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스카우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진짜? 새 본부장이 온다고?”
단순 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내에서 흐르던 이야기는 곧장 기사화가 되었다.
『NBS, 신임 본부장 선임』
『<오늘의주식> NBS 관련 주식 요동치다―향후 변동 예측』
오랜 시간 빈자리였던 본부장이라는 공석을 채울 인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회사 안팎으로 기정사실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예능 쪽이라고?”
“왕이범 이사가 이미 미팅 끝냈다던데?”
“무슨 콘텐츠제작본부장이던가, 그런 명칭이라던데.”
휴게실에 모인 PD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창문 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힐끔거리면서도 그다지 목소리를 낮추지는 않았다.
“작년이던가 이야기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지 않았나. 그걸 되살리는 건가?”
“본부장 자리가 너무 오래 공석이긴 했지……. 드라마국이랑은 해결 다 된 건가?”
“드라마국은 또 <강철 사제> 이후로 히트작이 아직 안 나왔잖아. 기대작은 있어도.”
본부장 선임에 관해서는, 그동안 예능 총괄 왕이범 이사와 드라마 총괄 신호현 이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줄다리기가 <더 라이벌>과 <당잠사> 시즌6을 기점으로 왕이범 이사 쪽으로 기울었고, 그로 인해 본부장 선임에 대한 왕이범 이사의 입김이 세졌다.
이 타이밍에 왕이범 이사는 이사진과 고덕재 사장을 설득하여 본부장 선입을 끝내 버렸다.
……원래라면 한 달 정도 뒤 정식 발표가 될 사항이었는데, 사람들의 입소문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걸리는 건 역시…….”
그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엑셀을 너무 들여다봐서 아픈 눈을 쉬려고 휴게실에 들어온 참이었다.
“강 PD. 강 PD는 뭐 아는 거 없어?”
그들이 은근하게 물어오는 것에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서 국장님 말이야. 강 PD, 서 국장님 라인이잖아.”
그 점을 딱히 부정하진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은 계속 유지했다.
그들이 답답하다는 듯 내 옆으로 자리를 슬그머니 이동해 왔다.
“본부장이 새로 오면 국장님이 제일 위험하잖아. 그건 알지? 국장님이 한번 본부장 자리 걷어찼다는 소문. 그거 진짜라니까, 이번에 본부장이 오면…….”
“그만두실지도 몰라.”
“거기에 대해서 들은 게 없냐는 거지.”
이 PD 중엔 예능 PD도 있지만 다른 둘은 교양국 쪽이었다.
굳이 예능국 층까지 와서 휴게실에서 떠들고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외부에서 본부장이 온다는 소문이 돌고 난 후 서인하 국장의 위치에 대한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본부장 자리를 거절했다는 소문도 기정사실화되었고, 그런 이상 본부장이 새로 온다면 계속 국장으로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들은 것도 없고요.”
“그럼 누가 알려나? 정 팀장?”
“예능 5팀장 말야? 그래, 그 친구도 서 국장님이랑 친하다고 했지?”
“친한 정도가 아니지. 엄청 굴리더라고. 그만큼 믿는다는 거 아닐까?”
그들의 입을 타고 점점 더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나오자, 나는 마시고 있던 커피를 원샷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일이 바빠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얼굴을 익히는 예능 PD 선배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서 휴게실을 나섰다.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입장으로서, 입이 근질거린다기보다는 같이 있기가 불편했다.
“그냥 카페나 갈걸 그랬네.”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도 다 똑같은 이야기가 들리긴 하지만.
나는 한숨과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한 시간 정도 더 걸려서 엑셀과 보고서를 정리한 다음 기지개를 켜고 있자니 정민우 팀장이 자리로 돌아왔다.
“보고서 살펴봐 주십시오.”
보고서는 영화 <더 라이벌> 촬영 진행도와, 소비된 제작비에 대한 중간 확인이 주요였다.
거기에 몇 가지 자잘한 팀 운영 건까지 확인한 다음, 정민우 팀장이 사인하고 내게 주었다.
“강 PD가 가서 보고해.”
“직접 안 들어가십니까?”
“가능하면 지금은 얼굴 마주하지 않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화가 났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만, 보기 껄끄러운 마음은 알겠으니까.
그 길로 사무실 끝의 국장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서인하 국장이 있었다.
그에게 보고서를 내밀자 그는 몇 번 훑어보는 척만 하고 도로 내려놓았다.
“숫자 안 틀렸지?”
“예.”
AGD 앱으로 이미 틀린 곳 없다는 확률을 받아낸 보고서다.
“그럼 뭐 그대로 보고할게. 나가 봐.”
그렇지만 나는 나가지 않고 책상 앞에 서 있었다.
5초 정도 더 모니터에 집중하던 서인하 국장이 문득 내 존재를 다시 깨닫고서 눈을 들었다.
“왜? 할 말 있어?”
“조언을 좀 여쭙고 싶습니다.”
“그래. 뭔데.”
“채널T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번 만나자고요.”
서인하 국장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래?”
한 박자 느리게 되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태연한 어조로 설명했다.
연락이 온 것은 어제 저녁.
우철민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더 라이벌> 팀 해산 이후로는 메시지가 오가는 것이 주 연락 수단이었기에, 기쁘게 전화를 받았다.
“예. 우 PD님.”
“아, 강 PD. 전화 좀 가능할까?”
“그럼요. 왜 그러십니까?”
“그…… 말하기 좀 애매한 용건이긴 한데…….”
전파 너머의, 우철민 PD 주변의 시끄러움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조용한 데를 찾아가는 것 같아서, 나도 혼자 있는 원룸임에도 등을 곧추세웠다.
“말씀하세요. 안 좋은 일입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 내가 부탁을 좀 받아서 말이야. 아는 사람이 강 PD를 소개 좀 시켜 달라고 하네.”
“저를요? 누가요?”
“채널T의…… 예능 CP야.”
CP란 치프 프로듀서(Chief Producer)의 약자로, 우리 NBS로 치자면 팀장급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를 왜 만나자고 하는 걸까.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연속으로 들었다.
“……채널T의 CP가 왜요?”
“강 PD를…… 데리고 오고 싶나 봐.”
국성재 사장이 채널T로 들어갔다가 그 CP를 만났는데, 힙플스튜디오에서 <더 라이벌>을 제작한 것을 알고 있으니 나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성재 사장은 그것을 우철민 PD에게 명했고, 그래서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자기 연락처 좀 전해 주라고 했다는데…… 어때, 알려 줘?”
“……어, 그, 잠시만요.”
이 본의 아닌 타이밍은 뭐지.
어디서 소문이라도 났나 하고 솔직히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진정하고 일단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인하 국장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다.
“이번에 <무비 메이커>를 진행한 CP라고 합니다.”
“아, 그 친구…… 허소윤?”
“예, 맞습니다.”
방송계에서도 CP, 팀장급인 여성 PD가 참 드문데, 허소윤 CP는 그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PD였다.
“그 친구가 사람 보는 눈이 있지……. 그래서, 나한테 뭐가 묻고 싶은데?”
서인하 국장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표정을 읽기는 힘들었지만, 도리어 그 얼굴이 그의 심정을 짐작하게 했다.
“스카우트 제의임에는 분명해 보이고, 채널T라면 분명 나쁘지 않은 조건을 제시할 거고. 만나 보고 싶다는 말이야?”
말투에서 언뜻 초조함이 보였다.
나에게 제작사를 차리자는 제안을 한 장본인이기에 보이는 초조함이었다.
단순히 부하가 다른 회사로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는 결이 다른 감정.
서인하 국장의 감정이 이렇게 잘 보이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리라.
“거절할 겁니다.”
내 말에 그가 눈에 띄게 움찔하여 상체를 가까이했다.
“뭐라고?”
“만약 스카우트 제안이 맞다면…… 거절할 겁니다. 하지만 그 거절을 전화로 해야 할지, 만나서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조언을 구하고자 한 겁니다.”
“…….”
서인하 국장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듯 책상 뒤의 창문 앞을 서성이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일단, 거절할 때 하더라도 만나 보는 건 좋아 보여. 대신, 어디 소문 안 나게 조용히.”
“예.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국장실을 나오려고 했다.
“잠깐, 대한아.”
그런 나를 그가 다시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서인하 국장이 한결 부담스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쪽 제안을 거절한다는 말은…… 그……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봐도 되는 거냐?”
음, 저분이 저런 얼굴도 하는구나.
상사의 얼굴만 봐 왔는데, 저런 간절한 얼굴은 또 새삼스러웠다.
나는 괜한 미안함을 느꼈다. 한껏 지금의 내 위치를 즐겨보려고 했는데, 장난이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음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대답했다.
“나가시는 날, 정해지시면 꼭 알려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당연하지. 가장 먼저 알려 주마.”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서 국장실을 나왔다.
나온 직후, 국장실에서 뭔가가 부딪히는 쿵 소리가 났지만, 못 들은 척했다.
* * *
우철민 PD를 통해 받은 연락처로, 허소윤 CP와 만날 약속을 정했다.
채널T도 상암 DMC에 있다 보니, 근처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허소윤 CP가 잘 안다는 성수동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듯 나오는 요리들을 한차례 둘러보면서, 허소윤 CP는 이미 알고 있던 제안을 했다.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은 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사한 제안이시지만, 거절하겠습니다.”
“1초도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요?”
허소윤 CP도 이러한 광속 거절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40대의 PD에, 여성으로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분명 더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당황하게 한 거지만, 뿌듯함은 없었다. 그저 죄송할 뿐.
“조금 더…… 만약 조금 더 타이밍이 빨랐다면, 더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딴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거절해서 죄송합니다.”
“허, 참.”
허소윤 CP는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물잔을 잡았다.
차가운 물을 목이 뚫어져라 꿀꺽 삼킨 뒤에 다시 나를 보았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건 어때요.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연봉의 두 배에 인센티브도 확실히 약속할 수 있어요. NBS가 월급 그렇게 잘 주는 데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뭔 답변을 드려도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네요. 어쨌든 저는 만족했습니다.”
<더 라이벌>도 보너스를 받았고, 영화 제작 진행이 없었다면 제작진, 출연진까지 해서 여행도 갈 수 있었다.
NBS는 그런 면에서는 복지가 좋은 편인데, 사실 내 거절의 이유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보니 굳이 따질 필요가 없었다.
“NBS에서 만드는 방송들 때문이라면, 그걸 유지할 순 없어도 비슷한 것은 얼마든지 만들게 해 줄게요. 기획의 자율성, 그것도 무조건 보장하죠.”
솔직히 그 말에는 좀 혹했다. 하지만 나는 재차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참…… 뭐지, 이 사람은.”
허소윤 CP가 고개를 내젓다가, 요리를 내려다보았다.
“밥 얻어먹으러 나온 거예요?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라고는 못 들었는데?”
“거절하더라도, 이렇게 만나 뵙고 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반대로 더 예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만약 그랬다면, 더욱 죄송합니다.”
서인하 국장의 판단이니 믿을 만하다고는 여기지만, 스카우트를 거절하는 정석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어차피 질렀고, 뒷감당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후회할지도 몰라요.”
허소윤 CP가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협박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얼굴이 굳어 있긴 하지만 어조는 담담한 쪽이었다.
“어쩌면 인생의 큰 갈림길이 될 선택을 저버린 걸 수도 있어요. 지금까지 난 그런 PD들을 꽤 많이 봐 왔어요. 감당할 수 있겠어요?”
대놓고 던지는 질문.
후회하지 않겠는가.
그래, 나도 그것을 고민했었다. 너무나 큰 결정이기에, 내가 이 결정을 내리면 앞으로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을지.
그런 내 고민을, AGD 앱은 조금 시간이 걸려 응답해 주었다.
[93%]
후회할 확률 7%.
그 숫자가 되려, 나에게 행운을 빌어 주는 것 같았다.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결국 제 몫이니까요.”
나는 흔들림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오늘, 서인하 국장에게 대답을 들려줬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