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61화 (161/200)

161화 첫 기획안의 향방

회사를 꾸리면서 몇 개의 기획안을 준비했다. 그중에는 <더 라이벌> 시즌2의 기획안도 있었다.

맨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것은 금완승 투자자와의 만남 중이었고, 거기서 다듬어진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사장님.”

사무실 한쪽 자리에 있는 사장석.

남들과 다를 바가 없는 데스크는 서인하 선배의 의지와도 관련이 있었다.

실무와는 멀어지겠지만 그래도 같이 뛰는 PD들과 섞이는 것을 잊지 않겠다는.

처음에는 다소 거북해하던 직원들도, 이제 사무실 안에 서인하 선배가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기획안 최종 나왔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음, 그래.”

다른 서류를 보고 있던 그가 내가 내민 태블릿을 받아서 PPT를 확인했다.

“너한테 사장 소리 듣는 게 영 익숙해지지가 않아.”

“그럼 익숙해지시라고 말끝마다 붙여 보겠습니다, 사장님.”

“그만해. 그러지 마.”

작은 티격거림을, 근처에 앉아 있는 우철민 PD가 듣고서는 피식 웃었다.

PPT를 끝까지 살펴본 서인하 선배가 음, 소리를 내고선 나에게 돌려주었다.

“메일로 보내두고, 나가자. 좀 이르지만 길 막힐 거야.”

“예.”

내 자리에서 메일로 기획안을 보낸 다음 서인하 선배를 따라 일어섰다.

“잘 다녀오십쇼!”

“화이팅!”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우철민 PD를 비롯한 직원들이 모두 응원을 해 주었다.

그들에게 적당히 손인사를 해 주고서 우린 주차장을 향해 내려갔다.

“너는 어때 보이냐.”

“뭐가요?”

“그 기획안 말이야. 통과될 것 같아?”

<더 라이벌> 시즌2에 대한 기획안이다.

시즌1을 직접 만든 내가 구성을 잡고,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하고, 더해 시청자위원회 같은 안전장치를 넣고, 영화사 우이독경의 제작 예정 영화 리스트도 넣고.

금완승 감독과 서인하 선배의 크로스체크까지 받은 기획안의 완성도에 자신이 없을 리가 없다.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그거 기획안 수정하는 내내 네 표정이 안 좋더라. 완성도에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되겠어? 미팅 미루고 더 고쳐 볼래?”

오늘 미팅을 목표로 초안을 짠 것인데, 정작 그 장본인인 내가 부정적이니 서인하 선배도 마음은 안 들 것이다.

그래선 안 되지만, 나는 한숨을 지었다.

“완성도는 자신 있습니다. 선배도 도와주셨고, 금 감독님도 서포트해 주셨는데 당연하죠.”

“근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기획안이 통과될 것 같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53%]

‘<더 라이벌> 시즌2 기획안이 NBS 결재를 통과할’ 확률.

최초 금완승 감독과 이야기를 했을 때는 확인하지 못했다. 뒤에 기획안을 본격적으로 작업하면서 확인했을 때,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고 몇 번 더 확인하고, 미팅이 확정된 이후로도 계속해서 확률을 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기획안을 아무리 고치고 수정해도 50%대를 넘는 법은 없었다.

60%조차 넘지 못하는 통과 확률, 그것이 이 기획안의 한계라고 AGD 앱은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우울한 얼굴로 입을 다물자, 운전을 하던 서인하 선배가 힐끔 나를 보더니 짐짓 눈썹을 꿈틀댔다.

“강대한, 너답지 않아. 네가 그렇게 흔들리면 안 돼. 우리 아이윌의 첫 예능 기획이 될 거란 말이야.”

“예……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얼굴 펴. 되든 안 되든 해 봐야 할 거 아냐.”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나의 언행을 받아 주었던 서인하 선배의 음성에 깃든 진지함과 엄격함을 못 알아챌 리가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게 한숨을 쉰 뒤 등을 곧게 폈다.

“그렇죠, 맞습니다. 제가 이래선 안 되는데. 정신 차리겠습니다.”

“그래. 그래야 강대한이지. 그 자세, 까먹지 마.”

“옙.”

그래, AGD 앱의 확률이 내겐 너무 절대적인 존재라고 해도, 당장 오늘 내가 할 일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50%대 확률은, 달리 말하면 통과될 확률도 반이라는 것 아닌가.

명확한 확률이라 해도 거기에 꿇릴 필요는 없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애써 머릿속으로 되뇌는 동안.

“다 왔다.”

우린 NBS 주차장에 도착했다.

관리직원은 우리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퇴사한 몸이다 보니, 송구스럽다는 듯 행선지를 물었다.

“수고하세요.”

관리직원이 바를 열어주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주차했다.

예전처럼 주차장에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1층 로비에서 내려서 데스크로 가자, 역시나 안면이 있는 직원이 우리를 반겼다.

“오늘은 손님으로 오신…… 건가요?”

“그렇게 됐네요.”

내가 목적지를 알리고, 데스크에서 확인해서 우리에게 출입 카드를 넘겨주는 시간이 참 생소했다.

퇴사한 회사에 돌아오면 이런 기분이구나.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서인하 선배와 출입 카드를 나눠서 들 때,

“어! 국장님!”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정 팀장. 오랜만이네.”

“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민우 팀장이었다.

거진 두 달 만에 보는 것 같은데, 그사이 더욱 수척해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부리나케 뛰어왔다.

“오신다는 날이 오늘이었습니까? 미리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대한아, 너라도 나한테 알렸어야지.”

“날짜도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우리 직원 멋대로 혼내고 그래?”

“헐, 국장님. 이제 저와는 연 끊으신 겁니까? 대한이만 챙기는 거예요?”

정민우 팀장이 서운하다는 듯 인상을 구겨서 우리는 같이 낄낄 하고 웃었다.

아, 이런 시간. 이 사람들.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민우 팀장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하필 왜 오늘 오셨습니까. 권 팀장도, 주영이도 전부 외근 나갔는데. 아, 민희 작가는 있을 텐데 이야기했어?”

“예, 말은 했습니다. 시간 맞으면 얼굴 보기로 했어요.”

“여친한테 연락할 줄은 알고, 옛 상사한테 할 시간은 없다 이거지?”

“…….”

아, 말 잘못 했다. 내가 뜨끔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밖 풍경을 쳐다보자, 정민우 팀장이 또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잘 지내고 있지?”

“뭐, 어차피 회사원들 아닌가요. 다음 달 월급 보고 사는 거죠. 미팅 끝나시면 연락 주십쇼. 커피라도 한잔 하고 가셔야죠. 아, 왕 이사님이랑 선약이세요?”

“이사님 해외 나가셨잖아.”

“그럼 커피 한잔 하고 가시는 겁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정민우 팀장은 단단히 약속을 받고 갔다. 둘만 남은 엘리베이터가 위층으로 다시 향했다.

띠잉―

익숙한 엘리베이터 도착음과 함께 이사실 층에 도착했다.

전략기획실로 들어가자, 처음 보는 얼굴의 직원이 일어났다.

“아이윌에서 오셨죠? 본부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향했다.

전략기획실에는 그새 사람이 늘어 있고, 기재들도 불어나 있었다.

개중에 아는 얼굴들도 있어서 우린 몇 번 묵례를 해 가면서 본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두 분. 오랜만에 뵙는군요.”

곽성찬 본부장이 처음 본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자세로 우리를 맞았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나, 포마드가 멋들어지게 발린 헤어스타일까지.

아직 그 스타일을 계속 유지 중인 모양이었다. 참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차가 준비되는 동안 우린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바깥은 어떤가요.”

“뭐, 하나하나 쉽지는 않네요.”

“그렇죠? 제가 업체 몇 개 굴려 봐서 아는데, 늘 그렇더라고요. 세상 쉬운 게 없다는데, 사업은 더 그러실 겁니다.”

서인하 선배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나를 보았다.

“강 PD는 어때요. 큰 꿈을 꾸고 나가신 건데, 지금까지는 원하시는 대로 되고 있으신가요?”

너무 태평한 어조라서 이게 비꼬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제 막 시작한 셈이라서, 좀 더 열심히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본부장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오호, 틈을 봐서 영업도 하는군요.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라니까.”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린 그가 본인에게 배정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담았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잔을 내린 곽성찬 본부장이 들어오라고 하자, 문을 열고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단정한 세미 정장을 차려입은, 뭐랄까, 인텔리한 증권가에서나 볼 법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가 손짓에 따라 곽성찬 본부장의 옆에 앉았다.

“인사하세요. 이번에 우리 전략기획실 실장으로 온 표인배 실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인하입니다.”

“강대한입니다.”

우린 명함을 나누었다.

전략기획실장으로, 곽성찬 본부장이 외부에서 데리고 온 인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오늘 미팅에 동석하리라고 미리 알지 못했을 뿐.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 명함을 나누고 간단한 인사를 한 뒤 곧장 본론을 꺼냈다.

“보내 드린 기획안은 확인하셨습니까.”

“예, 봤지요. 우리 전략기획실 직원들과 함께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곽성찬 본부장이 느긋한 자세로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리더니, 표인배 실장에게 눈짓했다.

그가 안경을 슬쩍 올려 쓰더니 가지고 들어온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더 라이벌> 시즌2에 관한 기획안이시더군요. 강대한 PD님께서 퇴사 전에 NBS에 제출하고 가신 버전과는 꽤 많이 달라져서 인상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 금완승 감독님과 저희 사장님과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했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이독경이 제작 예정인 영화 중에서 <라이벌>과 다른 장르의 영화를 후보로 추리고, 거기에 맞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아아, 네. 압니다. 그 부분은 동일한 구성이지만, 사이사이 디테일한 미션들이 좀 더 다르더군요.”

내 설명을 자르고 들어오는 표인배 실장의 화법에 말문이 턱 막혔다.

“시즌2니까 그러한 구성적 발전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초안만으로도 좋은 방송이 나올 것 같아요.”

그래도 평 자체는 괜찮았다. 왜 고작 ‘53%’의 확률이었는지 의아할 만큼.

그러나, 다음 순간 나온 말에 나는 잠깐 눈 깜빡이는 것도 까먹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저희 전략기획실에 좀 더 좋은 기획안이 있습니다.”

“……네?”

내가 되묻고, 뒤늦게 서인하 선배도 자세를 고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더 라이벌> 시즌2 기획안이 더 있단 말입니까?”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시즌2 기획안을 강 PD님이 제출하고 나가셨잖습니까. 저흰 그 기획안을 토대로, 주신 초안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이미 제작 진행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

“…….”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설명하죠.”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곽성찬 본부장이 여유롭게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강 PD가 나간 직후부터 NBS 예능들을 전략기획실에서 자체적으로 분석해서, 다음 시즌 플랜을 구상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몇 가지 아이템들이 나왔는데, 그중 <더 라이벌>이나 <드림 어게인> 같은 강 PD님 방송들도 포함되었어요. 난 괜찮다 판단했고, 진행하기로 했죠. 아직 초기 단계지만 아마 조만간 본격 진행이 될 겁니다.”

재차 할 말을 잃었다.

NBS에서 찍은 방송인 이상, 그것은 NBS의 것이다.

퇴사한 내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당연히, 그 방송을 내가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왕이범 이사도 그렇고, 정민우 팀장도 그렇고, 내부에서 그렇게 도와줄 거라고 여겼다.

서인하 선배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는지, 아주 억누른 음성으로 물었다.

“왕 이사님께서도…… 오케이 하신 겁니까?”

“지금 해외 출장 중이시죠. 돌아오시는 대로 보고드릴 겁니다. 사후 보고가 되겠지만요.”

아주 담담해서, 너무 담담한 어조라서 그 말을 받아들이는 데 더 오래 걸렸다.

“아쉬운 마음은 저도 이해합니다만, 우리 전략기획실 친구들도 아주 유능한 친구들이에요. 내가 모으긴 했지만 참 인재들이죠. 이 친구들도 아주 잘 만들어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곽성찬 본부장이 언젠가 본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친절하게 지어 보였다.

“강 PD의 시즌1에 누가 될 일은 없을 거예요. 믿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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