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63화 (163/200)

163화 방송사 채널T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허소윤 CP에게서 전화가 왔다.

“먼저 전화 줄 줄은 몰랐는데, 놀랍네요.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저,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대뜸 물어보는 거지만, 나에겐 어느 정도 희망이 있었다.

허소윤 CP의 제안을 거절한 날, 그녀는 도리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당돌한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오늘 자리는 좋은 사람 하나 얼굴 익혀 뒀다고 치죠.”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의 그 말이 진심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작사 차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 관련 미팅인가요?”

“예, 맞습니다.”

차린 건 아니지만.

“보자…… 내가 시간이 오늘은 좀 애매하고. 내일 어때요? 모레부터는 촬영일이라 지방 내려가거든요.”

“괜찮습니다. 채널T로 가겠습니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그녀는 흔쾌히 시간을 잡아 주었다.

그 소식을 전하자 서인하 선배도 매우 놀라워했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제가 어떻게 사람을 구워삶습니까. 그냥 얼굴 철판 깔고 물어봤습니다.”

“그 철판, 나도 좀 빌려야겠다. 내일이면 준비할 게 많겠네.”

“오늘 야근해야죠.”

그 말 그대로, 그날 새벽까지 채널T에 맞춰서 가진 기획안들을 수정했다.

사무실 한쪽에 만들어 둔 수면실에서 자고 아침에 나오자, 출근해 있던 우철민 PD가 안쓰럽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강 PD, 얼른 근처로 이사해. 수면실에서 사는 사람 같아.”

어쩌다 보니 요 근래 수면실에서 자는 경우가 많아,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게요. 방 알아보고 있긴 해요.”

“그래. 얼른 세수하고.”

내가 그래도 기획서 작업에 온 신경을 집중해도 괜찮은 이유는, 우철민 PD가 그 이외의 진행을 순조롭게 진행해 주고 있어서였다.

그를 욕심 낸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AGD 앱으로 확률은 확인한 것도 아닌데, 내 심미안이 거기까지 성장했다는 상징 같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오자 서인하 선배가 출근해 있었다.

새벽까지 다듬은 기획서들을 가지고 가자, 그가 훑어본 뒤 오케이를 내려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오늘 오후에 미팅이 몇 개 잡혔어. 스케줄 공유해 줄 테니까 확인해. 그래서, 채널T 혼자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러고 갈 건 아니지?”

“……많이 안 좋습니까?”

“사우나라도 갔다 와. 걸칠 셔츠라도 사 입고.”

그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나한테 주어서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직 제 카드 잔고 있습니다.”

그걸 들고 사우나를 갔다가, 근처 아웃렛에서 셔츠를 하나 사 입고 채널T로 향했다.

채널T는 NBS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NBS를 다닐 때는 한 번도 근처도 가 보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로비에 도착하니,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데스크에 방문을 알리고 소파에 앉아서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데,

“저기, 강대한 PD님 아니십니까?”

서류 가방 같은 것을 어깨에 멘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예, 맞습니다만.”

“아! 역시. 처음 뵙겠습니다. 주간 연예의 구민호 기자라고 합니다.”

그가 명함을 내밀어서 얼떨결에 받았다. 주간 연예라면, 추경락 기자가 있는 곳 아니던가?

“퇴사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채널T에 오셨다는 건 혹시…….”

“아닙니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아서 나는 즉각 부정했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그에게 내밀고,

“아이윌이라는 제작사로서 왔습니다.”

“아! 제작 미팅이시군요! 채널T에서 새 프로그램이 나오는 겁니까?”

“그건…….”

“강대한 PD님?”

다시 즉각 부정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허소윤 CP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구민호 기자가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더니, 뭔가를 멋대로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 기자님.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거 없으니까 섣불리 기사 낼 생각하지 마세요.”

허소윤 CP가 여전히 날카롭게 이야기하자, 구민호 기자가 아주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저희가 팩트 체크를 중요시한다는 거. 그래도 만약 뭔가 정해지면, 곧장 저한테 알려 주시는 겁니다?”

그는 빙긋이 웃고서 즉각 물러났다. 치고 빠질 때를 참 잘 아는 기자였다.

그가 사라지자 허소윤 CP가 즉각 나를 이끌고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한숨을 지었다.

“저 언론사는…… 영 믿을 데가 못 되어서요. 하필 날을 잘못 잡았네요.”

“저도 <더 라이벌> 때 조금 겪었습니다만, 설마 모든 기자가 그러겠습니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허소윤 CP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강 PD님은…… 만드는 방송에 비해서 허술하시군요. 언론사란 개개인 기자보다, 결국 데스크의 성향에 좌지우지되는 조직이에요. 주간 연예는 방송인이라면 가장 경계해야 할 곳이고요.”

그 정도였나. 추경락 기자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나 보네.

하긴, 언론사만이 아니고 방송계도 그건 똑같은 것이다. 누가 권한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조직은 많은 부분이 바뀌니까.

그런 의미에서 허소윤 CP의 존재는 차라리 나에게 좋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나는 그녀와 함께 위로 올라갔다.

“큰 회의실이 없어서 작은 데로 잡았어요.”

“상관없습니다.”

둘이서 이야기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기에,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서인하 사장님도 원래 같이 왔어야 하는데, 미팅이 겹쳐서 저만 혼자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서 국…… 사장님이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한데, 이해하세요.”

“저도 어색합니다. 아직 노력하고 있고요.”

그렇게 공통 주제로 인사를 나눈 뒤에, 본격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채널T 쪽에 저희가 제작한 예능을 제공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하고 찾아뵈었습니다. 기획안도 여러 개 준비해 왔습니다만 한번 검토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태블릿을 꺼내 기획안 PDF 파일을 띄워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여유로운 자세로 태블릿을 받아 들고서, 천천히 옆으로 슬라이드를 하며 읽기 시작했다.

“아직 초안들이라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위주입니다. 채널T의 현재 예능 프로그램과 비교해서, 아이템이 겹치지 않는 것으로만 정리했습니다.”

“그렇네요. 꽤 저희 예능을 잘 보시나 봐요.”

“예능 방송이라면 방송사 구분 없이 꾸준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기획안을 훑으면서도, 내 말을 빠짐없이 듣는 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

“NBS 쪽에 방송을 제공하지 않으시고, 왜 우리한테 연락하셨죠?”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나는 침을 삼켰다. 예상치 못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그저 입안을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한 동작이었다.

“NBS와도 물론 현재 교섭 중입니다. 그렇지만 전관예우가 있는 업계도 아니고, 저희도 NBS에만 제공하려고 회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서요. 채널T에서 진행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린 겁니다.”

“흐음…… 그렇다는 건, 굳이 저희 독점 제안도 아니라는 말이겠군요.”

“예. 맞습니다.”

굳이 숨길 이야기도 아니라서 단언했다.

어느 방송국에 독점으로 제공한다면, 굳이 밖으로 나와 제작사를 차리지 않았겠지.

“NBS에 있을 때보다 좀 더 자유로운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채널T에 제공이 가능하다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도움이라.”

허소윤 CP가 손가락을 멈추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본 듯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놓고서 나를 보았다.

“상부상조가 되어야겠죠.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입니다.”

하룻밤 새 준비한 거지만, 기획안에는 많은 공을 들였다.

채널T 방송 중에 아이템에 겹치지 않는 것을 선별하고, 일부러 과거 파일럿으로만 그친 프로그램의 변형 같은 기획도 포함시켰다.

이 정도면 혹할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나를 보는 허소윤 CP의 눈길은 여전히 신중했다.

“혹시, 기획안들이 맘에 안 드십니까? 초안이라서 디테일한 부분들은 아직 더 보충해야 함은 인정합니다.”

“음, 아니에요. 맘에 안 드는 건 아닌데…….”

그런데 뭐지. 그렇다고 확 와 닿는 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그녀와는 이전에 한번 만나, 식사를 하면서 꽤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업계이다 보니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만 해도 몇 시간은 나눌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녀가 맘에 들어 할 기획을 준비해 온 것인데.

대다수의 기획이 AGD 앱에서 최소 70% 이상의 확률로 그녀가 맘에 들어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들이었다.

부족 확률이 이 자리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녀의 머리 위를 쳐다보았다.

[64%]

애매한 숫자가 떴다.

허소윤 CP가 아이윌과의 협업을 진행할 확률.

내가 준비한 70% 이상의 기획안들보다 낮았다.

“현재 우리 채널T 예능들에 부족한 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문득 물어오는 허소윤 CP의 눈이 진지했다.

이전까지가 서론이었다면, 지금부터 본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준비해 온 대답을 잠깐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예능 장르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채널T의 예능도 꾸준히 체크했고, NBS와 더불어 케이블계의 양대산맥이기에 만드는 프로그램도 많았다.

그런데도 내가 지난 몇 개월 동안 느낀 것은, 예능 포맷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예능에도 포맷이 여러 가지가 있죠. 경연, 관찰, 게임 등등. 하지만 채널T는 성공해서 자리 잡은 포맷이 지나치게 게임이나 토크쇼 포맷에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관찰 예능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맞물려 디테일하게 나눌 수 있는데, 채널T의 예능은 애초에 관찰 예능 자체가 적었다.

그런 분석에 맞추어서 기획안을 준비했다. 현재 채널T의 상황에 빗댄다면 괜찮은 수라는 판단이었다.

[66%]

오케이. 확률이 올랐다. 이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분명 아직도 70%를 넘지 못하는 애매한 숫자다. 무언가 한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결심했다.

“<무비 메이커>도 그런 일환으로 편성한 것이라고 보입니다만, 맞습니까.”

“…….”

허소윤 CP의 가라앉은 눈동자가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영화 제작 리얼리티라는 새로운 분야이기도 하고, 그동안 채널T 예능에서 부족했던 관찰, 리얼리티 포맷을 보충할 기획이었으니까요.”

비록 그 기획이 <더 라이벌>을 토대로 신동욱 실장이 훔쳐간 아이템이라 해도, 상당히 신선한 포맷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리고 동시에, 채널T로서는 잊고 싶은, 아픈 손가락임이 분명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을 일부러 언급하자 그녀의 머리 위 확률이 요동쳤다.

[70%]

갑자기 폭증한 확률에 눈을 끔뻑였다.

지나치게 당돌한 발언이었음에도,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발상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수많은 우리 기획안을 보고서도 시큰둥해하는 것은…….

“<무비 메이커>가 실패한 기획은 아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트러블 때문이었죠. 그렇기에 그 아이템 자체는 지금도 충분히 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무비 메이커>를 되살릴 수 있다…… 이 말인가요?”

“당연히 그대로 살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정말 필사적으로 돌아가는 뇌가, 그동안의 기획을 두들겨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지금 허소윤 CP가 가장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프로그램의 기획을.

“가지고 온 기획안은 아닙니다만…… <무비 메이커> 같은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72%]

은근한 그녀의 질문과 함께 확률이 다시 한 번 올라갔다.

“<더 라이벌>을 만들 때 또 다른 계열로 구상했던 기획입니다.”

물론 구라다. 그럴 리가. 하지만 나는 뻔뻔한 표정을 유지했다.

“배우가 직접 영화 제작 스태프로서 일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리얼리티 관찰 예능……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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