌 기사로서 접한다는 게요. 섭섭해서 그날 술 좀 마셨습니다.”

씨익 웃는 모습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고개를 조아렸다.

“이거 참, 저도 뒤통수 맞은 거라 미리 알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자리를 만든 거잖습니까. 이걸로 좀 봐주세요.”

나는 최대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럴 때는 우철민 PD의 서글서글함이 참으로 부럽다. 내가 아무리 웃어도 다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원.

그래도 민준기 기자는 오래 알고 지낸 짬이 있어서, 내가 맛을 보증한 해장국이 나오자 금방 표정을 풀었다.

“뭐, 섭섭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잘됐다 싶었습니다. NBS 나와서 사실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NBS 쪽에 넣은 기획은 다 리테이크 당하셨다면서요.”

“다 들으셨군요. 뭐,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잘됐다 싶어요. 채널T라는 새로운 방송국을 잡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NBS 쪽이 수월하게 풀렸으면, 어쩌면 향후 몇 년 NBS에 안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NBS를 다니던 때와 뭐가 다르겠는가.

지금에 와서는 곽성찬 본부장이나 표인배 실장에게 차라리 감사했다.

“NBS 쪽이 요새 오히려 삐걱댄다고 하더군요.”

“NBS가요? 드라마도 예능도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신설된 전략기획실과 기존 부서 간에 다소 충돌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힘이 전략기획실에 실리다 보니까, 원래 있던 PD들이 힘을 못 써서요.”

“아…… 알 것 같네요. 저도 사실 선배들에게 들었습니다.”

박주영 선배, 권민헌 선배, 그리고 민희까지.

정민우 팀장은 사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그들은 내게 가끔씩 불평 섞인 메시지를 보내 온다.

민준기 기자의 말대로 전략기획실에서 오더가 꽂히는 식의 기획이 많아서, 거기에 따라가려면 기존 일정이 다 헝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다못해 박주영 선배의 <달리는 도시인> 같은 레귤러에도, 게스트 캐스팅부터 시작해 기획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아서 짜증을 냈었다.

[박주영선배: 아오 표실장 그 색히 진짜 팰 수도 없고]

선배 성격에 아직 안 패고 있는 것도 대단하긴 하다. 성질로는 알아주는 사람인데.

권민헌 선배나 민희도, <당잠사> 마지막 시즌을 기획 중인데 사사건건 태클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민희: 마지막 시즌이라고 잘라놨는데 글쎄 다음 시즌 기획서도 같이 올리라고 하더라니까?]

[권민헌선배: 더 길게 가 봤자 시청자들이 정말 질려할 것 같은데... 그걸 안 들어주네]

전략기획실 입장에서는 인기가 보장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이어 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하는 권민헌 선배나 민희에게는 방해나 다름없었다.

나는 뜨뜻미지근한 응원을 보내주고, 그들이 잘 싸워 이겨 내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벌써부터 성과를 올리고 있으니까…… 아마 NBS 내부에서는 전략기획실 손을 잘 들어줄 겁니다. 지금도 드라마국에서는 이사급에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준다고 하니까요.”

드라마국 이사급이라면…… 신호현 이사겠군.

분명 들어갈 때는 왕이범 이사 라인이었던 것 같은데, 그새 신호현 이사 쪽으로 간 건가?

“뭐, 잘하시나 보군요.”

“OTT 회사부터 시작해서 회사 몇 개를 꾸리신 분이다 보니, 뭐 확실히 능력은 있을 겁니다. 듣자 하니…….”

해장국을 퍼먹으면서 듣다가, 그가 목소리를 낮춰서 나도 고개를 숙였다.

“아직 불분명한 소식이니 알고만 있으세요. NBS에서 곽성찬 본부장을 데려온 이유가, 방송사들 몇 개가 통합으로 OTT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예? 통합 사이트 같은 걸요?”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해외 큰 서비스 하나가 들어온다고 하잖습니까? 그걸 견제하기 위해서 우리 방송계에도 대책이 필요하다! 그걸 NBS에서 끌고 나가겠다! 하는 전략인 거죠.”

곽성찬 본부장이 OTT 회사를 운영했고, 지금도 그 사이트가 영업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이, 왕이범 이사나 다른 이사진에게는 그런 청사진이 있었던 모양이다.

“뭐 일단은 그런 소문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 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다면…… 정말 큰 OTT 서비스가 만들어지겠네요.”

“그렇죠. 그만큼 좋은 콘텐츠가 필요해질 겁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지금도 이렇게 구박받고 있는데, 플랫폼을 만든다고 저희한테 기회를 줄까요?”

“그건 뭐, 강 PD님이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민준기 기자는 호탕한 자세로 웃었다.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때가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런 의미에서…… 이제 슬슬 인터뷰를 해 볼까요.”

식사가 끝나고, 민준기 기자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V.I.P>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더군요.”

그렇게 그가 인터뷰의 첫 질문을 던졌다.

“영화든 방송이든, 제작 현장에서는 사실 출연자가 가장 주목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작진, 스태프 한 명 한 명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사실 어떤 콘텐츠든 만들어지기 어렵거든요. 그런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보자는 생각에 지은 이름입니다.”

“출연자가 그런 스태프의 하루를 체험해 보면서, 그 중요함을 깨닫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겠군요.”

“맞습니다. 영화 배우가 영화사 스태프를, 가수가 무대 스태프를…… 그런 식으로 배치할 생각입니다.”

민준기 기자의 매끄러운 진행과 더불어, 인터뷰가 이어졌다.

* * *

『……‘V.I.P’는 ‘무비 메이커’와 콘셉트가 비슷하다는 루머가 돌아, 시작부터 부정적인 여론을 얻을 수도 있었다. 곧 발표된 기사로 분위기가 반전되기 전까진 아마 많은 시청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강대한 PD도 그 여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의식하고 있었다.

“처음에 영화 제작 리얼리티라고 잘못 보도가 나가서 당황했지만, 차라리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명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실 테니까요.”

.

.

.

영화 배우가 영화 제작을, 가수가 무대 스태프를 체험하게 될 관찰 예능 ‘V.I.P’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V.I.P’의 방영일은 아직 미정이다.』

“이상입니다.”

무미건조한 투로 기사를 읽어내린 표인배 실장이 곽성찬 본부장을 보았다.

그는 기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한 태도로 컴퓨터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 작업이 끝나기를, 표인배는 으레 있는 일인 듯 태연한 태도로 기다렸다.

“그래서.”

이윽고, 곽성찬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우리가 뿌린 기사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나 보군.”

“채널T 내부에서 어느 정도 반응은 있었다고 합니다만, 그 이후에 가져온 강 PD의 기획안이 잘 통했다고 합니다.”

“하, 참.”

곽성찬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솔직한 자세로 헛웃음을 흘렸다.

“강대한 그 사람, 참 신기한 사람이야. 그렇지 않아?”

“맘에 드시나 보군요.”

오래 모셔온 상사인 만큼 표인배는 곽성찬의 감정을 읽어 냈다.

“맞아, 맘에 들지. 표 실장처럼 밑에 두고 일하게 하고 싶어질 만큼.”

“하지만, 그럴 사람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맞아. 그게 문제지.”

곽성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갔다.

상암의 뷰가 펼쳐진 곳.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지만, 그 콘크리트 정글 같은 세계는 방송계도 똑같았다.

곽성찬은 자신이 그 정글 한중간을 걷는 중이라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 부류였다.

강대한은 맘에 든다. PD로서의 능력도 출중하고, 행동거지도 괜찮다.

다만 단점은, 곽성찬의 제안을 거절하고 떠났다는 것.

유리창으로 빛나는 정글에서 눈을 뗀 곽성찬이 표인배를 돌아보았다.

“신 이사님이 이야기했던 거기…… 그 영화사, 이름이 뭐였지?”

“바람처럼 말입니까?”

“그래, 거기. 신동욱이었던가. 한번 약속 잡아.”

“알겠습니다.”

곽성찬이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품 한번 만들어 보자고.”

* * *

채널T는 기획안을 통과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그 이후는 진행이 빨랐다.

내가 내부에서 팀을 짜고 본격 제작에 들어가는 것을 부채질하듯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 상황 공유 요청이 날아왔다.

“허소윤 CP 스타일이 원래 그래.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서, 진행이 느린 건 참지 못하거든.”

“미리 알고 계셨다면 미리 좀 알려 주지 그러셨습니까…….”

“내가 왜? 이런 건 당해 보지 않는 한 모르는 법이야.”

이 뻔뻔한 사장님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표정을 잔뜩 구기자, 서인하 선배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폭소를 터뜨렸다.

그 소리에 우철민 PD가 무슨 소리냐고 회의실을 슬쩍 들여다볼 정도였다.

“우 PD님. 오신 김에 앉으세요.”

“응? 나 필요해?”

우철민 PD는 <V.I.P>를 함께 진행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웹드라마 제작 외주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꽤 벅찬 중이었다.

그렇지만 더 늦지 않게 이야기할 것이 있었다.

그가 수첩을 챙겨 오겠다고 다시 나간 사이에, 나는 서인하 선배를 보았다.

“일단은 허 CP님한테서 협조 가능한 방송 리스트 오는 대로 출연진을 대략 짜 보겠습니다. 준혁이 형님은 금 감독님이 오는 대로 부려먹겠다고 벼르고 있어서, 아마 지운이나 다른 출연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스튜디오 패널도 같이 짜. 어느 정도 윤곽 나오면 같이 보자.”

“예.”

그렇게 <V.I.P>에 관한 정리가 일단락된 시점에 우철민 PD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풉. 우 PD님. 왜 그렇게 긴장하십니까.”

“어, 아니…… 상사 두 분이 이렇게 부르는데 어떻게 안 쫄겠어…….”

“혼내려는 거 아냐, 우 PD. 그러니까 긴장 풀어.”

서인하 선배도 사장으로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우철민 PD의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 같은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그냥 빨리 용건을 말해야겠다.

“지난번에 주신 기획서 말입니다.”

“아? 어, 응. 웹드라마 말이지?”

내가 <V.I.P>로 채널T를 들락거리는 사이, 우철민 PD는 웹드라마 외주를 하면서 자신의 드라마를 기획했다.

사실 그동안 몇 가지 기획을 나랑 이야기하긴 했었는데, 보통은 전부 예능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져온 것은 웹드라마로, 어느 정도의 시놉시스까지 나온 상태였다.

아이윌이 현재 PD간의 서열을 굳이 나눠 놓지는 않았지만, 현재로선 내가 팀장이나 CP 역할을 하고 있다.

우습게도, 내가 우리 회사의 방송 제작에 어느 정도 권한이 있단 말이었다.

그것은 우철민 PD를 비롯한 다른 PD들의 기획에 관한 권한도 포함이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가져온 예능 기획보다 이쪽이 훨씬 나아 보여요.”

“아, 그래?”

호평에, 우철민 PD의 표정이 밝아졌다.

“웹드라마 쪽 외주 뛰시면서 거기 감각을 잘 가져오신 것 같아요. 사실 저희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충분히 괜찮아 보입니다.”

“다, 다행이네. 그럼…….”

“예. 지금 외주 끝나는 대로 한번 제작에 들어가 볼까 합니다.”

우리 아이윌은 예능 콘텐츠만 만드는 곳이 아니다.

광고도, 드라마도, 다큐멘터리도, 괜찮은 아이템이라면 언제든 만들 마음이 있다.

다만.

“우리 회사에 현재 드라마 PD가 있는 건 아니라서, 그 역할은 우 PD님이 해 주셔야 해요.”

“내, 내가?”

“당연하지, 우 PD. 발안자잖아. 힙플 때부터 외주 제작도 많이 했고. 오히려 우리보다 경험은 더 많을걸? 그만큼 책임져야지, 이 드라마.”

어느새 시놉시스를 꺼내 둔 서인하 선배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본인이 말해 놓고도, 우철민 PD의 얼굴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이 되었다.

“제가……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공부는 했지만…… 메인은 처음인데…….”

“그동안 경험이 많으시잖습니까. 우 PD님이라면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확신을 담아 이야기해 주었다.

[83%]

우철민 PD의 입봉작에 어울리는 확률.

시놉시스를 그가 나에게 가져온 시점에, 이미 80%대의 확률이었다.

100%가 아니라고 한들, 확신이 안 들 리가 없었다.

“저도 도울게요. 그러니, 입봉 한번 해 보시죠.”

“그래, 우 PD. 입봉하자.”

서인하 선배도 지원사격하자, 우철민 PD의 얼굴이 벌게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공이 지진으로 흔들리더니, 그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듯 고개를 숙였다.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만에 큰 소리를 낸 그의 인사에 밖에서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서인하 선배는 터지는 웃음을 굳이 참지 않고 한참 웃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된 다음, 내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작가는 정하셨습니까?”

“아니, 아직……. 이제 찾아봐야지.”

서인하 선배와 눈을 잠깐 마주치고, 나는 다시 우철민 PD를 보았다.

“금 감독님도 보증한 괜찮은 작가 하나를 알고 있는데…… 한번 만나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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