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맞불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더 라이벌’과 정면 승부!
―채널T의 영화 제작 리얼리티 프로그램 ‘무비 메이커’가 편성을 확정하고 시청자들을 찾아갈 준비를 마쳤다.
영화사 ‘바람처럼’이 제작하는 첫 예능인 이 프로그램은, 영화사의 전문 분야인 영화 제작 세계를 그리는 관찰 예능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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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공개한 티저로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묶어 둔 전략이 순작용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편성 확정 기사가 난 이날,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무비 메이커’ 관련 검색어가 오르내리며 그 화제성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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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금요일 오후 9시는 현재 NBS의 배우 오디션 예능 ‘더 라이벌’이 방영되고 있어, 케이블 종주 간의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 이 상황에 대해 영화사 바람처럼의 관계자는 “어느 쪽이든 더 좋은 방송을 시청자들이 선택할 것이기에, 방송을 기대해 달라”고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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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도인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포맷의 예능인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추경락 기자』
기사 마지막에 달린 기자의 이름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신동욱 실장의 라인인 추경락 기자.
아니나 다를까. 기사 내용 중에 또 교묘하게 언플의 요소가 담겨 있었다.
편성 확정 기사가 오늘 났는데, 실시간 검색 순위는 언제 확인하고 기사 안에 넣어놨을까.
오히려 기사가 뜬 후에야 실시간 검색어에 ‘무비 메이커’나 ‘바람처럼’ 등의 관련 단어들이 뜨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언플도 수준급이라고 봐야 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한 기사 타이밍이니까 오히려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지.”
정민우 팀장은 담담한 태도였지만, 그렇다고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대놓고 NBS를 걸고넘어지는 건 그것만으로도 마케팅이 되기 때문이야. 머리 잘 썼어.”
“저희 쪽에서도 보도자료 돌리고 연락 넣어놨습니다.”
“그래. 방송이야 당연히 중요하지만, 저쪽에서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필요는 없지.”
방송 자체의 힘을 믿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정공법으로만 나아가서는 안 될 일도 있다는 것이 정민우 팀장의 말이었다.
그 말대로, 우리 방송사도 가만있진 않았다. 적절히 기사 대응을 하고 있었다.
『<당잠사> 시즌6 3차 티저 공개! 제주도 푸른 밤에 멤버들이 나눈 대화는?』
『<당잠사> 제주도편, 시청 포인트 세 가지!』
『‘더 라이벌’ 대학로 공연 관람 지원, 15,000명 넘어서……』
기사에는 기사로. 맞불 작전이었다.
<무비 메이커>가 2월 말로 편성을 확정 지은 이상, 우리 <더 라이벌>만 경쟁작이 아니다. 후속인 <당잠사>와도 경쟁작이 된다.
같은 주에 시작하여 똑같은 페이스로 방영이 될 것이기에, 화제성에서 지고 들어가면 안 되었다.
다행히 <당잠사>는 그 이름 자체가 이미 브랜드화되어 있기에, 기사가 뜨자마자 실시간 검색어, 기사 순위 등에서 <무비 메이커>를 금방 따라잡았다.
『―명리더ㅠㅠㅠ 저거 찍고 바로 또 외국 나갔다던데ㅠㅠㅠㅠ
―외국 돌다가 6시즌 만에 제주도라니 제작비가 없었나
└제주도도 제작비 만만치 않음ㅇㅇ
―티저로도 화면 때깔은 여전히 좋다...
―전 시즌부터 생각했는데 새 피디도 화면빨 잘 뽑는 듯
└동의ㅇㅇ 그 바닷가 석양씬 개쩔었다ㅇㅇ』
지난 시즌에서의 일까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서, 동영상 순위에서 해당 클립이 올라왔다.
나는 그 순위를 캡처해서 권민헌 선배에게 보냈다.
[선배님 실검을 당잠사가 도배하고 있네요 축하드립니다]
[권민헌선배: ㅎㅎㅎ]
[권민헌선배: 타이밍 좋게 티저 올라가서 그렇지 뭐]
[권민헌선배: 정 팀장님이 이번 주에 티저 추가해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
인사차 연락한 것이었는데 의외의 말을 또 들었다. 옆자리에 있는 정민우 팀장을 의식하면서 답신했다.
[원래는 이번 주 공개 아니었나요??]
[권민헌선배: 오늘이 아니었지 금요일에 더라이벌 뒤에 붙일 거였으니까]
아, 그렇지. 그 이야기는 미리 들었는데, 그 티저를 당겨서 공개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아무리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민우 팀장을 빤히 보았다.
“……뭐냐. 왜 기분 나쁘게 그렇게 쳐다봐.”
“기분 나쁘다뇨. 너무하십니다. 존경의 눈빛입니다.”
“딴 데 쳐다봐. 왜 이래, 부담스럽게.”
나는 낄낄 웃고선 권민헌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머쓱해하는 얼굴을 하고선 짐짓 얼굴을 굳혔다.
“국장님 지시여서 했을 뿐이야. 너 예뻐서 그런 거 아니다.”
“저 아끼시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이거 왜 능구렁이가 돼 가냐? 저리 안 꺼져?”
회의실에 앉아서 나름 대책회의라고 하고 있는데, 분위기는 그렇게 훈훈해졌다.
이렇게 든든한 상사와 선배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랴. 저쪽에서 무슨 장난을 치더라도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 * *
하지만.
내가 걱정을 하든 안 하든, 그 묘한 도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비 메이커’ 티저 추가 공개! 대본 리딩의 현장!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가 추가 티저를 공개했다. 지난 티저에서는 배우 캐스팅 공개가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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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인 배우들은 프로의 모습을 보여 주며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는 후문이다.
신인 배우들만이 아닌 중견 배우들까지 하나가 된 모습에, 벌써부터 영화 완성이 기대가 된다.
―추경락 기자』
『―주환아ㅠㅠㅠ 저 배우 중에 우리 주환이가 주연이라니ㅠㅠㅠ
―형사역 하는 배우랑도 잘 맞는 것 가틈ㅇㅇ
―그래 신인들만 있는 것보단 훨씬 연기로는 믿을 만하겠다ㅎㅎ』
기사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댓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조에 그대로 따른 기사들도 잇따라 올라왔다.
『‘무비 메이커’ 신인과 중견의 조화, 예능에도 통한다!』
『리얼한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 ‘무비 메이커’가 기대되는 이유』
신인과 중견 베테랑까지 모여 있는 캐스팅, 그리고 영화 제작의 리얼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콘셉트.
그것들이 지난 예능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라는 논지의 기사들이었다.
“맞는 말이지.”
준혁이 형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우철민 PD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예능인데 그게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철민 PD도 지난 몇 달 <더 라이벌>에 매달리면서 예능 PD의 자존심 같은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직접적인 반발이었는데, 준혁이 형님은 아무렇지 않게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저쪽에서 말하는 논지는 사실 영화에 해당하는 것들이니까.”
“그렇죠. 결국 저건 영화 제작 리얼리티니까, 그 장점을 교묘하게 예능에도 끼워 넣고 있습니다.”
나도 똑같이 이야기하자, 우철민 PD가 눈을 또르르 굴렸다.
“그럼…… 문제없는 거 아닌가?”
“아니죠. 결국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언플이란 게 그래서 하는 거고.”
나는 긴장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런 교묘한 언변의 기사들이 늘어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방송사 차원에서 기사 대응을 쉬지 않고 있는 것은, 저런 흐름이 만들어진 여론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지금껏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 흐름이 적당히 끊어지지 않으면 <더 라이벌>에도, NBS 자체에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자리에 앉은 채 오늘 이루어질 촬영 스크립트만 만지고 있었다.
같이 여유 있어 보이던 준혁이 형님도 사실은 아니었는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애들이 걱정은 하고 있더라.”
“걱정이요?”
“콘셉트도 다르고 다루는 소재도 다르지만 결국 영화에 관련된 예능들이라서, 이 방송에도 피해가 있지 않겠냐고 말이야.”
나는 배우들이 모여 있는 곳을 힐끔 했다.
백종현―박지운을 주축으로 모여 있는 그들이, 다소 가라앉은 얼굴로 우리 쪽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형님의 말도 안 통하나요?”
“이야기는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한가 봐.”
배우들 멘털 관리를 해 주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겠다.
제작진이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이 프로그램의 중심은 저 신인 배우들이니.
나는 단단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마이크를 들고 일어났다.
“배우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세요.”
카메라는 아직 돌아가고 있지 않다.
나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배우들 앞에 섰다.
“요즘 무비 메이커 기사들로 걱정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열 쌍의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본다. 무슨 유치원에 온 기분이네. 다들 친해져서 그 심리가 다 들여다보이는 기분도 들고.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됩니다만, 당사에서도 계속 대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주 큰 장난을 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대처할 방법이 많이 없지만요.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한차례 더 둘러보았다. 메인 PD로서 지금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줘야 할 때였다.
“전 여러분이 잘해 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여러분의 몫을 확실히 보여 줄 거라고요. 그렇게 해 준다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죠?”
이런 진지한 발언이 익숙지는 않다. 그래도 그들의 불안함이 조금만 씻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마이크를 내리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우철민 PD와 준혁이 형님이 나를 묘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왜요. 왜 그러십니까, 두 분 다.”
“원래 이랬던가 싶어서…….”
“정말 메인 PD 같다 싶어서…….”
나는 장난처럼 으르렁대어 주고 배우들을 살폈다.
내 말이 통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군거림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래, 일단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럼, 후반 촬영 시작합시다.”
오늘 후반 촬영은 야외 연기 연습이었다.
“출발합니다!”
“배우들 이동하겠습니다!”
늘씬한 배우들이 롱패딩을 걸치고 일어나면서,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더 라이벌’ 4화, 시청률 4.9%! 5%를 목전에……!』
『<금주의이슈>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될 것인가. ‘더 라이벌’ 4화 분석』
『<칼럼>신인들의 본모습을 보다―‘더 라이벌’』
‘더 라이벌’에 대한 기사는 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포탈을 수놓고 있었다.
한번 올라온 기사나 클립 영상은 금세 인터넷을 타고 각종 커뮤니티로 흘러가고, 그것이 다시 SNS로 퍼져서 재생산되었다.
특히 4화에는, 방영 전 이슈가 되었던 백종현―박지운 간의 트러블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인터뷰 하는 종현이 귀여워....
―당황하는 지운오빠 귀엽지 아나?
―ㅎㄷㄷㄷ 액션 연기 하다가 저거 문제가 있었나 본데?
―주먹으로 때렸나? 그래서 술 마시다 싸운 거고?
―다음펴뉴ㅠㅠ 왜 다음주이뮤ㅠㅠㅠ』
SNS와 덧글들을 강대한과 제작진이 꾸준히 확인하고 있듯, 그것을 똑같이 모니터링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늦은 밤.
불 꺼둔 사무실에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이는 신동욱 실장이었다.
영화사 바람처럼의 기획실장으로 있는 그는, 바람처럼 입사 이래 몇 개의 영화 히트작을 내놓고, 새로운 시도로서 예능을 만들고자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영화사라는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에 영화 관련 예능에 국한된 기획을 짜고 있었는데, 그때 때마침 강대한이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에게 제안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그의 기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무비 메이커’라는 예능을 기획했다.
제작이 진행된 이래 몇 번이나 강대한과 부딪쳤지만, 사실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었다.
아이디어를 훔쳤다고는 생각지 않았고, 애초에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오디션이 잘 팔리지 않는 이 시국에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니. 차라리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그렇지만 <더 라이벌>이 방영을 시작한 이후로 그 생각이 다소 불안해졌다.
비웃은 것에 비해 <더 라이벌>의 시청률은 매우 순조롭게 상승 중이었다.
내용도, 편집도, 배우 간의 케미도,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이쪽은 편성 확정을 겨우 잡았는데.’
티저를 합의 없이 내보내서 흔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아직도 편성을 못 받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신동욱 실장만의 힘으로 된 건 아니었다. 다른 힘도 작용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판단을 한 건 스스로 행한 것이었다. 그런 판단을 한 자신이 참으로 장하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더 라이벌>의 상승 기세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두고 볼 순 없지.”
비슷한 콘셉트의 방송. 저쪽이 무너져야 우리 방송이 더 산다. 나아가 영화까지도.
신동욱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 추 기자.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