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66화 (166/200)

166화 전화위복

“금완승 감독에…… 류준혁, 박지운이라…….”

강대한과 메시지를 나눈 허소윤은 집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퇴근 시간 이후라서, 집에서 와인 한 잔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구워삶은 거지, 정말.”

“누가?”

옆에서 같이 와인을 따르고 있던 남편이 궁금증을 표해 온다.

그녀의 남편은 방송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IT 계열 사람이라서, TV 방송 자체를 잘 모른다.

“강대한 PD 말이야.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기획안에, 금완승 감독이랑 배우 류준혁, 박지운까지 꼬셨다지 뭐야.”

“어어…… 헐? 금완승 감독이면 이번에 영화 개봉한다던…… 그, 뭐야. 천만 영화도 나왔던 감독 아닌가?”

문화생활에 무지한 남편도 금완승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거기다 류준혁, 박지운도 마찬가지.

“강대한 PD라는 사람이 그렇게 이름발이 죽여 주는 사람이었어?”

이것이 일반인의 시각이리라.

하지만 허소윤도 솔직히 놀라웠다. 그들과 <더 라이벌>을 같이하긴 했지만, 이 타이밍에 그들을 고스란히 캐스팅해 오다니.

“그래서, 결재받을 때 좀 더 끗발이 먹힐 것 같아.”

“이야, 우리 자기, 또 출세하겠네.”

남편이 잔을 들어서, 거기에 짠―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허소윤이 <무비 메이커>를 실패했을 때, 알게 모르게 남편에게 많은 신세 한탄을 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있기에 남편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려 봐. 내가 이번 프로그램 성공하면, 오랫동안 못 간 동남아 여행을 쏴 줄게.”

“휴가 빨리 신청해 놔야겠네.”

“여름에 가자, 여름에.”

부부가 희망에 차올라서 와인을 나누는 그때.

포탈에는 기사 하나가 떴다.

『채널T, 독립한 강대한 PD와 손잡고 새 예능 론칭 예정!』

『채널T의 새 예능, 다시 영화 제작이 콘셉트인가?』

『제작사 ‘아이윌’이 제2의 <무비 메이커>를 만든다!』

연속으로 뜬 기사들은 한 군데 언론사가 아니었다.

주간 연예를 비롯한, 몇 군데의 언론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사를 띄웠다.

『―강대한이 퇴사했다고는 본 거 같은데 회사 차린 거였음?

―아이윌 회사 알아온다ㅇㅇ

└찾아보니 아직 론칭한 방송은 없는 듯

└유명한 PD도 강대한밖에 없네

―근데 무비메이커를 따라한다고?

└찌라시겠지 아님 말고 ㅎ

└영화 제작에 관한 관찰예능이라는데 진짜 따라한 거 아닌가?

―채널T가 미쳤다고 망한 프로그램이랑 똑같은 걸 만들겠어?

└강대한이면 그럴싸하지 아늠?

└과연 협회장ㅋㅋㅋㅋ 당잠사에 이어 망한 예능도 인공호흡ㅋㅋㅋㅋㅋ

―결국 따라했다는거 아녀? 베낀 거지?』

자세한 사정이 밝혀진 기사들은 결코 아니었으나, 댓글에서는 금방 여론이 형성되었다.

채널T가 <무비 메이커> 소재만 따라서 방송을 만든다.

그 방송을 NBS를 퇴사한 강대한 PD가 만든다.

이 두 가지 흐름이, 금방 포털과 인터넷 커뮤니티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갔다.

남편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허소윤이 기사를 발견한 것은, 남편이 말해 줬을 때였다.

“어, 자기야……. 이상한 기사가 있는데?”

“무슨 기사?”

남편이 찾아준 기사를 보고, 허소윤의 표정이 굳었다.

포탈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기사 몇 개를 훑어본 뒤, 곧장 황영준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국장님. 기사 보셨어요?”

다짜고짜 묻는 그녀의 말에, 황영준도 퇴근한 집에서 컴퓨터를 켰다.

“젠장, 이게 뭐야. 어디서 이야기가 샌 거야?”

“이야기 샌 게 중요한가요. 보니까 제가 만난 주간 연예 구 기자만이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움직였어요. 일단 막아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나도 연락할 테니까, 허 PD도 연락 돌려.”

국장 선에서 각 언론사 데스크에게 연락이 갈 거고, 허소윤도 가장 먼저 구민호 기자에게 전화를 넣었다.

“구 기자님. 그때 말씀드렸을 텐데요. 확정된 것 없으니까 기사 쓰지 말아 주십사 하고요.”

“아이고, 그래서 저도 그때는 안 쓰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 후에, 다른 루트로 소스를 받았는데 안 쓸 수가 있어야죠.”

뻔뻔한 대답이 돌아와, 허소윤의 미간에 골을 만들었다.

“저희가 지금 몇 년 동안 얼굴 봐 온 사이인데, 그럼 기사 쓰시기 전에 한마디 해 주실 순 없었어요?”

“에이, 나쁜 기사도 아니잖습니까. 초안 컨펌은 났으니 저희가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요. 충분한 화제도 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습니까?”

“누이는 무슨……. 대체 그 정보를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정보원은 밝힐 수야 있나요. 그냥 좋으신 분이 있습니다.”

빙긋거리는 구민호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허소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패고 싶었다.

“뭐어, 더 정확한 정보를 주신다면야 곧장 정정 기사와 새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그것도 방법이겠죠?”

구민호는 끝까지 능글맞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가면 갈수록 지 팀장 닮아가, 하여튼.”

구민호의 상사인 추경락 기자를 떠올리면서 혀를 찬 허소윤은, 기사를 올린 다른 언론사에도 전화를 돌렸다.

황영준 국장과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 기획이 어디까지나 초안 컨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획회의는 어느 정도 통과했지만, 사실상 조건부 통과에 가까웠다.

<무비 메이커>의 실패가 있어서, 비슷한 콘셉트의 방송을 만드는 자체를 꺼려 했다.

일단 오케이 신호를 내려준 황영준부터 그러니, 다른 CP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좀 더 구체화된 기획안을 가져오면 최종 결정을 내리자는 것이 현재 예능국의 판단이었다.

거기에, 이제 금완승 감독, 류준혁, 박지운까지 합류하게 되었으니 분명 앞날이 밝다 여겼는데.

여기에 이런 기사가 먼저 터져 버렸으니, 채널T 차원에서 다시 소극적으로 변해 버릴 것이 뻔했다.

‘하필 왜 베꼈다는 얘기로 가는 거야.’

인터넷 여론이 결국 그러하지만, 인간의 악의는 무서운 법.

태연히 남긴 댓글 한 줄이 큰 파도가 되어서 덮쳐 온다. 그런 경험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기에, 허소윤은 초조했다.

한동안 그렇게 언론사들에게 소스를 던져 줄 것을 약속하여 추가 기사는 막고, 황영준에게 다시 통화를 했다.

“소윤아, 본부장이 눈치를 챘어.”

“벌써요? 오늘 미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포털에도 이미 풀렸으니 시간문제였어, 어차피. 일단 수습은 했다고 했는데…….”

“그런데요?”

“꼭 그거 해야 하냐고, 하려면 뒤로 미루자고 하네.”

영화 제작에 관한 리얼리티이니, 너무나 <무비 메이커>와 겹친다.

베꼈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지금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럴 순 없어요, 국장님.”

그러나 허소윤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무비 메이커>가 실패한 것은, 네,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다들 좋은 아이템이었다고 평가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언제 만든다고 해도 똑같은 소리는 들을 거예요. 그럴 바에야, 기획도 괜찮게 나오고 있는 지금이 밀어붙일 때 아니에요?”

허소윤의 입장은 그러했다.

소극적인 상부의 반응은 이미 질렸다. 괜찮은 카드를 얻은 지금, 끝까지 밀어붙여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여겼다.

“차라리 제가 본부장님을 한번 뵐게요. 가서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아니, 소윤아. 그러진 말자.”

한번 맘을 먹으면 반드시 저지르고 마는 허소윤의 스타일을 알기에, 황영준은 일단 뜯어말렸다.

“완전히 엎자는 소리는 아니니까, 내가 어떻게든 그건 막을 테니까, 소윤이 너는…… 그래, 강 PD하고 기획안 잘 가져와. 그거면 돼. 알았지?”

“……후우, 알았어요. 죄송해요, 괜히 국장님한테 화낸 것 같아서.”

“아, 아니야. 그럴 수 있지. 그래.”

황영준이 쩔쩔매는 건, 채널T 예능국에서 허소윤이 그만큼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문제를 봉합하고 나니, 시간은 심야를 향해 가고 있었다.

와인을 같이 마시던 남편도 분위기를 살피고는 슬쩍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홀로 남은 허소윤은 애꿎은 폰만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강 PD님. 통화 가능해요?”

“……어, 어어. 네. 잠시만요.”

시끌벅적한 소리를 보아하니 시사회 뒤풀이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리가 멀어지더니, 이내 조용해진 곳으로 간 강대한이 다시 응답했다.

“예, 밖으로 나왔습니다. 말씀하세요.”

“인터넷에 기사가 떴어요. 우리 방송에 관한 건데…….”

강대한에게 설명하자, 그도 점점 표정이 굳어 가는 것이 전파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데는 막았어요. 더 기사가 뜨진 않을 거예요.”

“그렇군요……. 그렇네요, 그새 저한테도 몇 군데 연락이 와 있습니다. 제가 놓쳤군요.”

“기분 좋은 날일 텐데 미안해요, 방해한 것 같네.”

“방해라뇨. 연락 빠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혹시 이 일이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요?”

강대한의 장점 중 하나는 이해가 빠르다는 것이다.

기획안을 정리할 때도, 평소 대화를 할 때도, 얼마 단서를 주지 않아도 다음, 다음 단계까지 금방 추론해 낸다.

이번에도 그러했기에 허소윤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영화 제작이라는 아이템이 겹치다 보니 위쪽에 다소 민감하게 여론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베꼈다는 댓글도 있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지만…….”

“결국, 가져갈 기획안이 중요하겠군요.”

강대한의 반응은 생각 외로 담백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방법 있어요?”

“영화 제작이라는 컨셉이 문제라면…… 확장하면 되지 않을까요?”

* * *

<무비 메이커>는 영화 제작 과정을 추적하는 다큐풍에 가까운 리얼리티였다.

거기에 진행자를 한 명 두고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담기도 하고, 감독이나 배우의 속마음을 인터뷰하고.

그런 식의 구성은 방영 시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그렇기에 애초에 나는 관찰 예능의 포맷을 빌려와서, 로케와 스튜디오 촬영을 번갈아 편집하는 기획을 만들었다.

흔할 순 있으나, 그만큼 익숙함과 새로움을 같이 전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디까지나 영화 제작에 관한 내용은 한계였다.

처음부터 허소윤 CP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위해 떠올린 방법이었으니, 그것 자체로 한정된 기획이었다.

허나, 이제 구도가 달라졌다. 누가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으나, 기사들이 변화의 계기와 힌트를 준 것이다.

뒤풀이에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나,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기획안 수정에 매달렸다.

금완승 감독이 먹인 고량주의 여파로 결국 새벽까지 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출근해서 숙취가 어느 정도 가신 뒤에는 집중해서 기획안을 고칠 수 있었다.

“사장님,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내가 고친 기획안을 보고, 서인하 선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전까지는 사실 한정적인 그림만 나오겠다 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다양한 로케가 가능할 것 같아.”

“스튜디오 패널도 더 다양하게 꾸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에게 오케이를 받은 다음에 허소윤 CP에게 보냈다.

한 시간 뒤, 허소윤 CP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확장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요?”

“예, 맞습니다.”

“솔직히…… 난 전보다 맘에 드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걸 황 국장님이나 본부장님이 맘에 들어 할지.”

“그건 허 CP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아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장담할 수 있어요?”

허소윤 CP도 지금껏 보지 못한 소극적인 자세였다.

그럴 만도 하다. 기세 좋게 밀어붙이고 있던 기획에 제동이 걸린 거니까.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98%]

지난밤의 기사로, 내가 모르는 사이 확률은 74%로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하룻밤 사이에 20% 이상 올렸다.

2%의 부족 확률은, 정말이지 무시해도 될 수치였다.

최종 컨펌을 내려줄 그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상, 이 기획은 통과될 수 있었다.

“98%의 확률로 장담하겠습니다. 저희, 이 방송 만들 수 있습니다.”

“……믿어 볼게요.”

허소윤 CP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채널T, 강대한 PD와 손잡고 방송 스태프 체험 예능 ‘V.I.P’(가제) 제작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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