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51화 (151/200)

151화 영화 <더 라이벌>

그래, AGD 앱이 있었지.

100% 성공하는 삶. AGD 앱은 내 삶을 그렇게 바꿔 주겠다며 내게 왔다.

최근까지도 그 메시지대로였다. AGD 앱은 꾸준히, 언제나 내게 확률로 도움을 주었고, 그를 토대로 내 방송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인생에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최적의 안내를 해 줄 존재.

“…….”

하지만 나는 메시지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잠시 후 공기 중에 흩어지듯 메시지는 사라졌다.

사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길을 바꿀지도 모를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도움이다.

그런데도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아냐.”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반년 가까이 진행한 방송이다 보니 뒷정리가 수월하게 끝나진 않았다.

거기다 이번에는 방송이 끝난 후 영화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보니, 그 사이의 체크를 실무자인 내가 진행해야 했다.

사실상 영화 제작이 진행 중이라 형식적인 체크이지만, 그 관련으로도 업무는 오전을 훌쩍 지나갔다.

“아이고, 늦었네.”

점심도 건너뛰고 보고서를 정리한 다음에 정민우 팀장 자리에 올려놓고서 나는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아.”

그러다 복도에서 두 사람과 마주쳤다. 서인하 국장과 정민우 팀장.

둘이서 다른 팀 회의를 들어갔다가 나왔는지 그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나가?”

정민우 팀장이 질문을 던져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양주까지 가야 하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촬영 스튜디오가 참 멀리 있네. 오늘만 가면 되는 거지?”

“그럴 것 같네요.”

실제 촬영장을 방문하는 것은 오늘뿐. 나머지는 진행한다 해도 외근은 우이독경 사무실 정도일 것이다.

어차피 견학의 의미도 강해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두르기로 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는 서인하 국장을 향해서 했다. 그가 잘 다녀오라는 듯 손을 저어 보이는 것을 보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후우…….”

혼자 되니 괜한 한숨이 나왔다.

정민우 팀장 앞이라 티는 내지 않았을 뿐, 회사에서 서인하 국장을 만날 때마다 맘이 복잡했다.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다닐 수 있지.

이것이 짬바인가.

서인하 국장도 NBS가 첫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 여유로움은 참 부러웠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달래면서,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

양주 스튜디오까지는 약 1시간.

우이독경이 가지고 있는 촬영장은 아니고, 영화 촬영 전문으로 드넓은 대지를 대여해 주는 스튜디오였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영화촬영소 가는 길’이라는 간판이 곳곳에 보였다.

촬영소에 도착하자 곳곳으로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이 보였다. 차에서 내리자, 건들거리는 자세로 지나가던 카메라 감독 한 명이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여! 강 PD! 왔어?”

“아, 감독님. 그러게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난 별로 오랜만 아닌데? 맨날 인터넷만 켜면 보이더만.”

그동안 진행한 인터뷰 기사나 방송으로 인해서, 지금도 인터넷에서 내 이름이 노출되고 있다.

정민우 팀장은 감사히 여기라고 했지만, 이런 유명세는 정말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하, 얼굴 마주 뵙는 건 처음이잖아요. 단막극 촬영 이후 처음인가요. 잘 지내셨습니까.”

“아이고, 말도 마. 금 감독 저 인간, 영화 촬영 들어가자마자 히스테리야. 어휴.”

손을 내저으면서 누가 들으라는 듯이 딱딱 끊어 크게 이야기하길래 뒤쪽을 쳐다보자, 뚱한 얼굴의 금완승 감독이 서 있었다.

“이 인간, 내가 오는 거 알고 지금 그런 소리 하는 거지?”

“어이쿠, 금 감독님 오셨습니까? 그럼 전 이만!”

유쾌하게 웃음소리만 남기고 카메라 감독이 사라지는 것을 금완승 감독이 끝까지 노려본 뒤에 내게 고개를 돌렸다.

“왔어, 강 PD. 멀었지?”

“가깝진 않네요.”

“식사는?”

“못했습니다. 밥차 아직 돌아갑니까?”

“잔반 좀 처리할 줄 알아?”

그 정도도 감지덕지죠, 하고 나는 뻔뻔하게 밥차로 가서 남은 반찬들을 긁어모았다.

스튜디오 내부, 따뜻한 곳에 자리한 내 앞에 금완승 감독도 앉았다.

“회사에서 밥도 안 주고 일 시켜? 뭘 그리 바리바리 쌓아서 가져왔나.”

“어차피 남아서 버릴 거라기에요. 배도 고프고요.”

남의 촬영장에 와서 뻔뻔하게 밥차를 축내는데도, 금완승 감독은 그 핀잔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밥을 씹으며 물었다.

“촬영은 잘되십니까.”

내 위치에서는 안쪽 촬영장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스태프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활기는 도는 것 같은데 당장 촬영이 진행 중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 소도구 배치 중이야. 류 배우랑 박지운이가 도착하는 즉시 찍을 거야.”

“아, 어쩐지. 아직 안 온 거군요. 차가 안 보이더라고요.”

“이게 다 강 PD 때문이잖아.”

“저요?”

“그래. 왜 그렇게 방송을 잘 빼서 인기가 많아지게 한 거냐고. 오늘도 CF 찍느라 촬영 밀렸잖아.”

“…….”

난 숟가락을 든 채 그를 쳐다보았다.

뚱한 얼굴의 이유가 그거였나.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제가 방송을 너무 잘 만들었나 봅니다. 다음에는 좀 적당히 잘 만들겠습니다.”

“얼씨구. 이젠 상판이 아주 뻔뻔해지셨어.”

내가 씨익 웃고서 식사를 이어 나가자, 그도 결국 큭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 <더 라이벌>의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서, 좀 전의 카메라 감독의 말처럼 금완승 감독의 히스테리가 늘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어느 영화를 찍든 작가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 만큼, 신 하나, 컷 하나 열정을 다 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도 고생인 타입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에게 이렇게 농담을 걸고 있는 것이다.

촬영 견학의 목적이지만, 이미 사적으로 친해진 사람의 기분도 풀어주면 좋을 테니.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에, 그가 직접 다방 커피를 타 준다고 해서 촬영소 한편에 마련된 간이 사무실에 앉았다.

“촬영은 얼마만큼 진행되신 겁니까?”

“아직 초반이야. 이제 6신 정도 찍었나?”

“정말 촬영 초반이겠군요. 일정이 밀리거나 하는 건 아니죠?”

“그건 투자사로서의 질문인가?”

“공사 반반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NBS도 투자사 중 하나이다 보니 오늘 확인해서 보고해야 할 거리 중에는 기간에 관한 것도 있다.

금완승 감독의 고집이 발휘되면 촬영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체크가 필요했다.

“걱정 마시게. 내가 크랭크인이 느려진 적은 있어도, 크랭크업이 느려진 적은 한 번도 없는 사람이야.”

“그러세요? 준혁이 형님께 나중에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농담도 모르면 크게 못 돼. 예끼.”

듣고 넘길 수 있는 거짓말을 하셔야지.

그렇지 않아도 이번 <더 라이벌>은 과거 장면과 현재 장면이 교차하고, SF적인 요소들 때문에 후반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

올해 안 개봉이 현재 목표인데, 본 촬영마저 느려지면 안 되었다.

“그것만 신경 써 주세요. 그럼 뭐, 방송국에서도 아무 말 안 할 겁니다.”

“하면 어쩔 거야. 내 영화인데.”

과연. 내 맘대로 영화 찍을 거라고 제작사를 차린 감독다운 패기였다.

그러고 보니…… 금완승 감독이 영화사를 세운 이유와, 서인하 국장이 제작사를 만들려는 이유는 상통한다.

어떤 형태로는 방송, 영화 제작에 관여되는 힘들이 싫어서, 스스로가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물어볼까.

직접 영화사를 세워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자리 잡은 이 사장님에게.

“그런데, 언제 만나게 해 줄 거야?”

그때, 내 충동보다 더 빨리 금완승 감독이 내뱉었다.

“예?”

“나한테 준 그 단막극 쓴 작가 말야. 시간이 꽤 지났는데 왜 소개를 안 해 줘?”

너무 당당하게 물어봐서, 약속을 잊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할 뻔했다.

“의사를 한번 물어보겠다고만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래서? 안 물어봤어? 물어봤는데 거절했어?”

“…….”

정확히는 만나자는 건 오케이를 했다. 다만 서로 시간이 안 나서 미루고 미뤘을 뿐.

그런데 이걸 이렇게 당당하게 물어보시니 거참.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날짜 잡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 대본이 결국 반응 제일 괜찮았잖나. 물론 내가 잘 찍어서 그런 거지만, 그래도 대본의 힘이 충분한 작품이었다고.”

<더 라이벌> 방송에서 방영된 5편의 단막극 중 하나로 사용된 대본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금완승 감독이 본인이 연출할 거라고 처음부터 주장했을 만큼 탐을 냈다.

그래서 그런지 5편 중에 가장 시청자 평이 좋았다.

“좀 고쳐서 장편화시키면 영화로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날짜 잡아서 올 때는 거기에 대한 아이디어도 가지고 오라고 해.”

“……그, 예. 알겠습니다.”

일하러 왔다가 또 다른 과제를 안고 가게 됐네.

내가 잊기 전에 스마트폰 메시지 창에 기록하고 있자니 그가 덧붙였다.

“다른 글도 있으면 가지고 오라고 하고. 싹수가 있으니까 아마 여러 방향으로 괜찮을 것 같아.”

“그 정도입니까?”

“그럼. 내가 또 대본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지.”

나랑 처음 만났을 때 대본 내용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서 속을 태웠던 사람치고는 참 뻔뻔한 말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본 평가하는 능력은 준혁이 형님도 인정한다고 했으니.

나는 그 말도 기록한 뒤 다시 그를 보았다.

“왜? 뭐 더 궁금한 거 있어?”

달달한 커피를 입에 담으려는데, 금완승 감독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어왔다.

“그게…….”

하지만 이미 흐름을 놓쳐서, 나의 충동도 이미 저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지운이는 촬영 잘하고 있습니까?”

나는 일부러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적은 좀 받지만 다음 촬영일에는 그만큼 잘 준비해서 오더라고. 처음부터 알아봤지만 노력형이야. 얼마든 더 성장할 수 있을 게야.”

“그거 다행이네요. 사실 좀 걱정했습니다. 갑자기 확 떠서 정작 촬영에 신경 못 쓰면 어떡하나 하고.”

“그럴 친구는 아니니까. 류 배우가 챙기고 있는 것도 같고. ……봐, 지금도 같이 오는군.”

그가 앉은 방향에서는 사무실 창문 밖이 보였다. 그가 누군가를 보는 듯해서 몸을 돌리자, 사무실 문이 열리고 준혁이 형님이 나타났다.

“일찍 와 있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형님에게 인사하고, 그 뒤를 보았다.

“어, 강 PD님. 안녕하십니까!”

힘차게 인사하는 것은 박지운이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그는 준혁이 형님과 같은 차를 타고 온 모양이었다.

뒤에 서 있는 윤대명 매니저에게도 눈인사를 하고 박지운을 보았다.

“이야, 이제 연예인 다 됐네? 모자로 얼굴 가리고 다니고.”

“아, 아닙니다, 그런 거.”

얼굴을 붉히는 그의 행동에 셋이서 짓궂게 웃은 다음에, 금완승 감독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빨리 준비하자고. 오늘 찍을 신 많아. 강 PD는 적당히 보다가 가고. 잔소리는 넣어둬.”

“알겠습니다.”

그날 나는 해가 질 즈음 촬영장을 나섰다.

그때까지 금완승 감독에게는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 * *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떠나는 강대한을, 금완승은 스튜디오 앞까지 나와서 지켜보았다.

강대한이 타고 다니는 차는 회사 차로, 아직 집도 원룸 월세를 살고 있다고 했다.

저 정도 이름값을 쌓았으면 이제 집도, 차도 좋은 것을 가질 수 있을 텐데도 강대한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금완승은 그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재밌었다.

“뭘 그리 보고 계십니까?”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약간 젊게 분장을 한 류준혁이 서 있었다.

과거 장면을 촬영 중이라서 그는 10년은 더 젊게 분장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CG 처리로 더 젊게 만들 텐데, 박지운의 역이 전혀 늙지 않은 것과 대조되는 설정이었다.

“참 재밌는 친구 아닌가.”

“대한이요? 재밌달까, 든든한 친구죠.”

“그래. 능력도 있고, 앞으로도 큰일을 할 친구 같아.”

류준혁도 동의한다는 듯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금완승은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저 친구가 더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 예능만이 아니라, 더 다른 분야로 발을 넓혀도 된다고 보거든.”

“저도…… 다르진 않습니다.”

“그치? 그렇게 생각하면…… NBS는 너무 좁은 것 같지 않아?”

의미심장한 말이었기에, 류준혁은 대꾸하지 않고 금완승을 쳐다보았다.

“NBS가 케이블이라 지상파들보다는 자유롭다 해도, 어차피 결국 방송국이거든. 저 친구를 그냥 두기에는 너무 좁아.”

시선을 느낀 듯 씨익 웃어 보인 금완승이 어조를 바꾸었다.

“난 충분히 힌트를 줬다고 생각해. 이제 저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겠지. 다행히 같은 생각을 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같은 생각이요?”

“그래. 조만간…… 아마 방송계에 큰일이 있을 게야. 기대하게나.”

돌아서서 유유히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금완승의 말을, 류준혁은 결국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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