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41화 (141/200)

141화 라인

상남에 위치한 글러드 호텔.

방송가와 위치가 가까워서, 제작발표회 장소로 자주 사용되는 곳이라 나도 몇 번이나 와 본 적 있다.

그런 곳에 이제는 내가 메인인 프로그램을 발표하기 위해서 오게 되다니. 유달리 감회가 새로웠다.

“강 PD님, 여기예요.”

입구로 들어가자 제작발표회 준비를 전담한 마케팅 팀장이 손짓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시간 딱 맞춰서 오셨네요. 기자들도 슬슬 올 시간이니까 빨리 자리를 피하시죠.”

팀장이 웃음기를 머금고 하는 말에 주위를 들어보니, 역시나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늑대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작발표회는 다시 말해 기자들의 사냥터다.

어차피 여러 가지로 물어뜯길 것을 알기에 나는 팀장의 안내를 받아서 3층 대기실로 올라갔다.

“다른 분들은요?”

“다들 곧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제일 빨리 왔네요.”

“메인 PD가 가장 빨리 오다니. 군기 좀 잡으셔야겠어요.”

팀장은 다시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를 먼저 내렸다.

“안쪽에 대기실이 있으니 거기서 기다리…….”

라고 이야기하던 그녀가, 내 시선에 눈치를 채고 뒤를 돌아보았다.

“…….”

“…….”

무언의 눈빛이 오가는 것을 눈치챈 팀장이 뭐라고 입을 떼려는 때,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말했다.

“안쪽에 대기실이라는 거죠? 제가 찾아서 가겠습니다. 걱정 말고 가서 일 보세요.”

“어, 네. 그럼.”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도로 잡아타고 내려가고, 3층 복도에 우리만 남았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긴 하지만, 인기척을 인지할 순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 실장님.”

“그러게요…… 여기서 딱 마주치네요.”

미소를 띠고 있음에도 눈빛은 그렇지 않은 사람, 신동욱 실장이었다.

“업무로 오셨습니까.”

“네, 뭐. 강 PD님은 방송 제작발표회를 하시더군요. 같은 호텔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슬쩍 시선을 옮기는 것을 보고, 나도 그쪽을 살폈다.

엘리베이터 바로 옆방에, ‘영화 잭나이프 제작발표회 대기실’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바람처럼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영화 중 저런 제목이 있었지. 공교롭게도 제작발표회 장소가 같은 날, 같은 곳으로 겹친 모양이었다.

이 호텔을 고른 것은 마케팅 팀장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잘못이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신동욱 실장과의 관계를 알지도 못할 테고.

나는 보이지 않게 한숨을 토하며 간단히 묵례만 해 보이고 지나치려 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어차피 길게 엮여 봤자 좋은 일이 없는 사람이고. 관계자가 보기 전에 자리를 뜨려 했는데,

“소식 들었습니다.”

그의 말이 내 발을 붙잡았다.

“네?”

“박지운과 백종현이 술집에서 싸웠다면서요? 방송 오늘부터이실 텐데 조마조마하셨겠습니다.”

말에 숨어 있는 어조가 영 미심쩍었다. 걱정하는 투는 절대 아니고. 비웃고 싶지만 그걸 애써 눌러 참는 말투.

“둘 다 그런 이미지는 아닐 텐데, 촬영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방송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되더군요.”

“…….”

“뭐, 그 두 사람 캐스팅하신 건 강 PD님이시니까 잘 안고 계시겠지요.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씨익 웃는 것이, 한 대 때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 아닌데.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것을 고민하기 전에 생각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걱정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씀해 주신 대로 제가 안고 갈 문제죠. 방송 기다린다고 하셨으니, 그냥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복도를 걷는 내내 등 뒤가 따가운 게, 신동욱 실장이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고, 대기실을 찾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적당히 앉아서 대기실 테이블 위에 비치되어 있던 생수를 마시고 있자니, 문을 열고 준혁이 형님이 나타났다.

윤대명 매니저가 일정 확인해 보겠다고 나간 뒤에 그가 내 옆에 앉았다.

“뭐야, 이 좋은 날에 무슨 물을 그렇게 소주처럼 마셔.”

“하하하. 그러게요. 속 뒤집히게 하는 사람을 만나서 말입니다.”

“아하. 신동욱? 거기 영화도 제작발표회 하더라. 하필 바로 옆방이던데.”

형님도 올라오면서 이미 다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는 진득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싸움 영상 뜬 걸로 사람 속을 긁더라고요. 신경 쓰지 말라고 해 줬습니다.”

“그래, 잘했어. 상대해 주면 더 피곤해질 타입이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 방송이나 신경 쓰면 될 텐데 말이야.”

“뭔가 문제 있답니까?”

“방송보다는 영화 제작에 좀 차질이 있나 보더라고. 제작은 들어갔는데 투자자가 생각보다 안 모인다는 모양이야.”

하긴, <무비 메이커>는 우리보다 좀 더 영화 제작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우리야 배우 하나 뽑아서 꽂는 거지만, 그쪽은 영화 제작 다큐 같은 스타일의 예능이니까.

영화 제작 자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면 방송도 덩달아 막힐 테고.

그런 상황에도 저렇게 빼먹지 않고 시비를 걸어주니, 멘탈은 참 단단한 사람이다.

나는 다시금 깡생수를 들이부었다.

“우린 우리 일만 신경 쓰면 되겠죠. 오늘 제작발표회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할게.”

잠시 후 금완승 감독과 배우들이 속속 등장했다.

<더 라이벌>에 관련해서는, 공식 석상에는 처음인 배우들이라 흥분한 얼굴들이었다.

“강 PD님, 저 괜찮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형님 저 이 옷으로 괜찮을까요? 넥타이 바꿀까요?”

어느새 모든 배우와 형 동생이 된 준혁이 형님은, 지정된 드레스코드에 맞춰서 슈트를 차려입고 온 배우들을 돌아다니면서 점검을 해 주었다.

전직 모델인 센스가 여기서도 발현되는 중에, 나는 호출을 받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준비 다 했대.”

복도에는 우철민 PD가 와 있었다.

그와 조정아 메인 작가까지 단상에 올라갈 거라서, 그도 오늘은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이거 참. 이런 거 해 본 적이 없어서 영 어색해.”

“앞으로 익숙해지셔야죠. 스타트 끊는다고 생각하세요.”

“또 이럴 일이 있을까.”

외주 제작사인 입장이라서 그는 자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쑥스럽게 웃고 있는 그에게 달리 덧붙이지 않고, 어깨를 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기다리고 있던 마케팅 팀장과 조정아 작가와 합류해서 마지막으로 순서를 확인 후,

“별일 없기를 기원하면서, 시작해 봅시다.”

<더 라이벌>의 제작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별일 없기를 기원한 것은, 사실상 인사말 같은 것이었다.

제작발표회에 설사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기자들이 회장으로 들어오고, 그중에 익숙한 몇몇 얼굴과 민준기 기자도 보이고.

그러면서 개그맨 사회자의 진행과 함께 나와 제작진, 준혁이 형님까지 입장을 마쳤다.

“그럼 이제, ‘더 라이벌’의 주축이자 차세대 라이징스타를 꿈꾸는 10명의 배우를 소개합니다!”

짝짝짝짝―

찰칵! 찰칵찰칵!

사회자의 진행과 함께 문을 통해 들어온 배우 10명이 단상에 섰다.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박지운, 백종현이었다.

다른 배우들보다 한 단계 위의 인지도였는데, 이번 <더 라이벌> 출연 기사와 여타 일로 더 인지도가 올라간 상태.

그들이 기자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곧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더 라이벌’의 제작발표회가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송에 대해서, 저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하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들여 뽑은 타이틀 로고가 딱 박힌 현수막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 긴장을 이겨 내고, 사회자가 지목하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 가면서 제작발표회가 진행되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만으로 덮어 놓고 비판하는 시청자들도 아직 많습니다.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방송 기획 때부터 그런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충분히 고심하면서 제작을 진행했습니다. 그저 저희는 시청자 여러분이 바라시는 공정함, 투명함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런 자세를 끝까지 유지한다면 마지막까지 좋게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류준혁 배우님과는 벌써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압니다만, 합은 잘 맞으십니까?”

“류 배우님이 워낙에 잘해 주셔서요…….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씀을 해외에 있는 조카분이 들으시면 질투하지 않을까요?”

“그 조카도 이분과 친해서, 아마 괜찮을 겁니다.”

인터뷰 간간이 기자들의 장난기 어린 질문들도 날아와서, 긴장이 점점 해소되어 갔다.

“금완승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예능 쪽과 연계하는 건 영화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일 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아. 여기 류 배우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 와서 미팅 좀 하자고 하더라고요. 알았다 했더니 그날 같이 온 게 여기 강 PD여서…….”

“류준혁 배우님. 이번 방송에서 연기 지도를 담당하신다고 하셨는데, 본인 연기의 철칙 같은 것이 있을까요?”

“철칙이라……. 그냥 그 역에 맞춰서 공부하고 연구를 많이 하는 것을…….”

준혁이 형님이나 금완승 감독에게도 질문이 돌아가고, 그러면서 간담회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그럼 이제 배우분들에 대한 질문을 받아볼까요.”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기자들이 곳곳에서 손을 들었다.

“백종현 씨께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지난 <당잠사> 때와 비교해서 <더 라이벌>을 촬영하면서 류준혁 배우님과 좀 더 친분이 생기셨나요?”

“어…… 물론 변했죠. 그땐 그냥 함께 여행하는 배우 선배님이셨다면, 지금은 직접적으로 연기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박지운 씨는 전직 아이돌에서 배우로 거듭나고 있으신데요. 연기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도를 받아 보시니 어떻던가요?”

“류 선배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또 다른 트레이너분들도 잘 가르쳐 주셔서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배우분들이 보시기엔…….”

“촬영 때마다 늘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배우가 10명이다 보니 하나씩 질문을 건네도 그것만으로도 질문이 10번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죽죽 흘렀다.

본래 예정되어 있던 시간을 훌쩍 넘을 것 같아서였는지 밑에서 마케팅 팀장이 사회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 그럼 질문 하나만 더 받아 볼까요.”

몇 명의 기자가 손을 들었다. 개중에는 민준기 기자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자가 가리킨 것은 그보다 뒤쪽에 있던, 조용히 간담회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기자였다.

그가 일어나서 마이크를 넘겨받더니, 내게로 시선을 던졌다.

“‘주간 연예’의 추경락 기자입니다. 강 PD님이 보시기엔 10명 배우 중 어떤 배우가 최종 1인이 될 것 같으십니까?”

제작발표회가 으레 그렇듯 미리 어느 정도의 질문지를 나눠 주고 진행한다.

예정된 질문이 반, 아닌 질문이 반인 식인데, 이 질문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난 마이크를 손끝으로 긁다가 들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많은 촬영이 남아 있고, 또 방송도 시작하지 않아서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10명 모두 재능 있는 배우들이고, 그중 누가 되더라도 제작진으로서 공정하게 응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추경락이라는 기자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10명 중 2명은 바로 며칠 전에 트러블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배우도 공정하게 응원한다는 건 다른 배우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이 아닐지요?”

“…….”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황당해서이다.

박지운과 백종현,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그것은 숨기지 않고 방송에 녹여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올 줄은 몰랐다.

새삼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민준기 기자처럼 우호적인 내 편도 있지만, 기자 중엔 이런 작자들도 많다.

“그건 방송에서…….”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준혁이 형님이 대신 마이크를 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를 말리고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공정하다는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이미 벌어졌고, 되돌릴 수 없고, 그렇기에 방송에 그대로 녹여 낼 생각입니다. 사건 자체는 두 배우가 안고 가야 할 것이고, 그 과정을 이겨 내기를 저도, 제작진도 바라고 있습니다.”

“…….”

“시청자분들도 그런 모든 정보를 알고 배우를 선택할 수 있어야, 그것이 공정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금 과격했을까. 기자들이 어떻게 받아서 기사화해 줄지 당장 감이 잡히지 않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했다.

“대답이 되었을까요.”

“……예, 진지한 대답 감사드립니다.”

추경락 기자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그것으로 간담회가 끝이 나고, 제작발표회도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가서 기분 잡쳤네요. 그냥 다들 멱살 잡고 한번 싸울래요?”

백종현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배우들 사이로 웃음이 퍼져 나갔다.

그의 농담으로 배우들이 아무렇지 받아 주는 건, 그 일 이후로 박지운과 둘이서 배우들에게 사과했기 때문이다.

둘의 신경전을 알고 있던 배우들도 모두 그 사과를 받아 주었기 때문에 우리끼리는 잘 정리된 문제인데, 기자라는 표현도 아까울 기레기 하나가 그것을 걸고넘어지니 다들 화는 났을 것이다.

“또 싸울 거면 이번에야말로 널 때려 줄 거야.”

“형, 얼굴은 피해 줘요.”

박지운의 농담에 백종현이 다시 맞장구를 치고, 그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흐뭇하게 보고 있던 우리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제작발표회 수고했습니다, 강 PD님.”

민준기 기자였다.

제작발표회가 끝나면 으레 기자들 출입을 통제하지만, 민준기 기자는 사전에 조치해 놓았다.

그는 나를 끌고 대기실을 나가, 복도 끝의 사람 없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에게서 나는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었다.

“아까 그 기자, 신동욱 실장 라인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