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후회하지 않을 확률
“나는 반대다.”
밥을 먹다가 켁 하고 목이 막혔다.
눈을 들자, 박주영 선배의 피로한 얼굴이 보였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도.
오랜만에 보는 선배는 매주 돌아가는 레귤러 스케줄로 인해 아주 피로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연말 특집에 새해 특집, 지금은 벼르고 벼르던 반년짜리 특집을 진행하고 있다던가.
나로서는 엄두도 안 날 만큼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까칠한 태도는 결코 그런 피로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짐짓 태연한 얼굴을 위장하고 되물었다.
“왜입니까?”
“왜긴 왜야, 외주사 처지가 어떤지 모르는 건 아닐 거 아냐.”
“그럼…… 요.”
“그래. 그런데도 나가서 회사를 차린다고?”
일단 변명이나 붙여 볼까.
“그…… 확실하게 정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선배의 의견도 들어 보고 싶어서…….”
“의견을 들어 보긴 개뿔이.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제 민희한테 연락이 왔었거든.”
“……그래요?”
“민희가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잘 들어주라더라. 내조 잘하는 여친 둬서 아주 뿌듯하시겠어.”
뿌듯하긴 했으나, 정말 그런 티를 낼 자리는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이번엔 무표정을 위장했다.
“그래서 한번 제가 NBS를 나가서 제작사를 차리면 어떨지 여쭤본 거잖습니까.”
“그래, 그게 이상한 거야. 애초에 나갈 생각이 없다면, 네가 점심부터 찾아와서 이런 걸 물어보지도 않겠지. 조금도 그럴 마음이 없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거라면 말이야.”
“……아니, 저녁엔 바쁘다고 하셨으니까…….”
“죽을래?”
역시 까칠하다. 농담도 안 통하네.
나는 헛기침을 하고서 다시 말했다.
“예……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맞습니다. 흔들리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결정한 건 아닙니다. 정말로, 정말로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박주영 선배는 험악한 얼굴로 나를 다시 뚫어져라 보더니,
“이 새끼, 점심부터 술 땡기게 하네.”
결국 선배는 아주머니를 불러 소주를 시켰다.
“아니, 점심부터 무슨 술이십니까.”
“닥쳐. 닥치고 너도 마셔.”
아무리 자유로운 풍조라고는 해도 점심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셔도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기도 전에 선배는 내 잔도 우악스럽게 따랐다.
지은 죄가 있어서 같이 한 잔을 꿀꺽 삼켰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반대다. 얼마 전에도 있었지. 그, 뭐야. <무비 메이커>? 그거 만든 제작사도 여태 돈을 다 못 받았다잖아. 그런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업계라고, 여기가.”
움직이는 돈이 많은 만큼, 그런 트러블은 항상 일어난다.
좋은 쪽만 생각해서 그렇지, 우리 NBS에서도 외주사에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를 몇 번이나 봤으니까.
“그래도, 조사 이루어진 이후로 곧 대금일 정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민 기자가 알려주디?”
나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벌인 일에 가깝지만 지금은 딱히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그건 그래도 잘 풀린 일이네. 하지만 몇 년 소송하고도 돈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그것뿐이야? 외주 제작이면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클라이언트 컨펌 받아야 하는데, 그 갑질은 어떻고? 우리가 출연진이나 기획사들한테 받는 갑질은 갑질도 아니야.”
같은 계약 관계라 하더라도, 세상 어디 동등한 관계가 있을까.
요즘은 계약서에 갑을이라는 명칭도 사라지는 세상이라지만, 그래 봤자 실질적인 무게추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게 물질적인 돈이든, 형태 없는 갑질이든.
우철민 PD도 힙플 국성재 사장의 지시를 제대로 거절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누구냐.”
문득 박주영 선배의 어투가 바뀌었다.
“뭐가요?”
“누구한테 제안받은 거냐고. 네가 뭔 돈이 있다고 직접 회사를 차릴 건 아닐 거고, 물주가 있을 거 아냐. 투자사야? 대기업? 방송국?”
NBS가 그렇듯, 방송국이 외부 투자를 통해 콘텐츠 제작사를 세우는 것도 지금의 트렌드라면 트렌드다.
선배가 말하는 바는 그것일 터.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투자 이야기 들은 거 아닙니다.”
“그럼 누군데.”
“그건…….”
하지만 끝내 나는 그 부분을 말하지 못했다.
서인하 국장이라는 언급은 내가 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뭐, 됐어. 말 못 한다면. 너와 나 사이에 못 할 말 한두 개 정도는 있겠지. 그렇지?”
“삐치지 마십쇼.”
“벌써 삐쳤거든.”
그가 흉악하게 눈을 부라리고는 연거푸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나는 빌 때마다 잔을 따르고, 또다시 내게 돌아온 소주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게 소주 한 병이 동이 날 즈음, 박주영 선배가 진득한 한숨을 내쉬고서 나를 보았다.
“진짜 나가야겠냐.”
“……그러니까, 아직 결정 안 했습니다. 정말로.”
“흔들리는 건 맞고?”
“그건…… 맞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한마디만 할게.”
“예.”
잔을 매만지고 그가 말했다.
“나가지 마. 나가 봤자 편한 세상 아니고, 너는 이미 NBS에서 자리를 잡았어. 앞으로 출세할 일만 남았다고. 이 기회를 버리고 가는 건 멍청한 짓이야.”
“…….”
“잘 생각해. 네 말대로 밖에 나가면 더 자유롭게 할 순 있겠지. 하지만, 자유로운 만큼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걸 못 본 척하지 마.”
심장을 쿡 찌르는 말이었다.
내 맞선배였고, 함께 몇 년이나 뒹군 사이인 선배의 말이기에 더욱 그랬다.
내가 지나치게 좋은 점만 보고 있는 것일까.
위험성을, 단점을 굳이 안 보고 있는 것일까.
내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을 선택이기에 망설이면서도, 결국은 긍정적인 것만 보려는 건 아닐까.
진실하게 털어놓은 사람들은 나를 모두 응원해 줬는데, 선배는 정반대의 반응이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하지만.”
그러다 선배가 다시 말을 이어서 눈을 들었다.
다크서클이 진하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선배가 잔을 들었다.
“뭘 선택하든 그것도 네 맘이지. 우습게도…… 네가 하는 선택에는 믿음이 가.”
“선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네 맘대로 하란 거야. 누구 눈치 보지 말고. 강범람이든, 강촉새든, 주제 넘치게 촉 좋은 놈이니까.”
그가 잔을 들었다.
마지막 잔이었다.
나는 묵묵하게 그 잔을 부딪쳤다.
* *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을 때, 정민우 팀장이 묘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출근을 했다.
팀장 자리에 앉은 그는 5팀 정기 회의를 한 다음에도 그 표정을 풀지 않았다.
<더 라이벌> 방송이 끝날 무렵부터 그는 서인하 국장의 지시를 받고 <뮤직 스케치> 메인 연출에서 물러났다.
아예 이름을 뺀 것은 아니고, 서브 PD를 메인으로 올리고 본인은 조연출 위치로 들어간 것이다.
그 대신 팀장으로서의 일이 늘어나면서, 바쁘기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전보다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빈도가 늘어났기에, 저 표정이 최근엔 없던 표정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점심시간이 되는 것을 틈타서 그의 앞에 섰다.
“팀장님?”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 번 더 부르고 나서야 그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어, 강 PD. 왜?”
“점심시간인데 밥 안 드십니까.”
“어어, 먹어야지. 응.”
그가 재킷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한동안 멍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던 그가, 문득 옆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얼굴로 놀라서 쳐다보았다.
“뭐야, 왜 따라와.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어?”
“혹시 털어놓을 사람 필요하시면 들어드릴까 하고요.”
“…….”
그의 눈이 사정없이 진동했다.
“……촉 좋은 놈 같으니. 티 나냐?”
“엄청요. 저 아니라도 다들 눈치챘을 겁니다.”
정민우 팀장은 한숨을 쉬고 마른세수를 하더니, 나를 끌고 한적한 밥집으로 향했다.
“너만 알고 있어라. 국장님, 그만두실지도 모르겠다.”
“…….”
역시 그 이야기였구나.
회사에 소문이 나거나 하지 않는 한,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정민우 팀장이 아닐까 했다.
언제나 서인하 국장의 심복이었고, 가장 신뢰하던 부하였으니까.
나는 일부러 놀라는 얼굴을 하고서 되물었다.
“농담이시죠?”
“농담 아냐. 어젯밤에 들었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생각보다 더 직접적으로 알렸나 보다.
“뭐, 전부터 회사를 다닌다는 자체에 힘들어하시긴 했지.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봤거든.”
나는 이야기 듣고 나서야 알았지만, 정민우 팀장이라면 더 직접적으로 보고 들었을 것이다.
그의 딱딱한 표정은, 서인하 국장에 대한 걱정도 포함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알겠더라고. 그동안 나한테 내려온 지시가 다 그 준비였던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메인 PD에서 정민우 팀장을 내리고, 팀장으로서 팀 운영에 집중하게 한 것은 본인이 없을 때를 대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나도 얼마 전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서인하 국장은 몇 달 앞을 보면서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스타일이다.
나를 힙플 스튜디오랑 일하게 한 것도 그래서였고.
본인이 없는 상황을 대비하여 정민우 팀장을 미리 훈련시킨 것일 터였다.
“그런 걸 생각하니까 놀아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또 내 길을 찾아주신 거기도 하니 고맙기도 하고…… 후우.”
내가 서인하 국장에게 지시를 받았던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복잡한 심정.
그래서 정민우 팀장의 심정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소주 한잔 하시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다. 근데 점심이잖아. 오후에도 일 많아.”
박주영 선배와 다른 점은 이런 점이겠지. 이런 성실함 때문에 서인하 국장도 후임으로 점찍은 것일 거고.
그는 강철을 씹듯이 딱딱한 얼굴로 밥을 삼켰다. 테이블 위가 조용해져, 나도 말없이 그를 따라 식사를 했다.
“……회사를 차리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러다 문득 그가 내뱉은 말에 움찔 하고 심장이 뛰었다.
“스카우트 받아서 방송사를 옮기는 건 아닐 거고…… 다른 업계로 가는 게 아니라면, 제작사를 차리시려는 거겠지.”
정민우 팀장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시선을 위로 올렸다가 한숨을 쉬었다.
“힙플스튜디오 같은, 그런 곳 말이야.”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혼자서 하시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좀 불안하네. 국장님, 국장직 오른 이후로는 실무는 거의 손 떼셨으니까.”
“그래도…… 짬밥이 있으시잖습니까.”
“그래, 경력은 무시 못 하겠지만…… 그래도…….”
그가 밥을 뒤적거리다가, 왠지 새삼스러운 눈빛이 되어 나를 보았다.
“차라리 너 같은 PD가 밑에 있으면 안심은 되겠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가? 아니면 추측인 건가?
어느 쪽이든, 여기서 갑자기 내 이름이 나와?
너무 놀라 표정을 숨기지 못했는데, 그가 피식 웃었다.
“뭘 그런 표정을 해. 누가 너 보고 같이 나가랬냐. 국장님도 다 계획이 있으시겠지, 라는 말이야.”
“어, 그, 예…….”
나는 우물쭈물 입을 다물고 식사에만 집중했다.
“후우. 암튼 들어줘서 고맙다. 혼자서 답답했는데 좀 나아졌어.”
“아닙…… 니다. 기운 나셨으면 다행이죠.”
그가 사 주는 커피 한 잔을 받고, 그가 먼저 방송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카페에 혼자 앉아서 복잡한 김정을 숨길 수 없었다.
거기서 갑자기 내 이름이 나온 것 자체가, 정민우 팀장도 무언가를 감지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티를 낸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서인하 국장이 은연중에 흘린 걸까.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생각을 곱씹을수록 오히려 한 가지 말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차라리 너 같은 PD가 밑에 있으면 안심은 되겠다.”
정민우 팀장이 남기고 간 말.
그 말이 심장에 남아 온몸의 피를 타고 도는 것 같았다.
“……촉새는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중얼거리면서 창밖을 보자, NBS 건물이 눈에 비쳤다.
항상 거대해 보이는 그 크기에, 언제부터 올려다보지도 않게 되었는데.
저렇게 크고 높았던가.
“엘리베이터 타면 금방 올라가지만.”
폰을 꺼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점심시간의 사람 많은 카페.
패널을 노려보다가, 클라우드는 찾아 들어가 작성해 둔 문서 파일 하나를 열었다.
『사직서』
이 선택은…… 과연 내가 하고 싶은 PD 생활을 하게 해 줄까?
내 남은 인생이 후회로 점철되지 않도록, 남은 인생을 걸 수 있을 선택이 될까?
[‘사직서 제출이 향후 인생의 후회를 남기지 않을 확률’의 확률 보기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