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쓸쓸한 퇴장
『배우 오디션 예능 ‘더 라이벌’ 시청률 상승이 무섭다!』
『[주간 이슈] ‘더 라이벌’ 7부 능선을 넘은 오디션 예능의 마지막은?』
『라이징 스타? No! 이젠 고유의 브랜드가 된 ‘더 라이벌’의 강대한 PD!』
얼토당토않은 찌라시 기사가 잠잠해지고, 그 영향을 조금 받는 듯했지만 <더 라이벌> 시청률은 굳건했다.
액션 연기를 담았던 5화와, 야외 연기 촬영과 무대 준비 모습을 담은 6, 7화가 흘러가면서 우리 <더 라이벌> 팀은 자축을 벌이고 있었다.
『<시청률 분석> ‘더 라이벌’ 6% 시청률 돌파! 금요일 밤의 새로운 브랜드가 되다!』
7화를 시점으로 시청률이 6%대에 돌입했다.
우민철 PD와 우스갯소리로 마지막 화에 6%대로 올라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 목표를 7화에서 이룬 것이다.
액션 연기 연습을 거치고 싸움에 관한 인터뷰가 삽입되면서 박지운―백종현의 관계성이 명확해지고, 본격 연기 연습에 들어가자 배우들의 각자의 개성들이 살아난 것이다.
편집회의 때부터 많은 공을 들였던 그 고생들이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돌아오자, 우리 팀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흥분에 들떴다.
그것은 방송사도 마찬가지.
“11화 넣자, 강 PD.”
오랜만에 출근한 예능5팀 사무실에서 정민우 팀장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추가 편성인가요.”
“뭐야, 안 놀래?”
“그러실 것 같아서 이미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놀리는 재미도 없구나.”
기세가 이러니 분명 추가 편성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준비해 두고 있던 기획서를 태블릿으로 보여 주었다.
“총집편보다는 시청자들 참여로 구성할 생각이었습니다. 10화 방영을 함께 라이브 뷰잉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투표를 받고, 그 정경을 11화에 붙이는 건 어떨까요.”
10화에 방영될 단막극으로 시청자 투표를 받을 예정이긴 했지만, 거기에 라이브 뷰잉도 추가하고 현장 투표도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그 준비에 더해, 배우들과의 만남 같은 것도 집어넣으면 그 무엇보다 스페셜한 방송이 되리라.
“괜찮네. 진행해. 장소는 잡았어?”
“대학로 쪽 소극장 몇 군데 이야기해 뒀습니다. 스크린 사정 보고 고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래서?”
“추가 예산 좀 주십시오.”
11화 편성이 나왔다면 그만큼의 예산도 나왔을 터이다.
우리 방송이 초기에는 광고도 안 들어와서 허덕대며 시작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미 6% 넘는 시청률과 함께 화제성도 겸비했다.
각종 분야에서 협찬이 들어오고 광고가 붙어서, 이젠 저쪽에서 줄을 설 지경이었다.
내 말에 정민우 팀장이 씨익 웃었다.
“강 PD. 전에 무선 이어폰 협찬으로 넣었었지?”
“아, 네. 야외 촬영에서 잘 써먹었습니다.”
“거기서 덕분에 대박 났대. 마케팅 팀장 만나고 가.”
우리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사용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그 무선 이어폰이 불티나듯 팔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런데 그게 대박일 정도였나?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죠.”
마케팅 팀장은 아주 속 시원히 대답해 주었다.
“그 업체가 사실 그 무선 이어폰에 사활을 걸었다나 봐요.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홍보가 되어서 인터넷 주문만으로 완판이 되고, 지금은 제작이 주문을 못 따라가는 중이라나 뭐라나.”
“헐. 그 정도였습니까. 좀 잘 팔리나 보다 정도만 생각했는데.”
“아무튼 덕분에 돈을 벌었고, 가능하다면 광고 더 넣고 싶다고 해서요. 광고는 곧 제작비고. 알죠?”
“제작비가 딱 필요한 때였는데 딱 좋네요.”
“여기 협찬 받자고 한 건 강 PD님이었잖아요. 촉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대단하세요, 정말. 역시 강촉…….”
“네?”
“호호호.”
“하하, 하하하.”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광고 회의를 끝마쳤다.
AGD 앱이 <더 라이벌> 방송에 가장 알맞은 협찬이라고 해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다.
무선 이어폰도 대박 나고 우리도 도움을 받으니, 윈윈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대한 기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한아. 지운이한테 좋은 소식 있댄다.”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파주 촬영장으로 돌아왔을 때, 준혁이 형님이 그렇게 말했다.
“좋은 소식이요?”
“그래. 지운아, 네가 말해라.”
옆에서 쑥스러운 얼굴로 서 있던 박지운이, 몇 번 말을 삼키다가 이야기했다.
“저…… 광고 찍을 것 같습니다.”
“광고? 어떤?”
“이거 있잖습니까. 무선 이어폰.”
박지운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오늘 촬영에서도 사용할 예정이었던 바로 그 완판된 무선 이어폰이었다.
“난 잘 몰랐는데, 인터넷에서 지운이가 차고 나온 영상들이 돌았나 봐. 그래서 판매량이 늘었다고, 그 회사에서 플래티넘에 연락을 해 왔어. 광고 모델로 하고 싶은데 다리 좀 놔 달라고.”
“선배님께서 연결해 주셔서…… 하기로 했습니다.”
두 선후배의 이야기에 나는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잘됐네. 축하해. 첫 CF 아냐?”
“예…… 다 두 분 덕분입니다.”
“내 덕은 무슨. 다 지운이 네가 잘해서지. 준혁이 형님이 잘 이끌어 주신 거고.”
“나도 아냐. 지운이가 잘난 거지.”
우리 둘의 겸손에 박지운이 가장 부끄러워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아, 나도 광고 잘할 수 있는데.”
훅 끼어드는 목소리는 백종현이었다.
“야, 너는 광고 몇 개 있잖아. 하나 정도는 양보하자.”
“원래 있는 놈이 더한 법이야. 몰랐어?”
두 사람이 평소처럼 티격대기 시작하자, 나와 준혁이 형님은 서둘러 그들을 촬영장으로 돌려보냈다.
“그런 케미는 카메라 앞에서 보여 주자. 욕심나네.”
“케미 아니거든요. 싸우는 거거든요.”
그런 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두 사람을 뜨뜻미지근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여성 스태프들을 둘러본 뒤, 헛기침으로 팀원들을 주목시켰다.
“저희 예상대로 11화 확정 났습니다. 지난번 계획대로 진행할 테니까 그렇게들 알아 두시고. 오늘 촬영 시작합시다.”
“옙!”
“스태프들 위치로!”
우민철 PD의 목청 큰 호령과 함께 단막극 촬영이 시작되었다.
두 명씩 조를 짜서, 총 5편의 단막극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 연출은 금완승 감독을 비롯한 우이독경의 감독들이 맡아 주었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을 도우면서 전체적인 예능 그림을 잡는 것.
하루에 다 찍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지, 아마도 사흘은 철야를 해야 했을 것이다.
오늘도 결국 심야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촬영이 종료되었고, 나는 우는소리를 하는 제작진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퇴근했다.
일이 터진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단독> 인기 신인 배우 A씨, 강남 클럽에서 마약 소지 현행범 체포』
* * *
<무비 메이커>도 시작 이래 순항 중이었다.
영화사 바람처럼이 영화 제작에 있어서는 잔뼈가 굵은� 곳이고, 그것이 예능으로 만들어지면 어떨지에 대한 불안이 있었을 뿐, 시청률과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시청률is>‘무비 메이커’ 시청률 2.7%! 3% 목전!』
『<칼럼>영화 제작 현장의 이면―‘무비 메이커’의 이유』
신동욱 실장의 마케팅인지는 모르겠으나 각종 우호 기사도 나오고, 시청률도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작진과 출연진 사이의 트러블이 있다는 것은 나는 듣고 있었다.
“안주환이 또 지각했나 보더라고. 두 시간인가 촬영 시작 밀려서 제작진이 전부 대기 탔다네.”
퇴근길에 옆자리에서 우민철 PD가, <무비 메이커>를 만들고 있는 외주 제작사 쪽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이따금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듣고 있자면, 참 착잡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다.
“선배 배우들도 대기하고 있는데 늦었단 겁니까?”
“그날은 엑스트라 포함해서 단독 촬영이었나 보더라고. 그래서 당당히 늦은 거겠지.”
<무비 메이커> 시작 이후로 안주환의 주가도 뛰었다.
어쨌든 주목받는 영화와 예능의 중심이 되었고, 페이스도 연기력도 나쁘지 않으니 그만큼 주가가 뛰는 건 맞긴 한데.
아무래도 그 행실이 주가에는 따르지 못하는 듯했다.
“우리는 걸러서 다행이지. 우리 애들, 다들 착하고 얼마나 좋아.”
“맞습니다.”
그렇게 맞장구를 쳐 주며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메시지 도착 알림이 떴다.
“민준기 기자님이네요.”
거치대에 있던 폰을 조작해서 메시지 창을 띄웠다.
[민준기기자: 저 지금 강남 갑니다]
[민준기기자: 안주환이 강남에서 체포되었다네요]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기사가 바로,
『<단독> 인기 신인 배우 A씨, 강남 클럽에서 마약 소지 현행범 체포』
이름을 숨겼지만, 안주환이 분명한 바로 이 기사였다.
팀원들이 뒷정리를 하는 사이, 우민철 PD와 함께 회의실에서 기사를 확인했다.
내용은 요약하자면,
안주환은 그동안에도 몇 번이나 클럽을 다녔고, 그러면서 마약을 즐겼다고 한다.
다만 오늘은 경찰이 관련 신고를 받고 클럽을 덮쳤고, 그 자리에서 현행법으로 체포되어 곧바로 경찰서로 직행.
거기서 신분이 드러나 경찰서 출입 기자들한테 알려졌다는 흐름이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우민철 PD의 말대로, 일은 단숨에 커졌다.
몇 분 되지 않아 계속해서 후속 보도가 뜨고, 블루액터스에서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 달라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아니 이름도 안 나왔는데 소속사에서 먼저 밝히면 어떡함-_-
└이름 안 나와도 안주환인 거 이미 다 나왓는데 뭘ㅎㅎㅎ
―약 빨고 연기하는데 연기가 그것밖에 안됨?ㅋㅋㅋ
―우리 오빠 아니라고ㅠㅠㅠㅠ 우리 오빠 약 끊었다고ㅠㅠㅠㅠ
└약 끊었댘ㅋㅋㅋㅋㅋ고도의 까냨ㅋㅋㅋㅋ
―방송하고 영화 어떡함? 둘 다 끝장났네?』
추측성 보도고 뭐고, 안주환은 인터넷에서도 어느 정도 썰이 돌아다녔던 모양이다.
기사 발표와 함께 각종 썰들이 인터넷을 뒤덮기 시작하자 곧장 안주환인 건 확정이 났고, 그것만으로도 인터넷이 들썩였다.
그 흐름은 곧장 현재 그가 출연 중인 <무비 메이커>와 <갈 데까지 간다>로 번졌다.
가장 바쁜 것은 채널T였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확인하자, 채널T에서 뿌린 기사들이 있었다.
『‘무비 메이커’ 무기한 방송 중지』
『채널T,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안주환 스캔들 해결까지 방송 연기 결정』
이젠 아예 ‘안주환 스캔들’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후속 보도에서, 기자들에 의해 마스크를 쓴 안주환이 찍히면서 완전히 확정이 났기 때문이었다.
채널T의 <무비 메이커> 방송 중지 결정과 함께 불똥이 튄 것은 당연히 영화.
오전이 지나기 전에, 영화사 바람처럼에서도 성명문을 발표했다.
『영화사 바람처럼 ‘갈 데까지 간다’ 제작 중지 발표』
『영화사 바람처럼, ‘갈 데까지 간다’ 투자자 회의 열어……』
『‘무비 메이커’ 영화 ‘갈 데까지 간다’와 함께 제작 중지 발표』
타이밍을 맞췄는지, 블루액터스에서도 추가 성명문을 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많은 실망을 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주환 배우가 성실하게 경찰 수사를 받을 것을 약속드리며, 함께 블루액터스도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임을…….』
성명문이라기보다는 사과문.
그것이 공식적으로 안주환이 세간에 얼굴을 내비친 마지막이었다.
“진짜 갈 데까지 갔네…….”
왠지 신동욱 실장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금요일 저녁.
<더 라이벌>의 이번 주 방영을 기다리면서 오랜만에 칼퇴근을 하는데, 신동욱 실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폭풍과 같은 하루를 보냈을, 아니, 보내고 있을 그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 보였다.
그 지친 목소리로,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너지. 네가 경찰에 정보 흘렸지?”
이미 패배 의식에 갇혀 기존의 예의 있는 척하는 모습도 포기한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요. 전 그때 선택권을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개입한 적은 없습니다.”
민준기 기자에게도 부탁해서 기사 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에게 미안한 일을 했으면 했지, 신동욱 실장은 아니었다.
“어떤 의심인지는 이해하겠으나 전 아닙니다. 터질 폭탄이 터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한때 우리 방송의 라이벌이라고도 불렸던 <무비 메이커>의 쓸쓸한 퇴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