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57화 (157/200)

157화 본부장실

곽성찬.

지상파 예능 PD 출신으로, 10년 전에 케이블계에 뛰어들어 몇 개의 제작사를 만들었고,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콘텐츠 제작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 이후 복귀해 OTT 서비스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왕이범 이사의 러브콜을 받아 NBS의 본부장에 내정되었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이 곽성찬 본부장의 프로필이다.

생김새는 매우 말끔했다.

40대 후반 정도 되는 나이라고 들었는데, 겉만 봐서는 40대 초반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정장도 딱딱한 것이 아닌 세미 정장에, 헤어스타일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세련되게 정리되어 있다.

매우 유능하고 인텔리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나와 박주영 선배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고개를 숙였다.

“예, 맞습니다. 강대한이라고 합니다.”

“박주영입니다.”

“5팀의 두 축인 PD들입니다.”

서인하 국장의 말에, 곽성찬 본부장은 아아, 하고 소리를 냈다.

“<더 라이벌>과 <달리는 도시인> PD님들이시군요. 두 방송 다 재밌게 봤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것을 충실하게 받아 손을 흔들자, 그가 회의실 안쪽을 슬쩍 살피는 시늉을 했다.

“회의 중이었나 보죠?”

“아…… 예. <달리는 도시인> 기획을 좀…….”

“강 PD는 <달리는 도시인> 팀이 아니지 않습니까? 회의를 같이 하나요?”

박주영 선배가 얼른 앞으로 나섰다.

“저희 팀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지원을 좀 요청할까 하고…… 정식으로 보고 올릴 예정입니다.”

마지막 말은 서인하 국장을 향해서였다.

그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곽성찬 본부장도 별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래요. 두 분이서 합작해서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 주세요. 저도 재미있게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가시죠, 서 국장님.”

그가 먼저 앞으로 나서고, 우리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 두 사람 뒤를 지켜보다 서둘러 문을 닫고 들어왔다.

“이야……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 같아. 들었던 대로.”

“무슨 이야기였는데요?”

“지상파 PD 시절부터 깐깐하기로 유명했나 보더라고. 감도 있고 실력도 있어서, 그거 따라가려면 아랫사람이 많이 힘들다던데.”

하긴, 능력이 있으니 우리 회사 이사진의 맘에 들었겠지.

왕이범 이사는 본부장을 내정함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실무를 아는 사람을 찾고자 했고, 그래서 더더욱 내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 기준을 통과한 사람이니 분명 실력은 있을 터인데. 좀 전에 경험한 바, 역시나 보통 포스가 아니다.

“하아, 이거, 쉽지가 않겠네…….”

“에이, 선배는 솔직히 지금 반만 하셔도 미움받을 일은 없으실 텐데요.”

“어쭈, 아주 남의 일이라 이거지? 사직서만 안 냈을 뿐 맘 떠났다 이거냐?”

“하하하하하하.”

내 목을 조르는 선배의 폭행을, 나는 건조한 웃음으로 받아쳐 주었다.

* * *

정민우 팀장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하고, 나는 <달리는 도시인>에 지원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사정상 전담은 되지 못하고, 사이사이에 다른 팀, 다른 국에 지원을 나가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난 시점에, 드디어 때가 왔다.

“그동안…… 참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준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도……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진 곳은 또 없을 겁니다.”

서인하 국장의 마지막 출근일.

정식 절차는 이미 전날 다 끝났고, 오늘은 인사만 남겨 둔 상황이었다.

바쁜 일이 있을 PD들도 부랴부랴 예능국 사무실로 올라와서, 사무실 내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그동안 서인하 국장이 방송국 내에서 만들어 둔 인맥들이었다.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는 그의 눈시울이 붉었다.

“……그동안 다들 감사했습니다. 건승합시다.”

그다운 멘트로 인사가 끝나고, 박수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화이팅하세요!”

모두가 축복해 주는 참 기분 좋은 장면이었다.

왕이범 이사와의 인사도 끝낸 뒤, 서인하 국장은 NBS를 떠났다. 마지막까지 이사진에서 잡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곽성찬 본부장까지 정식으로 출근한 마당에 이빨이 먹힐 리는 없었다.

물론…… 나와의 계획도 있고.

[서인하국장: 주변 정리 끝나면 바로 만나서 이야기하자]

[옙. 국장님. 연락 주세요]

[서인하국장: 나 이제 네 국장 아님^^]

……거, 정리가 빠르시네.

어쨌든 나는 서인하 국장과 그동안 계속해서 퇴사 후의 회사에 대한 계획을 나누었다.

지원 업무가 있다 한들 내 방송이 진행되는 만큼 바쁘지도 않았기에 여러 모로 공부할 시간이 많았다.

그동안 콘텐츠 제작사에 대한 자료도 모으고,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여름이 지나갔다.

그동안.

『‘달리는 도시인’ 새로운 구성으로의 변화? 그 세 가지 특이점!』

박주영 선배가 주도한 <달리는 도시인>의 포맷 변화는 성공을 이뤘고.

『‘당잠사’ 마지막 시즌이 된다!―‘방수정 PD의 후계자’ 권민헌 PD, “이제 스승을 뛰어넘어야죠” 선언』

권민헌 선배는 다음 시즌이 <당잠사>의 마지막이라는 선언을 해 방송가를 흔들었다.

『금완승 감독 ‘라이벌’ 크랭크업! 벌써부터 해외 영화제 초청이 이어져……』

영화 <더 라이벌>은 <라이벌>로 제목을 바꿔 크랭크업 되었다.

촬영이 종료되고 후속 작업 후, 연말 시즌에 개봉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금완승 감독은 당연히 매우 자신 있어 했고, 준혁이 형님도 기대하라고 일러주었다.

무엇보다,

『충무로 신예 박지운, 쏟아지는 러브콜!』

『백종현, 채널T 드라마 주연 발탁!』

『귀여운 외모만이 아닌 연기력으로! 신인 배우 ‘동휘준’ 급부상!』

<더 라이벌>에서 활약해 준 배우들이 방송계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경력에 한 획을 남길 수 있어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서 참으로 뿌듯한 한 해였다.

뿌듯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엑시트, 빌보드차트 역주행!』

『엑시트의 뉴욕 공연 영상, 미튜브 2억 재생수 돌파!』

엑시트가 월드투어의 포문을 알린 뉴욕 공연에서의 영상이, 불법이지만 미튜브에 올라갔다.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미 각 인터넷으로 퍼진 후였다.

플래티넘에서 뒤늦게 대응을 하려고 했을 때.

“어…… 그냥 안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는 때마침 <더 라이벌> 건으로 플래티넘을 방문해 있었다.

<더 라이벌>이 배우 아카데미와 연계되어 있었기에 관련 업무 마무리를 지으려고 신사업기획부의 성희섭 팀장과 미팅 중이었다.

그러다 그 영상 이야기가 나왔고, 나도 이미 미튜브에서 봤기 때문에 확률 보기를 사용했다.

“그것 자체로도 홍보가 되잖습니까. 재생수도 높고. 삭제하더라도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흘러가는 식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자, 성희섭 팀장도 그럴까요 하면서 애매하게 끄덕여 주었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지나갔는데, 이후 남미로 간 효명이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형?! 봤어요?! 그 영상 봤어요?!”

“어…… 어어. 봤지.”

“형이 그거 그냥 삭제하지 말고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면서요?”

“그랬…… 나?”

“그거, 대박 났어요!”

불법으로 올라간 영상이, 재생수가 어느 순간부터 폭발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플래티넘 측은 공식용으로 촬영해 둔 영상을 잘라서 공식 계정에 올렸고, 그것을 기점으로 엑시트의 인기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엑시트 월드투어, 추가 투어 확정!』

『세계 각국에서 공연 요청 쇄도!』

그동안 엑시트의 인기는 케이팝의 인기를 뒤따라가는 것에 가까웠다면, 이젠 엑시트가 그 최선봉에 서게 된 것이다.

밴드, 작곡작사, 프로듀싱, 댄스 등등.

전반적인 작업을 스스로 해 내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정착되고, 미튜버와 SNS의 힘을 빌려 엑시트는 아예 세계구급 스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엑시트의 동영상이 엑시트의 향후 인기에 도움이 될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그런 메시지를 받았지만,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딱히 한 것도 없고, 그저 삭제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마디 한 것밖에 없다.

그 시점에 확률이 ‘88%’였으니까, 걸어 볼 만한 내기였다.

이렇게 폭발적인 효과가 있을 줄 알았나.

다른 말로, 그사이 내가 굳이 다른 확률 보기를 사용할 만한 일이 없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다.

다른 확률 보기를 사용했다면, 굳이 100%가 되기까지 확률 보기를 유지하고 있었을 리 없으니.

“……슬슬 때가 되었군.”

서인하 국장과 이야기해 온 타이밍이 오고 있었다. 지금이 딱 그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변을 슬쩍 눈치를 봤다가 정민우 팀장에게 갔다.

“팀장님, 바쁘십니까.”

“왜?”

서인하 국장이 나간 이후로 부쩍 눈매가 나빠진 탓에, 그가 올려다보자 흠칫 놀라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봉투를 내밀었다.

“…….”

정민우 팀장이 그것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무미건조한 얼굴로 안의 종이를 꺼냈다.

“그래. 알았다.”

읽은 뒤의 말은 그것이 다였다.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내가 놀라웠다.

“……끝인가요?”

“뭐, 더 할 말 있어? 어차피 타이밍만 보고 있었던 거잖아.”

“예, 뭐. 그렇습니다.”

“그런 냄새 안 풍겼던 것도 아니고. 국장님도 나가시면서 당부하기도 했고. 네가 준비했던 만큼, 어차피 나도 준비하고 있었어.”

그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날짜 확정되면 알려 줄게. 술이나 한잔 하자.”

“옙.”

고개를 숙이고 나는 돌아섰다.

참 좋은 분이다. 윗사람과 아랫놈이, 비슷한 시기에 나간다는데 저렇게 담백하게 보내 주다니.

너무 담백해서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지만, 내 주제를 아니까 그런 감정도 느껴선 안 되리라.

나는 얌전히 자리로 돌아가서, 정민우 팀장과 약속한 기획안들을 다듬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는 동안, 민희와 박주영 선배에게는 미리 알렸다.

날짜만 정해지면 권민헌 선배와 함께 한번 뭉치자고 말도 나눴다.

그런데, 그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

분명 정민우 팀장이 오케이하고, 왕이범 이사도 오케이했을 텐데.

뭐지? 하는 나날이 며칠 지나갔다.

“……흠, 저, 강 PD.”

“예, 팀장님.”

정민우 팀장이 아침부터 나를 부르더니, 묘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본부장님이 찾으시는데.”

“……곽 본……부장님이요?”

그새 입이 붙어서 ‘곽본’이라고 그냥 부를 뻔했다.

정민우 팀장이 내 옆에, 비어 있는 박주영 선배 자리에 앉더니 낮게 말했다.

“사직서는 올렸어. 올렸는데…… 곽본이 잘랐나 봐.”

“예? 이사님도 결재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이사님이 오케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곽본이 막은 거지. 자기가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무슨 흐름이지, 이건.

“암튼, 지금 올라가 봐. 기다리고 계실 거야.”

나는 아리송함을 안고 위로 올라갔다.

본부장실은 이사실 층에 같이 있었다.

곽성찬 본부장이 온 이후로 신설된 전략기획실로 들어가자, 여직원이 알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겨 주었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안쪽의 본부장실로 들어갔다.

“강대한입니다. 부르셨다고요.”

이사실보다 조금 좁은 정도의 본부장실이지만, 창밖의 풍경은 아주 잘 보였다.

그 상암뷰를 보고 있던 곽성찬 본부장이 내 목소리에 돌아섰다.

“아, 강 PD. 잘 왔어요. 거기 앉아요.”

푹신한 소파에 일단 자리를 하자, 그도 성큼성큼 걸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포마드로 잘 발라 넘긴 헤어스타일은 여전했다.

이쯤 시간이 지났으면 저 복장이나 스타일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처음 예능국 복도에서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는 저 근사한 스타일을 계속 유지 중이었다.

“요즘 지원 말고 방송 제작은 따로 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뭐 하고 있어요? 나한테는 그렇게 자잘하게 보고는 안 올라와서 말이에요.”

“……네. 현재는 따로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직서를 낸 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물어보다니.

“음, <더 라이벌>나 <언더커버 싱어>도 준비 안 하고 있단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하고 그가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우아해 보이기는 하는데, 속내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사직서를 냈더군요.”

“…….”

그래, 그 말이 나와야지.

“예.”

“왜죠? 대우가 불만인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방송 만드는 데 많이 태클을 걸던가요?”

“……아닙니다.”

맞다고 할 뻔했지만, 잘 참았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대답했다.

“오래 생각해 온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려면 방송사 안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좀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내가 생각해도 흔해 빠진 말이었다. 하지만, 누가 ‘나가서 회사 차리려고요, 방송 만들면 잘 봐주십쇼’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돌리고 돌려서, 흔한 말을 던져서 잘 빠져나가려는 마음은 누군들 같지 않을까.

트집만 안 잡히면 잘…….

“나가지 말고,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어요?”

“……네?”

나는 뭔가 잘못 들었는지 다시 되물었다.

쳐다본 곽성찬 본부장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내 전략기획실에 들어오라,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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