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I will
“우 실장, 알 만한 사람이 이거 왜 이래. 우리 회사 사정 다 알잖아?”
아침부터 우철민은 국성재 사장에게 불려가 혼쭐이 나고 있었다.
지난밤에 올리고 퇴근한 제작비 결재 때문이었다.
<더 라이벌>의 성공으로, 인센티브까지 포함해서 NBS에서 꽤 많은 대금이 들어왔다.
그렇기에 이번 외주 제작 진행에 꽤 욕심을 내어 결재를 올렸는데, 출근한 국성재는 결재서를 보고 노발대발한 것이다.
“이거 이렇게 돈 써서 만들어서 어쩌자고? 왜 늘상 하던 데다 맡기지, 딴 데에 또 맡겨?”
“그게…… 아시잖습니까. 그 업체 계속 실수하는 거. 퀄리티도 안 좋고. 거기 올린 데는 평도 좋고, 좀 더 괜찮은 영상을 만들…….”
“아아, 됐고. 이거, 절반으로 줄여와.”
“예?”
손을 모으고 가만히 듣고 있던 우철민이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절반이요? 절반은…… 절반은 어렵습니다, 사장님.”
“왜 어려워? 지난번 건 잘도 만들었으면서.”
그래 놓고 나중에 계속 리테이크를 요구했지 않은가. 그래서 그 업체랑 밤샘 씨름해야 했고.
그 과정을 싹 무시하고, 국성재는 결재서를 우철민에게 내던지듯 돌려주었다.
“우 실장,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현실적인 숫자로 가지고 오란 말이야. 알았어?”
“……예.”
결국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사장실을 나온 우철민.
그가 자리로 돌아와 철퍼덕 앉자, 사장실을 주시하고 있던 배두언이 슬그머니 의자를 가까이 당겨 왔다.
“안 되신대요?”
“응. 숫자 줄여 오라시네.”
“어휴. NBS에서 돈 좀 들어왔다고 좋아할 땐 어쩌고, 금세 또 쪼잔해지셔서는.”
배두언이 일부러 자극적으로 말하는 걸 알아서, 우철민도 쓰게 웃었다.
국성재의 경영 방식은 언제나 그랬다. 클라이언트가 우선이고, 예산이 우선이고.
돈 벌기 빠듯한 외주사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더 라이벌> 건으로 분명 사정이 괜찮아졌을 텐데도 그 돈이 아래쪽으로 풀려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나, 약속 있어서 먼저 나간다. 다들 일 적당히 하고 들어가.”
국성재가 사장실에서 나와서는, 휘파람을 불며 사무실을 나갔다. 나가면서 스윙하는 폼을 잡는 것을 보니, 골프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가 나가자 사무실에 흐르던 긴장감이 일순 사라지는 것을 모두가 느꼈다.
“사장님, 차 바뀐 거 아세요? 새 차로 바뀌셨던데?”
“리스 아냐? 리스 끝나신 건가.”
“리스 바꾼 지가 언젠데. 아직 1년도 안 됐을걸?”
“오늘 아침에 본 외제차가 그럼 사장님 차였어?”
국성재가 사라진 틈을 타 숙덕거리는 소리가 금세 시끄러워졌다.
모두가 불만을 가진 것은 당연했다.
<더 라이벌> 때는 강대한이 매번 출근해서 그나마 별일이 없던 것이지, 국성재의 스타일은 언제나 그러했으니까.
강대한의 경고로 <더 라이벌> 팀을 건드리지 않았을 뿐, 그 이외의 직원들은 계속 같은 처지였다.
그 사실을 알기에 우철민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지만…….
‘역부족인가, 나는…….’
문득 강대한이 떠올랐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더십 있게 팀을 이끌고, 주변 이들을 감화시켜 갔던 그가.
<더 라이벌> 다음 시즌이 다시 제작된다 해도, 강대한이 NBS를 그만둔 이상 힙플에 다시 의뢰가 온다는 보장은 없다.
사적으로 보는 거야 문제없지만…… 같이 일하면서 본받을 점이 많았다는 것을 우철민은 새삼 깨달았다.
‘같이 일할 수 있으려나.’
강대한이 NBS를 나가서 뭔가 다른 일을 준비한다는 것만 들었다. 어쨌든 앞으로 같이 일하기는 힘들 거라는 건 확실했다.
‘연락이나 해 볼까.’
쉬는 동안 한번 보자고만 했는데, 기분도 안 좋으니 오늘 같은 날 연락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면서 폰을 꺼내는데.
[강대한PD: 혹시 오늘 시간 되세요?]
강대한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 놀란 우철민은, 괜스레 주변을 살피면서 답을 보냈다.
[칼퇴는 못해도 그리 늦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강대한PD: 제가 일산으로 갈게요 저녁 어떠십니까]
정말로 마음이 읽힌 건가. 우철민은 잠깐 고민했다가, 일대 결심을 한 듯 답신했다.
[난 괜찮아 내가 저녁 살게]
[강대한PD: 제가 퇴사 턱 낼게요]
[강대한PD: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시간 뒤.
강대한과 힙플에서 일할 때 자주 갔던 고깃집의 방에 앉아서 고기를 굽다가, 우철민은 집게를 떨어뜨릴 뻔했다.
“……뭐…… 라고?”
강대한은 태연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저랑 같이 일해 보시지 않겠냐고요.”
* * *
우철민 PD의 성실함을 가장 잘 아는 건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금완승 감독도.
내가 우철민 PD 이야기를 꺼내자, 우리 회사의 투자자께서는 문자 그대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 친구가 만약 합류해 준다면 나는 백퍼센트 환영이야.”
“괜찮은 친구인가 보네요.”
“그럼, 그럼. 괜찮고말고. 성실하고, 서글서글하고. 또 촬영장에서는 목소리가 커서 확성기가 필요 없어요. 촬영장에서는 목소리 큰 게 짱이거든.”
지극히 실무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금완승 감독의 반응에 피식 웃은 서인하 선배가 나에게도 물었다.
“능력도 있고, 성실하고, 또 외주사나 작업 전반에 걸쳐서 경험이 많고 발이 넓어서, 분명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힙플이 놓아줄까? 거기 국 사장,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국성재 사장의 캐릭터는 서인하 선배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려를 표했는데,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우 PD님이 회사를 옮기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물어보고는 싶어서요.”
제 욕심일 수도 있지만, 하고 덧붙이면서도 묘하게 가슴이 떨렸다.
<더 라이벌> 때의 기억, 일이 끝나고 나서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지금의 기억, 우철민 PD와는 딱히 나쁜 기억이 없다.
국성재 사장에게 착취당하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지언정.
그래서 두 사람이 콜을 했을 때, 나는 바로 연락을 취했다.
약속은 바로 잡혔다.
서인하 국장의 차를 얻어타고 일산으로 향하는 길, 나는 조금 긴장했다.
우철민 PD에게는 퇴사 후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린 적이 없어서, 그 설명을 하면서 의향을 물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단칼에 거절당할 것도 상정해야 했으니까.
우철민 PD는 의리가 있는 스타일이라, 힙플 국성재 사장에게도 의리를 지킬지도 모른다.
만약 칼같이 거절하면 깨끗하게 물러서자.
좋은 인연이니만큼 틀어지지 말고 이어가면 된다.
그렇게 결심하고, 고기를 굽는 그의 잔을 따라주면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뭐…… 라고?”
“저랑 같이 일해 보시지 않겠냐고요.”
어떤 회사인지는 충분히 설명했고, 우철민 PD는 금방 이해했다.
그래서 떨리는 눈빛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같이 일하자고? 서인하…… 국장님이 만든 그 회사에서?”
“네.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이지만, 서…… 사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열정을 다해 일할 생각입니다. 그런 곳에서, 우 PD님 같은 분이 오셔서 내부 중심을 잡아 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우 PD님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정말 열심히 어필했다.
우철민 PD는 금방 거절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은 고마운데…….’라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
생각하는 얼굴이 되어 집게만 멍하니 들고 있었다.
나는 그 집게를 대신 받아 들고, 탈 것 같은 고기를 불판 가장자리로 밀어낸 다음 다시 그를 보았다.
“갑작스럽다는 건 저도 알아요. 저는 몇 달 준비한 일이지만 우 PD님은 오늘 처음 들으신 거니까. 다만…… 저희가 우 PD님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송 출연을 위해서 출연진을 캐스팅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우철민 PD가 합류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은 늘 했지만, 직접 이렇게 내뱉고 나니 새삼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괜찮은 인재는 주변에 있다. 박주영 선배도 그렇고, 하다못해 지환이도 그렇고.
그렇지만…… 우철민 PD와는 상황도, 여건도 모두 다르다.
그가 조금이라도 흔들려 준다면 좋을 텐데…… 그건 나의 욕심일까, 아니면 약간의 확률이라도 있을까.
[……%]
머리 위를 올려다본 순간.
홀연히 숫자가 떠오르려 했다.
간절한 마음에 AGD 앱을 움직여 버린 것이다.
서둘러 눈을 내려 확률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이 흔들리든 아니든, 그 확률을 확인하는 것은 그의 마음을 훔쳐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안 돼. 그럼 안 된다.
[확률 보기 사용을 종료하였습니다.]
그 메시지가 시야 한편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
눈이 마주쳤다.
우철민 PD는 흠칫 놀라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 딴 데를 보는 듯한 그 태도에…… 나는 묘하게 자신감이 생겼다.
“당장 답변 안 주셔도 됩니다. 아내분이랑 상의도 하셔야 할 거고, 저희도 사무실 만드는 중이라 시간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말해 주세요.”
“어…… 응.”
그가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고기들을 다시 불판 중앙으로 옮겼다.
“이제 딱딱한 이야기는 끝! 고기 먹죠. 오랜만에 회포도 풀면서.”
“그, 그럴까.”
우철민 PD의 태도는 금세 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기를 먹으면서 옛이야기, 회사 욕 등을 해 가자 차츰 나아졌다.
같이 NBS 욕 좀 하고, 힙플 사장 욕도 좀 하고.
<무비 메이커> 외주사를 비롯한 고충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그가 물어왔다.
“아 참. 회사 이름 뭐야? 못 들은 것 같은데.”
“아…… 말씀 안 드렸군요. 회사 이름은…….”
* * *
『아이윌E&M』
그럴싸한 현판이 사무실에 붙었다.
‘I will’이라는 영자 필기체도 멋들어지게 아래쪽에 깔린 로고의 현판이 꽤 맘에 들었다.
“안 삐뚤지?”
“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사무실 입주날.
쉬는 중에도 가구 도착하는 날에는 나와서 서인하 선배를 돕고, 컴퓨터 등 또 물품들이 도착하면 배치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윌의 첫 사무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정경이었다.
금완승 감독, 배우 류준혁, 왕이범 이사 등의 이름이 붙은 난이 배송을 오고, 자잘한 물품들이 계속해서 도착했다.
그것들을 받아 정리하는 데만도 하루 이틀이 훌쩍 날아갔다.
“회사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군요.”
“그러게 말이야……. 각오는 했어도, 할 거 참 많네.”
사실상 나보다는 서인하 선배의 할 일이 더 많을 텐데도 그는 묵묵히 본인 할 일을 처리했다.
그것을 보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최대한 그가 내부를 신경 쓰지 않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폰이 진동하면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청소를 하던 중에 손을 멈추고 폰을 확인하는 내 옆으로, 마찬가지로 걸레를 손에서 놓은 서인하 선배가 다가왔다.
“왜? 무슨 일인데?”
“……우 PD님입니다.”
내 대답에 그의 눈빛도 달라졌다.
“뭐래?”
“무서워서 아직 확인 못 했습니다.”
“빨리 확인해 봐. 답지 않게 떨지 말고.”
난 항상 잘 떨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 말도 맞아서,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그와의 톡방을 열었다.
“…….”
잠시 후, 서인하 선배와 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철민PD: 아직 배울 게 많겠지만 잘 부탁할게]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아주 큰 힘이 되었다.
그 후, 우철민 PD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사무실 출근을 시작했다.
인수인계할 게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쓴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사장님이 보기 싫다고 꺼지라고 하더라고.”
“……다음에 욕이라도 한 사발 해 줘야겠습니다.”
밑에 두고 일하던 사람이 나간다는데 반성이나 응원은 못 해 줄망정.
새삼 왕이범 이사나 정민우 팀장이 얼마나 신사적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철민 PD가 합류한 이후로 우리 아이윌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우철민 PD는 애초의 판단대로 내부 팀을 아주 잘 꾸렸다.
알고 있는 외주사들과 연계를 하고, 필요한 인력들을 데리고 오고. 그 와중에 나도 몇 번 이야기를 들은, <무비 메이커>로 피해를 입은 외주사 또한 끌어안았다.
아이윌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덩치가 커지고, 본격적인 제작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진행 보자.”
서인하 선배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이 선언했다. 나도 드디어 멈춰 두었던 기획안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배우 오디션 예능 <더 라이벌> 시즌2―NBS 방영 기획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