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59화 (159/200)

159화 투자자

알람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찌뿌둥한 몸을 뒹굴 굴렸다가, 폰 알람을 끄려고 손을 뻗었다.

“…….”

아, 오늘따라 몸이 더 무겁네. 좀 더 잘까…… 싶지만, 잠깐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잠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몇 년 동안의 루틴으로 인해 더 이상 몸이 잠들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비적비적 일어나서 좁은 원룸을 지나 샤워룸으로 들어가서, 잠을 깨는 겸 샤워를 하고 나와서 옷을 차려입었다.

가방을 들고 덜 마른 머리를 털면서 현관문을 나서려고 했다가.

“……아. 나 퇴사했지.”

다 차려입은 내 전신을 허망하게 내려다보았다.

이게 뭔 뻘짓이지.

잠이 덜 깬 게 분명하다.

나는 돌아와서 가방을 던져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퇴사한 지 일주일.

그동안 본가에 가서 보고하고, 등짝을 얻어맞고, 대학 친구들을 만나 술을 진탕 마시고, 민희와 박주영 선배를 만나서 또 술을 마시고.

그렇게 술통과 술통 사이를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오늘이 되었다.

제정신이 안 돌아올 만도 하네. 몸이 힘들어서 어제 조금 더 마셨다뿐이지, 일주일 내내 술의 연속이었으니.

생각만 했는데 위장에서 알코올 냄새가 역류하는 것 같아서, 냉장고에서 적당히 주스를 꺼내 마셨다.

[이민희: 일어났어?]

[이민희: 나도 퇴사ㅠㅠ]

아침부터 메시지를 보낸 여자친구께서는 남자친구를 그렇게 부러워했고,

[박주영선배: 야 백수 남는 게 시간이시니까 편집외주라도 할래?]

선배는 벌써부터 일거리를 던지려고 혈안이었다.

이 사람들이, 이제 일주일 정도 쉬고 있는 사람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나 말고 한 명이라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니]

[술 사주실 때만 연락 주세요]

각각 답신을 보낸 다음에 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인하 선배의 메시지도 와 있었다.

[서인하선배: 일어나면 연락해 기재 보러 가자]

입주할 사무실을 드디어 정했다.

가산디지털단지 쪽에 새로 올린 건물로, 서인하 선배가 그동안 발품을 팔아 찾아낸 사무실이었다.

요 일주일 사이에 같이 가서 최종 확인을 하고, 계약을 하고, 그러고 나서 채울 기재를 보러 가자고 약속을 했었다.

[일어났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서인하선배: 나 상암이니까 집 앞으로 가마]

출근 채비를 하는 게 아예 헛짓거리는 아니었구나.

금세 다시 준비해 밑으로 내려가서 서인하 선배의 차에 올랐다.

“오늘 출근할 뻔했습니다. 문 나서기 직전에 깨달았어요.”

“그거 다행이네. 난 사실 차에 시동 걸고 깨달았거든.”

서인하 선배도 같은 일이 있었다며 함께 낄낄댔다.

이거 참, 퇴사라는 것도 적응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가구 단지로 가서 채워 넣을 기재들을 골라 배송을 맡긴 다음엔, 전자기기들을 고르기 위해 용산으로 향했다.

데스크톱과 노트북, 프린터, 프로젝터 등등.

각종 기기를 결제해서 배송을 부탁하고 나자 금세 점심시간이 지났다.

“밥이나 먹을까.”

서인하 국장이 잘 아는 곳이 있다고 공덕 쪽으로 향했다.

“어제도 술 마셨어?”

“친구들 만나서 마셨습니다. 많이는 아니고요.”

“그래. 며칠 전보다 그래도 오늘은 안색이 좀 낫네.”

그가 데리고 간 것은, 공덕에서 유명하다는 해장국집이었다.

이거 참, 부하 직원을 이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참으로 상사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다.

그렇게 밥을 먹은 다음에는 한숨 돌리자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는 제가 사겠습니다.”

“퇴직 턱이야? 그럼 한 잔 얻어 마셔야지.”

이런 농담도 참 부담 없이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커피를 사서 자리에 앉자,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사업자 등록했어. 아직 더 절차가 남았는데, 하나씩 해 가면 될 거야. 너는 언제까지 쉬고 싶어?”

“오늘부터라도 당장 일할 수 있습니다.”

“일할 공간도 아직 다 안 만들어졌는데 일하긴 뭘.”

서인하 선배가 피식 웃었다.

“빨리 일하라고 하는 말 아니야. 나야 그동안 좀 쉬었다지만, 너는 아니잖아. 좀 쉬면서 리프레시하고, 이사한 다음부터 출근하면 돼.”

그동안은 내가 회사 다 꾸려 놓을 테니까, 라고 그는 부담 가지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고마운 이야기였고, 솔직히 나도 최근 1년 가까이 휴가도 제대로 간 적이 없어서 쉬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럼…… 이사하고 바로 출근하겠습니다.”

지금 집은 이번 달에 빼기로 되어 있다.

가산으로 사무실이 바뀌었으니, 근처 오피스텔을 전세를 얻었다.

모아 둔 돈과 퇴직금까지 전부 긁어모아도 살짝 모자라서 대출도 했는데, 그 와중에 서인하 선배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커피를 매만지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제가 이걸 여쭈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뭔데. 말해 봐.”

“우리 회사…… 투자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도 될까요?”

사실상 서인하 선배와 둘이서 시작하는 회사라고 해서 우리가 돈을 들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들일 돈이 없고, 서인하 선배는 사장으로서 가진 돈을 털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로 사업이 충분히 굴러갈 것 같진 않았다.

경영이야 서인하 선배가 하는 거고 나는 내 몫의 일만 하면 되는 거지만, 같이 시작하는 입장이니 궁금했다.

“음…… 투자자라. 그러고 보니 내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구나.”

“예. 제가 제대로 여쭌 적도 없으니까요. 아, 물론 반드시 설명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아니야. 한배를 탄 사람인데 너도 알아야지. 있어 보자…….”

서인하 선배는 뭔가를 생각하듯 카페 밖을 잠깐 쳐다보았다.

“그래, 딴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 사람은 너한테도 소개해야겠다. 오늘 별다른 일 있는 건 아니지?”

“예. 없습니다.”

“그래, 그럼 연락하고 만나러 가자.”

오늘? 갑자기 투자자를 만나러 간다고?

이게 무슨 소린지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서인하 선배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허락을 받아냈다.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서 다시 그의 차에 탄 나는, 공덕에서부터 강변북로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다가, 천호대교가 나올 즈음부터 설마 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분 맞습니까?”

서인하 선배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천호대교를 넘어 강동구로 들어섰다.

차가 가는 방향은, 내가 확신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다.

“여기야.”

이윽고 차가 어느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조수석에서 내리면서 나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우 눈에 익은 주차장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어느 사무실 앞에 서자, 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영화사 우이독경』

매우 진지해 보이는 궁서체로 적힌 현판.

이곳은 금완승 감독의 영화사였다.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금완승 감독은 사장실에 들어서는 내 표정을 보자마자 푸하하하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얼굴을 감싸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가 한참을 웃고, 그 옆에서 서인하 선배도 즐겁다는 듯 낄낄대고.

그런 분위기가 진정된 다음에야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언제부터입니까?”

“음…… <더 라이벌> 협력사 미팅 때부터?”

많은 것이 생략된 내 질문에, 금완승 감독 또한 많은 것을 생략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렇지만 난 곧장 이해했다.

“여의도에서 네 회사가 전부 모인 그 투자 회의에서부터…… 제작사를 세울 것을 이야기하셨단 말입니까?”

옆의 서인하 선배를 보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확정한 것은 아니고. 그날은 오히려 내가 금 감독님한테 한 소리 들었던 날이지.”

“한 소리요?”

“그래. 강 PD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을 그렇게밖에 활용 못 하냐고. 방송국 사람 아니었다면 본인이 진즉에 데려가서 써먹었을 거라고 그러시더라고.”

금완승 감독을 쳐다보자 그는 아주 장난스런 얼굴로 히죽 웃었다.

첫 만남부터 나한테 같이 일하자고 했던 주제에, 그 말 자체는 쏙 빼먹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서인하 선배의 추가 설명으로, 여의도 미팅이 끝나고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거기서 금완승 감독은 강 PD는 예능만이 아니라 다른 능력도 출중해 보인다고, 그걸 활용하려면 방송국만으로는 답답해 보인다고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한다.

서인하 선배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고, 그래서 본인이 하고 싶은 콘텐츠 제작사를 떠올리다가 나와 같이 일하는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이 서자 가장 먼저 연락한 것이 금 감독님이셔.”

“나는 그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고.”

<더 라이벌>이 진행되고, 영화 <라이벌>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정말 나는 생각지도 못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뭐 사실 우리 회사에 강 PD를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이야 계속 있었는데, 이런 형태도 괜찮을 것 같더라고. 어느 쪽이든 난 강 PD가 만드는 방송이 좋은 거니까.”

금완승 감독은 처음부터 내 방송을 잘 봤다고, 그래서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더 라이벌>이 끝난 이후로는 다소 소원해졌기에 나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 돌파구가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하하하…… 이거 참.”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우리 회사의 투자자 중 한 명이 금완승 감독이라니.

부담되면서도, 든든하기도 하다.

그라면…… 투자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두 사람이 모든 정황을 알게 된 내 반응을 기다리듯 쳐다보았다. 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데 장난스러움을 잊지 않고 있는 두 인생의 선배를 번갈아 봐준 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보였다.

* * *

만난 김에 <라이벌> 영화 진척도를 묻자, 순조롭게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금완승 감독은 알려주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그래픽 회사에서 CG를 입혀 주고 있어. 기대해도 좋을 거야.”

“오오, 진짜요?”

“내부 시사에서 반응이 좋았거든. CG 작업이 1차로 끝나면 투자사들 모아서 시사회 열 건데…… 아, 그때 두 사람은 못 오나?”

플래티넘, NBS도 영화 <라이벌>의 투자사 중 하나지만, 이제 우리와는 관련이 없어졌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 참여는 못 하지만,

“나중에 개봉 시사회 때라도 초대해 주세요.”

“그럼, 당연하지. 그때라도 꼭 부를게.”

씁쓸한 맛도 들었지만, 어쨌든 영화가 잘 빠졌다는 건 축하할 일이었다. 게다가 시리즈화가 된다면, 준혁이 형님이나 박지운에게도 좋은 일이니.

“투자사 시사회에서 평이 좋으면 곧장 속편 기획이 들어갈 예정인데, 그것도 <더 라이벌>처럼 해 보는 건 어떨 것 같아? 새로 추가되는 캐릭터들로 말이야.”

“<더 라이벌> 시즌2로 말인가요?”

금완승 감독의 의견에 서인하 선배가 우려를 표했다.

“영화계에서 후속편은 금기 사항 아닌가요?”

실제로 속편 기획이 여러 차례 무산된 영화들도 있었고.

“뭐, 그렇긴 하지. 아예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고. 그럼 그냥 우리 영화사 차기작을 <더 라이벌> 시즌 2로 하는 건 어때?”

그 말에는 서인하 선배도 이견은 없었다. 나도 동의했다.

“나오기 전에 시즌 2 기획 초안은 제출하고 왔습니다. NBS에 제안하시면 아마 순조롭게 진행될 거예요.”

“아니지, 그걸 강 PD가 해야지. 외주 제작사잖아. 만들어서 NBS에서 방영하는 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 그런가? 나는 생각지 못한 방식이지만, 서인하 선배도 끄덕이는 걸 보니 애초에 이 두 사람은 같은 의견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초안을 주고 온 거고, 그걸 내가 만들어서 NBS에 제공하는 형태라면…… 그렇구나, 이제 못할 것도 없겠구나.

“영화 시사회평 알려 주시는 대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감독님.”

“좋아. 말이 빨라서 맘에 들어.”

두 사장님께서 대화를 나누자 진행이 아주 빨랐다.

거기에 더해서 기획자인 나까지 있자, 앉은 자리에서 아주 뚝딱 대략적인 시즌 2 기획 구성이 나왔다.

본의 아니게 태블릿에 관련 사항들을 전부 정리해 저장했다.

아예 시즌 2 초안을 만져서 확률을 봐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

“그건 그렇고.”

금완승 감독이 어조를 바꾸었다.

“직원들은 좀 구했나? 둘이서만 할 거 아니잖어.”

“음…… 지금 좀 알아보고 있습니다. 사람도 사람이고, 협력사도 알아봐야 해서요. 조만간 몇몇 곳 미팅 가질 예정입니다.”

둘이서 시작한 회사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직원의 끝은 아니다.

방송 제작을 위해서는 인원 보충이 꼭 필요했다. 안 그래도 거기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해 왔다.

서인하 선배와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금완승 감독이 본인이 소개도 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타이밍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제가 좀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 괜찮은 사람 있어?”

콘텐츠 제작사를 차린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던 사람이었다.

“두 분도 아는 사람입니다. 능력 있는 외주 제작사의…… 기획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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