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48화 (148/200)

148화 최종 투표

또 울리는 전화를 무시할 순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억지로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아, 물론 그러실 것 같습니다. 1시간, 아니, 30분이라도 좋으니 저희랑…….”

“방송 끝나고 제가 연락 드리거나 하겠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인터뷰 요청 전화를 끊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야말로 무시할까 했는데, 민준기 기자였다.

“연락 많이 오죠?”

“그러게요……. 전화번호가 이미 다 퍼진 것은 알았지만, 온종일 전화가 걸려오네요.”

“실검 순위에도 매일 올라 있으시고, 기사 트래픽도 상위권이시니 아마 한동안은 계속 그러실 겁니다.”

“벌써 괴롭네요. 이미 괴롭지만.”

“드디어 폰 하나 더 장만하셔야 할 시기일지도 모르겠네요.”

민준기 기자가 농담조로 이야기했는데 거기에 귀가 솔깃할 만큼 좀 많이 괴로웠다.

“정말로 폰 하나 더 만드실 거면, 저한테는 좀 알려 주세요.”

“그럼요, 기자님은 제 마음속의 1픽입니다.”

농담이긴 했지만, 진심이었다.

다른 기자들에 비해 민준기 기자는 친하기도 하고, 또 속내 없이 다 드러내는 쪽이라 속이 편했다.

그와는 간단한 전화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남은 방송 분량에 관한 이야기를 몇 가지 나눈 뒤, 그가 지나가는 어투로 말해 주었다.

“바람처럼 쪽으로 투자자 연합에서 고소가 들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작비 회수에 배상까지 청구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허어…… 캐스팅된 배우 문제인데, 바람처럼에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요.”

“아마 블루액터스에도 동시에 들어가겠죠. 바람처럼은 블루액터스에 떠넘길 테니, 최종적으로는 블루액터스에서 크게 손해를 볼 것 같습니다.”

안주환은 거의 유죄가 확정적이라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현행범에 증거까지 골고루 있어서, 아무리 힘 있는 로펌을 낀다 한들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입맛이 씁쓸했다.

신동욱 실장이든 안주환 배우든,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거지만, 그렇다고 해도 속이 시원하지는 않았다.

“안됐군요.”

그렇다고 안타깝지는 않았다. 옆집 아들이 배탈이 났다는 소리를 들은 정도의 기분으로 나는 이야기했다.

“그럼 이번 주 10화,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투표도 부탁드립니다.”

“제가 현준영 사태 이후로 오디션 투표는 안 하자는 주의였는데, 강 PD님이니까 100원 투자하겠습니다.”

음…… 뼈 있는 말이네.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자, 때마침 우철민 PD가 다가왔다.

“이동 준비 끝났어. 공연장에도 이야기해 놨고. 다만 영화관까지는 좀 막힐 거라 빨리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짐만 좀 챙기면 됩니다. 바로 가시죠.”

나는 촬영장 사무실에 박아 둔 가방을 가지고 나와 차에 올랐다.

본래 단막극 상영 라이브 뷰잉은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몇 주 사이 시청률이 무섭게 상승한 <더 라이벌>의 힘을 증명하듯, 유명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협조 문의가 왔고, 우리는 급히 상영관을 추가했다.

“배우들 10명이 정말 열심히 찍은 단막극입니다. 연출에서도 금완승 감독님뿐만 아니라 많은 감독님이 힘을 써 주셨으니, 여러분께 즐거운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봐주세요!”

“한 표 부탁드립니다!”

준혁이 형님의 인사, 그리고 배우들의 한마디까지 이어진 뒤 참여해 준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내 주었다.

목요일 촬영 공지를 화요일에 올렸음에도, 예매 사이트가 잠깐 다운되었을 정도의 경쟁률이라고 들었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 참가한 이들이라 그런지, 배우들이 전부 퇴장할 때까지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자, 빨리 대학로로 갑시다!”

진행과 인터뷰 촬영을 위해 스태프 몇 명을 남겨 놓고, 우리는 곧장 대학로로 이동해서 또 한 번의 무대인사를 가졌다.

그렇게 시작된 라이브 뷰잉.

영화관 쪽은 두 시간 일찍 상영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소극장은 TV 방송과 동일한 시간에 진행했다.

다 끝났을 때는 10시 반쯤 됐고, 관객들의 인터뷰까지 따고 나자 어느새 자정이 근처였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못 돌아가는 거 알죠?”

관객이 모두 떠난 소극장. 오늘은 이곳에서 마지막 촬영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무대팀이 곧장 세팅을 진행하는 중에 배우들도 긴장한 얼굴로 촬영을 준비했다.

두 곳의 라이브 뷰잉 관객들의 현장 투표는 이미 집계가 끝났고, 곧 시청자 투표 집계가 올 예정이었다.

준혁이 형님이 MC석에 자리를 잡고, 그 옆에 금완승 감독도 자리했다.

10명의 배우가 둘러앉더니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중앙 카메라 옆의 내 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집계가 도착할 때까지 그동안의 감상과 결과 예상이라도 이야기해 볼까.”

내 신호에 맞춰 미리 논의해 둔 진행을 시작한 준혁이 형님.

“누가 1위가 될 것 같아?”

“너무 직접적인 질문 아니십니까, 선배님.”

“저는 지운이일 것 같아요.”

“저는 백종현…… 저저, 웃는 거 봐요. 저걸 어떻게 이겨.”

“야, 박지운. 그렇게 노려보기 있냐.”

“방금 그 눈빛 좋네. 여기서 떨어져도 다음에 우리랑 영화 한번 찍어 볼 텨?”

금완승 감독이 중간중간에 자유로이 끼어드는 것을 웃어넘기면서, 배우들의 어색한 웃음과 대화들이 오가면서 마지막 촬영이 이어졌다.

지잉―

그리고, 드디어 메일함으로 최종 집계 결과가 날아왔다.

“……아하.”

물론 가장 먼저 열어본 것은 나였다.

배우들이 예상하듯, 사실 백종현과 박지운, 두 사람의 박빙이었다.

시청자 반응도, 인터넷 반응도 두 사람이 중심이었고, 사실상 연기와 인지도도 비등했다.

즉, 박지운―백종현 둘 중 누군가가 최종 우승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배우들의 분량도 충분히 신경 쓰면서 촬영하고 편집했지만, 처음부터 이어진 흐름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결과가 도출된 것 같았다.

이게 방송과 이슈의 힘이구나.

나는 다시금 그 힘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또 그런 만큼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 것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군……. 이렇게 된 거구나.”

“사실 어느 쪽이든 납득되는 결과니까요.”

함께 확인한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조정아 작가와 함께 발표용으로 만들어 둔 PPT를 수정했다.

그 후 손짓으로 준혁이 형님의 시선을 가져왔다.

“아, 결과가 왔나 보다.”

대화가 끊기고, 긴장하는 10쌍의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나는 손짓으로 내가 아닌 모니터를 보게 했다.

결과 발표용 PPT가 모니터에 떴다.

“자, 여러분. 드디어 결과가 도착했나 봅니다. 과연 누가…… <더 라이벌> 최종 우승이자 영화 <더 라이벌>의 주연 자리를 따 냈을까요.”

준혁이 형님의 멘트에 맞춰 조정아 작가가 PPT를 움직였다.

『<더 라이벌> 최종 우승자는……』

* * *

『<시청률is> ‘더 라이벌’ 최종 11화, 통합 시청률 6.9%』

『‘더 라이벌’ 최종화 최고 시청률 7.8% 기록!』

추가 편성된 <더 라이벌> 마지막 11화가 방영된 다음 날.

관련 기사들이 화려하게 포탈을 수놓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불안하게 생각했던 시청률은 7화를 지나면서 6%대에 안착했고, 지상파를 통틀어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마지막 화에서 최종 우승자이자 배역을 따낸 배우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에는 8%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하여, 다시 신기록을 달성했다.

『<인터뷰>‘더 라이벌’ 최종 우승자 박지운에게 쏟아지는 러브콜』

『‘더 라이벌’ 우승자 박지운, 플래티넘과 전속 계약 체결』

『우이독경, 류준혁―박지운 주연 영화 ‘더 라이벌’ 제작 시동!』

최고 시청률 기록과 함께, 박지운은 눈물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연기 이외에는 표정도 잘 없었던 친구가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니, 지켜보던 내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들 뻔했다.

‘더 라이벌’ 촬영 내내 실질적인 라이벌이었던 백종현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달래고, 다른 배우들도 들러붙어서 응원해 주고.

최종적으로 얼싸안고 우는 10명의 배우의 모습은 그대로 클립이 되어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박지운은 나중에서야 그 장면을 보고 ‘쪽팔리네요……’ 하고 얼굴을 붉혔고, 옆에서 백종현은 그걸 가지고 또 놀렸다.

이미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두 사람이었다. 백종현은 이제 막 배우로서 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없는 박지운에겐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것이었다.

『[특집]배우 오디션 예능 ‘더 라이벌’이 걸어온 궤적―⓵』

『<칼럼>‘더 라이벌’이 남긴 것들―오디션 프로그램의 가능성』

<더 라이벌>의 성공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양하게 된 시국. 이 시국에 시작된 <더 라이벌>이 자리 잡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최종적으로는 호평을 받으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결국 ‘더 라이벌’이 남긴 것은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이치다. 출연진에 대한 공정한 시선,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송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

그동안 숱한 오디션 방송이 이 기본을 지키지 못해 실패하기도 했고, 성공했으나 실패한 것보다 못한 루머를 양산하기도 했다.

.

.

올바르게 만들어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모범으로 정착한 ‘더 라이벌’이 다음 시즌을 이어 나갈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지 궁금하다.』

문화비평 웹진으로, <당잠사> 때부터 꾸준히 신세를 져 온 ‘위즈(We’z)’에서 방송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낸 칼럼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연기 가지고 오디션 이렇게 제대로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기사 공감 갑니다ㅇㅇ 악마의 편집 없어도 이렇게 재밌는데 그동안 왜 이렇게 못 만들었을까요

―윗분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든 거죠 돈이 돼야 하니까

―근데 더라이벌이 충분히 돈이 된다는 걸 입증함ㅇㅇ

―강대한PD 다음 걸 뭘 만들지 진정 기대된다

―이쯤 되면 NBS가 담기엔 너무 큰 그릇 아니냐ㅎㅎㅎ』

<더 라이벌> 방송의 성공은, 당연히 메인 PD인 강대한의 입지를 더욱 두텁게 만들었다.

강대한이 관여한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4개. <당잠사>, <드림 어게인>, <언더커버 싱어>, <더 라이벌>.

중간에 잠깐 서브로서 참여한 <달리는 도시인>이나 기획회의에 참여한 방송까지 합치면 더욱 많아진다.

그 모든 프로그램에서, 강대한은 실패를 한 적이 없었다.

직접 기획작에 가까운 <드림 어게인> 이후로, 메인이든 서브든 PD로서 참여한 모든 작품은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위기는 늘 있었으나 그 위기를 절묘한 수로 이겨 냈고, 방송을 성공시키면서 거기에 참여한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을 성장시켰다.

NBS의 라이징 스타라는 별명 또한 이제는 무색할 만큼, 강대한은 이미 방송국 내외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서인하였다.

“아직 5년차도 안 된 녀석이란 말이지.”

서인하가 가지고 온 태블릿으로 기사를 훑어보면서, 왕이범 이사는 아주 솔직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 힘든 시기에 결국 오디션 프로를 성공시키고…… 싸우던 프로그램은 완전히 날려 버리고 말이야.”

“그건 강 PD가 한 일은 아닙니다. 자업자득이죠.”

“그래. 알아. 하지만 현준영 이후로 두 번째잖나. 이번에는 아예 영화사, 방송사 단위니까 하는 말이지. NBS가 담을 그릇이 아니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야…….”

왕이범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서인하도 잘 알 것 같았다.

<무비 메이커>가 전면 제작 중지되기 얼마 전, 강대한 혼자서 바람처럼 신동욱 실장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었다.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기사 삭제 등의 일련의 사건들을 생각하면 강대한이 무슨 일을 한 것은 분명했다.

서인하로서는 정민우 팀장에게 보고를 듣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수를 쓰는 건 전혀 가르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하다가, 갑질에 대한 개념을 알려 줬던 게 본인임을 떠올렸다.

그러자 두려웠다. 갑질과는 다르지만, 그것을 강대한은 자기 식으로 바꿔 행한 것이다.

가르치는 대로 몇 배로 해내는 녀석이라는 생각은 전부터 해 왔다. 그것이 방송 제작 이외에서도 발휘되는 것이 놀라웠다.

“사과해야겠어.”

왕이범 이사가 툭 내뱉는 말에 서인하가 고개를 들었다.

“사과요? 누구에게 하시려고요.”

“누구긴 누구야, 강 PD지. 제작 시작할 때 내가 좀 반대를 했잖아. 그걸 이겨 내고 이렇게 잘 만들어 냈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냥 이사님 카드나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힙플 쪽 팀이랑 회식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나가기 전에 한번 내 방 좀 들르라고 해.”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지은 왕이범이 곧 소파에 등을 깊게 묻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번 프로그램 성공으로…… 강 PD는 알게 모르게 많은 일을 해 준 거야. 우리 NBS의 예능 쪽 예산도 더 늘어날 거고, 프로그램 수도 늘겠지. 신 이사 쪽도 더욱 견제할 수 있고. 그런 일을 해 준 친구이니 미리미리 기름 좀 쳐 놔야지.”

왕이범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서인하는 알고 있었다.

서인하는 잠깐 목을 다듬은 뒤, 따르는 선배이자 상사를 불렀다.

“이사님. 이전에 드린 이야기, 생각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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