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기습 공개
‘무비 메이커’ 티저 공개는 매우 기습적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 촬영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티저는 그래도 제법 멀쩡했다.
내가 다소 편견이 있어서 그렇지, 색안경을 벗고 보면 괜찮은 티저였다.
『“한 영화가 제작되기까지는 사실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디벨롭부터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등등, 그걸 다 논하자면 끝이 없죠.”』
감독과 영화사 대표가 나와서, 영화 메이킹필름 같은 분위기로 대화를 나눈다.
그 사이사이에 깔리는 자막들, 설명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진행 역할을 맡은 조연 배우가 소개한다.
『“‘무비 메이커’가, 영화 제작의 뒷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그리고 타이틀 로고가 페이드아웃.
본 사람들 모두 동일한 평을 했다.
“잘 만들었네.”
민희도 그렇고.
[우철민PD: 멀쩡한 티저야]
[우철민PD: 급하게 만든 티도 안 나고]
[배우류준혁: 낯익은 영화판 얼굴들이 사이사이 보이네]
[배두언PD: 굳이 따지자면 편집이 좀 심심하긴 하네요]
단톡에서도 평은 그랬다. 요약하자면,
“너무 평범해서 수상쩍단 말이야.”
“여기 제작 지연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지연까진 아닌 것 같고…… 방영이랑 제작이랑 맞춰야 하니까 스케줄 조정이 어렵다고는 들었어.”
“<더 라이벌> 반응이 좋으니까 괜히 초조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루어지는 민희와의 대화에, 나는 피식 웃었다.
“에이, 그럴 리가. 아무리 이쪽을 라이벌로 생각한대도 자기들 일정을 먼저 생각해야지.”
방영일도 제대로 안 나온 채 이렇게 티저를 뿌리는 게 말이 되나. 그쪽 방송사는 그런 걸 허락해 주나?
“아니 뭐, 그동안의 행동을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민희에게는 제작 중에 있었던, 신동욱 실장과의 일을 토로했었다. 어제 제작발표회 일도 물론 빼먹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 봐도, 신동욱 실장이 그렇게 생각 없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다. 더 치밀하게 했으면 했지.
“뭐, 문제는 본방이니까. 본방이나 한번 지켜봐야지. 그건 그렇고.”
나는 다소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당잠사> 확정 축하해. 2월 말이면 우리 프로랑 한 달 정도 같이 가겠네.”
오늘 약속은 단순한 데이트가 아니라, <당잠사> 편성 확정 축하의 의미도 있었다.
제주 촬영은 모두 종료되었고, 준혁이 형님이나 효명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촬영도 순조로웠다 했다.
첫 국내편이라 할 수 있는 미션도 상대적으로 많아 좀 더 재밌었다고 하니 기대될 만했다.
“고마워. 한창 티저 준비 중이라서, 권 PD님은 지금도 회사에 있을 거야.”
“나중에 응원 메시지라도 보내 놔야겠다.”
그전에, 축하의 의미로 건배를 했다.
<더 라이벌>은 이제 시작했고, <당잠사> 시즌 6는 한 달 뒤 따라붙는다.
작년부터 둘이서 열심히 준비해 온 결과가 상반기에는 나올 것이라, 우리에겐 제법 뜻깊은 시기였다.
“열심히 하자.”
“응.”
짠―
둘이서 의지를 다졌다.
* * *
『‘무비 메이커’ 티저 기습 공개!』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주연 공개!』
『채널T 새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티저, 포스터 공개. 방영일은 아직 미정…….』
주말 동안 <무비 메이커>의 티저도 확실하게 화제를 얻었다.
제작 시작부터 <더 라이벌>과 함께 거론되었는데, 그 <더 라이벌> 1화 방영과 비슷하게 티저를 뿌린 효과였다.
방영 확정에 어려움이 있다 하는 이야기야 일반 시청자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정보이니 댓글도 대부분 호평이었다. 다만.
『―그래서 방영이 언제라고?
―홈페이지 가도 방영일 안 나오는데
―아놔 내 배우 나오는데 왜 안 알려주는 건데?』
댓글에서도 방영일에 대한 지적이 간혹 나왔다.
방영일 없이 티저를 뿌리는 예가 많이 없어 당연한 반응이었다.
“채널T와는 합의가 없었나 봐요.”
월요일 회의에서 이야기를 하자, 우철민PD를 비롯한 팀원들이 휙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방송사랑 합의 없이 그런 일을 했다고요?”
정민우 팀장이 주말 동안 수소문하여 알아본 바, 채널T에서는 티저가 공개된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다.
인터넷으로만 공개된 티저인 데다 채널T가 그런 걸 허락했나 싶었더만, 역시나였다.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 PD님은 뭐 들은 거 없으십니까?”
“나도 별거 없는데……. 그냥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고만 들었어.”
외주사 쪽 네트워크가 넓은 우철민 PD도 들은 바가 없으니, 정말로 바람처럼에서 단독으로 저지른 일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도 있네요. 이걸로 채널T랑 싸우고 편성이 취소될 수도 있을까요?”
김지연 작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편성이란 게 그렇게 쉽게 취소되지는 않을 거예요. 방송국만 해도 광고주부터 여러 업체가 맞물려 있으니까. 채널T가 어디까지 이해해 주냐의 문제겠죠.”
실제로 채널T 내부에서 <무비 메이커>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이야기를 서인하 국장과 정민우 팀장, 두 분을 통해 들었다.
아마 큰 지적 없이 넘어갈 거라며 추측하기도 했다.
하기야, 라이벌 방송사랄 수 있는 우리 NBS와 맞대결이다.
<더 라이벌>이 호평과 함께 시작을 했으니, 채널T 측에서도 그만큼의 화제를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고.
바람처럼이 협의 없이 티저를 공개했다 한들, 현재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 채널T도 그냥 넘어갈 거라는 분석이었다.
“뭐, 일단 티저 하나 떴을 뿐이니까 체크만 하도록 합시다. 그보다, 공연 관람 신청은 많이 들어왔습니까?”
“아, 네. 지금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조정아 작가가 노트북을 움직여서 스크린에 엑셀 파일을 띄웠다.
“오늘 아침까지 2,000명 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고요.”
“이 추이대로라면 마감일까지 적어도 2만 명 넘을 것 같습니다.”
“2만 명……. 객석 늘려야 하지 않을까?”
준혁이 형님이 걱정스레 한마디 해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200명 추첨으로는 안 되겠네요……. 거기 공연장이 몇 명 들어간다고 했죠?”
“최대 300명까지. 계단까지 앉히면 350명까진 들어간다고 했어.”
“그럼 300명까지 늘리고, 50명은 당일 지원자에 한해서 앉히는 걸로 하죠.”
우리가 예상한 규모를 뛰어넘는 지원자이니만큼, 최대한 많은 인원이 공연을 보게 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공연장 알아볼까요?”
그때, 조정아 작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여기도 겨우 잡았던 것 같은데, 다른 공연장을 지금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내가 좀 알아볼게.”
준혁이 형님이 손을 들었다.
“극단 가진 선배님들 있으니까, 좀 알아보면 될 거야.”
“촬영은 이제 2주 남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되든 안 되든 이번 주 안에 확정 지을게.”
“그럼 맡기겠습니다.”
든든한 내 편들을 둘러보았다.
<무비 메이커>의 티저는 묘하게 신경 쓰였지만, 모두들 그다지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게 다 좋은 스타트를 끊고, 우리끼리의 단합력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그럼 이번 주도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힘냅시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었다.
* * *
『‘더 라이벌’ 시청률 상승 곡선! 2화, 3.8% 기록』
『<주간이슈> 배우 오디션 예능의 가능성 ‘더 라이벌’ 3화 4% 시청률 돌파!』
그 이후로 2주.
<더 라이벌>은 고생해서 론칭한 만큼 순조롭게 시청률이 상승 중이었다.
[100%]
4화 편집본을 완성하고 내부 시사를 하면서, 화면에 떠오른 확률에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죠, 저도 보면 흐뭇해진다니까요.”
그 웃음을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조정아 작가가 말을 걸어왔다.
“지운이랑 종현이랑, 참 둘이서 잘 놀지 않아요?”
“……저때는 한참 신경전 할 때인데, 그게 그렇게 보이십니까?”
“에이, 어차피 둘이 화해할 거 알고 있으니까 편하게 응원하는 거죠. 커뮤에서도 다 그런 반응이에요.”
예상대로, 아니, 우리의 의도대로.
시청률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역시나 백종현―박지운 라인이었다.
편집하면서 더 확실히 느꼈는데, 첫 미팅 영상이나 첫 연습 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고 경쟁하고 있었다.
중간부터 우철민 PD와 작당하여 편집을 그렇게 맞춰 나가고 있는데, 그것을 시청자들도 재미있게 받아들여 줬다.
『―종현이가 대사 하나 할 때마다 박지운이 움찔움찔 하는 거 봤지?
―이 주식은 된다! 10년 주식경력인 내가 보장해!
―최강 커플이 내 최애 커플링이었는데... 이렇게 심장에 방 하나가 또 생기다니....
―크... 쌍방혐관이라니... 여기가 맛집이구나....』
물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가는 느낌이 있어서, 4화에서는 적당히 그것을 걸러냈다.
그럼에도 시청률 갱신도 100%를 만들었으니, 이 기세가 당분간 끊길 일은 없을 거라는 신호였다.
“인터뷰 영상도 들어갔으니까 아마 더 불이 붙을 것 같긴 해요.”
주로 여성 팀원들이 두근두근해하며 방송에 관한 평을 내려주었다.
인터뷰는, 방송 이후에 인터넷 반응을 직접 배우들이 읽으면서, 거기에 대한 리액션을 따는 식으로 구성했다.
미국 어느 예능 프로에서 따 온 콘셉트였다.
박지운과 백종현에게는 주로 두 사람 관계에 얽힌 반응들을 읽혔는데, 박지운은 부끄러워하고 백종현은 여느 때처럼 여우같은 눈웃음을 던졌다.
『“두 사람 관계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인터넷에서 이야기가 많아요. 어떻게 생각해요?”
“어떻게 되긴요. 얼굴 부딪칠 때마다 본 척 못 본 척하다가…… 강남에서 술 마시다 싸우는 거죠……. 아, 그 이야긴 언제 나올까요?”』
인터뷰 중에 화면 전환을 해서 5화의 액션 연기 촬영을 깔고, 다시 돌아와 자막을 띄운다.
『문제의 그날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 밝혀집니다.
“……그때까지는, 여러분이 그냥 계속 부끄러울 수밖에 없네요, 저흰.”
“그냥 다른 댓글 읽으면 안 될까요?”』
박지운과 백종현의 교차 편집으로 진지한 분위기에서 웃음으로 다시 전환.
회의실에서도 웃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들도 같은 반응을 해 줄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시사가 전부 끝난 후.
“그럼 편성부로 보내주세요. 고생했습니다.”
매번 이렇게 시사회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팀원들은 잘 따라와 주었다.
그들을 치하한 뒤에 우철민 PD가 먼저 일어나 나갔다.
회의실을 정리하려는데, 진동 소리가 나서 폰을 꺼냈다.
“예, 팀장님.”
“회의 중이야?”
“방금 끝났습니다.”
“‘무비 메이커’ 편성 확정되었대.”
정민우 팀장의 말에 나는 잠깐 자리에서 굳었다가, 얼굴을 풀었다.
“슬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네요. 언제입니까?”
“금요일 밤 9시.”
“…….”
그 말에는 확실히 쉽게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을 읽은 배두언 PD가 우철민 PD를 다시 안으로 불러들였다.
“금요일 밤 9시면…… 거기도 드라마 하고 있지 않았던가요?”
“그랬지. 드라마를 1시간 앞당기고, 이걸 9시 타임에 배치한다는 거야.”
“저희랑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거군요.”
“내부 시사에서 평은 꽤 괜찮다고 하나 봐.”
정민우 팀장이 가져온 정보에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확정 기사 나고 티저 나갈 거라고 하니까, 체크해 둬.”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전해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팀원들에게 전했다.
“금요일 9시라니……. 이거 제대로 한 판 붙자는 말이네요.”
“우리 프로 시청률 오름세인데, 너무 무리한 편성 아닐까요?”
“그쪽 드라마 반응 좋았으니까 그 시청률도 흡수하겠다는 전략일 거야.”
“티저 뜨는 걸 다시 봐야겠네요.”
2주 전 떴던 티저 이후로 잠잠했었다. 하지만 확정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왔다는 건, 내부적으로는 준비가 거의 끝났다는 이야기.
오늘 중 확정 기사가 나고 티저까지 나갈 거라는 정민우 팀장의 말은 정확했다.
『‘무비 메이커’ 2월 말 금요일 저녁 9시 첫 방영!』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더 라이벌’과 정면 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