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티저의 티저
너무 놀라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눈을 몇 번 끔뻑이다가, 되물었다.
“신동욱 실장 라인이라고요?”
“예. 아주 대표적인.”
그는 태블릿을 꺼내더니, 기사 하나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영화 제작 리얼리티 ‘무비 메이커’, 촬영 크랭크인!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다른 리얼함을 노린다!』
신동욱 실장이 대놓고 우리를 노린 기사를 낸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낸 기자가 누구인지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기사 마지막에 기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긋난 욕심으로 인해 공정성의 의심을 받는 오디션 프로그램 등의 예능으로 말미암아 TV 앞을 떠난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 새로운 시도의 리얼리티가 어떻게 사로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 연예 추경락 기자』
킹리적 갓심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일부러 저희 제작발표회에 참여한 겁니까.”
“아마도요. 바로 옆에서 ‘잭나이프’ 제작발표회를 하고 있는데 굳이 이쪽으로 보냈을 겁니다.”
민준기 기자는 단언했다.
“어차피 보도자료만으로 기사는 쓸 수 있으니, 적진에 투하! 같은 느낌으로.”
“저희가 적진인가요.”
“일방적이겠지만요.”
그는 모호하게 웃어 보이고는 태블릿을 도로 집어넣었다.
“두 방송이 어느 정도 라이벌 시 되고, 경쟁이 되고 있다는 거 많은 기자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기자들 입장에선 맛집이죠. 더 주목하게 될 수밖에요. 개중에는 추 기자처럼 호의적이지 못한 기자도 있을 거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러니, 대비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민준기 기자가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왜 명함을 또 주나 했는데, 뭔가 달랐다.
“저, 이번에 팀장 달았습니다.”
“오. 축하드립니다, 기자님. 아니, 팀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이제?”
“하하. 그냥 지금처럼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아무튼.”
그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일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저도 끗발이 좀 더 먹힐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악수를 나누고 돌아서는 그의 등을 나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 *
[서인하국장: 제작발표회 고생했다]
[정민우팀장: 수고했다 마케팅팀장이 너 잘했다더라]
[박주영선배: 방송 타는데 뭐 좀 바르고 나가지 그랬냐ㅋㅋㅋㅋ]
[이민희: 내 남친 카메라 잘 받던데? 고생했어 (쓰다듬)]
제작발표회는 인터넷 라이브로 송출되었다. 그것을 확인했는데, 정리가 끝나는 시점에 그렇게 응원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일일이 대답을 해 주면서 힙플 사무실로 돌아오자, 회의실에 스크린과 함께 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사들 떴어요.”
작가들이 제작발표회 관련 기사들을 스크린에 띄워 주었다.
『‘더 라이벌’ 드디어 베일을 벗다!』
『NBS 배우 오디션 예능 ‘더 라이벌’ 제작발표회를 가다』
『10인의 신선한 배우들―류준혁의 조합, ‘더 라이벌’ 기대 증폭!』
몇몇은 명함을 받기도 한 기자들이었다.
인사할 때는 다들 웃으며 했는데, 기사는 어떨까.
『―화제를 모은 배우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 ‘더 라이벌’이 드디어 그 베일을 벗었다. 오늘 오후 3시 상암 글러드 호텔에서 있은 ‘더 라이벌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제작진과 출연진을 만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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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시종 진중한 자세였다. 제작진 대표인 강대한 메인 PD와 공동 기획자인 류준혁 배우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많은 고민의 날을 지나왔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은 표정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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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명의 배우까지 모두 공개되며 시청자들 앞에 서게 된 ‘더 라이벌’이 어떤 방송이 되어 갈지 기대해 본다.』
“아까 나랑 인사한 기자님이시네.”
우철민 PD의 말에, 그와 인사를 나누었던 여기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담담하지만 좋게 써 주셨네요.”
“여기 강 PD에 대해 좀 더 깊게 언급한 기사도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 움찔하고 스크린을 보았다.
그녀는 마우스를 조작해 다른 기사를 스크린에 띄웠다.
『……강대한 PD(메인)는 걷는 길이 꽃길은 결코 아닐 것임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태도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비판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질문에 ‘시청자 여러분이 바라시는 공정함, 투명함을 최대한 전달하려 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우리 방송을 좋게 봐 주시지 않겠냐’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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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비꼬는 기사는 아니었다. 미리 상정된 질답이 오간 결과이지만, 마이크를 잡고 내뱉는 순간 우리의 공식 의견이 되는 것이기에 많은 고민을 하며 한 대답이었다.
그 이후 몇 가지 더 기사를 봤는데, 제작발표회에 대해서는 다들 호의적인 기자들이었다.
기사 아래의 덧글들도 체크하고, 라이브 방송의 지나간 채팅들도 작가들이 훑어서 체크했다.
“이 정도면 잘 통한 것 같아.”
“걱정한 만큼은 아니라서 다행이네.”
우철민 PD와 준혁이 형님이 자평한 뒤, 나는 다시 작가진을 돌아보았다.
“추경락 기자 기사는 떴습니까?”
“…….”
모니터링을 담당하던 작가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스크린에 기사를 띄웠다.
『‘더 라이벌’ 강대한 PD의 자존심일까, 자만심일까 ―‘더 라이벌’ 제작발표회 인터뷰
―오늘 오후 3시, 상남 글러드 호텔에서 제작발표회를 가진 ‘더 라이벌’, 메인 PD 강대한은 기자와의 질답을 다소 건조한 어투로 받았다.
[기자]』출연진 중 2명에게 트러블이 잇는 것으로 안다. 그 2명도 똑같이 대우한다면 역차별이 아닌가?
[강대한PD] 방송으로 확인하시면 된다.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잠깐 회의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이렇게 써 두니, 무슨 기자한테 싸움 거는 것 같은데.”
“제목부터가 어그론데, 내용도 기레기스럽네요.”
그들이 나를 눈치를 봤다.
그 시선을 느끼고, 나는 한쪽으로 치워둔 화이트보드를 돌아본 뒤, 스크린을 다시 보았다.
“댓글 한번 보죠.”
『―강대한 저격수 떴죻ㅎㅎㅎ
―각도 좀 재고 패랔ㅋㅋㅋ너무한 거 아니냨ㅋㅋㅋ
―라방도 봤는데 이 정도면 기자가 아니라 편집자 아님? 너무 인터뷰 제멋대로 적어놨는데-_-;;;
―기레기가 기레기했는데 문제라도?
―시청자 판단이긴 하지ㅎㅎㅎ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해 놓고 그건 왜 쏙 빼먹음?』
다행히, 요즘 세상에는 기사만이 아니라 라방도 있어서 양쪽을 체크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덕에 댓글 반응은 추경락 기자의 노골적인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쁜 말임은 맞는 것 같으니, 앞으로 요주의하게 체크 좀 합시다.”
“예. 마지막으로…….”
스크린에 마지막 기사가 떴다. 민준기 기자였다.
『……이번 방송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시청률이 아닐 것이다. 바로 공정함과 투명함. 시청자들이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에 바라는 가장 큰 덕목이다.
얼마 전 출연진 중 2명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고, 그 사실이 SNS를 통해 퍼졌다. 이 사실을 제작진도 알고 있었기에,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강PD>“그 일은 이미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기에 방송에 그대로 녹여 낼 생각입니다. 시청자분들도 그런 모든 정보를 알고 배우를 선택할 수 있어야, 그것이 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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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당당한 정면돌파를 선택한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한편, ‘더 라이벌’은 오늘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9시에 방영된다.』
뜨끈한 정이 느껴지는 기사였다.
추경락 기자와 나눈 대화를 크게 편집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전하려는 뜻까지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좋은 기사네.”
준혁이 형님의 평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사람이 우리 편이라니, 정말 다행이었다.
“실검 순위도 꾸준히 노출되고 있고, 동영상 재생수도 상승률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제작발표회는 성공했다고 봐도 될 것 같아. 어때?”
정장을 차려입은 우민철 PD의 얼굴에는 흥분이 감돌아 있었다.
나는 한 차례 더 화이트보드를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3%, 확실히 나오겠네요.”
“오오, 메인 PD께서 그렇게 단언하시니 믿을 수밖에 없네.”
“믿어 보십시오. 확실합니다.”
나는 단언했다.
[100%]
내 눈에만 보이는 확률이 그렇게 알려 주고 있었다.
* * *
그날, 편한 옷으로 모두 갈아입은 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서 1화를 다 함께 감상했다.
1화의 내용은 심사 다이제스트와 첫 미팅, 타이틀 촬영, 첫 연습까지였다.
2화부터는 연습 풍경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연습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개인 캠, 준혁이 형님을 비롯한 트레이너들의 개인 캠 등이 엮일 예정이었다.
아니, 예정이랄까 이미 3화까지는 그렇게 편집이 끝나 가고 있었다.
“……괜찮지 않을까요?”
“너무 많이 봐서 모르겠네…….”
연출진과 작가진이 수군대고 있었다.
힙플스튜디오는 어디까지나 외주 제작사였기에, 프로그램 하나를 온전히 소화한 경력이 많지 않았다.
어느 한 편, 어느 한 신.
그런 식의 작업만 주로 해 왔던 곳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제작에 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더 라이벌> 1화는 나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2화 예고편이 뜨고, 동영상 채널에 클립들이 뜬 것을 확인한 다음 나는 일어났다.
“자, 회식하러 갑시다.”
“네? 시청률 확인 안 하시고요?”
나는 스마트폰을 슬쩍 본 다음에 그들을 둘러보았다.
“확정 시청률은 어차피 내일 오전에 나올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끼리 자축해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보였다.
위풍당당하게 서인하 국장의 풀네임이 적힌 법카.
“오늘은 서 국장님이 함께해 주십니다!”
이름 적힌 카드만 있으면 같이 회식하는 거지. 이게 상사의 미덕 아니겠는가.
“와아아!”
박수와 함께 팀원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그들을 이끌고, 미리 잡아 둔 회사 앞 소고기집으로 가서 새벽까지 회식을 달리면서, 나는 틈틈이 기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오전.
『<시청률is>‘더 라이벌’ 1화 통합시청률 3.6%!』
『‘더 라이벌’ 1화 순간 최고 시청률 4.2%!』
『오디션 프로그램의 부활 신호탄이 될 것인가? ‘더 라이벌’ 3.6% 시청률로 출발!』
아침을 수놓은 기사들에 숙취도 사라졌다.
제작이 진행된 이후로 몇 번 쉬지 못한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상쾌하게 시작하며 그 기사들을 단톡방에 올렸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우철민PD: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배두언PD: 헉 4%도 나왔네요ㅠㅠㅠ]
[조정아작가: (들썩들썩)]
다들 흥분해서 단톡방이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이른 시간인데, 다들 깨어 있었던 모양이다.
참 성실한 사람들 같으니.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두 달 더 힘냅시다 함께요.]
[우철민PD: (박수)]
[배두언PD: 네!]
[조정아작가: (경례)]
그 인사는 배우들과 쓰는 단톡방에도 남겨두려고 했는데, 그들이 나보다 빨리 우르르 메시지를 보내둔 상태였다.
[배우백종현: 1화 재밌었어요! 시청률 대박이네요!]
[배우박지운: 잘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
[배우동휘준: ㅠㅠㅠ3% 넘었네요ㅠㅠ]
.
.
메시지 몇 개가 떠 있는 것을 일일이 읽고 하나하나 답을 해 줬다.
마찬가지로 고생했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그 이후로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몇 개의 메시지를 받고, 대답하고.
그 시간을 가진 뒤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팀원들 단톡에다가 메시지를 남겼다.
[분위기 좋은데 오늘 그냥 대학로 녹화 공지 올리죠]
[보도자료는 내가 작성해서 보내두겠습니다.]
토요일이지만, 모두가 태클을 걸지 않고 네! 하는 대답을 보내 왔다.
나는 컴퓨터를 켜서 곧장 기자들에 돌릴 보도자료를 작성했고, 점심시간에 미리 만들어둔 대학로 공연 포스터와 홍보 티저가 떴다.
『‘더 라이벌’ 대학로 공연 관객 모집! 선착순 200명!』
배우들의 연기 경험을 위해 기획한 연극 무대를, 관객들을 모집해서 투표까지 진행하는 미션이었다.
시청률 기사가 뜬 직후라 홍보 영상은 금세 인터넷 이곳저곳으로 퍼 날라졌다.
『―헐 꼭 간다ㅠㅠㅠ
―내 배우를 눈앞에서ㅠㅠㅠ
―다 비켜! 이 표는 내 거야!』
그 반응들을 저녁까지 모두 확인한 다음, 나는 약속을 위해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오랜만의 토요일 휴일이라 민희와 저녁 약속을 잡아 두었는데, 문을 열기 직전에 날아든 메시지 하나에 발걸음이 뚝 멈췄다.
[우철민PD: ‘무비 메이커’ 티저가 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