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136화 (136/200)

136화 당연한 말

차에 앉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고민했다.

눈앞으로 국성재 사장이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로.

갑질이란 단어에 좋은 이미지가 없는 것은 한국의 모든 직장인이 그러할 텐데, 내가 그 갑질을 해야 한다니.

내 팀원 챙기려고 하는 거라지만…… 그래도 끝까지 맘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 국성재 사장의 어젯밤 행적을 들을 때까지는.

그가 술이다, 골프다, 친구랑 그런 농담 따먹기를 할 만한 어젯밤을 보낸 그 시각, 우철민 PD는 그가 무리하게 받아 온 일정을 처리하느라 밤을 새웠다.

내가 옆에서 같이 돕지 않았다면 분명 오늘도 일을 이어서 하고 있을 것이다.

억지 일을 맡겼으면 최소한의 죄책감은 가졌어야지. 그러나 국성재 사장에게선 그런 모습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예? 지금 뭐라고 했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지만 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되묻는 그에게, 나는 가능한 한 억양을 없애 이야기했다.

“우철민 PD는 이제 <더 라이벌> 팀의 일원입니다. 그 외의 일을 맡기신다면, 방송국에 보고해 그냥 다른 회사에서 팀을 꾸리겠습니다. 그렇게 알아두십시오.”

“어, 어어…… 강 PD, 이봐, 강 PD!”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문이 닫히는데 열림 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것도 잊은 채 국성재 사장은 문을 두들겼다.

물론 엘리베이터의 문은 차갑게 닫혔다.

“……휴우, 쫄려라.”

혼자 남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괜히 땀이 나서 목덜미를 한번 훑었다.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는 게 아니라고, 정민우 팀장의 조언을 받았다곤 해도 제작사를 바꿔 버리겠다는 협박이라니.

제작사를 바꿀 권한 같은 거, 사실상 나한테 있을 리가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서인하 국장의 권한이니까.

하지만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자체는, 정민우 팀장이 말했던 대로 통할 것 같았다.

[96%]

AGD 앱이 그렇게 가르쳐 줬으니까.

이 갑질이 높은 확률로 국성재 사장에게 통할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쫄리는 마음을 다 잡고 이야기한 것이다.

“먹혀야 할 텐데…….”

4%의 부족 확률이 계속 신경 쓰이는 건, 이런 짓이 영 익숙지 않기 때문이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힙플스튜디오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는데, 뒤이어 옆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가, 강 PD!”

국성재 사장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다른 엘리베이터가 금방 도착했었나 보네.

나는 흠칫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표정함을 위장하고 돌아섰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 그, 내 말 좀 들어보게.”

복도에서 나를 붙잡고, 그가 하염없이 늘어놓는 소리는 뻔한 것들이었다.

요새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 클라이언트가 해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우민철 PD는 끝나고 나면 내가 좀 챙겨 주려고 했다, 등등.

그것을 끄덕끄덕거리면서 들은 다음, 나는 그의 머리 위를 살폈다.

[98%]

참 속이 뻔히 보이네. 고민했던 게 허망해질 정도로.

좋은 짓은 아니지만, 세상엔 갑질이 잘 먹히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내 눈앞의 그가 딱 그랬다.

“됐습니다.”

더 늘어지려는 그의 말을 잘랐다.

“제 뜻은 분명히 전했으니, 판단은 국 사장님께서 하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이봐, 강 PD! 강……!”

엘리베이터 앞에 그를 두고 나는 힙플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

바쁘게 뛰어다니던 팀원들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하고, 그들에게 일일이 눈인사를 나눈 뒤에 우철민 PD를 찾았다.

그는 회의실에 있었다. 일찍 들어가라고 하긴 했는데, 역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일찍 들어가시라니까요.”

회의 결과는 이미 메신저를 통해 들었으니 그냥 들어갔어도 될 텐데.

그러자 우철민 PD는 사람 좋은 미소를 힘없이 지어 보였다.

“월급 받는 입장에서 그럴 순 없잖아. 아직 사장님도 안 나오셨고, 사장님께 보고할 것도 있고…….”

눈치를 보니 새벽까지 함께 끝낸 동영상에 대한 보고인가 보다.

파일을 회사 서버에 올린 것으로 아는데 그건 또 국성재 사장이 혼자 확인을 못하나.

그런 답답함에 한숨을 지으려고 하고 있는데, 회의실 밖에서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나오셨어요?”

국성재 사장이었다. 그는 직원들 인사를 받으며 사장실로 향하다가,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

굳이 묵례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를 보고 있자, 그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고선 도망치듯 사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괜한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것을 참고서, 우철민 PD와 촬영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잠시 후 배두언 조연출이 달려오더니 회의실 문을 빼꼼 열었다.

“실장님. 사장님이 찾으시는데요?”

“응, 그래.”

어차피 사장실에 들어갈 생각이었던 그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어섰다.

자신의 자리에서 서류를 챙겨서 사장실로 들어간 뒤 한 5분 정도.

사장실에서 돌아온 우철민 PD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사장님께서 말이야, 일 마치면 그냥 일찍 들어가라네. 그리고…….”

“좋은 일이네요. 그게 다예요?”

“그냥 앞으로는 딴 일 안 해도 되니까, <더 라이벌> 방송에만 신경 쓰라고.”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았다.

그 이야기를 하는 중에 사장실에서 다시 옷을 챙겨입은 국성재 사장이 나왔다.

재차 유리창 너머로 눈이 마주친 그는, 히극 하고 놀라더니 서둘러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참 속이 뻔히 보이는 사람이구나.

나는 절로 나오는 웃음을 굳이 참지 않고 우철민 PD를 보았다.

“이제 <더 라이벌>에만 집중하실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팀으로서도, 우 PD님한테도요.”

“응. 그건 그렇지.”

의아해하면서도, 우철민 PD는 후련해 보였다.

요 며칠 누구보다 맘고생 했을 사람이니 당연한 일.

“자,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도 바쁩니다.”

나도 그래서 당연한 말을 해 주었다.

* * *

오늘 일은 빠르게 끝냈다.

촬영 때문에 며칠 쉼 없이 달려오기도 했고, 우리 팀의 축인 우철민 PD가 빨리 들어가야 하기도 했으니.

국성재 사장은 나가서 그대로 퇴근한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나는 내가 이끌고 있는 팀원들에게 퇴근을 독려하고 먼저 나섰다.

“국장님?”

그러다 차 앞에서 서인하 국장을 마주쳤다.

아니 왜 이분이 여기에…… 어떻게 여기에…… 하는 여러 의문이 드는 얼굴을 해 보이자, 서인하 국장도 피식 웃었다.

“여기 근처에서 미팅이 있었어. 괜찮으면 차 얻어타고 가려고 강 PD한테 연락할 참이었는데, 마침 내려오네.”

아직 내가 사무실에 있나 하고 차를 확인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퇴근길이었지만 NBS에 서인하 국장을 내려주고 가는 게 딱히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 나는 얼른 시동을 켰다.

“타시죠.”

“강 PD가 운전하는 차를 다 타 보네.”

생각해 보니 일개 PD 주제에 국장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다녔었구나. 잠시 반성…….

“이거 회사 차지? 자차 안 사?”

“매달 빌리는 것도 귀찮고 해서, 이번 방송 끝나면 사 볼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전에 집부터 옮기고 싶지만요.”

다행히 몇 개의 프로그램이 잘되면서 보너스 받은 것들이 통장에 고이 잠자고 있다.

대출 좀 끼면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겨 갈 수도 있으니, 사실 차보다는 그게 더 급하리라.

“결혼하려고?”

끼익―!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던 중에 흠칫 놀라 브레이크를 밟아 버렸다.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섰다.

“아니…… 갑자기 무슨…….”

“강 PD도 그럴 나이는 됐잖아. 민희랑 둘이 사귀는 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결혼 이야기도 슬슬 있지 않을까 했지.”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일단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꾹꾹 참으면서 말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의 연애라서, 연애를 좀 즐기려고요.”

“뭐, 그래. 젊은 시절에 연애도 좀 뜨겁게 해 보는 것도 좋지.”

나도 그렇고 민희도 그렇고, 서인하 국장 입장에서는 친한 부하들이니 아마 마음을 써 주는 모양이었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나타난 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혼내려고 오셨습니까?”

짚이는 점이 하나 있었다.

“음, 그런 건 아니고.”

서인하 국장은 내 질문을 대번에 이해했다.

“갑질하라고 한 건 정 팀장이었다며? 부하가 상사 말 들은 걸로 혼낸다는 건 앞뒤가 안 맞지. 단지 걱정되는 것도 있고 해서, 이야기해 주려고 온 거야.”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운전하면서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같은 일에 익숙해지지 마.”

“예.”

“갑질이란 게, 옳게 쓴다는 건 사실상 있을 수 없어. 뜻이 어떻든, 어차피 협박이나 마찬가지인 거고. 정 팀장이야 강 PD한테 돌아올 것이 크다는 생각에 알려 준 방법이겠지만, 원래라면 결코 쓰면 안 되는 방법이야. 알지?”

“알고 있습니다.”

서인하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 PD는 잘할 거야. 그렇게 믿으니까 알려준 거고.”

그렇지 않아도, 서인하 국장에게는 제대로 인사를 해 두어야 했다.

“팀장님 말씀대로 했고 또 큰 도움이 됐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영 찜찜하긴 했습니다. 그 찜찜함이 당연한 거라고 말씀해 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신호로 선 틈을 타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제가 모르는 게 많고 배울 게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좀 가르쳐 주십쇼.”

“내가 더 가르쳐 줄 게 있다면 나도 좋지.”

차 안에 훈훈함이 감돌았다. 틀어 준 히터 때문이 아님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로 갑질 건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하고, 서인하 국장이 알고 있는 외주사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사실 많은 외주사들이, 방송국이나 클라이언트의 압박 아닌 압박으로 우철민 PD 같은 생활을 한다고 한다.

“국장님이 외주사와 방송을 진행해 보라고 하지 않으셨더라면, 아마 평생 몰랐을 겁니다.”

“우린 굳이 따지자면 클라이언트가 되는 입장이니까 알기는 힘들지. 지금이라도 알아두면 좋은 거고.”

“예. 많이 배워 가겠습니다.”

그렇게 <드림 어게인> 이후로 서인하 국장과 진득한 대화를 나눈 시간이 흐른 뒤.

방송국 앞에 차를 댔다.

“고마워. 잘 들어가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보고는 정민우 팀장 통하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수석 문을 닫기 전 서인하 국장과 허리를 낮춰 나랑 눈을 맞추었다.

“방송 마무리되면 한번 술이나 마시자. 할 이야기도 있고.”

“어, 예.”

무슨 이야기요? 라고 물을 새도 없이 그는 문을 닫고 떠나갔다.

서인하 국장이랑 따로 술 마신 게 언제더라.

<당잠사> 회식 때 이후로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새삼 오래된 일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날이 오면 알겠지.

나는 메시지로 정민우 팀장에게 일찍 퇴근한다는 연락을 남겨놓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출근길에 박주영 선배에게 목을 졸렸다.

“야, 너 인마. 얼굴 보기가 왜 이리 힘드냐.”

“컥, 큭, 선배. 죄송, 죄송햇, 켓.”

사과를 했지만 한참을 더 조른 선배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면서 방송국 정문을 통과했다.

“하긴, 정말 뵌 지 오래되었네요. 팀원들은 다 잘 지냅니까?”

“뭐, 우리 팀이야 잘 굴러가지. 안 봤냐? 지난주에 시청률 갱신했는데?”

<달리는 도시인>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보니 아예 1년 단위의 프로젝트를 굴려보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단다.

그만큼 시청률도 잘 자리 잡아서 토요일 예능으로서는 이제 몇 손가락에 꼽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보너스도 받았단 말이지. 언제 시간 되냐?”

“어, 술 사 주시게요?”

“오랜만에 민희도 불러서 셋이서 한잔 어때.”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저보다 더 바빠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친 챙기는 거냐고, 눈꼴 시린다고 한 소리 듣고서, 또 엉덩이를 차이며 엘리베이터를 올랐다.

그가 먼저 내리고, 나는 예능국 층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향했다.

정민우 팀장은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국장님이 부르시더라.”

“예. 들어가시죠.”

어차피 오기 전에 연락을 받아서 들어갈 것을 알고 있었다.

“좋은 아침들이야.”

서인하 국장은 어제 만났다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정민우 팀장과 그가 꺼낸 이야기를 기다렸다.

“목표 시청률이 나왔어.”

보통은 몇 프로까지 가능할 것 같냐고 물었을 텐데, 이번에는 다소 어조가 달랐다.

예상은 하고 있던 바였다.

<강철 사제> 후속으로 배치되었고, 드라마국으로 넘어갔던 시간대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라서 예능국 차원에서의 기대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침을 삼켰다.

“첫 화 6% 이상, 가능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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