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목표 시청률
일단 말문이 막혔다.
6%가 무슨 애 이름도 아니고. 아무리 <강철 사제>의 후광을 받는다지만, 배우 오디션 프로그램 <더 라이벌>이 첫 화 시청률 6%로 스타트를 끊을 수 있을까?
“못 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나보다 더 단단하게 단언하는 것은 정민우 팀장이었다.
“<언더커버 싱어>도 처음 목표는 3%였잖아. 최종 시청률은 8%를 넘었고. 6% 할 수 있지 않겠어?”
나를 보고 씨익 웃는데, 그냥 계급장 떼고 때려도 되나 하고 1초 정도 고민했다.
“아니요……. 그건 BJ 경연이었다고 해도 어쨌든 노래와 무대가 있었잖습니까. <더 라이벌>은 중간에 무대 경연 한 번 말고는 마지막에서야 시청자 투표를 받을 겁니다. 그 정도 화제성을 잡고 나가기에는 어렵습니다.”
첫 화 시청률이 6%라니. 내가 그걸 장담할 만큼 짬바도 아니고.
AGD 앱의 가호를 받아 연달아 방송이 잘되긴 했지만, 그만큼 나는 내 나름대로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배우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도전인 만큼 분명 시청률이나 화제성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애초에 우리 방송은 더 중요한 개념이 있지 않은가. 바로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내가 단호하게 말을 끊자, 두 명의 상사께서는 서로 눈빛을 마주치더니 씨익 하고 웃었다.
“그래, 다행이네.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
“혹시나 했어. 요새 그래도 촬영 분위기 좋다고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갔을까 봐.”
이 사람들이……. 또 떠봤나 보다. 나는 진득이 한숨을 쉬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촬영 이외의 건으로 조언을 구했었는데, 허파에 바람이 들어갈 타이밍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촬영 자체는 순조롭잖아. 1화 편집본 진행도 잘된다며.”
“그건 그렇습니다만.”
“걱정 마. 잘될 거니까.”
좀 전까지는 놀렸던 사람들이지만, 날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사실 위에서는 좀 압박이 있지만, 소박하게 3% 정도로 잡고 시작하자고.”
“어디가 소박한 건가요, 그게.”
“안 돼. 더 이상은 못 깎아 줘. 돌아가.”
한숨이 다시 새어 나오려 했지만 참았다.
“예, 3%…… 한번 해 보겠습니다.”
힙플스튜디오 사무실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의실에 정리된 촬영 일정표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저께 새벽에, 혼자서 철야하고 있는 우철민 PD를 만나지 않았다면 진즉에 했어야 하는 작업이다.
첫 촬영부터 각 트레이닝 신의 촬영, 무대 연기를 위한 대학로 촬영, 파주 액션스쿨 촬영 등등.
거기다 1월 말부터 시작되는 방영 스케줄까지 총 망라한 화이트보드다.
거기 위에다가 오늘 내려온 목표 시청률을 적었다.
『‘더 라이벌’ 금요일 오후 9시―목표 시청률 3%』
그 타이밍에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우철민 PD가 들어왔다.
그가 화이트보드 앞으로 와서 내 옆에 섰다.
“시청률 오더 내려왔구나.”
3%라는 숫자.
우철민 PD가 예능 전문까지는 아니어도, 방송계의 흐름이 어떤지 정도는 알고 있다.
케이블 예능에서 3%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물론.
“3%라. 커트라인이 높네.”
1화 시청률이 3%이고, 어디까지나 최종은 아니다. 평균 시청률은 더더욱 아니고.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첫 화는 언제나 중요한 법이다.
일단, 첫 화 시청률 3%는 가능할까?
화이트보드에 집중하면서 AGD 앱을 일깨웠다.
“……원래는 뭐라셨는지 아십니까? 6% 가능하냐고 하시더군요.”
“어이구. 우리는 너무 믿으시네. 강 PD를 믿는 거겠지만.”
“그래서 그건 너무하다고 했더니 알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사람 참 잘 놀리는 분들이라 식겁했습니다.”
내 말에 우철민 PD가 낄낄대면서 웃고는, 코 밑을 스윽 훔치고 물었다.
“그래서, 3%는 가능할까?”
“가능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라도?”
“이렇게 다들 열심히 하는데 가능하겠죠.”
자신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83%]
편집본이 아직 완성되지 않는 시점에 83%가 이미 기록되어 있다.
17%의 부족 확률이 있지만, 그것을 올리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자신했다.
확률을 올릴 방법은 아직 많이 남았다.
이번엔 각 잡고 한번 100%를 만들어 보자.
* * *
일정에 맞춰 촬영은 착착 진행되었다.
목요일에 맞춰 플래티넘의 지하 연습실로 모인 출연진이 트레이너들에게 기본기 연습을 받고, 추가로 개인기 연습 장면도 촬영했다.
개인기는 사실 우리 방송에서 큰 비중은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배우라도 엔터테이너적인 면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보니 한두 가지 개인기가 있으면 좋았다.
그런 면에서 사실 가장 두각은 나타내는 것은 박지운이었다.
“음, 그럼…… 지운 씨 한번 나와서 춤 춰 볼래요?”
트레이닝을 위해 온 댄서는 플래티넘 소속이었다.
효명이를 비롯한 엑시트의 댄스 트레이닝을 담당하기도 해서, 춤에 기본기가 없는 배우들도 곧잘 가르쳤다.
그중에 역시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박지운이었다.
댄서의 말에 따라 앞으로 나온 박지운이 가르쳐 준 대로 자세를 잡았다.
둥―
잠시 후 힙합풍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거기에 맞춰 자유로운 춤을 선보인다.
거울 앞에서, 그리고 다른 9명 앞에서 보이는 춤은 문외한이 봐도 잘 췄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난 후에 나도 맨엠블럼의 무대를 몇 개 찾아봤는데, 박지운은 멤버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둥, 둥, 둥!
연습실을 울리던 음악이 끝났다.
“하아…… 하아…….”
그 박자에 맞춰 춤을 끝낸 박지운이 땀을 털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짝짝짝!
“브라보!”
백종현이 머리 위로 손을 올려서 박수를 쳐 댔다. 박지운이 한번 그쪽을 흘겨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게 박수 소리가 더 강해졌다.
“그래, 자, 박수!”
분위기를 틈타 댄서도 박수를 유도하여, 금세 출연진 전체로 박수가 퍼졌다. 박지운은 무뚝뚝하게 백종현에게서 시선을 떼 고개를 돌렸다.
“역시 아이돌 출신이니까 기본기도 확실히 좋네요. 춤추는데 눈빛도 살아 있고. 뭐, 다들 이렇게 춰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기가 몸에 익어 있으면 나중에 배역에도 써 먹을 수 있으니까 좋겠죠?”
“예에~”
“춤 싫다…….”
연기 연습은 아니다 보니 다소 느긋한 분위기였지만, 이건 이거대로 괜찮았다.
연기 관련 연습 때는 다들 너무나 열심히 해서 오히려 예능적으로 어쩌나 걱정이 들 정도니까.
예능이라.
그래, 이런 장면이라도 예능을 챙겨야지.
나는 기본 스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댄서에게 손을 저어서 보게 하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아?”
댄서가 무슨 말인지 알아채고는,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앉아 있으신 분 중에, 춤을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있네요. 이 기회에 어떠세요?”
“……?”
“누구…….”
출연진이 서로를 번갈아 보다가, 최종적으로 한 명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그 한 사람이, 제일 뒤쪽에 자리해 있다가 몰리는 시선에 헉 하고 놀랐다.
“뭐? 나?”
“류준혁 배우님, 나오시죠!”
댄서가 박수를 치고, 그러자 배우들도 좋다고 함성을 내지르고, 제작진도 카메라에 목소리가 담기든 말든 소리를 내질렀다.
준혁이 형님이 갈팡질팡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것 같아서, 나는 친히 나서서 결정을 도왔다.
“음악 틀어.”
“야! 강대한!”
둥! 둥둥둥!
조금 다른 댄스 음악이 연습실에 울려 퍼지자, 준혁이 형님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흡사 대학교 새내기 환영회에서 술을 권하는 못된 선배들처럼, 류준혁이 일어날 때까지 모두가 합심했다.
결국 준혁이 형님은 꾸물꾸물 일어나서, 그 노련해 보이는 진행과 연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손발이 자유로이 유영하는 막춤을 선보였다.
30초도 추지 않았지만, 류준혁 배우 데뷔 이래 가장 해괴한 영상이 카메라에 담겼다.
“푸하하하하!”
“풉, 크흑, 크크크큭…….”
끝내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을 폭소하게 만든 다음에야, 준혁이 형님은 본인 자리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다.
“수고하셨어요~ 류 배우님도 이 기회에 같이 배우시죠. 배우도 춤출 줄 알면 좋답니다!”
댄서의 제안에 모두가 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준혁이 형님은 결국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본 스텝을 다 떼지 못했다.
“형님, 몸치셨군요.”
오늘치 촬영이 끝난 시점에 준혁이 형님에게 가서, 허심탄회하게 비웃어줬다.
그는 퀭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멱살을 잡았다.
“야, 너지. 네가 꾸민 일이지!”
내로라하는 한국 대표 배우 류준혁에게, 연기 이외에 멱살이 잡히는 경험을 하다니. 나는 우철민 PD를 쳐다봤다.
“우 PD님! 이거! 찍어요! 예고편으로 씁시다!”
“이 악마 같은 PD 같으니!”
우리가 그렇게 알콩달콩하고 있는 것은, 주변 모두가 웃으면서 바라봐 주었다.
“저희 1화 시청률 목표가 3% 아닙니까. 형님도 도와주셔야죠.”
“내가…… 꼭 이렇게 도와야겠냐…….”
“예능이잖아요. 예능에 웃음은 아주 중요한 요소랍니다.”
낄낄 웃어주자 준혁이 형님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멱살을 놓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놈이랑 엮여서…… 어쩌고 하는 말을 들린 것 같지만 모른 척했다.
“다음 주 촬영 못 나오시니까 그 몫까지 하고 가셨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1월 초로 잡혀 있던 <당잠사> 시즌6 촬영 스케줄이 확정되었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도는 7일짜리 여행 일정으로, <더 라이벌> 촬영은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했다.
미리 이야기를 들어서 조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들보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라 허전했다.
“그러게.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 주에 개인기 연습을 찍을 걸 그랬어.”
“다음 주는 액션 스쿨 일정을 못 옮기니까요. 혹시 부족하거나 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제주도에서 부르려고?”
“종현이를 대신 보내죠 뭐.”
백종현도 <당잠사> 멤버지만, 이번 <더 라이벌>에 집중한다고 결국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잠사>는 최종적으로 7명의 출연진으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카메라가 비지 않을지 민희가 조금 걱정하긴 했다.
“열심히 한다는 애 고생시키지 마.”
“본인은 가고 싶어 했어요. 회사에서 막은 거지.”
“말이 그렇지, 쟤도 연기 욕심은 있는 애야. 금 감독님도 그러셨는데.”
금완승 감독은 첫 촬영 때부터 백종현을 맘에 눈에 여겨 봤다. 기본기가 조금 부족하다 해도 연기에 소질이 분명 있다고 본 것이다.
연기 관련 촬영에서는 그래서 백종현이 확실히 앞서나가긴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할 만큼.
“다음 주 건너뛰고 오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네.”
“사이사이 연락드릴게요.”
“그래.”
<당잠사> 촬영을 위해 효명이가 들어오면 한번 셋이서 시간 내어 보자고 한 뒤, 준혁이 형님이 먼저 촬영장에서 돌아갔다.
배우들을 모두 보낸 다음 플래티넘 연습실에서 철수하여 사무실로 돌아오자 다시금 심야가 되어 있었다.
오늘 촬영분에 대한 데이터 정리를 한 다음, 나는 편집실에 앉았다.
오늘 찍은 영상들을 정리해서 티저안을 정리해 두는 사이에, 우철민 PD가 팀원들을 보내고 편집실로 들어왔다.
“어라, 왜 왔어요. 돌아가시라니까.”
“메인이 이렇게 남아 있는데 어떻게 그냥 가. 사장님이 다른 일도 안 시키니까 체력이 남아. 티저 편집 잡을 거지? 같이 해.”
한 차례 일이 있어서 그런지, 우철민 PD와는 그 이후로 부쩍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원래도 서글서글한 인상을 강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감정이나 생각도 보이는 듯했다.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서 옆자리를 내주고, 1화 편집본과 그동안의 촬영본에 맞춰서 티저를 골랐다.
“티저는 다음 주 금요일부터 하나씩 풀릴 거예요. <강철 사제> 뒤에 붙여서. 대신에, 저희 공식 계정용으로 ‘선공개’ 붙여서 몇 개 더 풀려고 합니다.”
“음, 전에도 이야기했었지? 잠깐만, 그럼 그걸…….”
우철민 PD는 서버에 접속해 영상 몇 개를 보여 주었다.
“어…… 만들어 두신 거예요?”
“시간 날 때 이런 거 어떨까 하고 좀 잡아 둔 거야.”
그가 만들어 둔 클립 영상들을 하나씩 훑어보며 나는 감탄했다.
“괜찮네요. 이거 좀 다듬어서 그대로 올려도 되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작업해서 계정에 올릴 준비 해 둘게. 바이럴 이후로 오랜만에 계정을 되살리겠네.”
“오늘 준혁이 형님 춤추는 장면은 꼭 포함시키죠.”
“당연히 그래야지.”
그가 의욕적으로 나서 주니 뒤가 든든했다.
[85%]
회의실에서 확인한 화이트보드의 확률은 순조롭게 오르고 있으니, 만사형통이었다.
티저가 나가고, 제작발표회를 하고, 보도자료를 뿌리고.
차곡차곡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제 <더 라이벌> 첫 방송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